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7일, 정영의 도시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 40기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1392년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래 1910년에 패망하기까지 무려 518년 동안 왕조를 유지한 역사성과 27명의 왕과 왕비의 능이 지닌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중국 황제의 능이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는 않았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기준대로 세계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어야 한다. 조선 왕릉은 탁월한 가치가 있어 세계 유산으로 등재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지적한 특이 사항은 조선 왕릉이 유구한 왕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적이라는 점, 유교와 풍수지리를 존중하는 장례문화와 한국인의 전통사상을 엿볼 수 있는 역사성, 그리고 현장성 못지않게 세밀한 그림과 자세하게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의궤(儀軌)를 남긴 점에 주목하여 극찬했다.
총 44기의 왕실무덤 중 세계유산에서 제외된 4기는 북한에 있는 태조 왕비 신의왕후의 제릉과 정종?정안왕후의 후릉, 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 묘와 광해군의 묘다. 제릉과 후릉은 지역적인 한계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연산군과 광해군의 무덤을 세계유산에서 제외한 것은 조선시대 왕실의 묘제도가 어떤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1. 왕릉의 명칭

왕릉은 임금님의 무덤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죽음을 서거(逝去), 또는 졸(卒)이라 하는데 비해 임금님의 죽음을 붕어(崩御), 승하(昇遐)라 하듯 무덤의 명칭도 다르다. 즉 일반인의 무덤은 묘(墓)라고 하고,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이라 한다. 그러나 왕족이라 해서 모두 능이라 하지는 않는다. 오직 왕과 왕비의 무덤만을 능이라 한다. 그래서 능은 왕조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갖춘 명칭인 것이다.
왕과 왕비를 포함한 왕족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한다.

능(陵) : 왕이나 왕비의 무덤
원(園) : 세자나 세자비. 또는 임금의 아버지나 어머니 빈(嬪)의 무덤
묘(墓) : 기타 왕족 모두의 무덤. (일반인의 무덤도 묘라 함)

왕자가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으면 그 무덤은 당연히 능이지만, 왕자의 신분으로 죽으면 일반인처럼 묘라 한다. 광해군이나 연산군의 무덤을 능이라 하지 않고 ‘광해군 묘’ ‘대원군 묘’라 하는 것은 그들이 왕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반정으로 쫓겨나 왕자의 호칭인 ‘君’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능양군 인조는 아버지 정원군(선조의 5남)을 대원군으로 추승하고 양주에 있는 묘를 김포로 천장하여 흥경원(興慶園)으로 격상하였다. 그 후 5년이 지난 1632에 다시 대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하여 능호도 장릉(章陵)으로 격상했다. 정원군일 때는 묘, 대원군일 때는 원, 왕으로 추존된 이후에는 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정조도 마찬가지다. 사도세자가 1752년 5월 21일 뒤주 안에서 죽자 2개월 후 배봉산에 예장했는데 그 때는 죄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묘호도 수은묘(垂恩墓)였다. 그러나 정조는 1776년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영조가 내린 시호 ‘사도’를 ‘장헌’으로 개칭하여 올린 후 묘호를 영우원(永祐園)으로 격상했다. 그 후 정조는 다시 1789년 수원으로 천장한 후 현륭원(顯隆園)으로 개칭하여 왕릉 못지않게 부친의 묘를 장엄했다. 그래도 차마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지 못하고 묘호도 능으로 격상하지 못했다.
그 원한은 고종이 풀어주었다. 1899년 11월, 고종이 황제에 오른 예우에 의해 장종으로 추존(12월에 다시 장조로 추존)하여 묘호를 융릉으로 격상한 것이다.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하여 능호를 장릉으로 격상한 것처럼, 사도세자의 묘가 융릉으로 격상된 것은 바로 왕실 묘제의 엄격한 격식 때문이었다.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는 부윤옥덕윤신(富潤屋德潤身)은 우리 조상이 즐겨 사용하던 문장이다. 재산이 많으면 집을 윤택하게 꾸민다고 했으나 정작 집보다 더 윤택하게 꾸미는 것은 무덤이었다. 조상숭배 사상에 풍수지리를 얽어 무덤의 장엄에 진력을 다했다. 조상의 발복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권력의 부침에 의해 무덤의 명칭까지도 바뀌는 이면에는 권력 무상의 냉엄한 역사가 숨어 있었다. 그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 왕족의 공동묘지인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인데 서오릉에는 왕실묘의 모든 양식이 있어 왕실묘제를 알아보는 데 유익한 곳이다.

