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은 그 자체로 오랫동안 화폐로 유통되었다. 19세기에는 좀 더 발전된 형태로 금본위제가 대세를 이뤘다. 2차 대전 이후 금 가치에 연계한 달러본위제로 바뀌어졌지만 여전히 금과 화폐가치는 연계돼 있었다. 하지만 금 가치와 일반 물가와의 괴리가 커지면서 더 이상 이런 제도를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세계 각국이 미국에 대해 달러를 들고와 황금을 요구하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졌다. 그러면서 1971년 결국 미국은 손발을 들었고, 화폐는 황금의 호리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지금도 금본위제로 환원하자는 목소리가 일부 제기되기도 하지만 힘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화폐는 희소성도 중요하지만 경제규모에 상응하는 발행물량이 늘어나줘야 한다. 남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부족해지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러니 경제규모가 늘어나면 그에 상응하게 화폐량을 늘려줘야 한다. 그러니 황금처럼 발행이 제한된 화폐는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1930년대 대공황 시에도 금본위제에 집착하다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요즘 한창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화폐의 기능을 가질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기능을 갖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한참 멀다.

가상화폐 수수료 문제 부각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비트코인을 결제통화로 받는 일본 유수의 여행사 ‘HIS’ 홍보담당자는 “비트코인 이용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데 놀랐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은 “영업 면에서 분명히 플러스”라는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HIS는 연말연시와 내년 봄 졸업시즌의 여행수요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형 양판점 ‘빅 카메라’는 얼마 전,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거래당 상한액을 지금까지의 10만 엔(약 100만 원)에서 30만 엔으로 높인다고 발표했다. 비트코인 이용자가 크게 증가한 데다 상한인 10만 엔까지 사용하는 고객이 많기 때문이다. 상한이 30만 엔으로 높아지면 대형 냉장고와 고기능 세탁기 판매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선물 대량구매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HIS나 빅 카메라처럼 비트코인 적극파가 있는 반면 판매촉진책으로서의 효과에 회의적인 의견도 늘고 있다. 일본 수도권에는 비트코인을 이용할 수 있는 소형 콘서트홀이나 음식점, 바 등도 여럿 있지만 실제로는 이용자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업계의 반응이 이처럼 엇갈리는 건 이용자 측이 부담하는 수수료 때문이다. 오프라인 점포에서 요금을 비트코인으로 지불할 경우 이용자는 스마트폰 앱을 조작해 가상통화거래소에 있는 자신의 전자지갑에서 상대방의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송금한다. 송금수수료는 거래소와 지갑의 형태 등에 따라 다르지만 0.0004~0.0005 비트코인이 일반적이다. 가격이 급등하기 전인 올해 연초였다면 45엔(약 450원)~60엔(약 600원)이던 수수료가 지금은 650엔(약 6500 원)~1000엔(약 1만 원)인 셈이다.

해외여행이나 대형 전기제품처럼 가격이 수십만 엔인 경우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금액이지만 음식값이나 소소한 잡화, 생활필수품을 구매할 때는 신용카드로 지불하는게 확실히 이익이다. 여기에 오늘보다 내일 비트코인 가격이 오른다고 생각하면 당장 지불수단으로 쓰기보다는 갖고 있으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 기껏 수백 엔~수천 엔 단위의 거래를 하는 소매점이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더라도 손해 볼 걸 뻔히 아는 고객이 이용할 리 없다. 고객이 이용하지 않으면 소매점 측도 비트코인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비트코인을 이용할 수 있는 점포도 늘지 않는다. 비트코인 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통화로서의 기능은 약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는 비트코인을 과연 ‘통화’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중앙은행 경고 잇따라
비트코인 가격 폭등을 두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경고하고 나섰다. 주요국 중앙은행과 외신들을 종합하면 중앙은행 총재들과 고위 인사들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라는 점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재닛 옐런 의장은 최근 비트코인에 대해 “법정 화폐가 아닌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며,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광풍에 가까운 투자 열풍이 불고 있지만 전통적인 화폐 범주 안에 비트코인을 포함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옐런 의장은 또 “현재까지 비트코인은 지급결제 시장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며 비트코인의 금융시장 내 비중 확대 가능성을 낮게 봤다. 