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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메고 만난 소수민족(3)메콩강 상류 중국 란창강. 베트남 오지 싸파
김정일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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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7  13: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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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솽반나 만팅공원에서 타이족들의 전통공연을 관람했다. 관람 중에 란창강 주변 소수 민족의 애환을 모은 다양한 문화가 소개되고 ‘중국은 하나다’라는 자막이 나왔다.
이는 중국정부가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다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만든 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하나의 작품 같아 보였다.

소수민족의 애환이 흐르는 란창강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다 한적했던 주차장에 차가 꽉 들어차 혼잡을 이뤘다.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 버스와 십여 대의 버스만 있었기에 집합 장소를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비는 쏟아지고 차들은 아우성치듯 복잡한 속에서 우리는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 비를 맞으며 갈팡질팡했다. 북새통인 인파 속에서 사람을 찾는 심정이었다. 갈피를 못 잡고 한참을 헤매던 끝에 겨우 우리 버스를 찾아 올라탔다. 그런 후에도 일행 한 팀이 오질 않아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얼마 만에 안내양과 나타난 그 팀은 전 날 시솽반나로 출발하기 전 버스에서 소란을 피우던 그 여자들이었다. 안내양이 공연이 끝나면 이곳으로 오라는 지시를 했지만 그녀들도 정신없이 헤매던 끝에 겨우 버스를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안내양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안내양이 자신들을 챙겨주지 않아서 생고생을 했다는 식으로 안내양에게 포악하게 굴었던 것이다. 비를 맞으며 고생을 한 입장은 모두 같다. 하지만 갑자기 몰려든 버스와 비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니 서로 이해를 해주는게 배려가 아닐까. 그런데 안내양을 탓하며 불평을 하는 그녀들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중국은 하나다’ 라는 주제로 본 공연에 먹칠을 하는 것 같아 마치 란창강의 슬픈 이야기처럼 필자의 마음에 박혔다.
동행하는 시간 중에 서로의 오해가 잘 풀려서 공연에서 보듯 중국은 하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진홍을 출발했다. 시내를 빠져 나가려던 버스가 대교 부근에서 고장 나는 바람에 수리하는데 1시간가량 걸렸다. 그동안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란창강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 TV에서도 란창강 주변 소수민족의 다양한 문화가 여러 번 소개 되어 낯설지 않았다. 준공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커다란 대교 밑으로는 많은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 강물은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인도차이나 반도로 흘러들어 가는데, 중국 땅에서 흐르는 상류를 란창강이라 하고, 인도차이나에서는 ‘메콩강’이라 한다.
메콩강은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미곡 생산지로 유명함을 떨치고 있다. 란창강 대교 옆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있었다. 필자는 그 안의 분수대와 부처상, 빈강공원까지 둘러보았다.

보이차의 고향 푸얼시
버스는 정비 후에 진홍시를 지나 푸얼시 저이(??)현에 있는 보이차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보이차는 건강에 좋은 발효차로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보이차의 고향이 이곳 푸얼시임은 필자도 몰랐다. 푸얼시는 일찍이 차마고도 시발지의 역참으로 긍지를 갖고 있으며 당시 마방의 모습을 청동으로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푸얼의 원래 이름은 쓰마오였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으로 푸얼차의 인기가 많아지자 중국정부는 기존의 쓰마오(思茅)를 2007년 4월 푸월시(普?市)로 바꿨다.
보이차는 이곳 보이산에서 생산되는 차를 이르는데 아열대 기후로 일 년 내내 서리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차가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잎을 말려서 가공한 엽차도 있지만 메주 같이 덩어리로 만든 차가 더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해발 400~600m지역에서 생산되는 차를 최고품으로 알아준다.
푸얼시는 인구 절반이 이상이 푸얼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급작스럽게 이곳에 커피 바람이 불어서, 차보다 돈이 되는 커피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점심은 저이현 마을을 지나 흑용 자치현 오지마을에서 먹었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나이 든 부녀자들이 파라솔 밑에서 과일, 약재 등을 바구니에 담아 놓고 팔았다. 그들이 가꾼 농산물이라고 했다. 소박하고 작은 장터의 그 느낌은 한국의 시골장터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민속 옷을 입은 사람은 없고 모두 허름한 옷을 입은 모습에서 그들의 빈곤함이 읽어졌다. 그들을 보며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의 60대를 떠올리게 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쿤밍이었다. 지명 끝 자가 깊은 계곡을 의미한다고 해서 시내 계(溪)로 끝난다는 벽계, 남계, 옥계를 관상했다. 산자수명한 높은 산과 계곡은 그런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실감케 해주었다. 계곡을 관상하며 푹 빠져 보내는 동안 시간이 흘러 무려 6시간 만에 쿤밍에 도착했다.

