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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떠 있는 섬영주 무섬마을
글,사진/임윤식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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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18  12: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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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동을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무섬마을은 이처럼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마을 주변을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휘돌아 흐르는 대표적인 물동이마을이다.

​무섬마을은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뒤편에서 만나 350°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실제로는 섬은 아니고 강으로 둘러쌓인 반도형 지형이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16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남(潘南) 박씨인 휘(諱) 수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후 선성(宣城) 김씨가 들어와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다. 40여 가구 전통가옥이 지붕을 맞대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는 무섬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오롯이 남아있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반남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마을에 들어와 건립한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총 9개 가옥이 경북문화재자료 및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가 100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와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필자가 만죽재를 방문했을 때 마침 집을 손보고있던 박승(71) 씨는 본인이 입향조 할아버지의 12대 손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집이 349년된 집이라고 알려준다. 현재 78세인 11대 종부(宗婦)가 만죽재를 지키고 있다고 하면서 옆에 계신 종부를 소개한다. “입향조 할아버지(1641-1729)는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遠岩)에 사시다가 1666년 이곳으로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지요. 원래 당호는 섬계초당(剡溪草堂)이었으나 입향조의 8대손인 승훈 할아버지께서 중수하고 당호를 만죽재(晩竹齋)라 하였지요”라고 설명해준다.

전통 기와가옥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이 사방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어 대문 밖에서는 집안의 생활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섬마을 전통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고, 안채를 사랑채보다 높게 지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게 하는 것이 특징인데, 유교적 격식을 엄격하게 거주환경에도 적용한 결과이다.

   
 
안채와 달리 사랑채는 밖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무섬마을 전통가옥들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사랑채의 기둥을 차별화하였는데,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한 사람이 거처하는 집의 사랑채에는 원기둥을, 벼슬을 못한 사람은 각진 기둥을 세웠다.

집주인의 신분에 따라 사랑채 모양을 달리한 무섬마을의 고가(古家)는 대부분 서남향이다.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산맥의 정기를 고스란히 이어받기 위해 가옥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또, 무섬마을에는 다양한 형태의 까치구멍집들이 있어 가옥구조의 변화과정도 알 수 있다.

까치구멍집이란 경상북도 북부 산간벽촌의 서민주택으로 방과 마루 등이 집 안에 있어 춥고 긴 겨울에 모든 생활이 집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형태의 집이다. 지붕 마루 양단의 하부 박공 부분의 구멍으로 까치가 드나들었다 하여 까치구멍집이라 한다. 박덕우 가옥은 무섬마을 까치구멍짐의 기본형이다. 판문으로만 외부와 출입하는 다른 지역의 까치구멍집과는 달리 방에서 외부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는 것이 특징인 가옥형태이다. 이 이외에도 김규진 가옥, 김정규 가옥, 김재진 가옥 등이 까치구멍집 구조의 집들이다.

일제 강점기 1928년 김화진 선생과 김성규(시인 조지훈의 장인) 선생 등이 건립한 ‘아도서숙’은 1933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숙될 때까지 농촌계몽 활동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쳣던 영주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다. 독립유공자 5명을 배출한 선비의 고장 영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2013년 8월, 국가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된 전국7대 민속마을 중의 하나이다.

무섬마을은 전통고택과 함께 외나무다리도 유명하다.

외나무다리는 길이 150m, 폭 20-25cm, 높이는 하천바닥에서 60cm로 한 사람이 겨우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다리의 중간 중간에는 마주 오는 이를 피해갈 여분의 짧은 다리인 ‘비껴다리’가 놓여 있다. 서로 마주보고 건너오던 사람들은 이 비껴다리에서 서로 길을 양보하고, 때로는 그곳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등 무섬마을의 정을 나눴다고 한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였던 외나무다리는 마을 중심부 및 자료전시관 앞 등 두군데에 있다.

   
 
지금은 외나무다리 위쪽에 ‘수도교’라고 부르는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가 있어 그 다리가 강 건너마을과 이어주는 주요통로가 되고 있지만, 1983년에 수도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외나무다리가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수도교는 총연장 180m, 폭 5.5m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이다.

그 이전에는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아이, 장가가는 새신랑, 꽃가마 타고 시집오는 새색시, 황천길로 가는 상여도 어김없이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했다.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무섬마을을 이어준 유일한 다리로 애환 어린 추억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현재 이 마을에서는 30여 년 전에 없어진 다리를 복원하여 매년 10월 초 축제가 펼쳐진다. 축제는 외나무다리에 얽힌 애환을 기리며 무섬마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외나무다리와 함께 보여준다. 올해는 광복70주년을 기념하여 8월 14일-16일, 2박3일간 열릴 예정이다. 마을대항 씨름대회와 농악한마당, 사또행차, 과객 맞이하기, 참석자 전원 다리 건너기 체험 등이 마련된다.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무섬외나무리다리는 뭍과 섬을 잇는 다리처럼,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무섬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인 박수(朴수; 1642~1729)가 이 마을에 들어와 만죽재(晩竹齎)를 건립하고 터전을 개척하면서부터였다.

