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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과 돌담 사이로 시간도 쉬어가는 곳담양 명옥헌 및 창평 슬로시티
글,사진 임윤식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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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15  17: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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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은 소쇄원,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 등이 유명하지만 명옥헌 및 창평슬로시티도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다.

   
▲ 명옥헌

명옥헌은 조선 중기 명곡 오희도 선생(1583~1623)이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1574~1615)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정원이다. 명옥헌원림은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은 네모난 연못 가운데 둥그런 섬을 만들고 주변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당시 우주관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정(네모)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이 담겨져 있다. 연못은 동서 20m, 남북 40m로 별로 큰 편은 아니지만 산 아래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명옥헌 및 배롱나무숲과 함께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다.
명옥헌(鳴玉軒)이란 이름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어준 것으로 연못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소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계곡의 물을 받아 연못을 꾸미고 주변을 배롱나무로 조성한 솜씨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 조상들의 소담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정자에 올라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배롱나무꽃숲과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시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시(詩) 한 구절을 읊고 싶어지고, 화가가 아니라도 멋진 풍경화 한 점 그리고 싶어진다. 오규원 시인은 그의 시 <해가 지고 있었다>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이름 모르는 새가 와서 울었다
배롱나무에서 울었다
배롱나무는 죽었지만 반짝였다
(후략)

   
▲ 배롱나무꽃

배롱나무 꽃이 만발하는 8-9월에 이곳을 찾으면 붉게 타오르는 꽃숲이 연못에 비춰 마치 선경(仙景)에 온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절경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 5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1년 ‘제1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명옥헌 간 길에 ‘창평 슬로시티’도 다녀왔다. ‘창평 슬로시티’는 소쇄원과 명옥헌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담양 여행길에 함께 다녀오면 좋다.
‘슬로시티(slowcity)’는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이다. 1986년 패스트푸드(즉석식)에 반대해 시작된 슬로푸드(여유식)운동의 정신을 삶으로 확대한 개념으로, 전통과 자연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라는 뜻이다. 이 운동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의 시장 파울로 사투르니니가 창안하여 슬로푸드운동을 펼치던 1999년 10월 포시타노를 비롯한 4개의 작은 도시 시장들과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유럽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했고, 현재 세계 30개국 278개 도시가 가입돼 있다(2021년 7월 기준).

   
▲ 명옥헌 정자

현재 슬로시티 가입조건은 인구가 5만 명 이하이고, 도시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환경정책 실시, 유기농 식품의 생산과 소비, 전통 음식과 문화 보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슬로시티는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마을,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를 포함하여, 경남 하동군 악양면(차 재배지로서 세계 최초), 충남 예산군 대흥면, 전주 한옥마을, 청송군 부동ㆍ파천면, 상주시 함창ㆍ이안ㆍ공검면,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충북 제천시 수산면, 충남 태안(국내유일의 해안국립공원), 경북 영양, 충남 서천군 한산면, 전남 목포시(외달도, 달리도, 개항문화거리, 예향의 도시),경남 김해(화포천습지, 봉하마을), 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 등 16개 도시가 있다.
슬로시티는 지역마다 각각 특색이 있지만 가장 공통적인 특색은 ‘느림의 삶’이다. 증도, 청산도 등은 섬으로서의 특색을 살리면서 공해없는 자연, 자전거섬, 걷기좋은 섬의 특색을 살리고 있고, 경남 하동, 전주 한옥마을 등 육지에 있는 슬로시티들은 지역의 전통과 고유문화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이곳 창평 슬로시티 역시 고즈넉한 한옥과 돌담길 등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상들의 삶과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아산 외암마을과 비슷한데 규모는 그 보다 작은 편인데도 아기자기할 뿐 아니라 특히 자연 속에서 삶의 재미를 찾는 주민들의 ‘슬로 라이프’가 아름답고 값지게 느껴지는 곳이다.

