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것이 역사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저 한 세상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귀족이나 왕실의 생사에 대해 필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역사의 한 축을 이루는 사람은 개인이 아닌 공인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사회적으로 관심 밖에 있는 민초(民草)라 할지라도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가족과 주변인들로부터 축하와 애도가 따르기 마련인데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그 정도는 오죽할 것인가.
기독교 발생의 초기에는 인간의 탄생을 기쁨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저주로 여겼다. 아담으로 인해 인간은 누구나 죄인으로서 태어난 순간부터 지옥으로 가는 고행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보다는 죽음을 성스럽게 여겼고, 그래서 생일보다는 축일(祝日)을 기념했다. 성탄절보다 부활절에 더 의미를 두고 내세의 소망을 즐기며 축하다가 성탄일로서 크리스마스 날을 제정하여 축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우주의 창조로 여기는 한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더구나 이 세상에서 할 일 다 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우주의 신비로운 질서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탄생에 대한 축하보다 죽음에 대한 의식을 더 엄숙하고 장엄하게 집례한다.

일반인의 죽음에 대한 의식은 김소월의 시 ‘초혼(招魂)’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지금은 다 사라진 풍습이지만 사람이 죽으면 평소 그가 즐겨 입던 옷을 들고 마당에 나가 주소와 이름을 부르며 북쪽을 향해 ‘복(復)’을 세 번 외쳤다. 죽음은 영(靈)과 육(肉)의 분리로 보았기 때문에 육신에서 떠난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의식이다. 이를 고복(皐復)의식이라 하는데 고(皐)는 명령, 복(復)은 돌아오라는 뜻이니 북망산을 향해 떠난 영혼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명령하는 의식이다. 그 아쉬움의 순간을 소월은 초혼의 시에 애절하게 담아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3.4연 중략 -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소월을 전통시인이자 민요시인, 향토시인으로 보는 이유는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민요적 가락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이렇게 처절하리만큼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이 일반인의 아픔이었다. 요즈음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간편한 절차에 슬픔도 절제하지만, 예전의 상례(喪禮)는 이웃들도 함께 따라 우는 공동체로서의 정서가 실려 있었다. 그 때만큼은 가버린 이에 대한 아쉬움을 공유하며 각자의 가슴에 쌓인 한(恨)을 토로하는 한풀이(?)의 시간이었다. 일반인의 죽음을 마을의 공동 행사로 행사로 치룰 만큼 상례는 그 어느 의례보다 엄숙하고 장엄했다. 사가에서 그럴 진데 왕실에서의 죽음은 어떠했을까?

왕의 죽음과 양위
임금이 죽음을 앞두고 숨을 고르면 임종(臨終)을 위해 세자와 대신이 자리를 지킨다. 임금이 숨을 거두기 전에 세자에게 왕위를 넘기는 유언을 남기면 동석한 대신은 유교(遺敎)를 작성하여 정상적인 왕위의 계승을 공증하듯 기록한다. 왕이 승하하면 일단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눕히고 코 밑과 입 사이의 오목한 인중(人中) 부위에 햇솜을 올려놓고 죽음을 확인한다. 즉 햇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알고 곡(哭)을 시작했다. 곡이 나면 내시는 왕이 평소 즐겨 입던 옷을 가지고 궁궐 지붕의 동쪽으로 올라가 용마루의 중앙에서 왼손으로는 옷깃을, 오른 손으로 옷의 허리부분을 잡고 북쪽을 향해 ‘상위복(上位復)’을 세 번 외친 후 서쪽 지붕으로 내려온다. 동쪽은 생명의 탄생, 서쪽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한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상징하는 행보다.
지붕에서 던진 옷은 마당에서 다른 내시가 함으로 받아 임금의 시신을 덮는다. 상(上)은 임금, 위(位)는 임금의 자리이니 임금의 육신을 떠난 영혼에게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 임금의 지위를 지키라는 애절한 명령이다. 그러고는 5일을 기다린다. 행여 5일 동안 영혼이 되돌아와 소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다.
그렇게 소생을 기다리며 3일째 되는 알에는 소렴(小殮)을 하고, 5일째 되는 날에는 대렴(大殮)을 한다. 소렴 때에는 옷을 19벌 입히고 대렴 때에는 90벌을 입혀 대행왕(大行王)이 입관할 때에는 모두 109벌의 옷을 입는다. 이렇게 소렴과 대렴을 거치는 5일 동안에는 임금이 죽어 자리가 빈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행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옷을 입혔을까?
조선왕실의 장례는 국장(國葬)과 예장(禮葬)으로 구분하여 집례했다. 임금이나 중전, 세자가 죽으면 국장(國葬)으로 격을 높여 집행했고, 세자빈 왕비의 부모 빈, 귀인, 왕자, 공주, 종친의 2품 이상, 공신, 문무관의 종1품 이상이 죽으면 예장(禮葬)으로 집행했다. 누가 죽었느냐에 따라 규모와 예우를 달리 집행한 것이다.
왕이 죽으면 당일에 국장도감(國葬都監), 산릉도감(山陵都監), 빈전도감(殯殿都監) 등 삼도감(三都監)을 설치했다. 국장도감에서는 장례에 따르는 모든 의전과 문한(文翰), 그리고 재정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빈전도감에서는 시신의 수습과 빈소 마련, 염습과 상복을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 산릉도감에서는 장지를 정하여 묘지를 조성하는 일을 담당했다. 묘지에 임금의 시신을 묻기까지는 대부분 오륙천 명의 인부가 5개월에 걸쳐 일을 해야 했다. 왕릉의 구조물로서 석물(石物)을 조각하여 산릉을 장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간 동안 빈전에 안치한 시신이 썩어 물이 흐르고 악취가 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름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석빙고에 저장해 둔 얼음을 꺼내어 빙상을 만들고 그 위에 평상을 깔아 온도를 낮추어 부패를 방지한 후 숯과 미역 등을 이용하여 습기를 제거한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그렇게 많은 옷을 입히지 않았나 싶다.

