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유관순 열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아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달 28일은 유관순 열사 순국 94주기였다. 현재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금성, 두산동아, 미래앤, 천재교육 등 4종이 일제 3‧1운동을 기술하면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수록을 누락했다.

반면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 본문에는 유관순 열사에 대해 명확히 기술되어 있다. ‘3‧1 운동에서 싸운 소녀’라는 제목으로 “옥중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아 16살에 옥사했다”는 기술과 함께 유관순 열사 이름 석 자가 쓰여 있는 사진이 수록돼 있다.

이와 관련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은 “외국 교과서에는 자국의 위인이 아닌데도 언급된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갖는 유관순이 정작 태어난 조국인 대한민국에선 논란거리가 되면서 교과서에서 생략되거나 간략하게 나오는 건 아이러니”라며 “교과서의 중요한 내용이 정치적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들어가고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과서는 미성년 집단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교육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에 합당하게 제작돼야 함에도 역사학자들이 자기의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지 않다는 이유로 유관순 열사를 삭제했다는 지적이다.

8종 교과서를 분석한 조갑제닷컴의 한 보고서는 대한민국 건국폄하, 한반도 전역의 합법성을 인정한 국제연합(UN) 결의안 왜곡, 북한토지 개혁 미화, 주체사상 선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누락, 반한 ‧ 반미 ‧ 반기업 등의 측면에서 5종(천재교육,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은 ‘대한민국 교과서 가 아니다’라고 봤으며 3종은 ‘수정하면 쓸 만하다’고 봤다.

이들 교과서의 공통점은 내용을 취사선택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편향된 역사관이 교과서 내용을 선택, 배제하고 축소, 확대하는 기준이 되어 기술됐다는 비판이다.

특히 8종 교과서 중 절반의 교과서에서 유관순 열사를 뺀 것은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유관순은 친일 경력이 있는 이화학당 교사 박인덕이 해방 후 발굴해 이화 출신의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있어 기술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당시 남자들 검문 심해 여성이 연락책…유관순 열사 도맡아

유관순열사는 고향 천안에서 3‧1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가 붙잡혀 18세 나이에 감옥에서 숨졌다. 그의 부모도 독립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죽음을 당했다. 유관순 열사는 유언에서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유관순 조카며느리인 김정애씨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 모임에 가니까 어느 할아버지가 (유관순 열사에 대해) ‘어린 여학생이 뭘 했겠는가. 진실이 아닐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울분에 찬 내가 ‘사실을 모르는 얘기를 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왜 여학생이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진실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라고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당시 서울의 3‧1만세 사전 이후 (남자) 청년들은 길을 지날 때마다 검문을 당해 길거리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 주위 24개 고을을 결집하기 위해선 당시 덜 감시받는 여자가 연락책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휴교령으로 고향에 와 있던 유관순 열사가 이를 도맡았다는 것이다.

김정애씨는 친일 경력이 있는 이화학당 교사 등이 이 학교 출신인 유 열사를 미화해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최근의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녀는 “당시 유관순 열사와 함께 감옥에 있던 이화학당 교사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계속 만세를 부르는 유 열사의 모습을 보고 ‘이를 꼭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유관순 열사의 항일운동은 훼손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이를 교과서에서 제외하는 것은 프랑스 역사 교과서에서 잔 다르크가 빠진 격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16세인 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통해 ‘가여운 코리아’의 어린 여학생들이 일제 핍박에서 벗어나 나라 독립을 위해 용감하게 떨쳐 일어난 점을 언급했다. 옥중서신은 ‘세계사편력’에도 실려 있다.

유관순열사기념관 이현택씨는 “유관순열사의 항일운동은 정확한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성향의 인사가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발굴했다는 얘기만으로 교과서에서 삭제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들에게 역사의식을 제대로 심어줘야 한다”고 강변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자 나아가 미래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柳열사 누락은 프랑스 교과서에 잔 다르크 빠진 격

역사가는 춘추좌씨전에서 이야기하듯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곧은 자세(동호지필 董狐之筆)를 요구하고 있다. 또 역사로부터 교훈을 도출해 전달하는 의무도 얘기하고 있다. 역사관은 역사를 취사선택하는 얼이자 교과서는 그렇게 드러난 얼굴이라는 것이다.

토인비는 ‘활용되지 않는 역사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죽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일부 역사가들의 경우 자신의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독립운동의 아이콘인 유관순 열사를 역사책에 지워버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는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행위로 역사가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잃어버린 처사라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충남 천안지역에서 4종 교과서에서 유관순 열사의 기록이 빠진 것에 반발한 유관순열사기념관과 시민들의 서명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천안시의회도 교과서의 시정 ‧ 보완 요구에 동참하고 나섰다.

천안시의회(의장 주명식)는 지난달 18일 속개된 제 178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노희준 의원 등 22명으로부터 발의된 ‘고교 한국사 국정 교과서 시정 요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3‧1운동의 상징 같은 유 열사 이야기를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누락시킨 사실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시한다”며 “우리 후손들이 유열사의 애국충정과 확고한 자주독립정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3‧1운동 정신을 본받을 수 있도록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다시 넣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천안지역에서는 지난달 11일부터 천안시와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동남구청과 서북구청, 유관순열사기념관, 30개 읍면동 주민센터 등에서 유 열사의 기록을 누락시킨 교과서의 시정과 보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천안시와 기념사업회는 10월말까지 서명운동을 펼칠 예정이며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서명부를 교육부와 보훈단체 등 관련기관에 전달할 계획이다.

노진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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