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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 지급, 실효성 있을까보편적 복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고민해야
정재형 기자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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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2  1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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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워진 살림살이를 돕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지역 주민의 지갑에 돈을 채워 주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재난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것이다.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듣다 보면 순간 여러 가지가 궁금해진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돈을 줄까. 준다면 얼마나 줄까. 기본소득이라면 정기적으로 계속 주는 건가. 그런데 지방정부는 그 많은 돈을 어디서 충당할까.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다. 노동하지 않는 국민에게도 정부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수년 전부터 핀란드 캐나다 등에서 유사 실험이 이뤄졌고, 한국에선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수당 등의 형태로 등장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거론되는 재난기본소득은 엄밀하게 따지면 보편성, 지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기본소득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위축된 소비를 살리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려고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긴급구호자금에 가깝다. 이 때문에 두 개념을 혼동하지 않도록 재난기본소득 대신 재난지원금 등 다른 용어를 쓰자는 제안도 나온다. 이름이 어찌 됐건 재난소득 논의의 뿌리가 기본소득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재난소득 논쟁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향후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 논의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월급의 미래’로 주목받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글로벌 경제 성장의 둔화와 인구 고령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환경 변화 등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본격화됐다. 실업자와 취약계층이 늘어나고 사회 불평등이 커졌지만 기존 복지제도로는 해결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도 꽤 적극적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같은, 모든 이에게 ‘쿠션’이 되어 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나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인사들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사람들이 비록 일자리를 잃더라도 꾸준히 소비를 할 수 있어야 경제가 계속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기본소득과 유사한 정책이 세계 곳곳에서 집행됐다. 그중 핀란드가 2017, 2018년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실험 참가자는 직업을 구하든, 구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6만 원)를 받았다. 그 결과 참가자의 행복도는 높아졌지만 실업자의 근로 의욕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2017년 일정 소득 이하 저소득층 4000명에게 3년간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원 고갈 문제로 1년 만인 이듬해 실험이 중단됐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 미국 알래스카주 등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운영된다. 가장 완벽한 방식의 기본소득 실험은 2016년 스위스가 시도했다.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20만 원)을 지급하는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막대한 재원 부담만 안겨줄 것이란 우려 탓에 국민투표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지자체 청년수당과 농민수당이 등장했다. 서울시는 일정 요건을 갖춘 미취업 청년들에게 6개월간 매달 50만 원, 경기도는 만 24세가 된 청년에게 1년간 100만 원을 준다. 전북도는 지난해 농가당 연간 60만 원을 주는 농민수당을 도입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지자체 중심으로 한국식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재난소득 논의 확산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미국 일본 등 각국도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비슷한 현금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은 국민 한 사람당 1000달러(약 125만 원)의 수표를 나눠주는 경기부양책을 마련했다. 일본도 다음 달 발표할 경제대책 중 하나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은 지난 2월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1만 홍콩달러(약 161만 원)를, 대만은 모든 가정에 각각 200대만달러(약 8000원) 상당의 바우처 4종류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선 경기도가 모든 도민에게 한 사람당 10만 원을 제공한다고 3월 24일 발표했다. 전북 전주, 서울 등 특정 계층에 긴급생활비를 주기로 한 지자체도 많다.

문제는 막대한 재원이다. 전 국민에게 50만∼100만 원씩 주려면 무려 25조∼50조 원이 필요하다. 박 시장이 주장한 ‘중위소득 이하에 60만 원 지급안’은 소요 예산이 4조 8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11조 7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정부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미 추경에 약 3조 원 규모의 소비쿠폰 등 현금성 지원이 포함된 데다 경기 악화로 세수 확보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지자체들이 밀어붙이는 기본소득 논의에 정부가 난감해하는 이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11일 국회에서 “재난기본소득의 효과는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부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라고 말했다. 쏟아붓는 돈에 비해 경기부양 효과가 불확실한 점도 정부가 망설이는 이유다.

경제학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에선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앞장서서 ‘1인당 1000달러 지급’ 정책을 지지했다. 전 국민에게 지원하면 선별 지원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아껴 즉시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단기 부양책의 목표가 사람들의 손에 돈을 쥐여주는 것이라면 급여세 감면 같은 방식이 아니라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위축되는 초유의 경제위기 조짐에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다른 방식의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은 돈을 손에 쥐여줘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무차별적 현금 지원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집세나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기본 생활비를 지원하거나 기업의 직원 임금을 보조해주는 것이 낫다”고 했다. 산업연구원은 3월 18일 과거 전염병 사례를 토대로 분석한 보고서에서 “업종별, 부문별로 피해 정도의 편차가 클 것으로 보여 재난기본소득 같은 보편적 지원보다는 피해 업종과 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했다.

보편적 재난기본소득 둘러싼 비판

재난기본소득 도입 주장이 잇따랐지만, 반론도 뒤따랐다. 보편적·무조건적 지급안에 대해서는 필요성에 비례한 지원이 어렵다는 기본소득 고유의 특성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지난 3월 7일 “‘기본소득’이 최고의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만약 기본소득이 어떤 형태로든 시행된다면 예산의 대부분을 사용하게 되어 현재 필요한 다른 어떤 조치보다 우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당장 소득이 사라진 사람들의 상황과, 재난 시에 ‘특수한 요구’가 있는 사람들의 상황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제안의 취지는 살려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경북대 최한수 교수(경제학)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무조건적 현금수당의 성격을 갖는 재난기본소득은 비용 대비 효과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제안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재난기본소득’의 문제점을 수정한 재난지원금(혹은 재난수당)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충격에 크게 노출된 이들에 한해,

사용 강제효과(재정승수)가 더 큰 상품권 방식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여졌다.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차현진 교수는 “기재부는 ‘현금 지급이 말이 되냐’라고 하지만, 미국과 유럽 움직임을 봐도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며 “다만 (취약계층에 대한 일회성 현금 지급을) 소득이라고 이름 붙이면 ‘불로소득’이라며 반대하는 이들이 나오고 불필요한 정쟁으로 흐르게 될 수 있는 만큼 재난구호금 정도가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현수 연구위원도 “상황의 긴급성과 일회성 지급임을 고려하면 지급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지원이 아니라면 명칭은 ‘재난긴급생활지원’ 같은 게 좋겠다”고 말했다.

복지체계 흔드는 기본소득은 사회적 논의 더 필요

전문가들은 방법과 대상에 대한 견해차는 있지만 코로나 피해를 보상하는 재난소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일시적 성격의 재난소득과 달리 영구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나라의 복지체계 근간을 흔들어야 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훨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복지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로 국가 사회보장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의 전면 도입보다는 이를 현행 사회복지제도와 절충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막대한 기본소득을 바로 지급하기에는 국가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올 초 한 포럼에서 ‘한국형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이는 전 국민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주는 대신에 국민연금, 근로장려금, 기초연금, 실업급여 등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통합하고 기준 이하 소득을 얻는 국민에게만 보충적으로 소득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제도와 비교해 행정비용이 적게 들고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고 기본소득이 낮게 책정되면 전반적인 복지 수준이 하락하는 단점도 존재한다. 게다가 완벽한 기본소득 제도를 실제 도입해 성공적으로 운영해본 나라가 없어 현재로선 그 실효성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장기적인 시각으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한다.

정재형 기자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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