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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가고 싶어 하는 거야? 그것도 거친 곳으로.”배경숙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배낭 하나와 낡은 운동화>
정리 임윤식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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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0  1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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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작가 탄줘잉은 그의 저서에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중 하나로 ‘혼자 떠나보기’를 권한다. 그는 “최근에 혼자 만의 시간을 누려본 기억이 있는가? 혼자서 여행을 가 본 적이 있는가? 위대한 영혼은 고독한 시기를 거쳐야 비로소 발견된다. 우리 마음 속에는 위대한 영혼이 숨어 있다”고 부추긴다.

그래서일까? 여기, 틈만 나면 혼자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한 여인이 있다. 그 이름 배경숙. 그녀는 시인이고 소설가이며, 행동 그대로 ‘자유여행가’이다. 그녀의 발길은 국내의 산과 섬은 물론, 지구촌 구석구석 이를테면, 인도에서 네팔, 티베트, 중국으로,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를 거쳐 남극 포클랜드까지 지구 끝 닥치는 대로 휘젓고 다닌다.

 

이마에 손을 얹어 예를 다하며

목욕하고 기도하며

오염된 강물을 마시는 순례자와

가트를 어슬렁거리는 개와 박시시꾼과

유혹과 협박을 일삼는 현지인들

수많은 운구 행렬과 끊이지 않는 화장 의식까지

생의 양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

 

바라나시 여행자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고 하더라

 

시 <인도-철학자, 바라나시> 전문

 

그녀의 발길이 잠시 멈추는 순간, 시집 한권이 툭 튀어 나왔다. 쉬쉬하면서 떠나더니 결국 시시(詩詩)하게 돌아왔다. 아홉 번째의 귀한 자식을 안고 철학자가 되어 돌아온 그녀.

공광규 시인은 “천성이 자비로운 시인은 여행에서 만난 이국의 스님에게 따뜻한 털옷을 선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하고, 가이드에게 인연의 아쉬움과 연민을 내려놓지 못해 자신의 외투를 벗어 주고 모자와 마스크와 양말과 장갑을 준다. 그러고도 미안하여 여행지에 마음을 남겨둔다. 이런 생래적인 자비심과 함께 많은 여행에서 얻는 삶에 대한 통찰이 시의 곳곳에 나타난다. 특히 바라나시 화장터에서는 불길 속에 타들어가는 시체를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며 삶에 대한 회한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을 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며 가슴을 치고,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다만 이별을 아쉬워할 뿐’이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고, 인간은 여행을 통해서 성숙된다고 한다. 배경숙은 오랜 여행을 통해 영적 성숙의 진경에 이르렀는데, 그 진경의 시적 형상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평한다.

 

서른다섯에 깨달음을 얻고

지혜를 나눈 지도 사십오 년

‘모든 것은 변화한다 쉬지 않고 정진하라’

부다의 유언은 짧았다

 

네팔에서 인도로 가는 기착지 고락뿌르에서 또 두 시간

부다가 입멸한 자리에 세워진 순백의 사원 열반당은

신비로움과 비장함으로 강렬했다

바라나시, 아그라, 쿠시나가르 ……

여행과 죽음이 중첩된 인도에서

불꽃을 반추하며 모호한 해답을 뒤로했다

‘지금도 마음을 가다듬으면 불사리를 발견할 수 있다’

뜨거운 땡볕이 기승을 부리는 폐허

유적지를 맴돌아 오는 현장법사의 외침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고

 

시 <부다-대지에 몸을 누이다, 쿠시나가르> 전문

 

   
 
김호운 소설가는 “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폴 모랑(Paul Morand)은 ‘여행은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거리낌 없이 신의를 저버리자. 그리고 낯선 이들을 만나면 당신의 친구들을 잊자.’ 라고 말했다. 여행을 하려면 자신을 꾸미는 모든 수식어를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둘이었다가 혼자가 되는 일은 고통스럽다’고 한 그의 말처럼, 이 쓰디 쓴 고독이이야말로 여행의 참 모습을 보게 하는 동시에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열쇠가 된다.”고 말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짐을 쌌던가

