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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인재, ‘스펙’보다 인문학朴대통령, “뭐를 하든 인문학적 바탕 없으면 괴물 된다”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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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3  1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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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과 기술을 우선하다보니 인성이 삭막해지고, 각종 폭력과 비인간적인 범죄가 많아지자 인간성 회복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인문학 붐’이 일어나고 있다. 한때는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화두였던 적도 있었다. 학생들이 철학, 역사, 문학을 기피하면서 대학도 이들 학과를 폐지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의미로 인문학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영자들도 인문학에 새롭게 눈길을 돌리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기업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려는 등 새바람이 일고 있다. 여기에 정부도 가세하면서 인문학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뭐를 하든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면 괴물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인문학은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통령직속문화융성위원회는 처음 직제에 없던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 핵심에는 창조경제와 과학기술이 포함돼 있다. 창조경제란 ‘가치 중심의 경제’를 의미하며,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포함된다.

인문학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명 문사철(文史哲)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는, 즉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에 중요한 인문학이지만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취업지원을 하는 곳으로 전도(顚倒)되어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열 학과를 통폐합하는 등 홀대하기도 했다. ‘인문계 졸업생 90%로 논다’는 의미로 ‘인구론’이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이 단기적 성과는 낼 수 있어도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인문학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인문학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가장 필요한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30대에는 전공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하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실무를 보다 보니 탄탄한 전공지식이 아쉬워한다는 것. 그러다 40대가 되면 ‘왜 경영학을 안 배웠을까’ 하고 후회한다. 조직운영과 마케팅을 알아야 관리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50대가 되면 한 목소리로 ‘왜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을까’를 후회한다. 리더가 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에는 크게 문학, 역사, 철학이라는 세 가지 법주로 나눌 수 있다. 문학은 상상력을 다루는 학문이고 역사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또 철학은 모든 것의 의미를 따지는 학문으로 비판적 사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뛰어난 소설가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상상력을 동원해 수많은 삶의 다층적인 부분을 표현해낸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사실이 왜 발생했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가 중요하다.

김 교수는 “리더는 결국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바로 상상력, 인과관계를 밝히는 사리분별력, 비판정신이죠.”라고 말한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능력으로 하이콘셉트(high concept)와 하이터치(high touch)를 꼽았다. 하이콘셉트는 창의력, 하이터치는 좋은 관계를 만드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신동기 ‘희망, 인문학에게 묻다’의 저자는 “지식을 습득한다고 창의력이 좋아지거나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능력은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키울 수 있죠. 경영자들이 인문학을 찾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하고 전한다.

애플 CEO 고(故)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등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혁신적인 유저인페이스(UI)를 개발해 모바일 기기 시장을 석권한 잡스는 아이패드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애플은 기술과 교양의 교차로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했다.

그 자신이 철학, 심리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UI를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되면서 인류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97~1955)의 어린 시절은 지적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나쁜 기억력과 산마나함,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좌절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대학입학시험에 낙방했으며, 다시 대학교에 들어갔으나 초라한 학점으로 졸업 후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이런 좌절의 상황에서도 아인슈타인은 인문고전 독서를 좋아하고 꾸준히 책을 읽었다. 그는 열세 살에 유클리드의 ‘기하학’, 열네 살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며 ‘인문고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독서를 통해 ‘의식적 사고’를 했고 잠자는 재능을 키워서 ‘상대성이론’을 발명하고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30대 초반까지 실패한 예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도 30대 후반부터 라틴어를 독학하고 고전을 읽으면서 그의 천재성을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기업들, ‘인문학적 인재’ 찾기에 나섰다

스펙만으로 미래가치 창출 어렵다

   
 
특히 급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갈수록 인문학의 소양이 요구된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과 포괄적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폭넓은 사고, 즉 ‘본질을 꿰뚫어보고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섭과 통찰의 지혜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쌓아 올릴 수 없다는 얘기다.

통섭은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뜻으로, 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를 현재에 접목시킬 수 있는 융합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이미 통섭형 인재 확보에 뛰어들었다. 영어점수, 학점이 높은 소위 ‘스펙’이 화려한 직원만으로는 미래가치 창출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내 우수한 기업들 역시 국가를 막론하고 우수한 융합 인재 찾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 ‧ LG ‧ SK 등도 이에 가세해 지원서 양식까지 바꾸며 ‘인문학적 인재’ 찾기에 나섰다. 기존의 ‘스펙 중심’, ‘기회 균등’에서 ‘직무 우선’의 실사구시(實事求是)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이 직무적합성 평가 도입을 골자로 하는 채용 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이 올봄 입사시험(HMAT)에서 ‘역사 속 발명품 중 공학도의 자질과 연관 있는 것을 선택해 그 이유를 쓰시오.’라는 심도 높은 에세이 문제를 출제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초 치른 하반기 HMAT 응시자들에겐 ‘몽골제국과 로마제국의 발전 사례가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에 시사하는 점’에 대해 쓰라고 주문했다. 역사와 공학, 그리고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까지 두루 알아야 답할 수 있는 논제다.

