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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미투(#Me Too) 운동’이 ‘미투 혁명’이 되기까지고발→각성→사회적 혁명으로, 성범죄 근절되려나
이정현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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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1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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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뒤 숨은 추악함 들춰내며 계속 확산 조짐

   
 

“사람의 성품은 권력이 주어졌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위대한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이 말에 비춰봤을 때 대한민국 권력층의 성품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그릇된 남성우월주의와 저속함을 들춰낸 건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국으로 번지면서부터다.

지난해 10월 할리우드에서는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 관련된 성추문 폭로가 이어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그가 30여 년 전부터 배우, 모델, 영화사 직원 등 가리지 않고 성추행을 자행해왔다는 폭로는 세계적인 사회운동이 된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리고 그 불씨가 국내로 옮겨 붙기까지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올 1월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서지현 검사의 글이 기폭제였다. 우리 사회의 많은 여성이 피해를 입고도 마치 가해자처럼 인식되고 있는 의식을 바꾸고자 자신의 SNS에 게재한 서 검사의 글로 인해 정계, 스포츠계, 연예계, 교육계, 의학계 등 각계각층에 걸쳐 숨죽이고 있던 피해자들이 용기 내기 시작했다.

‘권력’ 뒤에 감춰진 괴물의 그림자

폭로의 시작은 문화계에서 터져나왔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시인 고은, 영화감독 김기덕, 배우 김태훈, 오달수, 조민기, 조재현, 최일화, 한명구, 한재영, 최용민, 이영하, 만화가 박재동, 사진가 배병우 등 문화계와 영화계 관련 인사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 혐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 하지만 ‘그쪽(문화·연예계) 동네는 워낙 그런 곳이니까 그랬겠지’라는 인식 때문일까. 이들과 관련된 폭로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긴 했지만 사회적인 큰 문제로 이슈화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배우 故 조민기가 초기 자신과 관련된 폭로에 “억울하다. 명백한 루머다”라는 해명을 내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발뺌하면 그저 지나가는 스캔들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파급은 컸다. 이러한 조민기의 뻔뻔스러운 거짓 해명은 또다른 피해자의 입을 열게 했고, 그 후 정치권으로 번져 대선후보였던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폭로로 이어졌다. 연이은 피해자들의 폭로는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 여성이 성범죄에 노출돼 있는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이들 가해자들 모두 사회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배우 조민기, 조재현, 김태훈, 최용민 등은 모두 교수로 재직 중일 때 성희롱 및 성폭행을 시도했다.

청주대 교수였던 조민기는 학교 근처에 마련해둔 오피스텔로 여학생들을 불러 “외롭다. 자고 가라” “너 내 여자 해라” 등과 같은 상식 밖의 발언을 일삼았고, 도 넘는 신체접촉은 물론 자신의 신체 부위를 찍어 휴대전화로 전송하는 등 끊임없이 제자들을 괴롭혀왔다. 조민기한테 당했다며 결정적인 진술을 내놓은 학생들은 재학생부터 졸업생까지 10여 명에 달했다.

조재현 역시 경성대 교수였다. 경성대의 한 졸업생은 조재현에게 조언을 구하러 나간 첫 자리에서 “배역을 주겠다”며 성관계를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조재현은 배역을 ‘미끼’로, 그리고 제자의 꿈을 ‘수단’으로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고 한 것. 그는 넉달 뒤 사과하겠다며 제자를 불러 또다시 성관계를 시도했다. 배우 조민기와 조재현에 관한 폭로에 대중이 더 경악했던 건 두 사람 모두 가정적인 이미지를 내세운 연예인이었기 때문이다.

배우 김태훈은 제자를 성폭행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논문 타이핑 등을 시키며 노예처럼 부리기도 했다. 결국 김태훈은 최근 세종대학교 교수 직에서 자진 사퇴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명지전문대 교수였던 최용민은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피해자에게 강제 키스를 했다는 폭로가 있자 곧바로 상습 성추행을 인정 후 사직서를 냈고, 세종대 교수로 내정돼 있던 최일화는 미투 운동에 압박을 느껴 과거 성추행을 스스로 자백해 교수 임용이 취소됐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의 탈을 쓰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제자들에게 권력을 휘두른 가해자들이 있는가 하면 ‘도지사’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민망하고 낯 뜨거운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

평소 깔끔하고 청렴한 이미지를 내세워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지를 얻던 안희정 전 지사 얘기다.

