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남에게 부탁을 할 일도 생기고 또 남이 내게 부탁해오는 경우도 많다. 부탁을 하는 방법부터 받은 부탁을 승낙할지 거절할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상대방이 비즈니스 파트너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이라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비교적 가벼운 부탁들은 승낙하거나 거절하기가 쉽지만 어려운 부탁은 거절이 쉽지 않다. 내가 부탁하는 입장에서도 큰 부탁일수록 상대의 승낙을 얻어내기 더 어렵다. 어떻게 하면 부탁하고 거절하는 데 서로 앙금이 남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가랑비에 옷 젖게 하라

아무리 큰일도 계획을 잘 세우고 시간을 나누어 매일 조금씩 하다보면 엄두가 안 나던 일도 생각보다 빠르게 해낼 수 있게 된다.

큰 독 채 놓인 술이 “와! 이거 너무 많은데” 싶어도 여러 사람이 작은 잔으로 홀짝대며 나누어 마시다보면 어느새 금방 바닥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뭐든 작은 것부터 조금씩 나누어 하다보면 큰일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부탁도 이런 심리를 이용하면 조금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처음부터 큰일을 부탁하게 되면 누구나 아무리 친한 상대라도 쉽게 승낙하지 못하지만, 쉽고 간단한 일을 부탁하면 큰 부담을 갖지 않고 들어주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때에는 우선 작고 쉬운 일부터 부탁을 해본 뒤 상대방의 반응이나 일을 처리해주는 스타일을 보자. 작은 부탁을 선뜻 들어주고 잘 처리해주는 사람이라면, 그 다음 단계의 큰 부탁도 긍정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부탁한 일이 별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부탁한 일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도와주게 된다. 이렇게 점차 큰일로 진행하게 되면 상대방은 이미 진행된 긍정적인 관계나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예상 밖으로 상대가 “아, 그건 좀 곤란한데, 어렵겠어요”라고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저번에 그런 일도 도와주셨는데, 이 정도 일이 뭐가 어렵다고 그러십니까? 사장님 정도면 충분히 능력 있으시잖아요.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기 쉽다.

착한 등대지기의 후유증을 생각하라

한 섬에 늙은 등대지기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이웃에 사는 사람이 불을 밝히기 위해 기름을 조금 달라고 하자 거절하지 못하고 나누어주었다. 다음날 나그네가 여행에 필요한 기름을 구하러 오자 그 부탁도 들어주었다. 며칠 후 한밤중에 이웃집 부인이 급히 쓸 기름이 필요하다고 문을 두드렸다. 그는 이번에도 필요한 만큼의 기름을 나눠주었다. 그 며칠 후엔 갑자기 기름이 부족했던 등대의 불이 꺼져 버렸다.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 해안가엔 좌초된 배의 조각이 파도에 휩쓸려 밀려왔다. 그걸 보며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다 등대지기 때문이야.”

등대지기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탁을 하는 것만큼 거절하는 일도 어렵기 때문이다. 거절로 인해서 그 사람하고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남들이 자신을 냉정한 사람, 야박한 사람으로 보는 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로 도와주면서도 속은 시커멓게 타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머릿속으로 혼자 가상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고 한다. 거절하지 못해서 부탁을 받아들인 후 다가올 괴로움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거절할 용기도 생긴다는 것이다.

부탁받는 순간에는 승낙하는 것이 편하게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상황을 생각해보지 않고 덜컥 약속했다가 뒷감당을 하지 못해 쩔쩔맨 일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꼭 생각해야 할 것은 거절하면 다음에 도와줄 수 있지만, 기껏 승낙해놓고 해주지 못한다면 신용을 잃을 수 있고 잘못하면 회복할 기회마저 없을지 모른다는 점을 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만 추구하며 자기만족은 뒷전으로 미뤄놓다 보면 결국 금방 지쳐버리고 인간관계에서도 스트레스가 온다. 그냥 “미안하지만 지금은 힘들 것 같다”라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그때그때 사람에 따라 강약을 조절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단순명쾌하고 짧게 거절할 순 없다. 부탁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스타일에 따라 효과적으로 거절해야 그 이후에도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상처를 잘 받거나 소심한 사람,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설명하고 미안한 마음을 충분히 설명한다.

직선적인 성격의 사람에게는 “글쎄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와 같은 애매한 표현보다는 담담하게 ‘이건 안 되겠습니다’ ‘어렵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애매한 표현으로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들거나, 다시 또 부탁을 해오지 않도록 단순명쾌하게 거절한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뒤끝이 없기 때문에 잠시 실망은 할지 모르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당장 거절하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그래도 거절해야 한다면 부드럽게 거절한다.

미안하다고 문자메시지 같은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래도 직접 만나 거절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진심어린 마음을 잘 전한다. 그 자리에서 거절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부탁의 말을 잘 들어준 후에 조용히 대응하는 거절이 효과적이다.

부탁하는 사람 입장에선 당신이 그 문제에 이성적이고 신중한 판단을 하고 있고 그 판단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 어쩌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보고 끝날 사이라면 얼버무리면서 틈을 보이지 말고 처음부터 딱 자르는 게 서로에게 좋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다고 둘러대면 결국 상대에게 두 번 상처를 주게 된다.

그 사람의 스타일을 살피고 그때그때 방법을 달리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글 전미옥 CMI연구소 대표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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