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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못다 핀 꽃 한 송이 하늘도 울고 땅도 우는 슬픈 이야기4.19혁명 고흥출신 송규석(宋圭錫)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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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13: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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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4.19혁명이 60주년 환갑을 맞는 해이다.

꽃다운 나이에 못 다 핀, 송규석(宋圭錫) 열사. 그의 꽃망울이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기 전에, 당시 4.19혁명 사망자 명단에 기재된 의로운 열사를 찾아 나섰다.

김정일(金正一, 4.19혁명 중앙대학교 기념사업 회장)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수소문에 나섰다.

태어난 년도, 출신지, 성명,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송규석 인적사항이 3명이나 동성동명(同姓同名)이 같아, 취재하는 과정에서 무진장 애를 먹었다. 송규석(宋圭錫)기념사업도 전무했다.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면사무소에 가서 면장에게 그의 인적사항을 문의했더니, “잘 모르겠다.” 고 말했다. 우연찮게 면사무소에 민원인으로 방문했던 송복조 전 의장(송규석의 후배)에게 문의했다.

송규석이 태어난 마을과 간략한 가족사만 얘기 할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고, “그의 마을에 가서 알아보라.”고 말했다.

인근 호덕마을에 거주하는 남선현 시인에게 자문을 구하여, 과역면 석봉리 봉촌마을 복지회관을 찾았다.

이 마을 최고령자(93세)이신 말귀가 어두운 할머니에게 학창시절에 찍은 송규석의 영정사진을 보여 줬더니, 하시는 말씀이 “맞아, 아까운 인물이라서… 3대 독자가 죽고 나니, 그 충격으로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지금도 말을 꺼내기가 싫다.”라고 증언했다.

곧바로 발길을 돌려, 과역초등학교 정문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언덕 위에 오르니 과역면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민간인이 최초로 건립한 송규석 열사 비석이 외로이 초라하게 서있다.

비문에는 “배우는 학도여 길가는 나그네여. 여기 못다 피고 떨어진 한 송이 꽂이 있다오 / 이 땅의 자유가 그립기에 독재의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 날의 총탄 앞에 맨가슴을 헤치고 뛰어 갔더래요 / 청춘을 불태워 피거름 으로 가꾼 이 땅 위에 자유의 열매를 맺게 해다오 / 배우는 학도여 길가는 나그네여 /서력 1964년 9윌 일”이라고 적혀있다.

송규석이 1936년 3월 10일 출생하였고, 출생지는 과역면 봉촌마을이다. 팔영산(八影山.빨치산 활동지대)이 지척이며, 고흥군은 지리학적으로 순천, 여수와 인접 해 있고, 더 나아가 제주도가 매우 가깝다.

역사적으로 제주 4.3항쟁, 여순사건 등을 다 보고 자랐으며, 동족 간에 좌우익을 분리시켜 보도연맹 학살사건, 이승만 3.15부정선거 등도 매우 민감한 지역(당시 서민호 국회의원) 이었다.

그로인한 이 지역은 피해의식이 만연할 뿐만 아니라, 반공 이념에 의한 연좌제법이 더 무서운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사회의식은 금기사항이었다.

학창시절은 과역초등학교(1952년 졸업), 순천중학교(1956년 졸업), 순천고등학교(손양원 목사의 차남인 동신 학생이 순교한 학교 출신)를 1959년 졸업하였다.

그 해 중앙대에 입학하여, 재학(정치외교학과2년)중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의(義)로운 혈기로” “의에 죽고 참에 살자” “부정선거 다시하자” 등 구호를 외치며, 중앙대 교정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한강을 건너 경무대(현 청와대)로 향했다.

죽음으로 맞선 희생자가 모두 186명, 그중 중앙대가 6명으로 송규석(정치외교학과 2년) 열사가 희생되었다. 아직도 이 지역의 정서는 추모열기 보다는 은닉의 연속이다.

자유보다는 명문 가문(부친, 과역면 전 면장)을 중시한다. 애통함이 더해진다.

한편 4.19혁명 당시 희생당한 중앙대생 6명(고병래, 전무영, 서현무, 송규석, 김태년, 지영헌), 그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중앙대학교에서는 1960년 9월에 교정에 의혈탑(義血塔)을 세웠다.

그 탑 앞면에 있는 석비문(石碑文)에는 가슴 몽클한 눈물겨운 내용이 새겨져 있다.

“꽃은 피어 지나 뿌리가 깊고, 씨를 맺어 긴 겨울 지나, 새싹 틔워 꽃무리 이루니 여기 꽃다운 젊음을 조국과 민족의 제단에 바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젊은 꽃들이 있으니, 민족의 대지에 피와 살을 묻어 통일을 잉태케 하나니, 우리는 이를 의혈이라 부른다.”

