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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찬반양론 뜨거워 7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사회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뜨거운 논쟁으로 부각
김경수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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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8  10: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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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낙태죄 폐지’에 관한 청원이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됐다. 이내 ‘낙태죄 폐지’ 청원에 찬성한 참여자가 20만 명을 훌쩍 넘어버렸다. 누리집에 올라온 국민청원 가운데 등록된 후, 30일 이내 20만 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청원에 한해서는 청와대 수석 또는 각 부처 장관이 책임 있는 답변을 한 달 내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만 명 이상의 참여자 지지를 받은 건 ‘소년법 개정’에 이어 이번이 2번째다.

낙태죄 폐지 청원을 게시판에 최초로 등록한 사람은 “여성의 원치 않은 출산은 당사자, 태어나는 아이, 그리고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며 “낙태죄는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하는 ‘독박 책임’을 지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낙태죄 폐지와 함께 자연유산 유도약품인 ‘미프진’을 합법으로 함께 인정해 줄 것도 요청했다.

   
 

7년 전 여론조사와 뒤바뀐 결과 나타나

국내 한 여론조사기관은 성인 5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낙태죄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51.9%, ‘낙태죄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6.2%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여론조사기관은 7년 전인 2010년 2월에 실시했던 낙태 허용 여부 조사에서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53.1%,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33.6%로 집계됐었는데 이번 설문조사에선 반대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밝혔다.

응답자를 특성별로 보면, 여성들은 ‘폐지’가 59.9%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고, ‘유지’는 30.1%에 그쳤다. 남성의 경우는 ‘폐지’ 43.7%, ‘유지’ 42.5%로 오차 범위(95% 신뢰수준에서 ±4.3%포인트) 내 접전 양상을 벌였다. 지난해 10월, 낙태죄 처벌 반대 시위는 서울 보신각에서 시작돼 부산, 광주, 대구 등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당시 임신 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모임인 ‘비웨이브’(BWAVE) 회원들은 “아이를 제대로 키울 경제적, 사회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10대 여성이나 다자녀를 둔 여성에게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법으로 명시하는 것은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여성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권리’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한국에서 낙태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모자보건법’에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등 몇 가지 경우만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법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협박하는데 낙태죄가 악용되기도 했다. 실례로 한 남성은 사귀었던 여성에게 낙태 수술을 해준 의사를 반대로 불법 수술했다며 협박해 돈을 뜯어낸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여성의 선택권이냐, 태아의 생명권이냐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가 있다. 임신중절을 ‘여성 개인의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대립하는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의 찬반 논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임신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선택지의 수가 얼마나 될까. 임신한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하고 조력하는 조건들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는 다만 경제적 조건뿐 아니라 임신 여성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고, 여성이 출산과 육아 이후에도 한 개인으로서 하고자 하는 일(학업, 노동 등)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와 환경의 조성도 포함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임신한 십대 청소년들이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도 출산 혹은 유산을 결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들을 고려한 제도와 인식의 변화가 학교 안팎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임신이 곧 해당 청소년의 퇴학 조치로 귀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법적으로 미성년자가 아닌 성년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 수 많은 대학 가운데 학생들을 위한 보육 및 수유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시장에서의 제약은 말할 것도 없다. 출산 장려의 주요 ‘타깃’으로 여겨지는 성인 기혼 여성의 경우에도 잠재적 육아휴직 대상자로 분류 되어 입사 및 승진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가 여성 개인의 삶에서 제약과 차별, 불평등의 조건으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위해 임신 여성은 어떠한 판단 없이 그저 출산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나아가 ‘제3자’ 또는 ‘타인’들이 한 여성의 출산 결정 여부를 규정하고, 명령하고, 비판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더구나 태아가 귀중한 생명이라면 그 생명을 돌보고 키우며 지켜내는 주체는 다름 아닌 여성, 즉 임신과 출산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 당사자다. 임신을 지속하는 경우나 임신을 중단하는 경우, 어느 쪽이든 이는 모두 임신한 여성이 태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장애와 질병을 이유로, 혹은 법적 혼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낙태의 압력을 받고도 임신을 지속하는 수 많은 여성이 있다. 단지 임신을 지속하고 출산했다는 이유로, 이들이 태아의 ‘생명권’을 위해 자신의 ‘선택권’을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임신, 중절, 출산, 나아가 양육의 문제는 단선적이고 이분법적인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수많은 조건과 욕구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과 실천에 있어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임신중절시술에 관한 논쟁을 ‘여성의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고루한 이분법적 구도에 가두는 것을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정책 따라 바뀌는 낙태법

낙태 찬반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외국에 비해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침묵해왔다. 그간 한국 낙태 관련 동향은 법률적, 종교적, 정치적 공론화에 따라 변했다기보다는 ‘출산인구정책’ 추세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산아제한’이 국가시책이던 시기에 정부는 낙태의 인구억제효과 때문에 사실상 방관했다. 하지만, 근래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특히, 2009년부터 불법 낙태를 단속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흐름으로 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낙태실태는 불편한 진실이고, 공공연한 비밀 속에 갇혀 있다. 낙태시술 허용범위가 매우 제한된 현실에서 전반적인 낙태실태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2005년, 그리고 2010년에 실시된 두 번의 실태조사가 거의 유일한 자료인데, 2010년 조사는 실제보다 상당히 과소 추정되었다고 한다. 2005년 실태조사 결과, 한 해 동안 낙태 건수는 34.2만 건으로 추정됐다. 또 가임여성 1000명 당 낙태율은 29.8명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낙태율이어느 정도 하락했다고 가정하더라도 8∼16명 수준인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임신 중 태아가 낙태로 사라질 확률은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20% 이하인데 반해 한국은 30%를 훨씬 웃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행법상으로 ‘합법’적인 낙태시술은 전체의 5%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공식통계를 산출하지 못하는 나머지 95%의 ‘불법’ 낙태에 대해서는 추정만 가능할 뿐 정확한 실상을 알 길이 없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도 큰 상황에서 낙태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개선방안을 정부는 모색해야 한다. 우선 형법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낙태허용범위를 현실에 맞게 반영하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만들어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위대한 가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 9개 나라를 제외한 25곳에서는 임산부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낙태죄가 합헌인 이들 나라에서는 낙태를 무조건 처벌하기보다는 여성들의 낙태를 줄이기 위한 근본 대책에 대한 요구와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여성의 임신과 출산 경험이 다르듯, 여성들이 임신중절시술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임신, 중절, 출산, 그리고 육아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발언은 단지 생물학적 여성으로서 지닌 공유된 경험뿐 아니라, 이들의 계층적 위치, 장애, 성적 지향성, 성별 정체성, 교육경험, 노동경험, 종교적 배경 등에서 비롯된 임신, 중절, 출산, 육아에서의 수많은 ‘차이’와 ‘차별’의 경험을 수반한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낙태문제는 의학적, 윤리적, 여성적 관점에서 시각의 차이를 가질 수 있는 사회문제로, 사회적 안전망이 확립돼 있지 않고,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확실히 갖고 있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낙태는 복합적인 문제다. 언제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를 낳을 것인가 혹은 낳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이며, ‘낙태죄’ 폐지는 이 문제에 다가가기 위해 시급히 풀어야 할 선결과제다.

김경수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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