서오릉에는
(1) 창릉 :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
(2) 경릉 :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와 그의 비 소혜왕후 한씨의 능
(3) 익릉 :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
(4) 명릉 : 숙종과 계비 인형왕후 민씨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
(5) 홍릉 : 영조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 등

모두 다섯 기의 왕릉과 순창원(명종 아들 순회세자), 수경원(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 그리고 1969년에 경기도 광주에 옮겨온 장희빈의 묘가 있다. 즉 신분과 격에 따른 왕실 묘의 종류인 5기의 능과 2기의 원, 1기의 묘를 두루 갖추고 있다.

2. 왜 서오릉인가

서오릉의 경우 모두 8기의 무덤이 있는데도 서오릉이라 한다. 그것은 모든 것의 임금님이 있기 때문에 원과 묘는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홀수를 이용하여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이라 한 것도 짝수인 음수보다 양수인 홀수를 길한 수로 보기 때문이다. 선릉역 주변의 선정릉은 성종과 중종의 능이 있고, 국정원 입구의 헌인릉은 태종 이방원의 헌릉과 순조의 인릉이 있는데도 남이릉이라 하지 않는다. 세계 스포츠계에 잘 알려진 태릉도 문정왕후의 태릉과 그의 아들 명종의 강릉을 묶어 태강릉이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오릉은 세조가 20세에 요절한 장자 의경세자를 묻음으로 인해 왕실의 공동묘지로 조성되었다.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은 그 응보였는지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혹독한 벌을 받았다. 1457년(세조3년)에 세조는 꿈에 형수(단종의 모) 현덕왕후가 나타나 ‘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고 가위눌린 후 석 달이 지난 9월 2일에 세자가 죽었다. 화가 치민 세조는 그 해 10월 24일에 단종을 죽이고 동구릉에 형(문종)과 같이 묻혀있는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쳐 다른 곳으로 옮기는 패륜을 저질렀다. 그 후 세조는 등창이 나 죽도록 고생했고 둘째 아들 예종도 20세에 요절했다. 그런가 하면 장손 월산대군은 35세에, 둘째 손자 성종은 소갈증으로 38세, 증손 연산군은 폐위되어 강화도에서 31세에 죽어 왕통도 바뀌었다.
그래도 자식 사랑은 대단했는지 세자가 죽자 세조는 친히 이곳까지 찾아와 아들이 묻힐 곳을 정하고 대군의 예로 예장하여 ‘의경묘’라 했다. 그 후 성종 7년에 덕종으로 추존하고 능호도 ‘경릉’으로 격상했다. 그러나 능인데도 병풍석이나 난간석을 두르지 않았고 석물에 무인석은 없다. 더구나 석양, 석호도 한 쌍씩만 배치했다. 죽었을 때 세자였기 때문이다. 그 후 추존왕의 능에 대한 장식은 경릉을 전범으로 하여 신분에 따라 능과 원과 묘의 격을 확실히 구분했다.

3 능역의 구조

왕릉은 신의 영역임을 나타내는 구역이므로 특별히 산림지역으로 묶어 관리했다. 능 주변에는 나무 중에 으뜸으로 여기는 소나무를 심고, 신성한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해 민가는 물론 개인 묘지까지 이전하였다. 그렇게 넓은 녹지보존지구를 설정한 혈자리에 능침(봉분)을 조영했다. 능역은 능침을 중심으로 사방 백보로 잡았으나 태종 때는 161보, 현종 때는 200보로 확장했다.
능역은 외관상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홍살문을 세워 신성한 공간임을 밝히고 제사에 필요한 부재를 설치하고 각각의 기능에 따라 역역을 구분했다. 홍살문에서 능침으로 향한 방향으로 능역의 구조물을 인릉의 상설도를 참고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능역은 각종 제례를 수행하는 데 편리하도록 진입공간, 제례공간(전이공간), 능침공간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전체적으로 홍살문부터 곡장까지의 영역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재실에서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까지를 진입공간, 홍살문에서부터 배위, 참도, 정자각까지를 제향(제례)공간, 정자각 바로 뒤에 있는 예감과 소전대, 비각 등이 있는 구역을 전이공간이라 한다. (전이공간은 세 영역에 포함하지 않음) 그리고 잔디가 곱게 갈린 언덕의 사초지를 지나 봉분 주변의 석물과 곡장이 있는 영역을 능침공간이라 한다.