무섬의 서편 건너 마을인 머럼(원암:遠岩)에 거주하던 박수가 현종 7년(1666)에 이곳으로 이주해온 후, 그의 증손서(曾孫壻:증손녀의 남편)인 선성김씨(宣城金氏 : 예안김씨(禮安金氏)라고도 함) 김대(金臺 ; 1732~1809)가 영조 33년(1757)에 처가 마을인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무섬마을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두 집안의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점차 인구가 늘어나면서 구한말(舊韓末)에는 120여가구에 주민 500명이 살았을 만큼 번성했지만,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고 주민들의 이농이 줄면서 마을의 규모가 점차 줄어 한때는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시행한 ‘영남 북부 유교문화권사업 정책’으로 전통마을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무섬마을의 전통음식 중에는 ‘골동반’이 유명하다.

영주의 명소가 된 ‘무섬골동반’은 향토음식가인 강성숙씨가 운영하는 전통골동반 음식점으로, 향토음식 지원화 사업장이기도 하다.

골동반(骨董飯)은 옛날 궁중에서 먹던 비빔밥으로, 특히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음력 12월 30일인 섣달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을 모아 비벼먹으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골동반에 대한 기록은 1800년대 말 문헌 ‘시의전서(是議全書)’에 한자로 골동반(骨董飯)이라 쓰고 한글로 ‘부븸밥’이라 적은 기록이 있다. 즉, 이미 조선 초기부터 ‘골동’이란 단어가 쓰였고, 여기에 음식 이름이 붙여 19세기 이후 골동반이라 불렸다.

퇴계 이황 선생이 1550년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 편액을 하사받아 영주선비정신과 유학을 다시 일으켰는데, 그 시절 선생이 즐겨 먹던 음식이 골동반이라 한다.

‘무섬골동반’은 그 밥상을 토대로 콩나물과 자반고등어, 텃밭에서 가꾼 도라지, 머윗대, 다담이 나물 등을 정성스럽게 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차림은 무섬골동반만의 특징이자 또 하나의 전통이 되고 있다.

무섬마을이 전통마을로 단장을 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부터 민박과 식당, 기념품 가게 등이 난립하여 전통적인 마을 풍속을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야기되었다.

이에 따라 무섬마을 주민들은 ‘무섬마을 보존회’를 결성하여, 마을의 전통생활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보존회 김선광 회장(010-6782-2285)은 “영주시 무섬 마을은 350년 동안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가 오손 도손 예의와 도덕을 지키며 살아온 두 성씨의 집성 마을입니다. 내성천과 영천이 만나 태극 모양을 그리는 강과 산, 그리고 고색창연한 기와집과 오밀조밀한 초가집이 산자락을 따라 그림같이 어울려 진, 연꽃이 물에 떠 있는 것(蓮花浮水-연화부수)과 같은 아름다운 고장이지요.

첩첩 산이 몽글몽글 눈에 들어오고, 금모래 은모래의 넓은 백사장이 펼쳐지는 곳, 강을 가로 질러 250m의 국내 유일의 태극형 ‘추억의 외나무 다리’가 아득한 옛날을 되살리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으로,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원초적 본성이 살아나는 곳입니다. 때 묻지 않은 훈훈한 인정과 아늑한 고택 체험은 후회 없는 하룻밤이 될 것입니다. 또 아슬아슬 외나무다리 밑으로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강변 따라 맨발걸음을 하면 가족 화합, 연인 사랑이 영글어 갑니다. 달 밝은 밤과 반짝이는 별 빛, 길게 흐르는 은하수가 가슴 깊이 새겨지는 한 여름 밤의 꿈이 서려있는 곳입니다.”라고 무섬마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마을 끝쪽에 위치하고 있는 ‘무섬자료전시관’에는 마을형성에 관한 역사와 배경, 생활과 문화, 자연환경 등 총 5가지 주제로 나눠져 전시되어 있다. 글, 사진 및 자료, 영상 설명 등으로 무섬마을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한옥체험수련관도 있어 숙박, 교육, 놀이시설 등을 갖춘 체험관으로, 예절교육, 전통놀이, 다도 체험, 천연 연색, 풍등날리기, 짚 공예, 별보기 등 다양한 수련활동이 제공되고 있다. 최대 80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가족단위 손님을 위한 방도 있다. 음악회, 전시회 등 문화행사도 상시 개최하고 있다.

글,사진/임윤식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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