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 여행&레저
해변의 무덤에서 선시(禪詩)를 쓰다육명심 사진가, <검은 모살뜸> 세 번째 연작사진집 펴내다
이정현 기자  |  webmaster@k-today.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6.02  14:35:3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당연한 얘기겠지만 예술가에게는 예술가 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혜안이 있는 것 같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한국 사진계의 거장 육명심 사진가(85)가 최근 그의 대표작 시리즈 중 하나인 <검은 모살뜸> 세 번째 연작집을 펴냈다. ‘검은 모살뜸’이란 제주도 사투리로 검은 모래찜질을 뜻한다. 제주의 공천포, 이호, 삼양 바닷가에는 검은 모래밭이 있고, 해마다 여름의 폭염이 절정에 달하면 삭신이 쑤시는 나이 든 제주의 부인네들은 그 모래밭을 파고들어가 아픈 몸을 지진다. 이런 모래찜질은 제주도에서 만 볼 수 있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 민간요법이다. 필자도 직장관계로 오래전 우연히 5년간 제주도에 산 적이 있는 데 육명심 사진가의 <검은 모살뜸> 작품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주도민들이 건강관리를 위한 민간요법으로 대대로 이어져 왔던 해변가 모래찜질이 이런 위대한 사진작품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구나 해서다. 제주도에도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몇몇 젊은 사진가가 있지만 대부분 풍경사진 중심의 작품이 대부분이었지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인 제주 토착민들의 깊이있는 삶을 소재로 한 사진은 많지않은 편이다. 제주도민도 아닌 사진가가 어쩌면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해변의 모래찜질을 소재로 하여 전세계 유일무이한 불후의 명작집을 세권이나 냈다는 것에 대해 실로 놀라지않을 수 없다. 길가의 흔한 풀 한 포기도 볼 수 있는 자에게 만 그 진정한 가치가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육명심 사진가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원로 사진가이다. 1932년 충남 대전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서라벌예술대학 사진과에서 세계사진사를 강의했고, 신구전문대학을 거쳐 1999년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육명심 교수는 인간의 본질 또는 근원을 향한 물음을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통해 표현해온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은 우리 고유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제시하고,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초기사진인 <인상> 연작,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예술가의 초상> 연작, 1970년대 <백민> 연작, 1980년대 <검은 모살뜸>, <장승> 연작 등의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사진이론서로 <한국현대미술사-사진>(1978), <세계사진가론>(1987), 사진집으로 <<검은 모살뜸>(1997 및 2009), <문인의 초상>(2007), <장승>(2008), <백민>(2011), <육명심>(2011), <영상사진 1966-1978>(2012),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2014), 에세이집으로 <사진으로부터의 자유>(2005), <이것은 사진이다>(2012) 등이 있다. 2015년 12월-2016년 6월 기간 중에는 국립 현대미술관(과천관)에서 ‘한국미술작가시리즈’ 사진부문 최초로 무려 190여 점의 특별회고전이 열렸으며, 2016년 12월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1960-70년대 원로 사진가들의 대부분이 리얼리즘 일색의 작품활동을 보여온데 비해 육명심 사진가는 문학 등에서 말하는 소위 ‘낮설게 하기’의 예술적 방법을 한국 사진계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현대사진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반에 펴낸 그의 작품집 <인상> 연작 등을 보면 그가 다른 사진가들보다 얼마나 앞서서 한국 현대사진을 이끌어왔는가를 알 수 있으며, 실로 경탄할 만한 선각자임을 알고 깜짝 놀란다. 예를 들어 <영상사진1966-1978> 작품집을 보면 화면들의 한 가운데가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우측 하단 구석에 죽은 개 한 마리가 누워 있고 화면 상단 끝에 지나가는 사람 발목만 보일락말락 조그맣게 보여줄 뿐 화면 가운데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사진도 있다. 인간들의 관심 밖에서 혼자 죽어가고 있는 개를 표현한 작품이다.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시점에서 봐도 과연 이것이 사진인가 하고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그의 <인상시리즈>에서 대부분 사진들은 전경보다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시각은 화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만큼 물러서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야 비로소 보이는 관조(觀照)의 세계이다. 사진을 찍을 때 현실의 한 복판에서 대상과 1대1로 직면하는 리얼리즘사진의 접근방법과는 정반대 입장이다. 즉, 데카르트의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인 시각이 리얼리즘의 입장인데 반해 관조의 시각은 주관과 객관이 둘이 아닌 합일(合一)의 입장인 것이다.