중국 최대 윈난 소수민족촌

   
 

윈난성 북쪽 상그릴라에서 남쪽 시솽반나를 다녔던 시간은 다른 곳과 달랐다. 10여 일 여행하는 동안 외국인과 한국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도 그렇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윈난성은 크고 넓다는 것을 체험으로 실감하였다. 중국 남서부에 위치하며 면적은 남한의 4배 정도가 된다. 인구는 4,800만 명이며 성도는 쿤밍이다. 북서부는 시짱(西藏티베트), 쓰촨성(四川), 동부는 광시, 좡족 자치주와 접하고 있으며. 또한 서쪽으로는 미안마, 남쪽으로는 라오스, 남동쪽으로 베트남과 국경선을 이루고 있다. 윈난성 남부는 아열대성 기후고 북부 고산지대는 아한대성 기후로, 그만큼 크고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정부에서 공인된 56개 소수민족 중 26개의 민족이 윈난성에 살고 있으며 전체인구 중 38%를 차지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소수민족을 보유하고 있는 윈난성 정부는 성도인 쿤밍에 윈난민족촌에 13개 소수민족마을 재현해 놓았고, 그들의 문화가 담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필자도 이곳을 떠나기 하루 전날 찾아가 보았다.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8km 떨어진 윈난민족촌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정문에 들어서자, 소수민족들이 직접 민족 고유의 복장을 입고 방문객들을 맞이 해주었다. 이곳은 소수민족이 가장 많은 윈난의 지위에 걸맞게 중국 최고의 소수민족 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윈난성 정부는 우리나라의 용인민속촌의 분위기와 경주양동마을, 외람리한옥마을, 낙안읍성마을 안동하회마을 등 토속문화의 집합체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부분의 마을은 매일 크고 작은 공연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현장을 체험했기 때문에 일일이 공연을 챙겨볼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마을인 다리의 바이족(白族)마을, 리장의 나시(納西)족마을, 시솽반나 타이족의 마을, 싱그릴라에 사는 티베트족 마을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길이 갔다.

중국 국경도시 허커우
한국에서 출발 하면서 이번 중국 여행에 계획한 것 중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싸파’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싸파는 베트남의 부각되는 관광지 중에 한 곳이다.
1년 동안 몇 번이고 중국을 오갈 수 있는 복수비자를 받고, 베트남은 한국인에게 15일간을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쿤밍에서 남쪽으로 약 500km 내려가면 베트남과 접해있는 국경도시 허커우(河口)가 나온다. 저녁 7시30분 침대버스 2층 구석자리에 올랐다. 필자처럼 덩치가 큰 사람은 아주 불편한 자리였다. 잘못하면 허리가 다칠까봐 불안감을 줄 만큼이었다. 중간에 잠이 깨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사이 국경지대라 경찰관의 검문도 있었다. 자리가 얼마나 비좁던지 몸이 으스러지는 것처럼 아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기사한테 부탁해 기사 옆, 보조의자로 자리를 옮겨 그나마 편안한 여행이 되었다.
허커우에 가까워지자 송꼬이(紅河)물이 피같이 검붉게 흘러가고 있었다. 강 이름이 한자로 붉은 홍자(紅)라 빨간 것 같다. 이 강 물은 허커우 시내를 관통하여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로 흐른다. 그 순간 몇 년 전 하노이 관광 할 때 봤던 붉은 빛깔이 떠올랐다.
허커우에 도착하니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숙소까지 따라 오며 송꼬이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베트남으로 가려면 배를 이용해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오토바이 4대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대기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택시 이용도 불가능하니 오토바이를 타라고 했다. 각 각 나눠 탄 오토바이는 시내를 향해 질주했다. 버스만 이용하다가 온 몸으로 바람을 끌어안으며 이동하는 기분은 가슴이 확 뚫리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져 사뭇 달랐다. 그런데 그 기분은 이내 사라졌다. 그들은 오토바이에서 내리게 하더니 오늘은 더이상 갈 수 없다며 30위엔을 챙기고는 택시를 불러 우리를 다른 안내자에게 맡겼다. 여행지 어느 곳이든 사기꾼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 겪으니 황당했다. 현지 대학생까지 있었음에도 그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베트남 국경도시 라오까이
중국 허커우에서 강 하나를 건너면 베트남 라오까이(老街)다. 라오까이는 중국 윈난성과 국경을 접한 베트남의 최북단의 국경도시이다.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에 속한 육로 국경이라면 변방을 연상하겠지만 라오까이는 곱게 정비된 도로의 말끔한 중소도시다. 이곳에서 하노이까지 기차가 연결되는데 기차출발과 도착시간의 소음을 제외하면 도시는 조용하기만 하다.
베트남 북부를 여행하려면 한번쯤은 거치게 되는 교통의 요지다. 라오까이를 기점으로 싸파와 박하도 여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오지(奧地) 싸파

   
 