   
▲ 창평 슬로시티 돌담길

슬로시티의 중요한 요건은 그 지역의 전통과 생태가 보전 되어있는가, 전통 먹거리가 있는가, 지역 주민에 의한 다양한 지역 공동체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담양군의 창평면 일대는 이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유이다. 담양은 예로부터 고택이 많으며 아직도 인근에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도심 인근의 농촌인데도 불구하고 전통문화가 많이 살아있어 현대와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마을이기도 하다. 특히, 삼지내(삼지천)마을의 고택과 마을에 펼쳐진 돌담길에서의 여유로운 산책은 방문객들에게 슬로라이프 체험의 장을 만들어 준다. 담양은 도시민들의 전통문화 체험의 장이라는 점과 잘 보존된 각종 고택·문화재 등 때문에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담양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366호 관방제림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 약 180주가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데, 계절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탕으로 2004년 산림청·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주)유한킴벌리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곳이다. 또한, 담양 일대에는 다양한 전통 먹거리가 풍부하게 널려 있다. ‘창평 5일장’의 명물 창평 국밥, 죽물 시장의 명물 국수, 백년 맛집의 소고기 떡갈비와 대통밥, 대통술, 전통 방식으로 제조하는 한과와 엿 등 수도 없이 많은 전통 먹거리들은 보존 가치가 높으며 관광객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준다.
마을주민들이 솔선하여 ‘달팽이학당’이라는 것도 운영하는데 그 내용이 바느질 등 생활공방, 천연염색 및 가죽공예, 다례 교육, 야생화 효소 및 약초밥상 만들기, 한지공방, 쌀엿공방 등 다양하다.

점심식사 장소로는 삼지천마을에 있는 ‘약초밥상’(010-2716-6312)이라는 곳을 추천할 만하다. 36가지의 약초로 만든 반찬과 함께 발아현미밥이 나와 맛도 담백하고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이곳 최금옥 사장은 철마다 시간과 볕이 함께 만드는 저장음식들을 병에 담아 저장해오고 있다. 자연의 시간들이 저장되고 손님들에게 음식으로 나오는 셈이다. 식사 후에는 그릇들을 손님이 직접 씻도록 하는 것도 특이하다. 슬로시티답다. 마치 절간에서 식사하는 느낌이다.
이 집에서는 약초밥상 뿐 아니라 ‘갈옷’도 만든다. 갈옷은 원래 감물 염색을 한 고동색의 제주도 전통 의상이다. 갈옷은 입으면 시원하고 땀이 나도 몸에 달라붙지가 않고 땀이 묻은 옷을 그냥 두어도 썩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옷 염색으로 사용된 감은 제주도에서 구하기 쉬운 열매였기 때문에 제주도민들이 전통적으로 노동복과 일상복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 창평 매화나무민박집

‘창평 슬로시티’ 마을 골목길에는 수로(水路)도 보인다. 이것 역시 필자에겐 인상적이었다. 중국 운남성 따쥐마을이라는 곳에 가면 그곳에도 마을 골목길에 여기저기 수로가 있다. 그 수로에서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를 한다. 그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을 이용, 생활용수로 쓰기도 하고 집안에 조그만 연못까지 만든 집도 있다. 어릴 적 시골 강가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하던 장면 같아 정말 정겹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아산 외암마을에도 마을 안에 수로가 있다. 이 수로를 풍수에서는 ‘염승(厭勝)’이라고 한다. 전통 오행(五行)사상에서 화(火), 물(水)은 서로 상극이다. 외암마을에서는 주산인 설화산(雪火山)의 발음이 불을 상징하는 ‘화산(火山)’과 같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마을에 그 ‘화(火)’의 기운이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마을내부에 화와 상극하는 ‘물(水)’을 끌어들여 ‘화’의 기를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창성 슬로시티의 수로에는 어떤 유래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수로 역시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에 스스럼없이 적응해 나가기 위한 선조들의 빼어난 착상인 것 같다.
그 수로는 단순한 수로가 아니라 우리에겐 옛날 조상들 삶 속으로 찾아가게 하는 ‘추억의 물길’이다.

글,사진 임윤식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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