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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예술가 손일광의 노랑다리미술관] 거꾸로 세상 보기, 뒤집어 세상 보기
김지현 기자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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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7  12: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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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특히 그 추세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초현실주의(Surreal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前衛藝術)이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일까?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늘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이나 표현방식에 싫증을 느끼고 이를 탈피해보고 싶은 바람(Desire)이 있을 것이다. 예술의 새로운 장르 역시 이와 같은 인간욕구의 자연적인 표출방식의 하나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남과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뭔가를 꺼내보고 싶은 마음. 또,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볼려고 애쓰는 시도. 예를 들면, 시를 쓸 때도 단지 감각적, 서정적 표현에 치중하기보다는 은유나 역설 등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표현해보려고 노력한다. 포토 역시 사진은 반드시 선명해야 하고 구도가 중요하다는 다큐적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의도적으로 흐리게 찍거나 거꾸로 찍어보기도 하고, 역(逆)의 구도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스스로의 현상 탈피 욕구는 물론, 보는 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뭔가 신선하고 창조적인(Creative) 발상이 필요하다. 이런 접근방식은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필요하지만 과학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핵심포인트가 아닐까?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노랑다리미술관'이라는 곳에 가면 이와 같은 '발상의 전환'에 큰 공감을 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호명산 아래 무려 3000여 평의 넓은 산비탈 공간에는 고정관념을 깬 소위 아방가르드적, 전위예술적 작품들이 100여 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대형 건물이나 구축물 등 설치미술적 작품들이 많은 편이지만, 다양한 조각, 그림들에서도 대부분 기발한 창조적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들 작품을 만들고 그려낸 작가는 손일광(80) 씨. 그는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선구적인 패션 디자이너이면서 전위예술가, 그리고 설치미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국제복장학원에서 최경자 선생을 사사한 이래 천재 디자이너라 불리며 당대의 앙드레 김과 함께 그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세운 바 있는 분이다. 세기의 결혼이라 불리웠던 가수 패티김과 길옥윤 작곡가의 웨딩 의상을 디자인했고, 88올림픽에서 초대디자이너로 파격적인 로봇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종이휴지로 만든 페이퍼드레스를 작품화하고, 1970년 국내 최초 ‘길거리 패션쇼’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한 1970년대 군사정권의 단속 하에서도 전위예술가들의 모임인 ‘제4집단’의 리더로서 시대를 앞선 기발하고 창의적인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노랑다리미술관’에는 손일광 작가의 이와 같은 평생 역작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감명을 준다.

   
▲ 노랑다리.

노랑다리미술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거대한 ‘노랑다리’이다. 이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작품 <앙글루아 다리>를 그대로 본 떠 만든 구조물이다. 그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의 업적과 삶에서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넓은 전시공간 한 구석에 조그만 액자 두개가 걸려 있다. 전시작품들을 보면서 지나가던 중 필자의 시선이 갑자기 멈춰섰다. 액자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에 작품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늘 그림이나 사진 등의 전시물을 액자 앞면으로 만 봐왔던 필자로선 고정관념을 깬 이 작품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작품 제목은 ‘창어4호’와 ‘오작교’. 이게 무슨 의미일까? 2019년 1월, 중국은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창어4호’라는 무인우주선을 착륙시켜 ‘오작교’라는 중계위성을 통해 달 뒷면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 때문에 우리는 달을 언제나 한 면 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올해 초 무인우주선을 띄워 그 달 뒷면을 보여줬고, 손일광 작가는 이에 착안하여 액자 뒷면에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 것이다. 그의 아방가르드적 작품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전시룸 한 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대작 ‘수저’ 작품도 마찬가지. 그냥 보면 수백개의 똑같은 수저를 물방울처럼 모아놓은 것 같이 보인다. 비오는 날 처마밑 물떨어지는 느낌을 표현한 이 수저작품은 그러나 자세히 보면 수저 앞면과 뒷면을 계속 교차해서 모아놓은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수저의 앞면과 뒷면 배열의 구성에서 우리는 손일광 작가의 깊은 혜안과 창조성을 읽을 수 있다. 수저의 볼록면에 비친 우리 모습은 정상으로 보이는 반면 오목면에는 사람이 거꾸로 보인다. 또한, 극히 작은 수저의 볼록이나 오목 면 속에 80kg 거구의 몸 전체를 거꾸로 세워 넣기도 하고 바로 세우기도 한다. 결국 수저 하나의 변신에서 작은 생각이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놀라운 통찰력과 함께, 인간관계든 예술이든 어느 한 쪽 면 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점까지 시사하는 작품이다.

   
▲ 변기.