옷을 챙기고 약을 챙기고 침낭을 챙기고

열심히 살아갈 갖가지 물건들이 가방 속에 들어찼다

물건을 사 들일 때마다

이미 싼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했다

(중략)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에서 바이라하와로

국경을 넘어 인도 땅 소나울리를 거쳐

석가모니가 입멸 한 쿠시나가르로

꼬락푸르에서는 꼴까따까지

스무 시간을 넘게 기차도 탈 것이다

아침에 짐을 싸고 저녁이면 짐을 푼다

학교에 가기 위해 가방을 싸기 시작한 기억 이후

물건을 챙기고 선물을 준비해 온 팍팍한 삶도

여행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싸던 짐을 마저 싸고 또 다시 출발이다

 

시 <네팔-국경을 넘다> 일부

 

차한수 시인은 “이 시편들은 한 마디로 피가 밴 고행의 흔적이다. 이는 단순한 즐거움이나 휴식을 위한 평범한 여행이 아니다.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그 동안 너무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았지/ 모든 것은 변한다 쉬지 않고 정진하라’ 부다의 유언에서 보듯이 시인은 그러한 수행의 공덕을 쌓기 위한 고된 여로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시인은 생사를 초월한 영혼과 세속의 옷 속에 감춰진 환상을 체험하며 배낭 하나와 낡은 운동화로 꿈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많은 오지를 주유하였다. 시인은 생사를 초월한 사람들을 만나, ‘넓은 하늘에 붉은 점 하나 떨어진다/ 다가오는 저녁을 온몸으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하늘이 참 가깝다’<히말라야 네가 그립다-네팔>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시인은 외친다, ‘너무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어/시원한 바람과 빤짝이는 세상이 보였어’<아픈 날-바르나시> 라고!” 평한다.

 

아침저녁 염불을 외며 마니차를 돌리며

사원을 도는 이와

평생을 빌어 오체투지와 고행하는 순례객들로

국가 사원 조캉의 풍경은 평화로움이다

그 평화의 언저리

조캉 정문에 중국 공안의 매서운 눈빛은 빛나고

상극의 풍경이 공존하는 일상이 묘하다

(중략)

꿈결처럼 아름다운 원경 저편에서

신기루에게 합장해 본다는

탕골라 산맥을 훌쩍 넘어선 하늘은

무소유 무욕의 신비로움으로

아득한 선계로 이어지는 시야를 열어주고 있었다

 

시 <티베트-평화의 언저리> 일부

 

유양휴 시인은 “배경숙은 자신의 여행을 ‘함께라도 좋고/홀로라도 좋고’ ( <가벼운 여행자> 중>라고 가볍게 노래하고 있다. 여행이 조금도 긴장되거나 설레지 않고 가볍고 편하다는 것은 그의 생활 깊숙이 여행이 자리 잡아 일상화되고 체질화 되었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배경숙은 때 없이 어디든지 여행을 떠나고 어디서나 머물 수 있으며 머무는 그 곳이 편안한 생활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남극이 보일 듯한 이곳까지 날아와

자연의 일원으로 살아내야 한다

고향으로 가는 저쪽으론 언제나 거센 바람이 길을 막는다

걱정하지 않는다

돌아갈 수는 있다

비상할 때면 창공 깊숙이 파고들어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물길을 좇아가면

해마다 그래왔듯 몸이 알아서 길을 낸다

날카로운 검은 부리와

짙은 밤색의 우아한 깃털과 거대한 몸집은

하늘의 지존이 내린 나의 위상이다

사생결단으로 내지르는 어미 가마우지 경계경보 탓에

가끔 새끼 가마우지 사냥에 실패하기도 한다

하늘만 빙빙 돌다 퇴각하는 길에는

생존이라는 절명의 고단이

자랑스런 깃털을 얼룩으로 물들인다

광채를 되쏘는 눈빛이 붉다 못해 검어진다

운명을 탓하지는 않는다

결코 패배자로 퇴화할 수는 없느니 ……

 

