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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역사재단 이재혁 사무총장] “땅은 독립했지만 역사는 독립하지 않았다”올바른 역사 세우기를 향한 끝없는 도전
박관식 기자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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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7  17: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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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불보다 뜨거운 겨레사랑의 마음과 강철 같은 의지,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지조로 그를 조사하던 일본 검사의 말문마저 막히게 했던 한국인이 있었다.

그가 바로 올곧은 사상과 정신으로 조국의 독립을 이끌었던 도산(島山) 안창호다.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안창호는 1894년 평양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을 목격하며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 한인 최초의 ‘샌프란시스코 한인친목회’를 결성해 한인들에게 일거리 주선과 정당한 임금을 받도록 도와준다.

1905년 조국이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이듬해 귀국해 항일비밀 결사단체인 신민회(新民會)를 창립한다.

1909년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 일제는 도산을 배후 혐의로 체포해 3개월간 곤욕을 치른다.

더 이상 국내에서 국권회복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신민회는 국외에 독립군기지를 개척하는 전략을 세우고, 미국으로 망명한 도산은 1913년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해 민족자주독립을 위한 일꾼을 양성한다.

도산은 1919년 3ㆍ1운동 소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외교활동을 전개한다. 그 후 중국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 구성에 참여해 내무총장ㆍ국무총리 서리ㆍ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신문>을 창간한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본격적인 반일 투쟁을 위해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하다 이듬해 체포돼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도산은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난다.

이처럼 ‘무실역행’을 뿌리로 하는 도산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참되고 바르게 살아가는 민족의 길을 제시해 가히 ‘꺼지지 않는 독립의 빛’으로 불린다.

도산 안창호 독립정신 계승

   
▲ 개마대산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중국어 사전.

100여년 만에 도산 안창호의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올바른 대한민국 역사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이 단체의 이름은 ‘아시아태평양 역사재단’으로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취지와 목표가 도산 안창호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

“안창호 선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내년이면 도산 선생이 대한민국의 3ㆍ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는 운동을 한 지 100년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땅은 독립됐지만 역사는 독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나먼 미국에서 진정한 역사 독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재혁 아시아태평양 역사재단 사무총장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아시아태평양 역사재단은 2019년 8월 15일 대대적인 창단식과 함께 총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이 재단의 이상규 준비위원장은 서북미 알래스카, 워싱턴, 아이다호, 오리건, 몬테나 등 5개주 한인회 대표를 맡고 있다.

미국 법학박사이기도 한 이재혁 사무총장은 “진정한 광복은 역사가 똑바로 서야 성립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자는 취지에서 뜻 맞는 교민들이 재단을 결성하기로 마음먹었다”며 “그래서 지난 10월말 심백강 박사를 워싱턴주립대학에 초청해 강연을 듣고 그런 마음을 더욱 굳혔다”고 말했다.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은 10월 27일 워싱턴대학(UW) 교양 프로그램 <북소리>에서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심백강 원장은 이 자리에서 “일제로부터 땅만 회복했다고 광복이 아니며, 우리 민족 국가와 역사를 온전히 되찾아야 진정한 광복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면서 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우리 역사의 왜곡을 주도했다”며 “광복 후에도 그곳에서 일했던 인물들이 우리 역사를 정리했기 때문에 일제의 잔재가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광복 7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역사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소위 강단 사학자들의 주장은 일본학계의 주장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일갈했다.

무엇보다 심 원장은 이날 강연에서 무엇보다 학계에서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인 고조선(古朝鮮) ‘강토의 영역’(강역ㆍ疆域) 문제를 다뤘다.

현재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우리 고대사는 뿌리부터 뒤엉켜 풀리지 않고 있다. 현재 청천강 이남(이병도), 압록강 이남(노태돈) 이론과 함께 중국 요녕성의 요수 동쪽에 흐르는 혼하 남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심백강 원장은 한중일 3국이 모두 인정하고 있는 중국 최초의 지리서인 <산해경>을 근거로 고조선의 주무대가 중국 북경 인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역사적 자료로 중국 역사서에 ‘조선하’(朝鮮河)가 나오며 중국이 이를 왜곡하기 위해 ‘조하’(潮河)로 이름을 바꾼 사실 등도 공개했다.

심 원장은 “우리 조상들은 조그만 한반도에 머물지 않았고 중국 중원을 장악하고 활동했던 민족이었다. 중국 사료들을 보면 신라 출신 김한보의 후손인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나라가 금(金)나라였고, 그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로 중국이 끝난 만큼 우리 민족이 중국의 처음과 끝을 맺었다”며 “현재 남과 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분리된 지구촌의 마지막 나라인데, 이는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물론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찬성이 있으면 반대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심백강 원장의 강연에 대해 한국사학계의 통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국 고대사 강연이라는 염려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역사 바로 세우기, 미국에서 왜?

