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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계의 대표적 거장 육명심, 특별회고전 열다국립 현대미술관에서 6개월간 190여 점 전시
임윤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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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7  1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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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계의 큰 별 육명심 사진가(1932-)의 대표작들이 2015.12.11-2016.6.5까지 약 6개월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특별회고전으로 열리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무려 190여 점으로 육명심 사진가가 50여 평생에 걸쳐 찍어온 작품들이 한 자리에 전시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번 육명심 사진전은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작가 시리즈’ 사진부문 첫 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육명심 사진가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진작가는 물론 사진 교육자와 이론가로서 한국사진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워 온 분이다. 사진에 대한 이론서가 전무하던 1970년대부터 세계사진의 흐름에 대한 저술 및 번역활동을 활발히 펼쳤고, 서라벌예술대학(이후 중앙대학교로 통합), 신구대학, 서울예술대학 등 국내대학의 사진학과 창설에도 초기 멤버로 활동했으며, 제자들을 세계적인 작가로 키워내는 일도 게을리하지않았다. 한국에 현대사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육명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육명심 교수는 한국인의 정서와 정체성을 탐구해온 한국사진의 원로작가로서, 자신 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대상과의 진정한 소통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가장 한국적인 것, 우리 정서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장면들을 포착해 왔다. 1932년에 태어난 육명심은 1964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사진에 입문했다. 당시 한국 사진계는 리얼리즘 사진과 살롱사진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모두가 비슷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사진사와 미술사를 독학하면서 대상을 새롭게 보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초기의 사진작업들을 살펴보면 그가 단순히 현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사물과 교감하는 작가의 내면적인 세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인상(印象)’ 연작을 포함한 초기사진들로, 한 가운데를 텅 비우거나 주제 만 남기고 주변을 잘라버리는 등 과감한 화면구성이 기존의 기록사진들과는 다른 파격성을 보여준다. 일상의 친숙한 사물이나 관념을 그대로 전달하는 리얼리즘의 방법론을 뛰어넘어, 카메라를 거치면서 낮설게 변한 육명심 작가의 사진 속 풍경들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창출해 낸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같은 시기 활동했던 작가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성이다. 이를 통해 그가 보여주려 했던 기록성은 단순히 리얼리티에 대한 자각을 넘어 작가가 느끼는 삶에 대한 비애까지 표현해 내는 진하고 깊은 ‘진실에 가까운 기록성’이었다.

‘인상’시리즈는 육명심 작가가 처음 사진에 입문할 때 사사하는 스승없이 혼자서 사진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안목으로 사진의 길을 헤쳐나간 발자취이다. 그는 사진역사의 흐름을 파악해 나가면서 특히 1920년대에서 193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모더니즘사진운동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모홀리 나기(Moholy Nagy)의 바우하우스((Bauhaus)를 중심으로 전개한 신시각(New Vision)을 특히 주목했다. 모홀리 나기가 부르짖은 ‘신시각’은 육명심에게 ‘카메라 아이(Camera Eye)’라는 제3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육명심 작가는 당시의 충격에 대해 “그때까지 오로지 육안(Naked eye)으로 카메라의 파인더 만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다인줄 알았던 나에게 육안의 한계를 넘어선 ‘카메라 아이’는 새로운 시각의 지평을 열어준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광활한 바다가 환히 한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고 술회한다.

1970년대부터는 ‘예술가의 초상’ 연작이라는 십년에 걸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연작은 비범하게 만 느껴지던 예술가들을 평범하고도 친근한 주변인물들의 모습으로 담아내, 육명심 만의 개성있는 시각을 보여줌과 동시에 대상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1966년 대학교 시절의 스승이었던 박두진(朴斗鎭) 시인의 사진을 찍은 것을 계기로 시작된, 문인과 화가, 국악인, 연극인 등의 초상을 담은 ‘예술가의 초상’ 연작은 사실상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육명심이 사진을 통해 예술가들의 얼굴을 담는데 그치지않고 그들이 지닌 생각과 태도, 삶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이다.

