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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 품질 명장 가수 ‘윤철’] 돌을 깎다가 소리를 조각하다
김영주 방송작가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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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9  13: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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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일까? 17살 때부터 석공이 되어 돌을 깎았던 소년. 외톨이였지만 스케치를 하고 돌을 깎으며 외로움을 잊었고, 자신의 무대와 연주를 보고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더한 사랑과 즐거움을 주고 싶은 가객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 바로 가수 윤철(57) 씨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해왔던 것처럼,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얘기하며 해맑게 웃는 꽃 중년. 열심히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생활도 안정되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더라는 그는 2019년 국가품질명예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2의 고향 경남 고성에서 석공 품질 명장으로 돌을 깎으며, 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를 조각하며 산다. 그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고향이 아닌 경남 고성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언제부턴가요?

A. 고성 월평리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20년 되었습니다. 그전에 거제에서 주로 일을 했거든요. 통영-거제 간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집 앞 14번 국도를 달리면서 이상하게 지금 ‘장인석공’ 제 일터가 있는 자리가 거의 공터였는데 왠지 나를 끌어당겼다고 할까요? ‘여기에 내 작업장을 만들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계속 이 앞을 지나다녔죠. 그전엔 충남 보령에서 나고 자라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전, 서울, 용인을 다니며 석재 회사에 다니고 했지요. 제 사업을 하면서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이곳 고성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 공장이 있는 저 뒤 조그만 터에서요. 그때 친구가 이곳 공터 조립식 건물에서 대리석 사업을 했어요. 친구가 전기세만 받겠다고 해서 친구 사무실 옆에 들어와서 작업을 시작했고, 알게 모르게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Q. 석공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처음에는 배가 고파서 시작했습니다. 충남 보령에서 4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아홉 살 때, 아버지는 열네 살 때 돌아가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돕는 산골소년이었죠. 게다가 새엄마가 오셨는데 설움도 많이 겪었어요.

석공 일은 17살 때 형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꼼짝없이 공장에 가서 일을 했지요.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때는 도제식이라 선배님들한테 군기 잡히고, 스승님께 호되게 꾸중 들으며 그렇게 일했어요.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선배님들이 쓰실 정을 1인당 열 자루씩 직접 만들어야 했고, 공장에서 막내다 보니까 이런저런 심부름은 도맡아 했지요. 수년간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겨우 밥만 먹고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고, 대전에서 이춘호 스승님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개인 공구를 주거든요. 처음 공구를 받고 얼마나 신나던지요. 그땐 우리나라에서 돌부처를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시기였어요. 석재공장도 잘되고 일도 열심히 배우던 시절이었지요. 작업실에서 퇴근하면 괜히 쓸데없이 돈 쓰고 할 것 없이 일찍 도로 작업실로 가서 매일 스케치를 하던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크게 흐트러짐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온 게 어떨 땐 스스로 대견하기도 합니다.

   
 

Q. 석공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A. 37,8 세쯤 되었을까요? 조금씩 돈도 벌고 했지만, 하루하루를 그냥 의미 없이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제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자청해서 절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조금 깊이 ‘불교’를 알고, 부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보기만 해도 부처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불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살아있는 불상 아니겠어요? 거제 수도사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했습니다. 스님들 일도 좀 돕고, 2년 정도 공부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때의 생활이 지금 제 작업을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석공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작업하면서 틈틈이 문화재 관련 일을 하게 되는데요, 보물 467호 표충사 3층 석탑 재건에 참여했고, 통도사 박물관 벽화 복원 참여한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언가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후대에도 그런 문화유산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습니다.

고성 월평리 지금 작업실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빈손으로 타지를 떠돌던 촌놈이 그야말로 출세했죠. 세 들어 살다가 지금은 제 집이 되었고, 사업자금이 부족할 때, 돌 값이 없어서 고민하는데 선뜻 도움을 준 이웃집 형님도 계십니다. 그냥 제가 일하는 모습만 보고, 저 하나만 믿고 도와준 사실에 지금도 고마울 뿐입니다.

   
 

Q. 가수를 하게 되신 건 언제부터?, 계기가 있나요?

A. 30대 후반에 같은 일을 하는 형님과 가끔 노래 주점에 가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그때도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 그 형님은 술을 좋아하고, 저는 사실 노래가 좋아서 주점에 갔었지요. 가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목소리 좋다.” “배호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한 노래 주점에서 취미 삼아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좀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가수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또 석공 일을 하면서 폐기능이 안 좋기 때문에 폐활량을 늘이기 위해 노래를 자주 부르라는 주치의의 권유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건강도 건강이지만 마음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뭔가 갑갑하다가도 한 번 무대에 서면 갑갑한 마음이 확 풀리거든요.

Q. 최근에 보람 있었던 일은?

A. 지역가수로 활동하다 보니까 효도잔치나 위로잔치에 많이 가게 되는데 제가 초대되어 가는 공연이 아니라 제가 주체가 되어 어르신들 모시고 효도 잔치를 3번 했습니다. 동료 가수들도 부르고, 음식도 장만하고 했지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한 계기는 15년 전 추석 때 다른 지방에 사는 친척 집에 가는 길에 처음으로 저한테 생각지도 못한 수입이 들어왔어요. 관공서에서 의뢰받은 일을 해줬는데 그 일에 대한 대가였죠. 그 길로 돌아와 나는 명절에 이렇게 여유가 있어 친척을 보러 가지만 아무도 찾는 사람 없고, 외로운 지역의 어르신들께 밥 한 끼 대접하면 어떻겠나, 싶은 마음이 불현듯 생기더라고요. 그때를 시작으로 아직 세 번 밖에는 못했지만, 앞으로 힘닿는 대로 효도잔치를 마련해 보려고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석공 관련 작업으로는 제 일을 하면서 기능공을 양성하는 일이고요, 음반을 낸 가수로서 지역사회에서는 인정받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2017년 12월에 나온 제 음반 타이틀곡 ‘정거장’의 작사를 해주신 작사가 김병걸 선생님, 고성 출신 이동훈 작곡가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고성지회  심영민 지회장님과 창원 권영규 형님께도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늘 동료들이 많이 힘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는 제 아내에게도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제 인생의 멘토로 삼고 싶은 김규환 국회의원은 존경하는 선배님인데요, 대한민국 명장 국회의원으로서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애를 쓰고 계십니다. 저 역시 우리의 뒤를 이를 후배들과 석공 관련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아마 이쪽 일이 어느 정도의 기술을 갖추기 전에 생활의 안정이 힘들기 때문인데요, 석공 대학이나 석공 고등학교를 세워 생활을 안정되게 해주고, 기술도 연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일에도 힘을 보태 후진을 양성하게 되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장인석공 주소: 경남 고성군 고성읍 남해안대로 2298-25

에필로그

민요가수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석공 품질 명장 가수 윤철 씨. 오랜만에 찾은 경남 고성에서 고향 후배 대하듯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웃는 얼굴에 겸손이 몸에 밴 분, 윤철 씨의 작업장이 있는 사무실에서 뵈었는데 작업실 규모가 아주 크고, 작품에서 기가 넘쳐흘렀다. 일에서는 진지한 명장이지만, ‘노래’이야기만 나오면 그저 함박웃음을 짓는 그는 천생 가수, 연예인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도움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되돌려주려는 그는 가슴 따뜻한 이웃집 오빠, 아저씨였다. 돌을 깎는 남자, 소리를 깎는 남자 윤철, 그는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진정한 명장 조각가임에 틀림없다. 

김영주 방송작가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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