이에 전문가들은 올해 대기업 공개채용(공채)을 특징짓는 요소로 이러한 ‘통섭력’을 꼽았다. 인문학, 그중에서도 역사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을 요구한 기업이 많았다는 뜻이다. 삼성그룹은 하반기 입사시험(SSAT)에 신라시대를 유추할 수 있는 지문을 제시한 뒤 해당 시대에 발표된 시조를 고르라는 문제를 냈다. 보기는 ‘처용가’‘황조가’‘청산별곡’ 등이었다.

SSAT 응시생들은 또 조선에서 김홍도가 활동하던 시절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건, 산업혁명 시기 영국 상황과 맞지 않는 것 등에 대한 질문에도 답해야 했다.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의 임민욱 홍보팀장은 이에 대해 “최근 기업들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성, 이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갖춘 직원을 원한다. 이에 따라 학벌과 스펙을 중시하는 기존 채용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펙은 영어 단어 ‘specification(설명서)’의 줄임말로, 직장이나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뜻하는 신조어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스펙 5종 세트’(학벌·학점·토익점수·어학연수·자격증)를 갖추고, 가능하면 봉사활동·인턴십·공모전 수상경력 등 ‘옵션 3종 세트’까지 추가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토익점수보다 배려심, 협동심 등 인성 갖춘 사람 선호

그러나 정작 기업들은 스펙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채용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32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3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기업의 65%는 스펙을 최소한의 자격 판단 요소로만 활용했다.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기업 인사담당자 3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3%는 ‘입사 지원자들의 스펙이 과하다’고 답했다. 취업준비생의 스펙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평가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 인문학이 바로 그 기준으로 널리 활용되는 모양새다.

포스코는 최근 취업시장에서 지나친 스펙 경쟁이 일고 있다며 해외연수, 봉사활동, 제2외국어 점수, 인턴십, 자격증 등을 우대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단 한국사 자격증에만 가점을 준다. 또 상반기 채용부터 면접 단계에 역사에세이 평가를 추가했다. 지원자가 40분간 2문제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포스코 홍보실의 정용민 매니저는 이에 대해 “지원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사고력, 소통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LG그룹, GS그룹, CJ그룹도 속속 지원자의 한국사 실력 평가를 시작했다.

금융권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곳이 많다. KB국민은행은 채용원서에 최근 읽은 인문도서를 기재하도록 했으며, 필기시험에서 ‘은행산업의 현재를 나타낼 수 있는 사자성어’‘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이유와 사례’ 등도 물었다. 우리은행도 자기소개서에 감명 깊게 읽은 인문학 서적 3권을 적는 칸을 만들었고, 한국사·국어·한자 등 관련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

신한은행 지원서에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인문학 서적과 경제·경영 서적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현장에서 보면 스펙이 업무능력과 바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토익점수 좀 더 받은 사람보다 배려심, 협동심 등 인성을 갖춘 사람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최근 채용시장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그런 기업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전형 과정에 인문학 관련 요소를 늘린 것은 인문학이 기업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1년 최고경영자(CEO) 회원 4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7.8%가 ‘인문학적 소양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가산점을 주고서라도 뽑을 의향이 있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도 82.7%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조사 결과 등을 담은 보고서 ‘인문학이 경영을 바꾼다’에서 인문학은 조직 창의성 제고, 미래경영환경 예측, 제품개발 및 디자인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인문학의 가치 재평가…회장님도 ‘인문학 삼매경’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최근 우리 기업들은 인문학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됐다. 기술력으로 단기성과는 낼 수 있어도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자연스레 채용시장의 인문학 열풍을 가져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촉,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동물적 감각’을 쓴 이병주 경영전문작가도 “현대 기업 경영에서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과 현대인의 보다 고차원적인 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4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그간 ‘How to'에 집중하던 우리는 이제 어려운 질문인 ’Why' 'What'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읽으려는 관심과 이해가 바로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정 회장은 이날 학생 2000여 명 앞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다. ‘공학적 사고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인문학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제너비브 벨 인텔 상호작용 및 경험 연구소장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사색하지 않고 검색하는 우리가 당면하게 될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가 인문학에 있다”고 말했다.

이 뿐만 아니다. 기업들은 임직원에게도 인문학 공부를 권장하는 추세다. LG전자는 사내 인터넷 교육 사이트에 ‘EBS 인문학관’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역사, 예술, 문학 등에 대한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연 ‘히스토리 콘서트’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도 인문학을 강조하는 최고경영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정 회장은 지난 5월 현대카드 실‧본부장 100명에게 켄 시걸의 저서 ‘미친듯이 심플(Insanely Simple)'을 선물했다. 시걸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17년 동안 애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인물이다. 이 회사의 모 관계자는 “정 사장은 책을 선물해 임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인문학적 감성을 체득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서도 기업의 본질적인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그 결과로 경영지표, 임직원 만족도 등에서 좋은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현대가(家)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창업 정신을 기리고자 설립한 아산나눔재단은 아산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인문학 배움터 아산서원을 세웠다. 아산서원은 매 기수 30명에게 동서양 고전 읽기와 토론,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등 저명인사 초청 강연, 해외 인턴십 등을 제공한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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