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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완생 그리고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은朴대통령 “노력하면 바둑에서 말하는 완생마 될 것”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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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9  13: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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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화제작 ‘미생’(극복 정윤정, 연출 김원석)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달 20일 막을 내린 ‘미생’은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장그래(임시완 분)가 프로입단에 실패한 후, 냉혹한 현실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원작인 웹툰 ‘미생’은 사회 초년병의 눈으로 직장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수많은 마니아층을 양산시킨 바 있다.

‘미생’이란 단어는 바둑에서 왔다. 사람들은 이 작품의 제목에 일단 끌린다. 미생은 바둑에서 사석(死石)과는 달리 살 여지가 남아 있는 집이나 대마 혹은 그 돌을 이르는 말이다. ‘미생’의 반대편에는 ‘완생’이 있다. 미생은 생사 여부가 아직 명확히 갈려있지 않은 상태,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장그래에게 오늘과 내일은 미생이다. 고졸 출신에다 2년 계약직으로 스펙도 형편없다. 따라서 파리 목숨이다. 그러나 장그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동료들과 상사인 오상식(이성민)차장은 그를 정규직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기애’를 보여줘 시청자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드라마에서 오상식은 장그래가 고졸 검정고시 학력에 최전무(이경영)의 낙하산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인 처음부터 장그래가 마뜩치 않았다.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였다. “기회를 주실 수 있잖아요”라고 항변하는 장그래 앞에서 오상식은 “기회에도 자격이 있는 거다”라는 매몰찬 답변만 했다.

영업3팀 기밀문서가 회사 로비에서 발견되는 작은 소동으로 장그래는 오해를 받게 되고 화가 난 상식은 그래에게 호통을 쳤지만 옆팀 인턴의 실수로 인해 잘못을 덮어쓰게 된 것을 알게 된 상식은 술기운을 빌어 그래를 두둔한다. 옆팀 과장에게 “우리 애만 혼났다”고 항변하는 오상식. 공들여 준비한 사업 아이템을 권력에 의해 빼앗기고 난 후 쓰린 속을 술로 달래야만 하는 셀러리맨들의 비애를 전하는 전형적인 샐러리맨들이다.

<미생>에서 오 차장은 장그래만큼이나 두드러진 인물이다. 자투리 업무까지 도맡아하면서도 실속은 전혀 챙기지 못하는, 나보다는 남을 위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곤란에 처할지언정, 팀원을 모른척하지 않는다. 보통 후배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빠져나가려는 상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은 놓쳐도 사람은 놓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모토다. 이 때문에 영업3팀 김대리와 장그래는 그를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월급쟁이의 비애는 그를 대신할 ‘보충병력’이 진을 친다는 점

미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갈등과 승부가 필요하다. 사회에 던져진 이들 중에 완생은 거의 없다. 사회는 완생을 꿈꾸는 미생들의 전쟁터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의 생존은 월급, 승진과 맞닿아있다.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다간 선임에 치이고 동기에 밀리고 후임에 뒤쳐져 결국 완전히 바둑판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승진해야 하고 승진을 위해 가끔은 치졸하다 싶을 정도로 눈치를 봐야 한다.

   
 
아무리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현시켜도 임원으로 고속 승진을 해도 그를 대신해 누구든 그 자리에서 해 낼 수 있는 일일뿐이다. 월급쟁이의 비애는 그를 대신할 수많은 ‘보충병력’이 진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장그래가 신입사원으로 합격해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으로 배치를 받게 된 날, 일당백으로 일할 인재로 안영이를 점찍어뒀던 오상식은 실망한 기색을 내비티는 듯 하면서도 “이왕 들어 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 봐라”고 그래를 격려한다.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라는 말에 놀란 그래에게 상식은 “넌 모르겠지만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이라며 “우린 다 미생이야”라는 대사를 흘리듯이 툭 던진다. 이 시대의 미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 차장은 장그래로부터 촉발된 일의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에게 회사는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짐을 싸고 팀원들과 마지막 회식을 하며 발길을 옮겼다. 마지막까지도 장그래의 뒷모습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본 오차장이었다.

계약직 부하직원이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 해서 오 차장처럼 발 벗고 나설 상사가 몇이나 있을까. 또 부하직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팀원들을 다독이고, 자신이 먼저 희생하고자 하는 상사가 있을까. 한 네티즌은 오 차장에 대해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상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오 차장에 대한 시청자의 마음은 더욱 깊었다.

갖은 수모와 굴욕마저 이기면서 꿋꿋이 ‘버티기’ 작전 하나로 직장생황을 견뎌내야 했던 장그래도 회사에서 차츰 인정받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다. 하지만 꼭 대기업 정규직의 길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이 드라마에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마지막회에서 원인터내셔널을 나와 작은 무역 회사를 차린 김부련 부장, 오상식 차장과 함께 일을 하는 장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장그래는 제품 견본을 훔쳐 달아난 서진상을 잡는 과정에서 성장한 듯 보인다. 한껏 여유있는 모습에 한마디도 못하던 영어도 상용했다. 화려한 추격신으로 장그래는 더욱 당당해지고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시청자들로부터 미생은 희망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는다. 장그래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훈훈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생’의 김원석 PD는 “힘들게 사는 모습을 그리되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는 위로를 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일하는 아버지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돼, 생활 속 풍경도 바꿨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어느 나라보다 뜨겁다. 하지만 문제는 틀에 박힌 교육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한글을 채 깨우치기도 전에 영어를 배우듯 아이의 재능을 스스로 일깨울 시간을 주지 않고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도록 교육 받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할 틈도 생각할 여유도 없다. 친구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저 치열하게 질주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헤아릴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담을 시간은 손톱만치도 할애할 수도 없다. 생애주기별로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나 낭만과 정서적인 삶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저 팍팍하고 고된 생활의 연속일 뿐이다.