‘예술가의 초상’ 사진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술가 77명의 인물을 담은 도록이다. 이 사진집 서문에서 육명심 작가는 “그 당시 예술가들 가운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가 서정주 시인이다. 이 시인을 찍어 한 문학잡지에 실었다. 한참 후에 문인들이 잘 모이는 다방에 나갔다가 한 원로시인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따지듯이 크게 나무랐다. 서정주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인데 감히 어떻게 그런 꼴로 사진을 찍었느냐는 것이었다. 꼭 시골 무지렁이가 변소간에서 볼기를 까고 쭈구려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 참으로 민망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서정주 시인은 그 사진을 아주 좋아했다.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기자들이 숱하게 자기 사진을 찍었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 단연코 최고라고 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붓글씨로 본인이 직접 시 한 편을 써 줄테니 내 사진하고 맞바꾸자는 제의를 했고 나는 기꺼이 그러마고 했다. 지금도 표구점에서 꾸며놓은 그 액자는 햇빛에 약간 변색되었지만 잘 보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김기영 영화감독의 화가 잔뜩난 듯한 표정의 사진은 어떤가? 육명심 작가는 “그와 친한 사이인 정일몽 교수가 나를 소개하고 촬영현장까지 직접 동행해주지 않았더라면 이 사진을 못찍었을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을 찍을 때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 수 있을 때까지 끌었다. 그의 욱하는 기분 나쁜 표정이 얼굴에 더 강하게 나타나도록 말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예술가의 초상’ 사진집에 실린 77명의 예술가들 모습은 거의 전부 이런 식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이처럼 육명심 작가는 인물사진에 있어서도 당시의 천편일률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도록 파격적인 방법을 시도해 사진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다른 사진가들처럼 예술가들의 완벽한 순간을 담으려 하지 않았다. 쭈그리고 앉거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거나 앞섶을 풀어헤치고 화면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이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사진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과의 교감과 소통이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작업한 ‘백민(白民)’, ‘장승’, ‘검은 모살뜸’ 연작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우리것 삼부작’에서는 이전 작품에서 드러났던 고유한 시선, 대상과의 소통이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 기층민들의 삶을 다루는 이 세 개의 연작은 대상의 표피 만 담는 것이 아니라 사진 속 인물과 사물이 가진 정신성까지 표현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지금은 사라져 버린 한국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민초들의 모습이 사진 속에 보존되어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정체성과 정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박영택 미술비평가(경기대 예술학부 교수)는 “‘백민(白民)은 민속예술 전반에 걸쳐서 만날 수 있었던 우리 시대 마지막 토박이들의 실제모습이다. 백민이란 아무런 벼슬이 없는 일반적 백성을 일컷는 말로, 사진 속의 인물과 대상들은 거의 사라져 간 우리네 고유한 토박이들로, 앞으로 영영 보지못할 것들이다. 무당, 중, 촌로(村老)들을 비롯해 소와 개들도 등장한다. 인간 만이 아니라 풍경과 짐승들도 이 땅에서 함께 살다 죽어 갈 공동운명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얼굴은 굉장히 흡사하다. 그 모든 대상들과 전적으로 눈을 맟춰서 그들의 정신을 드러내고자 찍은 사진들이다. 깊은 시각적 교감이자 편안한 눈 맞춤이다. 그로 인해 사진은 그만큼 깊어지고 새로운 경지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고 풀이한다.

3층 전시장 입구에는 사람 키 2배 정도의 엄청난 크기로 클로즈업된 여자얼굴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백민’ 사진집에 실린 무당 모습이다. “사람들은 육명심 작가의 대표작이 ‘백민’이고 그 가운데서도 여자 무당 얼굴을 화면 전체로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을 제일로 친다. 육 작가도 이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이 무당은 동해안 별신굿의 대표적인 무당으로 강릉에 살고 있던 박용녀 할머니인데 그의 눈빛을 보면 신기(神氣)가 얼마나 강한지 똑바로 쳐다보기가 무섭고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 기운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쉽게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육명심 작가는 ”나는 항상 촬영하는 상대방과 기가 통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일이 쉽게 끝나는데 그날도 그랬다. 어떤 점에서 나는 무당체질인가 보다“라고 말한다.