중앙대 교훈 ‘의에 죽고 참에 살자’를 온 몸으로 실천, 겨레의 내일을 위해 맨몸으로 저항하다가 졸업하지 못한 4.19혁명 희생자들에게는 1962년도 졸업식 때 4.19혁명 당시 3학년이었던 상학과 고병래(高炳來), 약학과 김태년金泰年), 두 열사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중대신문1962년 4월 25일 제216호 게재)

또한 “2학년이었던 법학과 서현무(徐鉉戊), 정외과 송규석(宋圭錫), 신문학과 지영헌(池永憲), 신문학과 1학년 전무영(全武永)열사들은 1964년 명에 졸업장을 수여하였다”라고 현재 중앙대학교 김창수(金昌洙) 총장이 밝혔다.(중대신문1964년 3월 4일 제283호 게재)

김정일 회장은 “중대 6인 열사가 모두 지방 출신 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어려웠던 농촌에서 청운의 꿈을 꾸고 상경하였는데, 그들의 사망은 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모교에서 잊지 않고, 학우들의 졸업식 때에 맞추어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여 영원한 중앙인이 되어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조금이나마 허전한 위로하여 드렸다.”고 전했다.

이어 4.19혁명 중앙대희생자들을 지역별로 “고광래(당시 전북 금산) 김태년(충북 음성), 서현무(경기 용인), 송규석(전남 고흥), 지영헌(충북 단양), 전무영(경남 진해)열사들이 지방출신임이 처음 밝힌다”고 하였다.

특히 6인의 열사 중 알려진 일화는 “서현무는 여학생으로 빗발 같은 총격(銃擊)속에서 현수막을 사수(死守)하다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행상하는 홀어머니뿐 이라 가세가 넉넉지 못해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동네 약국에서 아스피린으로 집에서 버티다 쓰러졌다. 병문안을 온 친구 박 모양이 서둘러 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간 것은 7월 1일 오후 10시가 넘어서였다. 입원조차 그의 친구 박 양의 손목시계를 담보한 후에 허락되었고, 병실인은 56명의 가난한 환자들이 있는 1인당 입원료 1천환의 이른바 ‘공동실’ 이었다. 입원 한 몇 시간 후 7월 2일 상오 3시 30분 23세의 한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 넓은 방 옆에 놓여진 그의 침대 곁에는 홀어머니 박어련(53, 朴於連)씨와 먼 친척 두 사람과 고교시절부터 친구 한 사람만이 서있는 쓸쓸한 임종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 명치대학 법과 졸업하였지만 그녀가 다섯 살 때 죽었다. 그래서 그 또한 신광여고 시절 연대장을 지냈고, 법과를 택한 것이다”고 전했다.

또 동아일보는 ‘쓸쓸히 진 혁명의 꽃’ 서현무 열사 죽음을 대서특필로 온 국민을 울분케 하였다.

당시 4.19혁명 정신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구체적인 예로 중앙대 2학년 정치외교학과 송규석 열사와 신문학과 지영현 열사 추모비는 같은 해(1964년) 9월 송규석 고향(전남 고흥군 과역면)과 지영헌 고향(충북 단양)에 동시에 세워졌다.

지금까지 단양에서는 매년 4월 19일 군수, 교육장, 경찰서장 각급기관들 참석하는 지영헌 열사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특히 2006년 4월 19일에는 단양 대성산(380m) 산림욕장 초입에 화강암으로 거대한 호국 참전 유공자 기념탑과 지영헌 열사를 추모하는 ‘4.19혁명 민주금자탑’을 같은 규모로 세웠다.

금자탑에는 건립 당시 박범훈 중앙대학교 총장의 헌시를 비롯하여 김수영 시 ‘푸른 하늘’ 지영헌 열사 생애, 민주금자탑 건립취지문 등을 새긴 추모비는 4.19정신을 단양군민 일체감 조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故) 지영헌 추모비 탑(전면 비문)를 옮겨 본다.

“하늘의 푸름이 어둠으로 비틀거리던 길목에서, 그 하늘의 푸름을 푸름으로 되살린, 푸른 가슴들의 외침과 보람의 불길에서 숨진 슬기로운 사월의 꽃나무여, 겨레 가슴에서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긴 세월을 꽃피고 맺은 이름 나그네여, 여기 잠시 손 모으고 이 고장 빛나는 사연을 읖조리라. 나그네여”

고(故) 지영헌 군 약력(탑 후면 기록)

1941년 4월 10일 출생.

1959년 단양공고 졸업.

1959년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신문학과 입학.

1960년 4월 학생의거 대열에 참가 동년 4월 19일 숨짐.

건립내역에 대해서는 “고 지영헌 군의 뜻을 추모하기 위해 재경 단양 학우회의 향토유지의 뜻을 모아 1964년 8월 5일 착공 완공일 1964년 추석”에 발족했다.

이에 반하여 송규석 열사 출생지인 고흥군을 비롯해 과역면사무소는 물론 과역초등학교, 순천 중·고등학교 총동창회 등은 기념사업회 활동이 미비하다.

최근에 새로 조성된 고흥군 현충공원에 송규석 이름 석자가 새겨져 있다.

송규석 열사비 재발견(고흥군 과역면) 및 충혼탑 건립을 계기로 역사 재조명 작업에 착수했다.

김 회장은 “내년 4.19혁명 10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단양 민주금자탑’을 벤치마킹 하겠다”며 “‘고흥 민주금자탑’을 세우고, 명문고인 순천고등학교 교정에 송규석 열사 추모하는 흉상을 세워, 후배들에게 나라사랑 귀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늘도 체코 프라하 메소디우스 대성당 환기구 앞에는 끝까지 죽음으로 항거한 ‘7인의 독립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77년 동안 아직도 꽃이 시들지 않고 있다.

김성철 고흥신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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