육명심 교수는 평생 불교사상과 노장사상에 크게 심취해 왔는데 그의 사진작품에는 알게모르게 그의 이러한 사상들이 스며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그의 사진인생론을 정리한 <이것은 사진이다>에서 그는 “사진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지름길은 내가 그동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말을 반대로 고스란히 뒤집기만 하면 된다. 즉, ‘남들은 다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느냐. 그러니 남들처럼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그 말을 정반대로 알아들으면 된다. 다시 말해서 남들이 하는 것을 절대로 따라 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과감하게 이를 거부하고 일부러라도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사진예술론을 단적으로 압축한 말이기도 하다.

   
 

육명심 사진가는 그동안 여러 가지 주제로 사진을 찍었지만 이 가운데서 무엇보다 마음에 쏙 드는 주제가 <검은 모살뜸>이라고 말한다. <검은 모살뜸> 연작은 이 나라 우리 땅에 살아가는 기층민의 전통적인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육명심 사진가가 해온 사진작업 중 <백민(白民)>과 <장승> 연작과 하나로 맥이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검은 모살뜸>은 <백민>, <장승>과 더불어 일련의 삼부작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작업의 시기로 보자면 <백민>이 제일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장승>, <검은 모살뜸> 작업이 이어진다.

육명심 사진가는 “<검은 모살뜸>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우선 찜질하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가 관을 안치하려는 묘의 밑바닥과 같다. 흙 속에 파뭍혀서 얼굴만 빼꼼히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은 죽은 송장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모래 밖으로 나와 있는 손이나 발을 부분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그것도 시신의 일부처럼 징그럽게 보인다. 찜질을 마치고 사람이 빠져나와 흐트러진 뒷자리도 시신을 수습하고 난 자리같다. 이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풍기는 대상이 유난히도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다”고 말한다.

윤제림 시인(서울예술대학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검은 모살뜸> 시리즈에는 육명심의 모든 작업이 추구하고 지향해온 가치가 모두 모여 있다. 거기에 그가 찍어온 모든 이들의 얼굴이 죄다 포개어진다. 남원 실상사 돌장승이 보이고 강릉의 용한 무당 박용녀도 보인다. 작가도 보이고 영화감독도 보인다. 티베트 승려도 보이고 유목민도 보인다. 모래에 묻힌 육신은 전체가 하나의 얼굴이다. 한 생애이다. 그것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혼(魂)의 형태이다. 육명심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낯을 찍되, 생김새는 관심도 두지않았다. 그 뜨거운 ‘속’을 찍었다. 얼굴의 옛말 ‘얼골’이 이르는 대로 ‘얼의 꼴’을 찍었다. 정신의 형태를 찍었다. 그는 우리 전통 초상화가 줄곧 지켜온 전신사조(傳神寫照)의 문법을 따랐다”고 평한다.

