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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기무사’ 온갖 흑역사를 안고 사라지다9월부터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조직·운영·직무 개편
정재형 기자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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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6  11: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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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 엄수… 감찰실 신설해 막강 권한 약화시켜

   
 

그동안 군사보안과 무관한 사이버 정치 댓글 활동 등 온갖 의혹을 사왔던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9월 1일 폐지된다. 대신 군사보안이라는 기무사 본연의 역할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이하 안보지원사)’가 맡게 된다.

국방부는 지난 8월 6일 기무사를 해체하고 안보지원사를 창설한다고 밝혔다. 6~9일 입법예고를 거쳐 14일 기무사령 폐지 및 안보지원사 창설을 규정한 법안을 각각 발표했다. 안보지원사는 앞서 3일 신임 기무사령관으로 임명된 남영신 육군 중장을 창설준비단장으로, 총 21명 4개 팀이 참여해 개편을 추진했다.

국군기무사령부 역사 속으로

기무(機務)는 ‘근본이 되는 일’,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 등의 의미를 지닌다.

한 때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를 빗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군 정보사의 위세를 표현한 것이다.

기무사의 모체는 1948년 5월 ‘조선경비대 정보처’에 설치된 ‘특별조사과’이다.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대로 개편된 이 특별조사과는 한국전쟁 기간인 1950년 10월 육군 특무부대로 창설된다.

1953년 1월 해군 방첩대에 이어 54년 3월 공군 특별수사대가 잇따라 설치되면서 육·해·공군이 각각 따로 방첩부대를 운용하는 3군 방첩부대 체제가 된 이후 60년 7월 육군 방첩부대에 이어 68년 9월 육군 보안사령부와 해·공군 보안부대로 각각 개칭된 뒤 77년 10월 이들을 통합한 국군보안사령부가 창설된다.

3군 통합 방첩부대인 보안사는 노태우 정부 시절 윤석양 이병에 의한 보안사의 불법 민간인 사찰 폭로로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돼 현재에 이른다.

기무사는 대통령령인 국군기무사령부령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군 수사·보안 방첩 부대이지만 초기부터 불법적 체포와 수사, 사건조작, 정치공작 등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독재시절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바탕으로 한 폭압·공포 정치의 상징으로 각인 돼 있다.

이는 과거 우리 역사의 굴곡 속에서 기무사가 음습한 조작과 상상을 초월한 공작정치 등으로 악역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보안사는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권력의 정점에 서게된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 사태’가 나자 직속상관인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전격 체포하고 실권을 장악한다.

이후 전두환 사령관은 1980년 5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뒤 제5공화국 시대를 연다.

보안사는 이후 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등 신군부 실세들이 사령관을 잇따라 역임하면서 독재 권력의 핵심 기구화 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윤 이병에 의한 불법 민간인 사찰 폭로로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돼 현재에 이르렀지만 이번 계엄령 검토 문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런 기무사가 지난 8월 14일 창설 2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4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기무사 폐지령안과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제정령안 등을 심의·의결했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는 그동안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 선거개입, 군내 갑질 등 초법적인 권한 행사로 질타를 받아왔다”고 비판했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해서는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 기무사가 결코 해서는 안 될 국민배신 행위”라며 “국민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한 때 막강 권한 가졌던 ‘기무사’

원래 기무사는 군내 방첩업무 및 군인과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를 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로 사령관은 중장이다. 본래 국군서울지구병원과 함께 종로구 소격동에 있었으나 2008년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했다. 미군정 시절의 미합중국 육군 제24군단 CIC를 모델로 하였다.

이후 명칭이 보안사령부, 약칭 보안사로 바뀌었으나 1991년 현 명칭으로 바뀌었다. 전혀 관련이 없지만 그전에 국방부에는 제3국과 제4국이라는 수사기관이 있었으나 훗날 해체된다.

그러다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언론에 폭로되는데 이것이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다. 당시 폭로된 사찰 대상 명단이 무려 1300여 명. 심지어 당시 집권당 대표였던 김영삼도 있었다.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바꾼 것도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육군의 방첩부대는 6.25 전쟁 당시 육군특무부대란 명칭으로 창설되어 이후 육군방첩부대 → 육군보안사령부 순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해군의 방첩부대는 해군방첩부대로 창설되어 해군보안부대로 변경되었고, 1973년 해병대의 해병보안부대를 흡수하였다.

공군의 방첩부대는 제20특무전대 예하의 대공수사부대인 26특수수사대였고, 1977년 육·해·공군의 방첩부대를 통합해 국군보안사령부를 창설하였지만,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인해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창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군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1960년대~80년대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기에는 군 외부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했다. 이는 본래 군 내부 및 군 관련 사항에 엄격히 제한되어야 할 수사권을 포괄적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군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독대 직접 보고를 하였다. 국방부 직할부대임에도 국방장관도 못 건드리는 위치였다. 정보기관 중 권력 1위에 속하는 중앙정보부만이 보안사령부를 견제하였다.

