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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율,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다홍익대학교 서양학과 김태호 교수
신수경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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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3  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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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을 켜켜이 쌓는다. 지루하리만큼 매일 매일 물감을 쌓다 예리한 나이프를 들고 물감을 도려내는 작업이 다시 시작된다.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 그림위 쌓인 물감을 지우면 비로서 드러나는 것들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의 작품은 씨줄과 날줄이 일정한 일정한 그리드로 이루어진 요철의 부조그림이다.

파스텔톤의 묵직한 안료층이 쌓인 캔버스로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면 두텁게 쌓인 물감 아래 잠재하고 있는 또 다른 색을 만나게 되는 데 이는 수많은 터치와 중복을 통해 쌓인 다색 색층이다. 이 색층이 보여주는 공간적 내재율과 내면에서 드러나는 내재율의 변주가 이내 보는 이의 시야를 압도한다.

벌집같은 작은 방에 생명력을 뿜어내는 소우주

그의 작업은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드를 설정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물감을 층층히 쌓아올린다. 그의 작품은 작은 그리드안에 여러 색들이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또 다른 하나의 색을 만들어내면서 커다란 구조를 형성해나간다.

김태호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재율은 씨줄과 날줄이 일정한 그리드로 이루어진 요철의 부조 그림이다. 먼저 캔버스에 격자의 선을 긋는다. 선을 따라 일정한 호흡과 질서로 물감을 붓으로 쳐서 쌓아 간다. 보통은 스무 가지 색면의 층을 축적해서 두껍게 쌓인 표면을 끌칼로 깎아 내면, 물감 층에 숨어 있던 색점들이 살아나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옛 한옥의 문틀같은, 시골 담같은, 조밀하게 짠 옷감같은 화면이다. 축척행위의 중복에 의해 짜여진 그리드 사이에는 수많은 사각의 작은 방(집)이 지어진다. 벌집 같은 작은 방 하나 하나에서 저마다 생명을 뿜어내는 소우주를 본다.”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제작한 그의 작품은 그의 노동의 가치만큼 작품의 무게가 무겁다. 네 사람정도가 옮겨야 할 만큼 켜켜이 쌓인 물감의 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쌓인 물감의 무게만큼 그의 작품은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얻어왔다. 묵직한 그의 물감들이 그 내면의 소리를 울려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노화랑의 노승진 대표는 그의 작품에 대해 “김태호 교수의 작품은 자유롭고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커다란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평한다.

   
 
개인전 30회, <형상><전면화><내재율>

그의 이력을 보면 1977년 첫 개인전부터 현재 개인전만 30회에 이르기까지 그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십 여년 간 수직으로 세워진 곡면 인체 형상과, 샷터의 견고한 가로선들을 교차시키면서 스프레이에 의해 차갑고 정치한 형상을 주로 그렸다. 그 후 90년대 중반까지 십년 간은 바탕칠한 캔버스에 한지를 붙인 후 스크래치에 의한 무수한 필선과 밀리고 뭉쳐진 종이의 마티에르를 시도하면서, 종이와 안료의 물성 사이로 감추어지고 드러나는 오색의 자락들을 모티프로 빛의 형상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작가 김태호의 조형적 편력은 대체로 세 개의 시대와 방법으로 분류될 수 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지속해온 <형상>시리즈가 그 하나요, 80년대 후반에 시도된 종이 작업과 그것을 통한 전면화의 작업이 또 하나며, 2000년에 오면서 그리드의 구조 속에 치밀한 내재적 리듬을 추구해오고 있는 근작이 또 하나다. 30년을 상회하는 작가의 편력으로서는 비교적 간략한 편이다. 변화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에 충실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라고 언급했다.

한결같음 속에 시대에 맞는 변화 추구

이렇게 물감을 쌓아 ‘내재율’이란 연작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지 20여년. 그의 내재율은 ‘형상시대'에 이은, 제 3기의 업그레이드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재율이 확실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7년 이후이지만, 줄잡아 어언 20여년의 연륜이 쌓였다.

그의 작품에 대해 일부는 한결같다고 평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매년 시대에 맞게 자신만의 옷을 갈아 입었다. 식을 줄 모르는 그의 열정이, 한결같음과 더불어 시대에 맞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후배나 제자들에게도 변화에 대해 늘 강조합니다. 항상 새로워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안주하지 말고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김 교수는 실제로 매년 깍는 기법을 달리한다든지 색감을 시도한다든지, 추상적인 형상을 내식대로 표현한다든지 약간의 변화를 시도해왔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시도를 관람객들에게 내 보이기를 좋아한다. 그는 “실험정신이 강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지도합니다. 관람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거죠. 이번엔 무엇이 달라졌나? 하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 달라진 점을 발견할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새로운 감상 포인트를 덧붙였다. “물성을 통해 평면 회화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나의 의지가 표현하고자 했던 생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초기 작품인 형상 시리즈부터 나의 작품에는 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절제된 이미지와 추상화된 형상 속에서 쉽게 알아보기 힘들지만 인체의 선이 있었죠. 20여년간 그려내는 작품도 평면 모노크롬 구조의 반복 패턴이지만 역시 인간이 있습니다.”고 말했다.

사람, 성실, 그림 그를 지배하는 키워드

그림속에서 인간을 이야기하곤 했던 그를 이야기할 때, 사람, 성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중시하고 성실한 약속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작품에서처럼 그의 삶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랜 시간동안 선배이자 때로는 동료로 지냈던 故이두식 선생(전 홍익대 서양학과 교수)의 추도사를 읊었을 때 참 많이도 울었다고 한다. “돌아가시던 전날에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참 인생이라는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그때를 회상하는 그의 눈시울이 금새 뜨거워졌다. 마지막날까지 그림을 그렸던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아왔던 그도 늘 그림에 대한 사랑으로 매일 그림을 그렸고 마지막날까지 붓을 놓고 싶지 않다. 그에게 다시 인생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해도 화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마지막 목표는 회고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선배들을 바라볼 때 서서히 작품 정리를 시작해야 할 시기가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슬슬 회고전을 위한 대작들도 준비해야 하고 기존에 있던 작품들도 수정하거나 작품에 대한 간략한 메모도 준비하기도 합니다.”이는 늘 성실했던 그의 삶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 언젠가 고마운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기도 하는 그는 여전히 뜨거운 마음을 가진 화가다.

“시류에 급급하는 작가는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습니다. 유행이란 이미 바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시대적 경향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작업을 추구하다 보면 자전과 공전이 일어나며 만나는 시점이 생겨 트랜드와 맞닿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사조를 좇아가거나 남과의 경쟁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은 제게 무의미한 소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는 김태호 작가.

그는 진정한 작가의 최대 경쟁상대는 오직 자기 자신이라고 굳게 믿는다. 오늘도 그가 가진 뜨거운 청년의 열정과 특유의 성실함은 그의 히스토리이자 한국 서양화의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으리라. 오늘도 그의 작품에 그의 어깨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신수경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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