취업시장 조차 오직 대기업 합격자만이 승자이고 나머지는 패자라는 고정관념에 목을 맨다. 드라마 <미생>은 이러한 틀을 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관행적이라는 이유로 고졸 계약직인 장그래가 정규직 전환은 못했지만 삶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여나 길이 보이지 않아도 누구나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대사는 가슴에 새겨진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생>은 직장생활을 겪지 않은 아내나 아이들까지 열광했다. 집에서 아빠가 힘들다는 얘기만 들었지 낯선 직장 생활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생>이 생활 속 풍경도 바꿨다. 직장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 현실에서도 일하는 가족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것.

두 살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 정미진(36 가명) 씨는 남편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남편이 이전에는 짜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미생>이 계기로 남편이 안쓰럽게 느껴지게 됐다는 것이다.

상사들이 착해졌다는 소리도 나온다. 부하직원을 철저하게 짓밟거나 모욕을 주는 리얼한 극중 장면이 실제 상사들에게 ‘거울’이 되고 있다는 것.

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미생>이라는 드라마는 바둑판에 올려진 흑‧백 돌을 먼곳에서 보듯 관조적으로 지켜보게 된다”며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실제 직장생활의 ‘피해자’들은 위로와 용기를 얻고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였던 사람은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된다. 드라마 한 편이 실제생활에 눈에 보이는 변화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박성원 씨는 “카리스마 넘치는 부장님이 회의를 마친 후 ‘그래도 내가 마부장보다는 낫지?’라고 물어보시더라”며 “그 외에도 ‘자네들 내가 좀 혼내면 신고할 거냐’고 묻기도 하신다. 아무래도 말투와 업무방식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은 미성숙한 ‘미생’에서 성숙한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

바둑에서 미생은 돌을 놓는 그 순간부터 미생이다. 완전히 살아있지 않는 그래서 미생은 불안한 존재다. 우리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미생이다. 완생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생에서 태어나 완생을 꿈꾼다. 바둑처럼… 그리고 인생에서 그 누구도 미생과 완생을 장담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보다 더 강한 고수가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사원은 간부사원이 그리고 간부사원은 임원이 완생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보면 모두가 미생이다. 언제나 고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미생과 완생은 언제나 결정된 것도 없고 경정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부단히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메시지는 비정규직 아픔도, 직장인들의 애환도, 성과를 위한 도전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미생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보다 성숙시켜나가는 미생 말이다.

인생은 미성숙한 자아인 ‘미생’을 갈고 닦아 성숙한 자아인 ‘완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면 어떨까. 어린아이일 때는 자신의 욕구 충족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주변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만족되면 웃고 불만족스러우면 울고 떼쓰는 행동을 반복하지만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보다 성숙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이기심이나 분노 또는 각종 부정적인 감정들을 걸러내고 정화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어른이 되어도 정신은 철없는 유아기에 고착된 미성숙한 미생이들이 많다. 이들은 도무지 부끄러움도 고마움도 모른다. 그저 유아기적인 자신의 이기심에만 매몰돼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고압적인 자세로 보인다.

니이체는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사람은 강해보이지만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도 모욕을 퍼붓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즉 갑질하는 행동은 낮은 자존감이나 행복감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모멸하면서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자신의 힘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신이 똑똑하거나 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유아적인 자아의 결핍이 남에게 모멸을 가하는 행동을 낳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막말하는 입주민이나 부당한 계약서를 강요하는 기업, 국감에서 호통부터 치고 보는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모멸과 갑질은 넘쳐난다.

‘모멸의 시대. 갑질의 시대’에 감정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이 살기 힘든 사회로 바로 파장을 미치게 한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개인의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능력이 사회의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다. 사회철학자인 아비샤이 마갈릿은 저서 ‘품위있는 사회’에서 “자존감이 없으면 가치에 대한 인식도, 인생이 의미있다는 인식도 가질 수 없다”며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인간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품위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갈구한다. 그러나 행복하고 싶으면 좋은 사회, 따뜻한 사회, 행복한 사회, 의로운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나부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보다 성숙한 완생의 모습으로 공동체의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성숙한 개인주의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자 프린츠홀른은 현대인을 ‘잡다한 지식들로 머리통만 커지고, 자기위주여서 남을 배려하는 가슴이 사라진 데다, 말초 감각만 발달하여 국부가 커진 기묘한 몰골’이라고 말한다. 이제 이기심과 계산이 배제되고 다른 사람을 존중 배려할 줄 알고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떨까.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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