   
▲ 이재혁 박사가 세계지도를 펼쳐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현지에서도 하지 않는 이런 역사 바로 세우기를 굳이 왜 미국에서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재혁 박사는 “한국에서는 그런 사상이 있어도 펼치기 힘들다. 예전에 독립운동도 중국에서 했듯이 미국에서 하려고 재단 준비위를 발족한 것이다”며 “이곳 한인학교의 역

사도 여전히 일제 식민사관을 가르치고 있다. 단군 역사를 부정하고 단군 신화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개탄했다.

이 박사는 “중국은 원래 우리 조상의 땅이다. 산서성, 산동성, 하남성 일부, 하북성은 모두 조선 땅이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나온다”며 “미국에 소개한 한국 역사는 일본이 왜곡

해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바꾸는 것이 우리 재단의 최종 목표이다. 심지어 ‘홍산문화’도 중국의 것으로 아는 한국학자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재혁 박사는 “한국의 땅은 독립됐지만 역사는 독립되지 못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지난번에 심백강 박사의 강의를 듣고 제2의 독립운동을 시애틀 타코마에서 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래서 우리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는 자신감도 가졌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행복하다”고 웃어 보였다.

더불어 이재혁 박사는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기존의 식민사관 역사는 기존의 강단사학회에서 95%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권력을 휘두르고 그 아래에서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왜곡된 역사를 공부할 수밖에 없다”며 “이상한 논문을 쓰면 가차 없이 점수도 주지 않는다. 그동안 해놓은 기존의 것을 따라가야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잘못을 인지한 학생들도 새로운 학설을 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런 연유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미국에서 선도적으로 하려는 것이다.

이재혁 박사는 “얼마 전 중국의 시진핑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해 공분을 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는 것을 미국 현지에서 학술적으로 증명하고 퍼뜨리면 오히려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며 “현재 미중 관계가 무역전쟁 등으로 알력이 있는데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중국이 이것밖에 안 돼’ 하며 큰 반향이 일어날 것이다”고 귀띔했다.

이재혁 박사는 한문에 능통하다. 한국의 사학을 연구하려면 그것은 당연히 갖춰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다.

중국 고서 사마천의 <사기>도 옥편을 찾지 않고 술술 읽어 가며 해석한다. 그야말로 보기 드문 인재이다. 게다가 중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영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한다.

더구나 그의 다재다능한 끼는 모든 스포츠에 만능이라는 사실이다. 대학교 이전에는 권투선수로 활동했고, 지금은 틈틈이 마라톤과 축구를 즐기는 데 모두 수준급이다.

미국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땄지만 그는 젊은 시절 성균관대학교에서 유학을 전공했다. 대두분의 한문 관련 학과가 이 대학 출신이 섭렵하는 연유로 이 박사 또한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마침내 돌고 돌아 그가 처음 전공하고 싶었던 역사로 회귀한 셈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역사와 전혀 다른 사마천의 <사기>와 중국 <고금지명대사전>의 비밀을 캐낼 수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 편을 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록에는 한무제가 장군들을 다 죽였다는데 어찌 승전 장군을 쉽게 처형하겠습니까? 한무제가 고조선까지 쳐들어와 평양성을 함락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는데 과연 그 먼 곳에서 조그만 한반도의 평양까지 쳐들어올 이유가 타당할까요? 패배한 것이 확실한데 승전으로 위장한 것입니다. 일본 역사학자들로서는 고소한 장면이겠지요? 사실은 평양은 한반도가 아닌 북경 근처인데….”

이재혁 박사는 사마천의 <사기>를 완독한 후 그 속내를 비로소 알아챘다.

이런 이 박사의 역사 연구는 대학교 3학년 딸아이에게까지 전수됐다. 대학에서 세계사를 전공하는 딸은 “중국 황하강 중심의 산동성, 하남성, 하북성, 산서성 등은 고조선의 땅이다.

허북성과 붙은 발해군의 지명으로 볼 때 그 당시 북경이 발해였다”고 밝힐 만큼 한문을 습득했다.

이재혁 박사는 “역사학자들이 한문을 잘 몰라 중국서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중국인들조차 자기네 역사인데도 간체로 바뀌어 번역하지 못한다”며 “물론 우리나라 학자 중에서도 번역할 줄 아는 이가 없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한자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는데 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혁 박사가 잘못된 한국 역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심백강 박사의 강의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비롯됐다.

먼저 남동생이 가르쳐준 동영상을 여러 번 보면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

이 박사는 “이승만 박사가 대마도 영유권 문제를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정에 낸 것은 분명 잘못됐다. 일본이 2차세계대전 후 당시 국제사법재판소에 냈어야 했다”며 “저는 언젠가 일본이 빼앗아간 한국의 고서를 되찾아 오는 데 앞장설 작정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재혁 박사가 사마천의 <사기>를 깨알같이 빽빽하게 옮긴 노트를 보고 말문이 막힌다. 마냥 한가하게 중국의 역사에 놀아나는 참으로 한심한 한국의 사학자들의 비웃음이 눈앞에 각인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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