싸파는 해발 1,650m의 고산지대에 많은 산악 민족들이 생활하는 마을이다. 20세기 들어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하는 동안 여름 휴가지를 건설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싸파는 하롱베이, 호이안과 함께 베트남의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지대가 높아 기후 변화가 심하지만 날씨만 좋으면 정신을 맑게 해주고 시야를 열어주는 매력적인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다. 싸파는 인구 3만 6,200명으로 행정구역은 라오까이성에 속한다. 기온은 연평균 15.도, 최고기온은 29도다. 선선한 기후와 산악 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갖춘 생활방식은 베트남 본토와의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싸파의 주인 몽족
싸파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민속의상을 입은 몽족 여자아이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몰려온다.
중국 중부와 몽골에 살던 유목민들이 19세기 초반부터 남부 국경 지대로 이동했고, 일부는 국경을 넘어 베트남, 라오스, 태국 북부의 산악지대에서 생활했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먀오족(苗族)이라고 부른다.
언제인가 중국 미야오족은 자신들이 동이족의 한 갈래이며, 따라서 우리 한민족과 같은 피를 나눴다고 믿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몽족은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도 언젠가 동이족의 줄기라고 말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또 한 가지 흥미를 주었던 건 전통옷을 입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처음엔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차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옛날 우리들의 생활복이었던 한복처럼 그들도 실제 복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은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옛날 우리네 엄마들이 아이를 업고 일하였던 모습과 너무 흡사하여 고국에 계시는 노모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싸파타운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함종산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혼자 다니기로 일행과 약속하고 ‘함종산’으로 올라갔다. 그 곳은 우리나라 남산과 비슷하다. 사파교회 왼쪽 골목에서 안쪽으로 들어가 트레이드유니온호텔 앞에서 다시 왼쪽 길로 가니 매표소가 있었다. 대낮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나 혼자였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잘 꾸며져 있는 것을 보니 유명한 관광지가 맞는 것 같았다. 조금 올라가니 사파타운은 물론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판시판산과 어우러지는 싸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갔다.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정원이 펼쳐졌다. 그 위 꽃나무에 영어로 ‘사파’라고 쓰여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듯 글자가 선명했다. 그 곳에는 다양한 꽃과 식물을 심어 정원을 꾸몄고, 석회암으로 이뤄진 독특한 모양의 바위산들로 어우러져 있었다.
날씨는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니 그곳에는 허름한 집한 채가 있었으며, 안에 있는 화장실은 필자가 어릴 적에 본 듯하게 항아리에 나무를 걸쳐놓은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주변 담에 호박을 심어 화장실을 은폐시키는 모습은 우리 옛날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그런데 허름한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들어가 보니 항아리에 나무를 걸쳐놓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재래식 화장실 같은 모습이나 주변 담에 호박을 심어 화장실을 은폐시키는 모습은 우리 옛날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인도차이나의 지붕 판시판 산
함종산에 올라가 멀리서 바라 본 판시판산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겨질 것이다. 판시판은 싸파타운 앞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곳은 싸파에서 남서쪽으로 19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고도 3,143m로 티베트 뿐만 아니라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 정상에 있는 표석에는 ‘인도차이나 지붕’이라고 적혀 있으며 고도에 따라 기후와 지형이 달라지는데 2천여 종의 식물군과 320여종의 동물 군이 서식한다고 했다.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판시판산 아래에 있는 호수 주변을 촬영하고는 추억을 담고 내려왔다. 호수 주변을 촬영하는 것으로 추억을 남기고 내려왔다.
산 정상에서 바라 본 호수는 수정 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내려와 바라 본 호수 물은 오염이 꽤 심해 실망을 주었다.
그곳을 떠나 중심가 로터리 부근에 도착했다. 소수민족 상인이 숲속으로 들어가 그런데 소수민족 상인이 숲속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피고는 그곳에서 대변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 행위를 스스럼없이 하는 걸 보며 역시 오지마을이구나 실감했다.
또 그곳에서 물건 팔러 다니던 50여 명의 소수만족 여인들이 몰려 앉아서 집에서 가져 온 식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는 관광객들보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길거리는 누비며 물건을 팔러 다니는 아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특히 아기를 업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까지 3대들이 함께 손수 만든 수예품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사파의 하루를 둘러보고 20위엔을 내고는 국경을 넘어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우리 숙소 옆에 출입국사무소가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헤매고 다닌 걸 생각하니 왠지 속상했다. 하지만 여행 중의 에피소드라고 여기며 중국 송꽁이강(홍강)의 지류인 난시강 강변을 산책했다. 그곳의 강물마냥 소녀들의 홍조띤 밝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다음 날 아침에 출발했다. 국경지대라 그런지 여권 검사를 했다. 필자는 여행지를 기억에 남기려는 뜻과 위치 파악을 위하여 광고판을 사진 찍었다. 그래서 카메라 내용물까지 확인을 시켜줘야 했다. 그런데 포스터광고라는 이유로 별 문제 삼지 않았다. 남계를 지나니 도로 주변에는 바나나와 대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바나나를 사서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었던 바나나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그곳에서 모든 차량이 중간에 멈추는 바람에 그 장소에서 5시간을 꼼짝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곳 농촌 사진은 물론 묘지의 풍경, 자동차에 실려 가는 돼지와 소들의 슬픈 얼굴을 담을 수 있었다.
쿤밍에는 밤 11시 도착했다.
다음 날은 윈난성 여행을 마감하고, 쿤밍 구이저우성에 있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폭포인 황과수폭포행 기차를 타고 가는 날이다.
 

김정일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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