시 <포클랜드-갈색도둑갈매기> 전문

 

   
 
편부경 시인은 “눈을 뜨면 배를 밀고 당기는 바다 바라기로 시작하는 여기는 동해안 북단, 걸려온 전화 너머 목소리는 쨍한 맑음의 배경숙 시인이다. 배 시인의 시편들 중에는 읽을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섬이나 여러나라를 여행하며 우려낸 작품들이 많다. 먼 길 나섰다는 소식을 접한 지 오래지 않은데 어느 사이 돌아와 시집을 낸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 정신력과 에너지는 과연 배 시인답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함께 섬에 가요!”라고 외친다. 역시 섬시인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가? 남극 포클랜드 어느 얼음 섬에라도 함께 가자는 얘기인가?

 

(전략)

눈 덮인 봉우리의 위엄은 강렬한 햇살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인디오들이 만든 길을 조금 넓혔을 뿐인

절벽을 넘나들던 신비한 흔적과

수수께끼를 품어 안은 마추피추

태양이 높아짐에 따라

경이로움은 시시각각으로 빛나고

빛이 맑아질수록 산빛 또한 진해졌다

쿠스코를 지나

대지의 끝 마젤란 해협까지 내쳐 달려갔던 길

빽빽한 밀림을 배경으로 우르밤바 강이 우렁차게 흘렀다

 

잉카는 왜 무너졌을까

 

시 <페루-마추피추 가는 길> 일부

 

오만환 시인은 “여행을 위해 얼마나 많은 짐을 쌌던가 그리고 풀었던가. 삶 자체가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이다. 여러 나라의 풍광과 길 위에서 생각을 얻고 빛과 시(詩)를 만난다. 나를 찾아가는 시상들이 공감을 주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섬세한 묘사에 사진이 들어가는 ‘포토포엠’의 장점도 잘 살려서 형상화를 돕는다. 하늘과 절벽만을 마주한 극지, 광활한 언덕 그 길은 종교를 초월하고 신비로움을 준다.”고 말한다.

 

브에노스 아이레스 한인 민박집에서 보았다

방문을 열면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간이침대 곁에는 내 배낭이 놓여 있었다

넘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이

거기 그대로 멈춰도 좋을 것만 같았다

꼭 필요한 소지품을 담은 가방 하나와

몸을 뉘고 쉴 공간 외에 정작 무엇이 더 필요한 가

남아메리카 끝자락까지 이민 온 우리 교포들도

새 삶을 그렇게 시작했으리라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이 있고

일용에 쓰일 단출한 물건 몇과 옷가지

현관에 벗어놓은 낡은 운동화

모든 욕망이 빠져나가는 순정한 상태로

나는 어른의 삶에서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단순함,

자유로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고국을 기억하는 얼얼한 가슴과 눈빛은 덤이었다

 

시 <아르헨티나-배낭 하나와 낡은 운동화> 전문

 

배경숙 시인은 시집 서문에서 “ ‘왜 나가고 싶어 하는 거야? 그것도 거친 곳으로.’ ‘여행은 마법 같은 거지.’ 머나먼 길을 함께 한 긴 여정이 저쪽 어디에 서 있을 소실점에게 나보다 먼저 속삭였다. ‘낯선 길에 푹 빠지고 싶었고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었어.’ 나는 그냥 그렇게 대답하려 했다. ‘여행이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고독한 모험이지.’ 잠시 후 다음 여정이 설레는 눈빛으로 한마디 더 했다.”고 중얼거리듯 몇마디 던진다

정리 임윤식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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