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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3.1독립운동 100년 역사 새로 쓰다100년 전 판결문과 70년 전 정임춘 공적조서에 근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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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4  13: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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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2월 19일자 경남일보에 게재된 남해 3.1운동 애국지사 정임춘 선생에 관하여 김정일(4.18의거 기념사업회 상임고문) 기고문과 지난 남해 3.1운동을 최초로 주도한 정임춘 애국자 종부 김경은 글(8쪽), 1919년 7월 15일 부산지방법원 예심종결결정서(2쪽)와 1919년 9월 23일 대구복심법원 판결문(4쪽), 정임춘 선생공적조서(2쪽) 총 16쪽을 최초로 발표하였다. 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기록으로 남해 향토사학자 김성철 선생과 남해문화원 하미자 원장이 뒷받침하여 진실한 역사의 기록을 3.1운동 100주년인 지난 3.1절에 바로 잡았다는데서 큰 의미를 갖고 현충일을 맞아 재정리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 남해 3.1절 기념식.

경남 남해군이 지난 3월 1일, 남해실내체육관에서 군민이 지킨 역사(100년) 다시 써내려 갈 100년이라는 주제로 100년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장충남 남해군수, 박종길 남해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단체장, 독립유공자 정임춘 유가족 10명, 군장병 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100주년 행사는 군민참여 UCC 상영, 재현극 공연, 3.1운동 경과보고와 독립유공자인 정임춘의 손자가 독립선언서 낭독, 3.1절 노래 제창, 만세 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작년까지 이예모 선생의 후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하지만 역사를 재조명하는 100주년을 맞아 올해에는 정성용씨가 낭독을 하였다. 정성용씨는 남해 3.1운동을 최초로 주도한 독립유공자 정임춘 선생의 손자이다. 이로 인해 참석자들에게는 더욱 의미 깊은 시간이 됐다.

하미자 남해문화원장은 3.1운동 경과보고에서 “우리 남해에서는 그 해 4월 2일 정용교, 김희조, 정순조, 류봉승, 정흥조, 하상근, 강한문, 박경수, 이예모, 류찬숙, 정임춘, 정학순, 정몽호, 정익주, 윤주순, 하준호, 정재모 등(주: 기미년독립만세사건 재판소 판결문 1919.7.15. 정임춘지사 입증자료 제1호) 설천면민 100여 명이 문항리 신작로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남양리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4월 4일에는 남해읍 시장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군청 경찰주재소와 각 기관을 점거하고 자주독립을 외치자 각 마을에서도 연이어 만세운동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라고 하여 최초 발생일자, 애국운동당시 장소, 애국자 숫자(구속된 피의자)가 새롭게 쓰여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번 행사는 그 동안 잘못 알려졌던 남해 3.1운동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향토사학자로 남해군지 교정위원을 역임한 김성철(남해3.1운동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선생의 확고한 역사의식이 빛났음을 밝혔다. 그는 2월 28일 ‘남해시대’에 “목 놓아 불렀던 대한독립이여 만세여” 오피니언 란에 아래 글을 남겼다.

“저는 나 자신을 향토사학자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지난 20년을 살아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부끄러움을 자백하고 새로운 3.1운동사에 대한 아주 작은 진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일부 생략)- 우리 남해역사는 3.1운동에 대해 4월 2일 이예모가 하동군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동지를 규합, 4월 3일 오후 3시경 설천면 남양리 노상에서 궐기를 시작하여 남해읍으로 향하던 도중, 고현면장 김치관의 밀고로 좌절된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4월 3일의 의거는 어떤 역사적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일부 생략)- 이런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남해군민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4월 3일이 아니라 4월 2일인 것이 명명백백합니다.”

   
▲ 맨앞 좌측 장충남 남해군수 맨앞 우측 남해군의장. 뒤 애국자 후손 정성용.

김성철 사학자의 이야기를 뒷받침하여 주는 것은 작년 남해문화원장의 경과보고서에 정용교 하상근 애국자 두 분 빠지고도 25명의 애국자 명단을 소개하였는데, 이는 그만큼 애국자 숫자가 신축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남해 군수 기념사에서도 4월 2일 독립의거 궐기 다짐에 이어 4월 3일 설천면민들이 하늘을 뚫을 것 같은 기세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해읍으로 향하여 힘차게 행진하였다.

이제, 100년 전 판결문과 70년 전 정임춘 공적조서가 근거가 되어 2019년 3.1절에서 최초 발생일자, 장소, 애국자 숫자가 바로잡게 되었다.

이번 기념식에서 장충남 군수는 “우리 남해도 그 해 4월 2일, 동학정신을 이어 받은 천도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천면문항에서 면민 100여 명이 모여 남양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틀 뒤인 4월 4일에는 남해읍 시장에서 각 면의 장꾼들까지 가세한 가운데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일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혹독한 일제의 옥고를 치러야 했지만, 우리 남해인들의 가슴에 항일 독립의지를 불사르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100년 전 그날, 만세운동을 펼쳤던 투사들은 지금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뵐 수 없지만, 그분들이 남긴 숭고한 정신은 영원히 남아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나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많은 세월 남해 3.1운동의 최초 발생일자. 발생장소, 애국자(주모자) 숫자 기본부터 흔들렸는지를 재음미하여 두 번 다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챙겨 본다.

2001년 12월 9일 마산보훈지청에서 발행한 ‘경남항일운동참여자록’ 발간사에서 이대훈 지청장이 지적한대로 일제시 경남지역 검찰관서에 보관되었던 판결문과 수형인명부, 형사사건부 등 행형자료가 진주검찰지청의 경우 6.25전쟁 당시 소실되어 자료가 전무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취약점에 편승하여 기존 애국자 공적조서를 원용 사실인양 꾸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여 오늘에 이어옴은 슬픈 사실이었다.

늦게나마 이런 사실을 마산 이 지청장의 말처럼 항일운동 자료를 찾는 일이란 금광의 맥을 찾아 금을 캐내 제련을 통하여 금괴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시가 행진하는 모습.

이러한 의미에서 정임춘 애국자 입증자료는 공의 증손자인 정영철의 처(妻) 김경은이 순국선열유족회가 발행하는 월간 순국(殉國)이 지난 3월호에 예심종결결정서(1919년 7월15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 판결문(1919년 9월 23일 대구복심법원), 1977년 정임춘 포상신청서에 장남 정재인의 육필원고)장장 16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기고문‘남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이라는 기사를 발표한 데서 역사를 바로 잡는 대역사가 이루어졌음이 명백하다.

이제 남해 항일운동사가 하루속히 새롭게 써져 우리 모두 가 지난날을 교훈으로 삼으며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삶의 귀감이 되어 퇴색해 가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교훈으로 삼는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좌측 첫째 정임춘 증손자 정영철의 장인.

이날 기념식이 끝난 후에는 남해군 체육회와 남해고 댄스동아리가 준비한 플래시 몹이 아리랑 민요에 맞춰 진행됐으며, 실내체육관 앞에서 출발하여 100년 전 군민들이 만세운동을벌였던 남해읍 시장까지 만세를 재현하는 행사도 가졌다. 맨앞에 장충남 군수와 박종길 군의장이 대형 태극기를 받쳐 들고 뒤에는 남해문화원장, 김환용 기념사업회 이사장 그 중앙에는 정임춘의 손자 정상용씨가 받쳐 들었다. 이 행사에 정임춘 애국자 직계 증손자 정영철 김경은 부부, 고손자 윤성, 윤재 쌍둥이가 뒤를 따라가면서 만세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김정일
- 남해 3.1운동 정임춘선생기념 사업회 회장
-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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