임금이 돌아가신 후 6일째에 이르면 세자는 드디어 성복(成服)을 한다. 성복은 상복을 입는 의전의 과정으로서 상복을 통해 대외적으로 상주(喪主)임을 공표하고 왕실의 후계자임을 밝히는 행위다. 그러나 아직 왕위가 비어 있어 국정의 공백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부왕이 죽어 슬픈 상황인데도 상주로서의 세자는 즉위식을 거행했다. 그 엄숙한 의식을 국상(國喪)의 한 과정 속에서 진행한 것이다. 즉위식은 상복을 입은 세자가 잠시 길례복인 면복(冕服)으로 갈아입고 선왕의 유언인 유교(遺敎)와 대보(大寶국새)를 받들고 어좌에 오른다. 이후 ‘동궁’의 명칭은 ‘전하(殿下)’로 바뀌어 신하들의 산호(山呼-나라의 큰 의식에 황제나 임금의 축수를 표하기 위하여 신하들이 두 손을 치켜들고 만세, 또는 천세를 외치는 일)로 하례를 올린다. 부왕의 상중이라 정신은 없지만 왕위에 오른 기쁨을 민초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죄수들을 방면하는 사유(赦宥)령을 내린다. 그러고는 다시 어좌에서 내려와 상복으로 갈아입고 빈전으로 가서 상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역사 드라마에 나오는 즉위식에서 삼현육각을 울리며 성대하게 즉위식을 행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선왕의 시신이 아직 빈전에 있는데 어찌 자식이 기쁘게 즉위식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 상중에 즉위식을 올리는 자체를 송구하게 여겨 세자는 왕위 계승을 거절하며 슬픔의 예를 갖추는 것이 즉위식의 모습이었다. 다만 세종대왕은 태종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양위했기 때문에 성대한 즉위식을 올렸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과 인조의 즉위식도 잔치 분위기였다는 점이 다르다.
조선 초에는 주자가례를 따라 경국대전을 펴 그 예를 따랐으나 세종대왕이 1419년에 큰아버지 정종, 1420년에 어머니 원경왕후, 1422년에 아버지 태종, 1428년에 중전 소헌왕후 심씨의 국상을 치루면서 국가 의식에 대한 기틀을 마련했다. 이를 기반으로 1474년(성종5년)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완성했는데 이에 다르면 국가의 모든 행사는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의 규범을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

