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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3·1운동 왜곡 방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조순동 기자  |  ko-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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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0.12  15: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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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일 <남해3.1독립만세운동사 집필위원, 정임춘애국지시 기념사업회장, 중앙대학교 4.19혁명기념사업회장>

역사적인 진실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고 후세에 전달하여 발전적인 미래를 만들어 가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우리 역사의 왜곡되는 사례를 종종만나고 있다.
엉뚱한 이에게 월계관을 씌워 기리기도 하고, 진정 기억해야 할 인물은 역사 속에 사라지기도 한다.
남해독립만세 3.1운동사도 그러한데 세월이 흘러 왜곡되어 굳어지기 전에 이예모 원복생 장학순의 잘못된 업적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후손을 위한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한다.
3년 전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필자는 1919년 당시 진주예심종결결정서(1919. 7. 15.)와 대구복심판결문(1919. 9. 23)전문을 발굴하여 남해독립만세 3.1운동사가 왜곡되어 내려온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눈여겨 본 남해군 향토사학자이자 남해3.1운동기념사업회 김성철 사무국장은 남해시대’(2019.2.28.)에 “목 놓아 불렀던 대한독립이여, 만세여!”라는 제목과‘남해3.1운동사의 역사는 4월 3일이 아니라, 4월 2일이었습니다.’라는 부제목으로 남해3.1독립만세운동 발발일자에 대해 잘못 알려져 왔던 시실을 특별기고를 통해 지적했습니다.

 

     
 

우리 남해역사는 3.1독립운동에 대해 “4월 2일 이예모가 하동군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동지를 규합, 4월 3일 오후 설천면 노상에서 궐기를 시작하여 남해읍으로 향하던 도중 고현면장 김치관의 밀고로 좌절된 것”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4월 3일은 어떤 역사적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기미년 대한독립만세사건 재판소 판결문>에는 이예모와 류찬숙에 대해 4월 2일 밤 남해군 설천면 남양리, 문항리 노상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만세독립운동을 고창하여 조선독립시위운동을 위해서 치안을 방해한 자들“이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남해3.1독립만세 발상기념탑 (부지는 정임춘 애국자 후손이 기부 채남하였다고 증손 정영철씨가 밝혔다.

이 기고문에 김성철 사무국장은 진주재판소판결문에 기록된 피의자 17인 중 유일하게 이예모는 4월 4일 남해읍시장 만세운동에 참석하지 안했다고 밝이고 있다. 지난 103년 동안 까마득하게 잊혀, 묻혀있는 남해독립만세 3.1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진주법원 판결문을 중심으로 애국자들의 공적서, 독립운동에 관련 문헌과 비문의 기록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증언 그리고 진실은 밝혀진 다라는 집념하나로 직접 하동에서 남해대교 건너(3.1운동 당시때는 배편) 남양리의 이예모 생가까지 옛 거리를 가늠해 보면서 걸어보기도 하였다.
애국자사가 잠들고 있는 대전 현충원을 방문하여 비문을 읽어 보고 통영에 거주하는 정흥조 딸 정정순 할머니와 수원에 거주하는 정몽호 아들 정창주 박사를 직접 당시 구전으로 전해오던 애국지사의 활약 담을 들을 수 있었고 또한 애국자의 친필로 된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진실들이 밝혀지고 왜곡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정정되어 당시 16인의 애국지사들의 나라 사랑과 조선 독립에 대한 끓는 애국심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해 3.1독립만세운동에 왜곡의 단초를 제공한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대비표까지 만들었다.
사실이 왜곡된 내용으로 정리된 국가보훈처 공훈록이 경상남도의 사업으로 1980~1985년 사이 작성되었는데 작성, 당시 1919년의 만세운동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재판소 판결문을 확보하지 못하여 당시 문신수 동화작가(2002. 5. 11 타계)가 생존한 분들의 이야기 그리고 유족과 만나기도 하여 작성하였다. 고 이예모 손자 이처기가 2018.8.18. 필자에 이메일로 보내와 증명하였다.
또 다른 사실이 왜곡된 하나는 당시 진주제판소판결문에 피의자 17명인데 피의자 명단에도 없는 원복생. 장학순 두 사람은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이 이름이 올라있다. 공적내용에는 원복생은 대구복심판결문(1919. 9. 23)에 있는 것으로 꾸몄고, 장학순은 남해 3.1독립운동기념비(1968. 3. 1.)와 남해 3.1독립운동발상기념비(1985.12)에 이름이 올라 있다하여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를 받았는데. 장학순의 공적 내용은 옥중에서 사망한 이름이 같은 애국자 정학순(1897.3.11. 1920.6.29.)의 공적내용을 그대로 복사하여 옮겨져 기록되어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은 당시 진주예심종결서 와 대구복심판결문문과 국가 보훈처공훈록의 공적사항을 보면 이를 확인 할 있다.
남해군민을 비롯한 16명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이 자긍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또한 잘못 기록되어진 국가공훈록을 비롯 문헌과 비문들도 바로 잡아 후손들에게도 진실된 역사가 전달되기를 기원하면서 글로 밝혀 둔다. 

조순동 기자  ko-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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