이곳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매우 일상적인, 우리 곁에서 늘 볼 수 있는 소재들로 만들어져 있는 점도 특이하다. 위에 언급한 수저는 물론, 변기, 컴퓨터 키보드, 라이터, 휴대폰, 삽, 페인트붓, 선풍기 등, 심지어는 계란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들 생활 주변의 물품들이 전혀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통해 예술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들 중 먼저 지저분한 느낌의 변기를 작품의 소재로 택한 아이디어부터 알아보자. 손일광 작가는 먼저 동물의 예로 생각의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손일광 작가는 “우리 집에는 진도개를 비롯 개 네 마리가 있다. 개는 사람들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쓰다듬어주고 사랑해주니까 사람은 신인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옆에 있는 고양이는 사람들이 밥 주고 쓰다듬어주고 사랑해주니까 나는 신인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하나의 사실(Facts)을 가지고 정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다”라고 풀이한다.

손 작가는 “우리는 깨끗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24시간 이내에 변기를 통해 배설한다. 그런데 세계 인구 76억이 모두 배설하자마자 1초도 안 걸려 변은 더러운 거다라고 판단해버린다. 우리 몸속에 있을 때는 어느 누구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몸에서 나가는 순간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바로 더럽다고 생각할까? ‘변기’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어떤 물체의 본질을 볼 때 관념적인 의식과 감정을 빼고 볼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창조적인 발상이요.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시야”라고 설명한다.

이 이외에도 우리는 전시된 작품 곳곳에서 놀랄 만한 창조적 발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꽃처럼 아름다운 칼라로 활짝 핀 방사형 작품의 구성소재를 자세히 보면 색연필들의 집합이다.

미미한 색연필도 수백 개가 모이면 화려하고 놀랄 만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이다. 또, ‘피타고라스(Pythagoras BC580)’라는 작품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원리를 응용하여 빈 맥주 캔 및 계란판을 모아 작품화시키기도 했다.

피타고라스 원리의 과학적 수리를 구체적으로 미술작품에 반영한 것이다. 접이식 구형 휴대폰 수백개를 모아 벽면 전체를 거대한 화폭으로 만들기도 하고, 컴퓨터 키보드로 벽을 도배하기도 했다. ‘작품 WWW’는 복잡한 컴퓨터 네트워크를 전 세계(Worldwide) 거미줄(Web)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참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요. 크리에이티브한 작품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 도롱룡.

그는 작품을 통해 사회 고발도 서슴지 않는다. ‘참치의 눈물’이라는 작품에서는 해양생물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플라스틱폐기물을 대상으로 플라스틱제품 사용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지구를 탈출해야 한다”(Escape earth If go on)고 강조한다. 수저 작품이 걸려 있는 전시룸 바닥에는 엄청난 크기의 도롱룡이 누워 있다.

이 역시 자연생태계 파괴를 걱정하는 작가의 의중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아내생신을 축하하는 그림이나 선풍기 바람에 목이 일제히 휘어진 수십 개의 수저 작품도 신선하고 재미있다.

야외에 만들어진 대형 터널은 그냥 보기 좋으라고 만든 게 아니란다. 원근법을 사용하여 실제 거리보다 훨씬 멀게 보이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미술관 입구 통로에는 긴 철근 여러 개가 수직으로 세워져 있고 바닥에 노란 선이 그어져 있다. 이 노란 선은 2017년 하지 정오 때의 그림자 길이라고 한다. 그림자 길이를 측정하면 지구의 공전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방법이 실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쯤 되면 손일광 작가는 단순한 예술가 입장을 넘어 과학자 수준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을 예술의 범주로 끌어들인 몇 가지 예이기도 하다.

손일광 작가는 “예술은 추상적 개념이 아닌 실천”이라고 강조하면서 “많은 영감과 스토리를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후배들에게 베풀기 위해 미술관을 열었다”고 말한다. 그는 미술품과 역사, 과학의 범주를 아우르는 이곳을 ‘뮬러리’로 부르고 싶어 한다. ‘뮬러리’는 뮤지엄과 갤러리의 합성어다. 특허등록도 완료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호칭 역시 의상디자이너, 패션쇼기획자, 설치미술가, 전위예술가, 화가, 조각가, 인견사랑 대표, 미술관 관장 등 다양하다. 이를 통틀어 한마디로 ‘아티스트’라고 해두자. 손일광 아티스트는 2005년에 이곳 가평으로 들어와 전시관을 만들기 시작, 2016년에 정식으로 미술관을 개관했다. ‘20년 프로젝트’로 구상해온 그의 창조열망은 2019년 현재 14년째 진행 중인 셈이다. 손 관장은 앞으로 남은 6년간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인간들과 그 후손을 위해 주로 위대한 과학자들의 업적과 창조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미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남겨보고 싶다고 말한다. 손일광 아티스트는 그동안에도 공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아 이를 설치미술의 소재로 자주 활용하곤 했다. 과학은 그에게 패션 디자이너 이전부터 다양한 영감을 주었던 분야이다.

▲입장료 7000원이지만 아늑한 카페형 실내에서 무료로 커피 등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시간이 될 경우 손일광 관장이 직접 작품 설명도 해준다. 미술관 주소-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양진리 42-12(전화 031-585-8887). 바로 700m 옆에 ‘쁘띠 프랑스’도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김지현 기자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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