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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시인 두번째 시집 <물구나무서다>직립으로 사느라 잃어버리고 있었던 생의 본원으로 돌아가기
임윤식  |  lgy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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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5  15: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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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시인(본명 김영철)이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에 이어 두번째 시집 <물구나무서다>를 펴냈다. 김세영 시인은 의학박사이며 시인이다. 성균관 의대 외래교수로 출강하면서 대치동에서 김영철내과의원을 개업하고 있다. 현재 시산맥시회 회장도 맡고 있다.

   
▲ 고독과 슬픔의 젖은 목소리김세영 시집 <물구나무서다>

오랜 강직성 직립으로 체증이 생겨서
머리통이 건기의 물탱크처럼 말라갈 때
알갱이 가라앉은 과즙병을
뒤집어 놓듯 물구나무선다

오줌통을 위로 올리고
염통을 아래로 내리니,
머리통의 물이 시원해지고
눈이 맑아진다
단전의 피가 따뜻해지고
하초가 충만해진다

(중략)

물구나무에 매달린 수많은 목어들이
굳었던 지느러미가 우화하는 날개처럼
다시 부풀어 올라 파닥거린다

물구나무는
물푸레나무처럼 싱그럽고
수초처럼 부드러워진다.

시 <물구나무서다> 부분

송희복 평론가는 시집해설에서 “김세영의 시가 보여주는 것은 존재론의 병리학적인 접근이지만 궁극에 있어선 병리학적인 인간 조건을 넘어서는 시적인 존재론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실례의 하나가 표제 시 ‘물구나무서다’이다. 물구나무선다는 것은 세상을 기존의 시각, 기성의 논리로 바라보지않고 거꾸로 보고 뒤집어본다는 것.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거나 꿰뚫어본다는 것은 다름 아닌 시의 논리이다. 논리학이 발상이라면, 시는 발상의 전환, 즉 역발상이 아니겠는가. 굳었던 지느러미가 우화羽化하는 날개처럼 초월하는 것, 승천하는 것이야말로 굳어있는 논리를 뛰어넘는 시정신의 승리가 아니겠는가”라고 평한다.

남태평양 투발로에서 소식이 왔어요
“섬이 작아지고 있어요”
“섬이 가라앉고 있어요”

(중략)

북태평양 마이도에서 소식을 보냅니다
“마라도에서 이어도 가는 도중,
여기 섬도 작아지고 있어요“
“가라앉고 있어요”

아직 십 년 남짓은
고갱처럼 살 수 있는
조그맣지만 낙원의 섬이지요

부두의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섬의 허벅지살을 샤브샤브처럼
얇게 썰어 바다에 흩뿌려요

언젠가는
살점 모두 잘려나가고
대퇴골만 남은
수중 암초로 남겠지만요

시 <섬이 가라앉고 있어요> 부분

문효치 시인(전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장)은 “김세영은 이미지 낚시꾼이다. 그에게 걸려드는 사물들 또는 정서나 관념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사물로 변용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시각화되어 있는 그 그림들의 짙은 그림자 뒤에는 고독과 슬픔이 젖은 목소리로 잔잔히 노래하고 있다. 삶 속에서 무시로 따라오는 시련과 억압의 가혹함도, 때로는 예고 없이 따라왔다가 사라져버리는 꿈과 행복도, 그는 시 속에 삶이 빨아 널어 견뎌내며 승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시는 삶의 도구이자 목적일 수 있다. ‘섬이 가라앉고 있는’ 인생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그가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 그의 수많은 그림(이미지)들 속에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고 말한다.
송희복 평론가는 “나는 김세영 시인으로부터 섬의 가라앉음이 자신의 노화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바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섬의 크기는 주어진 생명의 총량이다. 섬은 인간의 실낙원인 동시에 고독의 표상이다. 이 시에서 섬은 시인의 자기상을 투사하는 것의 은유인 동시에, 존재의 점진적인 소멸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인간 조건에서 기인한 어쩔 수 없는, 끝내는 치명적인 고독의 은유가 된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부연한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니코틴 중독 때문이 아니다
해마의 둥지, 측두엽을 갉아먹고
두통을 일으키는 기억의 유충들을
태워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허파꽈리 속에
유충의 잿가루가 쌓여
시화호의 숭어처럼 숨차하면서도
담배를 빨고 있는 것은
어머니 젖꼭지가 그리운
어른아이이기 때문이다

(후략)

시 <애연가의 변> 부분

   
▲ 김세영 시인은 의학박사이며 시인이다. 성균관 의대 외래교수로 출강하면서 대치동에서 김영철내과의원을 개업하고 있다. 현재 시산맥시회 회장도 맡고 있다.

 

 


김세영 시인은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쓰이는 특수한 말을 적잖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의 유충으로 은유된 표현과, 시화호의 숭어라는 직유의 표현 등은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개별적으로 잘 적시하고 있는, 일종의 시적인 서술 전략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경철 평론가는 “김세영 시인의 시세계는 젊다. 바쁜 일상 속 가뭇없이 사라진 질풍노도 시대, 순수와 열정을 좇는 첨단 이미지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내달리고 있다. 시인의 이미지들은 치열하고 신선하고 치밀하다. 찌든 피는 모조리 사혈瀉血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려는 신선한 이미지들. 그런 작위마저 지우고 온몸의 기관들로 치밀하게 순수와 만나는 생체 이미지들이다. <물구나무서다>의 시 세계는 우리가 직립으로 사느라 잃어버리고 있었던 생의 본원으로 돌아가기이다”라고 평한다.

아무도 없는 호숫가,
풀밭에 누워 있는 나의 울대뼈 위에
나비 한 마리가 기도하듯
날개를 세워 모으고 앉는다
물안개 속을 헤맨듯
날개가 축축하고 무거워 보인다

(중략)

가끔은
그 까닭 모를 슬픔 때문에
날개가 젖는 그를 대신해
소리 내어 울어주느라, 목이 쉬고
날개의 눈물이 울대 속으로 스며들어
갑상선이 퉁퉁 붓는다

나비가 오지 않는 날,
그 까닭 모를 외로움 때문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그가 좋아하는 울음소리로
그를 불러본다

나비는 보지 못하고,
나비넥타이와 갑상선만 보는 사람들은
나를, 오랜 병력의
단순 갑상선 종대 환자로만 알고 있다.

시 <나는 종종 갑상선이 붓는다> 부분

박남희 평론가는 “인간은 누구나 환자이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마음이 아프고 때로는 영혼이 병에 걸려 있기도 한다. 시인 역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문학이라는 병은 어쩌면 육신의 병보다도 치유하기 어려운 병일지도 모른다. 이 시의 ‘나비’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나비’는 시인에게 있어서는 어머니나 애인 같은 사랑의 대상이거나 시처럼 시인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고 위로해주는 어떤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나비를 대신해서 갑상선이 붓도록 울어주는 일은 시를 쓰는 일이다. 나비를 대신해서 울어주느라 목이 부어있는 시인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갑상선 환자라고 말하지만, 그 일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시를 쓰는 실존적 작업인 것이다. 이 시의 제목처럼 시인의 갑상선이 종종 붓는 것은 그의 목에서 시가 터져 나오려는 신비로운 징후이다. 시인의 몸은 결핍되고 병에 걸려있음으로 해서 온전히 시인의 몸이 된다”고 말한다.
 

임윤식  lgy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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