1. 재실(齋室)  왕릉을 관리하는 참봉이 상주하는 집. 요즈음의 관리실.
2. 금천교  묘내수를 건너는 다리로 속계와 성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함.
3. 홍살문  본명은 홍전문. 여기부터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목조 시설물.
4. 배위 홍살문 우측의 정방형으로 깔린 박석. 이곳에서 선왕에게 절로 예를 올림.
5. 참도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박석을 깔아 만든 길. 왼쪽 신도(神道). 오른쪽 어도.
6. 비각  능 주인의 업적을 새긴 신도비나 비석을 세운 전각
7. 정자각 정(丁)자와 같아서 정자각이라 함. 이곳에 신주를 모시고 제물을 올림.
8. 무인석, 석마  칼을 지팡이처럼 짚고 선 장군으로 왕을 호위함.
9. 문인석, 석마  금관조복을 입은 문관으로 두 손에 홀을 쥐고 있음.
10. 망주석  봉분 양면의 좌위에 8각으로 세운 석물. 혼령에게 봉분을 찾는 구실을 함.
11. 혼유석  정자각에 제물을 올리기 때문에 혼유석이라 함. 일반인의 상석.
12. 장명등  망주석보다 한 단계 아래에 설치. 왕릉의 발복과 벽사의 기능을 상징함
13. 능침  능의 주인이 묻힌 봉분으로서 능상(陵上)이라고도 함.
14. 석양, 석호 능을 악귀와 맹수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석물.
15. 병풍석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밑 부분을 병풍처럼 둘러친 돌
16. 난간석  봉분을 난간처럼 둘러친 돌.
17. 곡장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동쪽, 북쪽, 서쪽에 둘러친 담

능침공간은 임금이 사후에 지내는 침전이기 때문에 궁궐처럼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래서 봉분 아래에 실제의 집처럼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산자들의 접근을 금한다. 특히 능침공간의 무인석과 석마가 있는 아랫단을 하계, 문인석과 석마가 있는 가운뎃단을 중계, 능침과 망주석과 혼유석, 석양, 석호, 곡장이 있는 윗부분을 상계라 한다.
능역은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의 마을과 건축물, 그리고 개인 묘역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넓은 녹지를 조성하였다. 그렇게 신성시하여 관리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자연휴양지로서의 공간을 남겨 주었고 결국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 주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격이 달라지고 관광객도 몰려든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많은 나라가 관광대국이 된 것이나 중국, 이집트, 인도 등에 관광객이 몰리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성을 지닌 세계문화유산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석굴암, 불국사, 종묘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후 문화유산 10점, 무형유산 11점, 기록유산 11점 등 32기의 세계유산을 등재하여 문화적 자부심을 높였다. 앞으로 서울 성곽 등 잠재적 등재 유산과 남한산성 꾸준히 등재를 신청할 문화재가 많아 세계유산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그에 만족하지 말고 문화재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국민적 소양을 높여야 한다. 도심과 수도권에 있는 조선 왕릉,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왕릉을 답사하여 왕실묘제의 특성 및 능역의 부재, 그리고 석물 등의 기능 등을 알아보면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리라 믿는다.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가족 나들이로도 적당하다. 이 가을에 꼭 왕릉을 찾아보기 바란다.

글/강기옥 
한국문협. 국제PEN한국본부이사. 칼럼니스트. 미래일보논설위원.
화백문학편집자문위원. 월간 아트앤씨편집주간.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서초문인협회사무국장.
 

강기옥  kangko5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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