윤제림 시인은 또, “모살뜸이 이뤄지는 계절의 그 검은 모래밭은 해변의 묘지이다. 폴 발레리가 평생토록 사랑한 남프랑스 바닷가를 생각나게 한다. 그의 시 <해변의 묘지> 첫머리처럼 ‘공정한 자(者), 정오(正午)’가 그 올바름의 화염(火焰)으로 무덤과 바다의 시간을 촘촘히 교직해내는 곳이다. ‘드높은 정오. 움직임 없는 정오는/자기 안에서 자신을 사고하고 자신을 적중하니.../완전무결한 머리여, 철두철미한 왕관이여,/나는 그대 안의 은밀한 변화다’. ‘정오’는 의심의 여지없이 절대존재의 의미로 읽힌다. 그렇다면 그 불꽃 안에서의 ‘은밀한 변화’는 인생일 터. 바다와 무덤은 삶과 죽음의 비유이겠고, 바다와 바람의 움직임은 우리 영혼의 일렁거림일 것이다. 대지가 우리를 재우고 바람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검은 모살뜸>은 이 간단한 존재의 이치를 풍경으로 구현한다. 천지간 무궁한 조화의 흔적을 포착해 낸다. 그것을 통해 죽은 듯이 누운 자에게 더 깊은 땅 속으로 평화롭게 사라지는 길을 일러주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살아야 하는 까닭을 가르치기도 한다. 육명심 사진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검은 모살뜸> 지향점 또한 선시(禪詩)의 구경(究境)을 찾아가는 길을 닮았다. 그가 렌즈 안으로 끌어들이는 대상이나 사물 자체가 화두(話頭)이다”라고 풀이한다.

   
 

육명심 사진가는 “내가 처음 이 제주도 특유의 전통적인 여름나기 풍경을 찍은 것은 1983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검은 모래가 깔린 해안에는 거의 모두가 찜질하러 오는 사람들 뿐이었다. <검은 모살뜸> 연작은 그 후 두 차례 더 집중적인 후속촬영을 거쳐 완성되었다. 두 번 모두 근 십 년을 건너뛰어서 찾아갔었는데, 그때마다 찜질하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의 수는 차츰 줄어들고, 해수욕을 하는 수영객은 날로 늘어 갔다. 이 바람에 결국은 원래 이 섬에 세 군데나 있던 검은 모래찜질 밭이 마지막 마무리 촬영을 갔을 때는 단 한 곳 밖에는 남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그 하나 남은 북제주군의 삼양 모래사장조차도 이제는 재래식 모래찜질 밭과 새로운 해수욕장이 한데 뒤섞여서 이전 제주도에서 만 볼 수 있던 토속적인 향토색이 많이 증발하였다”고 아쉬워한다.

 

*이곳에 올린 작품사진은 <검은 모살뜸> 사진집에서 필자가 재촬영한 것이므로 원본에 비해 화질이 떨어지며, 일부 사진의 경우에는 모서리 등이 크롭된 작품도 있음을 밝혀둠.

이정현 기자  webmaster@k-today.com

<저작권자 © 오늘의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정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완도군, 공약 및 핵심 과제 점검 ‘추진력 높인다!’
2
가덕도신공항 건설 기본계획(안)에 대한 부산시 입장
3
강기정 시장, 작가‧대학생과 ‘생태도시 광주’ 공감
4
도로공사 퇴직자 단체의 '휴게소 이권' 카르텔 드러나
5
'인공지능, 의회 정책 개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세미나 개최
6
"가평 접경지역 조속히 지정해서 특별지원해야”|
7
특활비 개혁한다던 문재인 정부, 박근혜 정부보다 더 늘었다
8
“농어촌공사, 잼버리 부지 매립에 농지관리기금 사용 어렵다 자문받아”
9
'종이호랑이' 중대재해법, 시멘트 업계 산재 폭증…3년새 232%↑
10
서울시, 사회적기업·전문가·시민과 약자동행 협력방안 모색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558) 서울시 중구 마른내로72 인현상가 428호 | 대표전화 : 02-2272-4109 | 팩스 : 02-2277-8959
잡지사업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5 | 등록일 : 1982년 12월 23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번호 : 서울 아03244
회장: 임윤식 | 사장: 정희돈 | 편집국장 : 정재형 | 편집인 : 조순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재형
Copyright © 2013 오늘의한국.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