육명심 작가는 1982년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1985년부터 1989년까지 꼬박 5년 동안 남한 곳곳으로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면서 장승을 찍었다. 오늘날 예로부터 이어 온 우리의 고유한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얼굴을 찾아 시골 구석구석을 다녔다고 한다. 몇 년 동안 수없이 걸어다니며 만난 장승의 얼굴이다. 그 여정은 고스란히 국토순례의 노정이기도 했다. 육명심 작가는 “이 ‘장승’ 연작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북촌에서 찍은 사진이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장승의 이미지는 기이한 웃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를 토해내는 듯 싶다. 자신이 뿌리박고 있는 대지 위에서 허공을 향해, 세상을 향해 길고 긴 구음을, 신음소리를, 낄낄거리는 웃음을 마구 내지른다.”고 말한다.

‘검은 모살뜸’은 검은 모래찜질을 제주말로 일컫는 것이다. 제주의 공천포, 이호, 삼양 바닷가에는 검은 모래밭이 있고, 해마다 여름의 폭염이 절정에 달하면 삭신이 쑤시는 나이 든 제주의 부인네들은 그 모래밭을 파고들어가 아픈 몸을 지진다. 육명심은 제주의 백민들을 찍으러 갔다가 이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목격하고 단번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박명욱 문화평론가는 “아무런 사전 이해없이 육명심의 ‘검은 모살뜸’을 보는 사람은 흠찟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여지없이 죽음의 광경이기 때문이다. 관도 없이 변변한 수의도 못 걸치고, 더러는 젖무덤을 드러낸 채 땅에 묻히는 사람들. 그들 위로 막 몇삽의 흙이 뿌려졌다. 나란한 모래무덤들. 그 옆에 새로운 죽음을 맞기 위해 파놓은 묏자리. 이 승에 무슨 포한이 남았는지 멀어지는 세상을 붙잡으려는 듯 앞으로 뻗은 두 손...그것은 육명심이 본 광경이고, 육명심이 찍어낸 광경이다. 그는 이 땅의 유정한 사람들과의 교감을 지나고 나무나 돌같은 무정한 것들과의 소통을 거쳐 마침내 죽음과도 교통하려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광경이 아니라 삶의 풍경이다. ‘검은 모살뜸’은 제주사람들의 삶의 풍경이며, 더 나아가 인간 삶의 풍경이다. 한 개별자나 한 지역이나 한 시절을 초월해서, 가히 신화적인 모습으로”라고 평한다.

육명심 교수는 그의 자전적 사진인생론을 정리한 ‘이것은 사진이다’라는 책에서 “나의 사진적 특징은 어디까지나 공간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진의 시각적 전개는 내가 세상을 내다보는 입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색다른 유형은 곧 사고방식에 따르는 시각적인 원형임에 틀림없다. 나는 세상을 관조적으로 보는 편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대상을 일단 떼어놓고 건너다 본다. 즉, 전체를 통해서 한 부분으로 대상을 파악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가 스님이었다는 태생적 인연 때문인지 학창시절 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노장사상을 공부했고, 종교적으로는 불교, 그 중에서도 선불교에 지적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육명심 작가의 영상사진들은 하나같이 ‘텅 비움’이라는 ‘공(空)’ 사상이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는데 이 영상사진의 정신적 바탕은 바로 그의 철학적, 종교적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육명심 작가는 ‘사진은 소통’이라고 강조한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사진도 사진가와 카메라에 찍히는 대상이 반드시 하나로 만나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결국 사진은 ‘너’와 ‘나’의 상대적인 만남이며 이 단계를 넘어서 서로간의 내면적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상호간의 소통이란 비단 사람과 사람끼리 만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유정물(有情物)은 물론 무정물(無情物)과도 똑같은 내면적인 교감을 이루는 경지까지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임윤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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