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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탈박물관 이도열 관장] “‘탈 없고, 해탈한 인생’을 사세요”
김영주 방송작가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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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9  13: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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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탈박물관 이도열 관장은 안동 탈박물관과 함께 전국에 두 개 밖에 없는 고성 탈박물관의 토대를 마련하고, 지금도 박물관 옆 작업실에서 탈 연구와 함께 장승, 치유 숲 등 여러 가지 문화 예술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경남 고성군의 대표적인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성오광대’와 함께 하며 ‘탈’과 함께 40년 동안 독창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도열 관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Q. 전국에서 두 개 밖에 없는 탈 박물관인데, 안동하회탈 박물관과의 차이점은?

A. 안동하회탈 박물관은 사립 박물관으로 한국 탈과 더불어 세계 탈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고성 탈 박물관은 공립 박물관으로 안동보다 학술적인 면에서 깊이 있는 수집, 연구,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우리 지역 탈놀음인 고성오광대의 역사자료를 꾸준히 수집, 연구하고 있으며 그 성과를 특별전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18년 특별전) 또한 매년 주제별로 탈을 묶어 특별전 개최(말뚝이, 여성탈, 사자탈 등) 한국 탈 소장품도 옛 탈을 위주로 각 지역의 탈을 수집, 전시하고 있습니다.

   
 

Q.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온 ‘고성 탈박물관’ 그간의 변화와 발전을 죽 얘기해 달라.

A. 1988년에 ‘갈촌 탈 민속 전시관’을 개관했습니다. 전시실 40평, 작업실 20평의 규모로 시작, 탈 전시관을 개관하면서 고민이 많았지요.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나가느냐, 고향인 고성에 남느냐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죠. 당시 시대적 상황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모두 서울 중심으로 집중되고 지방 문화는 후퇴하는 것을 보았죠. 그래서 고성에서 독특한 지방 문화를 창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모두가 ‘탈’ 하면 고성을 떠올리고, 와서 직접 보고 공부하며 배우는 곳이 되어 특유의 지방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변모시키겠다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어렵게 1996년에 문체부 탈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어요. 1종 탈 전문 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된 거죠. 박물관 등록하는데 안동하회탈 박물관장과 1994년에 함께 신청하여 15개월 문체부를 통해 보류, 보완이 7~8회 거쳐 진행되었어요. 이후 전시와 지역 축제 등을 주관하여 왕성한 활동을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쌓여갔어요. 이토록 탈을 아끼고 사랑하여, 수십 년 동안 탈을 연구하고 그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 탈에 대한 의미들이 후세에도 온전히 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탈 전문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귀한 것이거든요, 한국에 고성과 안동 2곳, 몇 년 전에 중국 1곳이 생겼고, 벨기에 정도 등에서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그 자원이 소수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그 당시는 문화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어요. 앞으로 1000년의 미래와 후손들을 생각하면 탈 박물관이 유지되고 우리 전통문화가 보존, 계승될 수 있으려면 개인으로서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2005년, 사립 박물관 등록 자료 전체를 그대로 고성군에 무상 기증하였어요. 이와 같이 사립 박물관 자료를 기증해서 공립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이전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대한민국 박물관사적 기록에 있어서도 중요한 표본이 된 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사단법인 경상남도박물관협의회를 결성,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Q. 얼마 전, 고성오광대가 큰 상을 받은 걸로 아는데, 더불어 고성의 탈도 부각되지 않았을까요?

A. 고성오광대의 특징을 간략히 말하자면 말뚝이탈이 야류 탈이니 다른 탈보다는 좀 작아서 사실적인 것. 그리고 오방신장에서 이름을 빌어와 양반들의 이름을 오방신장으로 쓴다는 점, 다른 탈놀이에서는 가상 동물을 영노로 부르나(모양은 다 다름) 비비로 호칭한다는 점 등이 특색입니다.

고성오광대에 등장하는 탈은 15점이라는 의견도 있고 19점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고성탈박물관에 전시한 탈은 초랭이·잿양반·말뚝이·문둥이·비비·적제양반·백제양반·흑제양반·청제양반·황제양반 등입니다. 이 중 초랭이와 잿양반·말뚝이는 일제시대에 제작된 것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예전에 탈은 공연 후 태워버리고는 해서 보관이 잘 되지 않았지요. 한 지역에서 두 번 대통령 상을 타기가 힘든 것인데 1974년에도 대통령 상을 탔고, 45년이 지난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고성오광대가 두 번째 대통령 상을 거머쥐게 된 거죠. 고성오광대 탈놀이의 원형성과 예술성이 돋보였다는 평가입니다. 고성 오광대는 한국 전통 탈놀이에서 특히 춤의 다양함과 유연성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요, 양반춤 과장에서 말뚝이와 양반들의 춤사위는 태극 도형을 연상시키며 음악 반주와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이 선명합니다. 휘돌고 뻗치는 손과 마주치고 빗겨 도는 도포 자락, 태극 모양을 만들었다 흩어지는 조화된 춤사위는 고성 오광대의 중요성을 더 상승시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비 과장에서 비비의 역동성은 대단하지요. 승무 과장에서 한없이 길어 보이는 파계승의 장삼 소맷자락은 하늘에 닿을 듯이 펄럭거리고요.

