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살림이 어려워지고 있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 “빚만 없어도 부자”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마저 등장할 정도다
2004년 500조원이었던 가계부채가 10년도 안돼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전체소득에서 세금, 연금 등을 빼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 가처분소득이다. 이중에서 가계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112%에서 지난해에 136%로 치솟았다. 2011년 기준 한국의 국내 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9.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4.5%보다 약 15% 포인트 높다.
정부가 최근 가계부채 증가를 억누르기 위해 금융권 대출을 규제하는 등 각종 대책을 내놓은 후 양적인 증가세가 다소 주춤했다지만 8분기 만에 증가율도 반등했다. 게다가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은행권 대출이 늘어나는 등 가계부채의 질은 더욱 나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엎친대 덮친격, 늪에 빠지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소비가 위축돼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가계부채 위험성이 2008년 리먼사태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심각해졌다고 경고한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도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기 힘든 터에 취업난, 실업, 전세난 등까지 겹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가계가 수두룩하다. 원금은커녕 이자 내기도 벅찬 이들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지난 6월 통계청의 ‘자영업자 가구의 현황과 특징’ 발표에 따르면 2012년 3월 말 현재 국내에는 459만2천 가구의 자영업자가 있고 가구당 7천786만 원의 빚을 안고 있다. 이중 금융부채는 76.3%다. 하지만 금융부채를 가진 자영업자 10가구 중 7가구는 불황으로 사업소득이 줄어 빚을 갚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심지어는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마저 늘어난다. 대학교 등록금은 한 학기에 300만~400만 원 미만인 경우가 전체의 46.4%로 가장 많고 그다음은 300만 원 미만(30.5%), 400만~500만 원(19.3%) 순이다. 부모가 대주는 대학생이 83.6%로 대다수지만 장학금을 받거나 자신이 직접 일해 마련하는 경우도 16.4%에 달한다.
이 때문에 대학생의 20.4%가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학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취업준비는 소홀해지는 등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가계 살림살이 갈수록 어려워

미국은 가계부채가 줄었지만 한국은 빚을 권하는 정책을 통해 지난 5년을 버텨온 것이나 다름없다. 취득세 등 세금 감면해주고 빚을 내도록 도와주면서 소비를 증작시키는 정책을 폈는데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소비여력이 위축되다보니 정작 경기가 살아났을 때 다른 국가보다 회복되는 힘이 약해진 것이다.
금리 인하, 세금감면 등 경기 부양책에 따른 수혜를 입었던 대기업들에 비해 중소기업, 임금 근로자, 자영업자 등이 상대적으로 부양책의 효과에서 소외된 것은 위기극복 과정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악화되고 있는 재정건전성 회복 방안도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사회안전망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복지논쟁과 세수 부족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경기회복의 또다른 걸림돌이다. 사실 건전재정은 정부가 국가신용등급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신성시한 부분이다. 그런데 복지수요 증가와 저성장이라는 환경을 만나면서 흔들릴 위험에 처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1,012명의 표본을 추출해 설문 조사를 실시, ‘가계 살림살이의 현주소와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소득증가율보다 소비증가율이 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올해 1분기의 경우 소득증가율은 0.3%인 데 반해 소비증가율은 -2.4%에 불과하다. 지출을 그만큼 억제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되면 체감하는 생활수준이 팍팍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생활수준이 전과 비슷하다고 답한 사람이 60.9%로 가장 많은 가운데 ‘낮아졌다’(31.0%)가 ‘좋아졌다’(8.1%) 보다 약 4배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유는 물가와 자녀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각각 39.2%, 18.1%다. 수입이 감소한 경우도 16.3%나 된다. 보유한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작년에 비해 변함없다는 응답이 66.3%로 가장 많지만 늘어난 사람이(24.6%) 줄어든(9.1%) 사람보다 3배가량 많다.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택 마련, 자녀교육, 사업 부진 등이다.
우려되는 것은 하반기 살림살이에 대해서도 더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22.9%) 더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보다(12.8%) 2배나 많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하반기에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위해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정책으로 물가안정(47.9%)과 일자리 창출(25.3%)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주택시장 안정 및 내실화로 서민 부담 덜어야

저소득·고령층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높은 것을 꼽을 수 있다. 3월 현재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가 184%로 2분위 122%, 3분위 130%, 4분위 157%보다 훨씬 높다. 연령별로는 20대가 88%인데 비해 30대는 152%, 40대는 178%, 50대는 207%, 60대 이상은 253%나 된다. 나이가 들수록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높은 것이다. 이들은 다른 계층에 비해 부채상환 능력이 떨어지므로 그만큼 부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은행권에서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비은행권 대출 비중은 2008년 43.2%에서 3월 말 49.1%로 높아졌다. 채무 상환 능력이 낮을수록 비은행권을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부채 상환 부담 또한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가 아직은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만 과도한 가계부채와 이에 따른 상환 부담은 경기회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기 위한 대책을 최근 줄줄이 쏟아냈다. 고정금리 대출상품의 비중 확대, 행복기금 지원, 무리하게 대출받아 내 집을 마련하느라 빈곤해진 하우스 푸어의 채무 재조정, 대부업과 불법 사금융 감독 강화 등이 핵심이다. 근본적으로는 가계소득을 올려줌으로써 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일자리도 적극적으로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근본 원인이 오랜 불황과 부동산 침체에 있는 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국민들이 경기회복을 체감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의식주 등의 체감물가 관리, 일자리 창출, 기업들의 투자활성화 등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주택시장 안정 및 공교육 내실화 등을 통해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살림살이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일자리 취약 계층인 청년, 전업주부, 고령자, 퇴직자 등에게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꾸준히 공급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부채가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누적 된 재무구조의 불안이 나쁜 부채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부채든 나쁜 부채든 전략을 세우고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시원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겠다.

김영순 기자  jjim0701@naver.com

<저작권자 © 오늘의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