그러나 10.26 사건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국내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게 된다. 당연히 이후에 전두환과 하나회를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영향력을 활용하여 권력을 탈취한 것이 바로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세력. 당시 보안사령부의 정보력과 수사, 연행권이 박정희 사망이후 이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언론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K-공작계획), 야당인사 정치활동규제, 민정당 창당 심지어 국회의원선거 공천까지 보안사령부에서 주도했다. 1980년대 이후에도 야당 정치인사, 재야인사,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민간인 사찰을 계속해 왔다. 유명한 녹화사업 역시 보안사령부의 작품.

군부독재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바탕으로 온갖 흑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문민정부 들어서 명칭도 바꾸고 행동 범위를 축소하는 등 여러 개혁 시도가 있었으나 불발되었다.

이후에도 사찰, 기밀 유출 등 낯 뜨거운 사건사고가 이어졌고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 보안사의 불법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을 모티브로 한 영화 <모비딕>.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무엇이 다른가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이 국군기무사령부령과 가장 다른 점은 제3조 ‘기본원칙’이 신설된 것이다.

제3조 1항은 사령부 소속 인력이 직무 수행 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의 신설로 사령부 소속 군인 및 군무원 등은 정당 또는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 등(2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법률로 명시됐다.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3조 2항: 사령부 소속의 모든 군인 및 군무원 등은 직무를 수행할 때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1호: 정당 또는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

△2호: 이 영에서 정하는 직무 범위를 벗어나서 하는 민간인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수사, 기관 출입 등의 모든 행위

△3호: 군인 및 군무원에 대해 직무 수행을 이유로 권한을 오용·남용하는 모든 행위

△4호: 이 영에 따른 권한을 부당하게 확대 해석·적용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군인 및 군무원을 포함한다)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모든 행위

기존에 기무사가 사이버 정치 댓글 활동을 펼친 내막을 보면, ‘군 통수권 보필을 위해 사이버 공간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당시 정권을 지지하는 글을 확산시키거나 정부 정책과 대통령 홍보에 적극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 정치인 비방 댓글 작성을 비롯해 ‘극렬ID’라고 이름 붙인 ‘좌파 성향의 네티즌’ ID를 수집·관리하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들 네티즌에 대해서는 불법 신원조회를 감행하기도 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은 제5조에 ‘직무 수행 시 이의제기 등’을 신설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사령부 소속 군인 및 군무원이 제3조 2항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도록 지시 또는 요구받은 경우 국방부 장관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지시 또는 요구가 시정되지 않으면 해당 직무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기무사에 없던 ‘감찰실’도 신설됐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은 제6조 ‘조직’에 사령관 1명, 참모장 1명 등 기존 보직에다 감찰실장 1명을 더 뒀다. 감찰실장은 2급 이상 군무원, 검사 또는 고위감사공무원으로, 국방부 장관은 감찰실 업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 또는 감사원장에게 공무원 파견을 요청할 수 있게 규정됐다.

감찰실장은 사령부 소속 군인 및 군무원에 대해 △감사·검열 및 직무감찰 △비위사항의 조사·처리 △민원 및 진정사건의 처리 업무를 분장할 수 있다.

한편,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 제정으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시행령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군사기밀 보호법 시행령 △군인사법 시행령 △대외무역법 시행령 △방위산업기술 보호법 시행령 △방첩업무 규정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통합방위법 시행령 등 9개 타 법령의 ‘기무부대’, ‘국군기무사령부’, ‘국군기무사령관’ 등은 ‘군사안보지원부대’,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군사안보지원사령관’ 등으로 바뀐다.

또 이름만 바뀌는 건 아닐지…

하지만 새로 신설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역시 기존 국군기무사령부령과 큰 차이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안보지원사령에 따르면 새로 만들어지는 정보부대는 군 보안·방첩, 방위산업에 관한 정보, 대국가전복·대테러·대간첩 작전에 관한 정보, 장교·부사관·군무원 임용예정자 불법비리 정보의 수집·작성 및 처리 업무 등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를 예전 기무사령과 비교해 보면, 업무의 대부분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정보의 수집·작성 범위가 이전의 ‘대(對)정부 전복’에서 ‘대(對)국가 전복’으로 바뀌어 직무범위가 오히려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보기관이면서 여전히 수사권까지 가지고 있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국방부 동향 파악을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의 명칭을 바꾸는 대신 100기무부대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의 설립 근거를 새롭게 포함시켜 기무사의 군 동향 파악이라는 임무는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그동안 문제가 제기됐던 통수권자인 대통령 독대에 대한 금지 규정 등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대통령이 필요할 경우 독대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정재형 기자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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