유럽중앙은행(ECB) 입 메르셰 이사 역시 지난해 11월말 ECB, 이탈리아은행이 공동으로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가상화폐는 돈이 아니다”라며 “유럽인들은 민간 가상화폐에 매달리지 말고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소액결제 시장을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캐나다 중앙은행 스티븐 폴로즈 총재는 “가상화폐를 사는 것은 투자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깝다”고 좀 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폴로즈 총재는 “가상화폐는 신뢰할만한 가치 저장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아 화폐로 볼 수 없다”며 옐런 의장과 비슷한 인식을 드러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 움직임을 20년 전 정보기술(IT) 버블에 빗대기도 했다. 필립 로 호주중앙은행장은 지난해 12월 13일 시드니에서 열린 지불관련 회의에서 “현재 이들 화폐(가상화폐)에 빠져드는 것은 효율적이고 편리한 전자지불 이용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투기열풍으로 더 느껴진다”며 “비트코인으로 지불하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의 대가는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각국 중앙은행이 가상화폐 열풍에 경고하고 나선 것은 자칫 중앙은행의 고유 업무인 법정 화폐 발행과 통화정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어서다. 각국 중앙은행은 법정 화폐를 발행한다. 화폐의 기본 특성 중 하나는 가치 안정성인데, 가격이 수시로 널뛰는 가상화폐는 가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어 화폐로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투기의 대상일 뿐 통화 가능 힘들어
가상화폐 중 비트코인의 경우만 살펴봐도 화폐로서의 기능은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비트코인은 최대 2100만 코인만 채굴할 수 있고 이미 1650만 코인은 채굴된 상태로 앞으로 추가 공급여력은 거의 없다. 중국은 부동산시장 강화로 대체투자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선택하고, 일본은 전자화폐를 정식으로 지급결제수단으로 인정한다. 기업의 회계 상으로도 자산으로 인정하는 단계다. 아울러 미국은 비트코인에 기반한 상장지수펀드를 검토하고 선물시장에도 상장한다. 그러니 비트코인으로 세계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물론 중국이 국가차원에서는 비트코인을 규제한다지만 표면상 위안화 결재만 피한다 뿐이지, 사이버 상 거래가 이루어지는 특성상 거래를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투기세력까지 가세하면서 광풍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화페는 가치안정성이 생명인데, 화폐의 고유기능인 교환기능, 지불기능도 가치가 안정되지 않고서는 모든 게 부질없어진다. 가지고만 있어도 가격이 오르는 것은 투자자산이지 화폐가 아니다. 만약 현재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이미 화폐로서 기능하고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비트코인이 지난 연초에 비해 10배 이상 폭등했으므로 이는 화폐가치가 그만큼 올랐다는 얘기이고, 다른 말로 물가가 1/10로 떨어졌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초(超)디플레이션 상황이다. 금본위시대에 어느 정도의 디플레이션은 몇 번 경험했지만 이러한 디플레이션은 유례가 없다. 만일 이런 현실에 비트코인이 정식화폐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면 경제는 그 자리에서 멈출 수 밖에 없다. 미미한 디플레이션으로도 극심한 어려움을 겪은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가치가 크게 오르는 돈을 함부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가치 보전기능이 너무 우수해 화폐 지위에서 밀려난 황금을 보면 알 수 있다. 황금은 역설적이게도 가치보전의 우수성이 너무도 뛰어나 오히려 화폐로서 발목을 잡았다. 도저히 늘어나는 화폐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폐 역사에서 새장을 연 것은 인정해야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황금처럼 희소성이 점점 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투기에 뛰어들지만, 이는 비트코인이 화폐 위상을 차지한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단순히 사이버상 프로그램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도 황금은 실물로서 존재하고 가치영속성은 보장되지만 비트코인은 형체도 없다. 정책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가치변동성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물론 허구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비트코인이 화폐 역사에서 새장을 열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비트코인이 화폐역사에서 획기적인 새장을 열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가격급변동성을 방치하면 이는 새로운 투기장에 지나지 않는다. 엄청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고 금융시장만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경우 또다른 부작용도 일으킬 수 있어 다가적인 검토 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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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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