대한민국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린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혐의는 지난 3월 5일 그의 전직 수행비서이자 현 정무비서인 김지은 씨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하면서 폭로됐다. 김지은 정무비서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 러시아 출장과 지난해 9월 스위스 출장 등 수행 일정 이후 성폭행이 있었고, 8개월 동안 4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성폭행 전후 안 전 지사는 피해자와 대화 시 반드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화 내용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 검찰에 자진 출두한 안희정 전 지사.

합의냐 vs 강압이냐

미투 운동으로 연일 여성들의 피해 호소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가해자들은 침묵, 발뺌, 부인, 반박, 맞고소, 사죄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종일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한 배우 오달수를 제외하고는 이들의 단골 해명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았다. “강압이나 폭력은 없었다. 연애 감정이었고 합의한 관계다.” 낯설지 않은 발언이다. 과거에도 성폭력 가해자들은 이런 논리를 폈다. 이들이 ‘합의한 관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선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가 권력을 지닌 상사인 것 외에도 강제성이 있었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 결국 ‘합의에 의한 관계’라는 주장은 가해자들이 성관계 사실은 부인할 수 없고, 그렇다고 법적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을 때 내놓는 수법인 셈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역시 이 같은 해명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검찰 자진 출두라는 초강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일각에서는 안 전 지사의 검찰 자진 출두를, 구속수사를 피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피해자 김지은 정무비서가 주장한 ‘위력에 의한 성폭행’을 입증하기 어려울 거라는 뻔뻔한 자신감도 깔려 있다. 가해자가 ‘상습 성폭행범 낙인보다 파렴치한 불륜범이 되겠다’는 심산으로 계속해서 ‘합의된 성관계’라는 주장을 펼치면 결국 업무상 위력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피해자가 떠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겐 극심한 고통이자 2차 가해일 수 있다. 이런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을 위한 법리적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문화계 인사들. 왼쪽부터 이윤택, 김기덕, 조재현.

미투, 이제 시작이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 그 고백의 울림은 컸고, 사회적 파장은 더 컸다. 미투 운동이 단순히 피해자들의 폭로와 가해자들의 사과만 되풀이되는 양상으로 굳어지진 않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투 운동은 남성과 여성,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등 수많은 권력 관계에 있어 약자가 강자에게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더는 성범죄를 혼자만의 문제로 담아두고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주축으로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가 함께 권력형 성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였다. ‘업무상 위력, 위계에 의한 간음’에 대해 법정 최고형을 5년에서 10년으로 높인 것. 또 공소시효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경우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추행죄의 경우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를 착취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인정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사건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국방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성폭력 특별대책 TF, 젠더폭력방지 TF를 만들어 미투 운동에 응답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다 쉽게 문제 제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역시 미투 운동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기업들은 사내 성희롱 문제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 등 기업들은 사내에 여성 상담원을 배치한 여성전용 회선을 설치, 운영 중이다.

한편, 미투 운동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으로 여성과의 접촉을 아예 차단하겠다는 ‘펜스룰’을 꼽을 수 있다. 직장이나 단체 내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여성 동료와의 출장, 회식, 대화를 꺼리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관리직에 남성이 많은 한국 사회 특성상 임직원 간 소통창구를 차단하는 것은 여성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펜스룰’을 빌미로 직장 내 여성 차별 문화를 만드는 일부 남성들의 행동은 성적 희롱이 아니면 여성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시인하는 것과 같다.

또 다른 부작용은 ‘피해자의 가해자화’다. 배우 조민기와 학생 성추행 의혹에 휘말린 한국외대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자살로 내몬 것이라는 글도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자들을 가해자화하며 비난하거나, 가해자의 자살을 미투 운동의 불씨를 꺼뜨리는 소재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은 아직 모르는 게 아닐까.

미투 운동이 배우 조민기와 한국외대 교수를 자살로 내몬 것이 아닌, 성범죄란 들춰졌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짓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정현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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