왕릉의 구조
일반인의 죽음을 서거(逝去), 졸(卒)이라 하나 임금님의 죽음을 붕어(崩御), 승하(昇遐)라 하듯 무덤에도 격이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 세자, 세자비, 비빈의 무덤은 원(園), 기타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과 갗이 묘(墓)라 한다. 같은 왕자라도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으면 그 무덤을 능이라 하지만 왕자로 죽으면 일반인처럼 묘라 한다. 광해군이나 연산군의 무덤을 능이라 하지 않고 ‘광해군 묘’ ‘대원군 묘’라 하는 것은 그들이 왕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반정으로 쫓겨나 왕자의 호칭인 ‘君’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능양군 인조는 아버지 정원군(선조의 5남)을 대원군으로 추승, 양주에 있는 묘를 김포로 천장하여 흥경원(興慶園)으로 격상시켰다. 그 후 인조 10년(1632)에 다시 대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하여 그에 맞게 능호도 장릉(章陵)으로 고쳤다. 정원군일 때는 묘, 대원군일 때는 원, 왕으로 추존된 이후에는 능으로 명칭이 변한 것은 바로 왕실묘의 위상에 따른 것이다.
왕릉은 사대문 밖 십리, 백리 이내에 조영했다. 왕릉을 참배할 때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한강 이남보다 강북 쪽에 왕릉을 많이 조영한 것은 한강을 건너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었다. 동구릉과 서오릉, 서삼릉 등 왕실의 공동묘지가 강북에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왜 왕실의 무덤은 그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엄숙하게 제사를 올렸을까?
유교문화의 핵심은 효와 충이다. ‘효도하는 집안에서 충신이 난다’고 할 만큼 효는 중요했기에 효의 정점으로 보는 제사는 살아있는 부모를 봉양하듯 정성을 다했다. 그러므로 왕실에서는 백성에게 효(孝)의 전범을 보여 충(忠)을 유도해야 했다. 흔히 충과 효라 하지만 효와 충이다. 어린아이들의 교재인 사자소학에서는 ‘추원보본제사필성(追遠報本祭祀必誠)’이라 가르쳤다. '먼 조상을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여 제사는 반드시 정성스럽게 지내라‘고 했으니 어려서부터 제사의 소중함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상태다. 이들에게 왕실의 제사는 곧 효 실천의 모범답안으로서 자연스럽게 충으로 승화되는 의식이었다. 그래서 조선 왕실에서는 후왕의 역량과 정치적 힘에 의해 선왕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고 제사도 후하게 지냈다. 강남 대모산에 있는 태종의 헌릉이 조선 왕릉의 대표적인 양식을 갖춘 것도 세종대왕의 역량으로 볼 수 있겠지만 정작 태종은 왕비 원경왕후가 죽었을 때 그 옆에 자기가 묻힐 자리를 점지해 놓았고 사후 3년 상을 치루고 내리는 묘호 ’헌릉‘도 살아 있을 때 미리 알았다. 다른 왕릉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좌우로 한 기씩밖에 없는데 헌릉에는 좌우로 모두 한 쌍씩 배치하여 웅장하고 호기로운 것도 태종의 힘과 세종의 효성이 이루어낸 합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왕릉은 당시의 권력과 문화와 예술을 볼 수 있는 문화의 집합체다.

왕릉의 종류
왕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어떻게 배치했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 단릉(單陵) : 왕릉이나 왕비의 능을 별도로 조성한 단독의 형태.
(동구릉의 태조 건원릉, 서오릉의 숙종비 인경왕후 익릉. 문정왕후의 태릉)
(2) 쌍릉(雙陵) : 한 곡장 안에 왕과 왕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형태.
(성종과 정현왕후의 선릉. 서삼릉의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
* 서오릉의 명릉에서 인경왕후의 능을 제외한 숙종과 인목왕후 능.
(3) 삼연릉(三連陵) : 곡장 안에 왕과 왕비, 계비의 능을 나란히 배치한 형태.
(동구릉의 헌종과 효현황후, 계비 효정황후를 나란히 묻은 경릉)
(4)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정자각 뒤로 사초지(莎草地)를 다른 산줄기에 별도로
내어 왕과 왕비의 능을 따로 조영한 형태.
(서오릉의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 동구릉의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
(5) 동원상하릉(同原異岡陵) 하나의 곡장 안에 왕가 왕비의 능을 조성하되 곡장 안에 왕, 곡장 밖 앞부분에 왕비의 능을 조성하는 방법.
(석관동의 경종과 선의왕후 이씨의 의릉, 여주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
(6)합장릉(合葬陵) :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형태.
(여주의 세종과 소헌왕후의 영릉)

살아 있을 때는 좌측이 양이지만 죽으면 음양이 바뀌어 왕과 왕비의 무덤도 좌우가 바뀐다. 정자각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왼쪽(서쪽)에 임금이 묻히고 오른쪽(동쪽)에 왕비가 묻힌다. 3연릉도 왼쪽에 임금, 중앙에 왕비, 제일 우측에 계비가 묻힌다. 동원이강릉은 언덕이 다를지라도 역시 같은 음양이론을 적용하여 왼쪽(서쪽)언덕에 임금이 묻히고 오른쪽 언덕에 왕비가 묻힌다. 그러나 서오릉의 경릉은 덕종이 세자의 신분으로 죽었기 때문에 원의 형식으로 무덤을 조영했고 소혜왕후는 성종이 즉위하여 대리청정하며 대비가 되었기 때문에 능의 형식으로 조영하였다. 덕종이 후에 추존되었지만 무덤의 형식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그래서 왕비가 왼쪽에 묻혔고 덕종이 오른쪽에 묻혔다.
 

강기옥  kangko5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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