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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총수’ 잇단 경영일선에서 후퇴
김지현 기자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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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0  14: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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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LG·효성 등 ‘이사회·CEO 중심 경영’ 전환
젊은 나이 3, 4세대 리더들 경영 전면에 등장

   
 

최근 국내 유력 그룹의 총수들이 잇따라 퇴진하면서 한국의 독특한 혈연적 거대자본 집단인 ‘재벌(chaebol)’ 문화도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요 그룹들이 잇따라 자회사 독립경영과 이사회 중심 의사결정 구조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같은 선단식 경영에서 탈피하는 가운데 ‘재벌의 상징’으로 군림해온 총수들의 퇴진까지 이어지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제왕적 총수 권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룹 총수는 여전히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데다 ‘중앙집권식 경영’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는 어렵다는 진단도 있다.

‘한국형 재벌 문화’ 조금씩 바뀌나

재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60대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 가운데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이사회 의장에서 사퇴하는 사례가 최근 속출하고 있다.

재계 서열 45위인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이날 전격적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국내 재계에서 거의 사라진 그룹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김 회장은 ‘후배들이 일할 수 있도록 물러서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 하에 퇴진 의사를 밝혔으며, 앞으로는 ‘재계 원로’로서의 역할만 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재계 31위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이 경영상의 큰 변수가 없는 가운데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를 선언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밖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불명예 퇴진했고, 조석래 전 효성 회장도 같은 해 7월 그룹 지주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경영 일선 퇴진은 아니지만 총수들이 이사회 독립성 강화 등을 취지로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사례도 최근 이어졌다.

서열 3위인 SK그룹은 최근 지주사인 SK㈜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도록 한 정관을 변경해 최태원 회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재계 26위인 효성의 조현준 회장도 지난해 지주사의 이사회 의장에서 사퇴했다.

또 서열 1위인 삼성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사실상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전환했으며, LG그룹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계열사 최고경영진의 역할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변화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한국형 재벌 문화’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개별 그룹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데다 총수가 퇴진한 그룹의 경우도 상당수는 일정 기간 과도기를 거쳐 자신의 2세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서다.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몽구, SK 최태원, LG 구광모, 롯데 신동빈 등 총수의 결단이 그룹의 중요 의사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여전하다.

다만 글로벌 경쟁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과거와 같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사라진 상황에서 총수가 그룹 경영을 혼자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사실상 지나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와 같은 ‘제왕적 총수’는 이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러나 우리 경제에 기여한 공로 등을 감안하면 무조건 총수 역할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도 재벌그룹의 변화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3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그룹간 정책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3세 경영 시대 돌입, ‘소통’에 무게 둬

최근 몇 년 간 대통령의 외국 순방에 참여하는 경제사절단의 면면이 상당수 달라졌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동행한 경제사절단 면면으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작고) LG그룹 회장, 조양호(작고) 한진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한중 우호협회장이었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었다.

그러나 5년 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차 평양을 방문하던 당시 동행한 경제인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었다. 또 이듬해 1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최한 ‘기업인과의 대화’에도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구광모 회장 외에도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정권교체가 진행된 불과 몇 년 사이 재계에서는 총수들의 세대교체가 대거 이뤄진 것이다.

여기에 최근 조양호 회장이 작고하면서 한진그룹도 3세 경영 시대를 맞았다. 금호아시아나의 박삼구 회장도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에 따라 전격 사퇴했다. 이에 주요그룹 중 10년 넘게 총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60대 이상 오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도가 남게 된 상황이다.

이같이 재계를 이끌던 1, 2세대 총수들이 물러나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의 3, 4세대 리더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전 세계적인 불황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우선 3, 4세대 총수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을 통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구광모 회장은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공부했고, 정의선 부회장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태원 회장(시카고대)과 박정원 회장(보스턴대) 등도 모두 해외 유학파다.

과거 1, 2세대 기업인들이 카리스마를 앞세운 강력한 리더십으로 기업을 이끌었다면, 이들은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구내식당을 방문해 직원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이 공개됐고, 최태원 회장은 직원들과 정기적인 대화에서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인다. 정의선 부회장은 복장 자율화와 함께 지난 2월엔 자사 수소전기차 넥쏘를 시승하는 셀프영상을 선보여 ‘소통 경영’ 행보를 보였다. 이는 선대 회장 때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이들은 과거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기업 환경 속에서 총수 자리에 올랐다.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글로벌 시장 경쟁도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시장에 안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들의 장점인 ‘해외 유학 경험’은 ‘현장 경험 부족’이라는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유학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장 경험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화 세대인 1, 2세대 총수들과 달리, 이들은 변화된 한국 사회 속에서 재계 총수를 맡았다. 재벌의 ‘제왕적 총수 시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형 재벌’ 문화도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주요 그룹들이 잇따라 자회사 독립경영과 이사회 중심 의사결정 구조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선단식 경영에서 탈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SK그룹의 경우 최근 지주사인 ㈜SK의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직하도록 한 정관을 변경해 최태원 회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삼성그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사실상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LG그룹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계열사 최고경영진 역할을 강화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이에 더해 과거와 같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사라졌고, 현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이 재벌그룹의 변화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재계에선 현재의 그룹 총수는 여전히 그룹 내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중앙집권식 경영’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와 같은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지 않은 3, 4세대 총수들은 과거에 비해 유리하지 않은 경영 환경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그룹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정부의 민간기업 개입 비판 목소리 점점 커져

재계에서는 적어도 기업 집단의 규모가 큰 대기업 그룹사들만이라도 콘트롤타워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러 계열사를 선단처럼 이끌고 있는 대기업 그룹사로서는 계열사별 각개격파로는 성장과 발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영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치권이 민간기업의 콘트롤타워 역할 여부를 ‘감내라 콩내라’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재벌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콘트롤타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과거부터 삼성과 같은 거대 대기업 그룹의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다만 법적 지위가 담보되지 않고 막강한 권한에 비해 법적 책임은 거의 없는 조직은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김 위원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기존 미래전략실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콘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경영 효율성 향상을 위해서는 콘트롤타워와 같은 조직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나 정치권이 왜 민간기업의 조직에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명지대 조동근 경제학과 교수는 “각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그에 맞게 결정하면 될 일을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있나 싶다”며 “이는 기업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어 “정부가 기업들에게 방침을 정해 놓고 이를 천편일률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정부가 콘트롤타워 부재로 인한 민간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책임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지현 기자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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