   
 

Q.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탈’에 대한 철학은?

A. 탈의 유래부터 설명하자면,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 각 민족에서 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발생 배경을 살펴보면 ‘탈’의 발생 기원은 ‘생존’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때의 시대, 사회, 민족, 가족,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탈(문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것입니다. 여러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우리 한글을 통해서 탈의 기본적인 의미를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탈(마스크)을 통해 탈(문제)을 벗어나고자 한다(해탈)’는 결국 탈의 본질적인 의미를 우리 민족에 맞게 가장 쉽게 풀어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탈을 크게 구분하면 신앙탈과 예능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앙탈이 어떤 의식을 위한 것이라면, 예능탈은 탈춤을 추기 위한 것이죠, 저는 예전에 전국 무형문화재의 예능탈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 예능탈의 뿌리를 찾기 위해 원류를 추적하다 보니 신앙탈에 대해 접근하게 된 것입니다. 실은 예능탈에서 신앙성을 찾아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1950년 경부터 탈놀이가 하나하나 무형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예술성이 강조됐고, 이에 동반해 신앙성이 배제되면서 더욱 예능탈로 입지가 전화되었다는 것이라 보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탈에 대한 이야기는 전래되는 조개탈, 방상시 탈, 목심칠면, 처용탈 등 몇 되지 않아요. 그리고 오늘날까지 신앙탈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먼저는 외침으로 인한 민족문화 말살이 큰 영향을 미쳤고요, 또 갑작스러운 시대의 발전과 외래 종교의 발달, 군사정권의 미신타파, 그리고 이어지는 민족문화의 자긍심 추락, 탈 민속학자들의 부재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탈의 원류를 찾아 신앙탈을 만들고 탈의 의미를 되짚어 보며, 탈의 본래적 기능이 예능이 아니라 인류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어요. 탈문화의 시작과 뿌리에는 자손의 번영과 행복이 탈 없이 이어지길 기원하는 바람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어쩌면 ‘탈’이라는 이름은 인류가 삶을 이어오며 생겨나는 탈, 그 탈 없는 세상을 꿈꾸며 지어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말이죠. 물론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연계성이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절묘하기 때문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우리 탈을 40년간 만들어오며 한 시대의 현상적인 문제점이 보입니다. 우리가 과거 민족 전통의 맥을 잇고자 노력하는 것은 그것에 머물기 위함이 아니죠. 그 가치를 보존함과 동시에 정신을 이어받아 새 미래를 선도할 그 씨앗을 지금 이 순간 창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과거의 탈에 머물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큰 발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분간 저는 다시 한 번 제가 걸어온 길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온고지신이라고 나의 지난 과거, 전체를 되짚어보고 미래의 탈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원형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시대에 맞게 재창조된 탈도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후대를 위해 탈에 대해 총체적인 결과물을 종합한 탈 사전 편찬을 준비하려 합니다. 저의 세대에서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아직 준비는 미비하지만, 탈 사전의 내용은 국가의 훌륭한 자원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문화가 더 큰 역할들을 해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계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성 탈박물관 :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율대2길 23 ☎055)672-8829

에필로그

‘탈’을 통해 ‘해탈’하고, ‘깨달음’과 ‘신명’, 새로움과 ‘신세계’를 만나라는 이도열 관장과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도열 관장은 1977년, 고성의 민중문화유산인 고성오광대에 입문해서 당시로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탈을 배우려고 전국을 헤매고 다니기도 했고, 단군 탈을 찾으려 중국 천산까지 발품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그는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탈 제작 기능이수자가 됐다. 그는 고성오광대 탈, 농악놀이 탈, 연극·연희용 탈 등 예능 탈뿐만 아니라 조개 탈, 장군 탈, 처용 탈, 십이지 탈 등 인간의 탈을 막는 모든 조형물들을 제작하고 있다. 탈은 그에게 있어 인간의 희로애락과 자연을 이어주는 매개이며 후세에 전해야 하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인 셈이다. 30년 전 이웃 어른으로 만났던 고성 탈 박물관 명예 관장님은 이제 노인이 되었지만, 그 아이디어와 열정만은 끊임없이 샘솟고 있었고, 예술혼은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느껴졌다. 

김영주 방송작가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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