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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트럼프는 왜 종전협상을 환영하나주한민군 철수 카드, '뜨거운 감자' 될 수도
정재형 기자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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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2  20: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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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모를 북한의 꼼수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 간 종전협의 문제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종전(終戰)’이란 단어가 남북문제의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에 1953년 6.25 전쟁 결과 체결된 정전협정과 이후 65년째 지속 중인 휴전상태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종전과 정전, 휴전은 의미가 비슷해 보이지만 외교적으로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용어들이다. 먼저 종전이란 양국 간 지속되던 전쟁상태가 완전히 종료됐음을 전쟁당사국 간에 확인하는 것이다. 평화협상을 위한 전 단계로 종전협정이 맺어지기 전까지는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간주돼 전쟁당사국들 간의 공식적인 외교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정전(停戰)과 휴전(休戰) 그리고 종전(終戰)

정전(停戰)과 휴전(休戰)은 과거에 혼동돼서 많이 사용된 개념이라 뜻이 거의 같다고 알려져 있지만, 명확히 구분하면 큰 차이가 있다. 정전은 전선에서 전투 중인 양국 군대가 무의미한 소모전을 멈추거나 협상을 시도하기 위해 잠시 교전을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정전은 전체 전선 중 일부 전선에 한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전면적으로 선포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정전으로는 1914년 12월 24일,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이 벨기에 이프르에서 맺은 ‘크리스마스 정전’이 있다. 서로 캐럴을 부르다가 전선 군인들끼리 갑자기 맺어진 정전은 당시에도 크게 회자됐었다.

휴전은 정전처럼 전선 군인들끼리 교전을 잠시 중단하는 수준이 아니라 양국 정부나 총사령관 등 대표자들이 공식협상을 통해 전체 전선에서 전쟁상태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단계적인 정전을 먼저 실시하고, 이후 전쟁 당사국 대표들끼리 모여 휴전협정을 체결하는 수순을 거친다.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경의 전선을 마주 보고 대치상태가 이어지지만, 전면적인 전투상황이 추가로 발생하진 않는 상태를 뜻한다.

남북한의 대치상황은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사실상의 휴전상태가 7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매우 특수한 경우다. 한반도 지역은 전 세계에서 정전협정으로 인한 휴전상태가 가장 긴 지역에 속한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정식 제목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으로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인 마크 웨인 클라크(Mark Wayne Clark)사령관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참석한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자격으로 참석한 펑더화이(彭德懷) 3자가 협정의 당사자다.

당시 우리나라는 최대 교전 당사국이었으나, 이승만 정부가 정전협정 자체에 반대해 서명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 대표로는 최덕신 육군소장이 배석했지만, 협정문에 사인하지 않았던 것.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한국은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예 아니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당시 한국군도 유엔군사령부 휘하에서 전쟁을 치른 연합국 일원이고 유엔군사령부가 전체 연합군을 대표해 조인한 것인 만큼 현실적으로는 한국정부도 정전협정 당사자로 본다. 다만 북한에서는 6.25 전쟁에 대한 종전과 평화협상은 미국과, 남북한 대치 상황 및 국지도발 문제는 남북한 평화협상으로 분리해서 접근하려는 시각이 강하다.

만약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협정과 나아가 평화협정을 위한 초석이 마련될 경우, 남북한의 휴전상태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협정은 곧 평화협정으로 가는 기반이며, 남북한은 물론 북미 간의 외교정상화가 예상되고 한반도 주변 4개 열강들과 남북한의 관계도 크게 변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종전협정이 발효되면, 군사적 대치 상황이 줄어들고 휴전선 대치 상황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4년 12월 24일, 당시 대치 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다가 소규모로 정전협정을 맺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 ‘크리스마스 정전’ 사건이 발생했었다.

주한미군 철수 근거에 대한 우려

다만 일각에서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가 사라져 주한미군이 모두 철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나라정책연구원 김광동 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이 직접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는 것을 강조하며 믿고 싶겠지만 북한은 물론 중국이 강조하는 것은 비핵화의 전제조건과 비핵화 과정”이라며 “중국과 북한이 추진하는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Korea Peninsula)는 달리 말하면 곧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고 조언했다.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동북아시아에 미군의 주둔과 한미동맹을 해체시키는 것이 곧 그들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 문제의 경우에는 북한이 내건 비핵화 조건에서 일단 제외된 상태다. 혹시 주둔 근거가 사라진다고 해도 별도 협정을 통해 주둔 근거를 마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주일 미군의 경우, 1952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해체되고 일본의 주권이 회복되면서 기존 주둔 근거가 사라진 적이 있었지만, 이후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 체결로 사실상 영구주둔하게 된 전례가 있다.

일단 한국과 미국은 북핵 동결, 북한은 체제 보장이라는 큰 틀의 합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를 위해 미국이 남북의 종전 선언을 통한 체제 보장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형국이어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는 차순위 의제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그들(남북한)은 (한국전쟁)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고 언급, 북미 간 물밑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가 사실상 소멸했음을 시사했다. 앞서 지난 4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가 직접 평양을 방문,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정부가 8조 9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구축한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가 해외 미군기지 중 최대 규모라는 점 역시 주한미군 철수론을 무색하게 만든다.

오바마 정부 당시 미국이 대외 전략의 우선순위를 중동이 아닌 중국으로 수정, 평택 미군기지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된 상태다.

북한의 주한미군 주둔 관련 입장 선회는 예상 가능한 면도 있다.

북한은 역대 한국, 미국과의 협상에서 끊임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지만, 미국과의 관계 개선 조짐이 보일 경우 입장을 쉽게 바꾸기도 했다.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대외 협상에서 북한이 협상 의지가 없을 때 판을 깨는 나름의 ‘수법’으로 읽히기도 한 이유다.

앞서 지난 1992년 북미 간 평화협정이 논의될 때 북한은 김용순 당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아널드 켄터 미 국무차관 면담 이후 주한미군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한미 양측에 밝힌 바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주한미군 필요론에 동의했다고 당시 회담 참석자들이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은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있었지만, 그 후에도 유럽 안정을 위해 나토가 있고 미군이 있다”고 하자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에는 미군이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러시아도 있고 중국도 있고 다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평화협정이 논의되는 현재 ‘한반도에 미군이 필요하다’는 선대의 유훈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를 앞두고 있는 만큼,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선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문에 서명 중인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의 모습.

또다시 ‘거짓 평화’의 향연일까

남북 간에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이 발표된 것은 1991년이었다.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에 서명한 후 지난 27년간은 북한의 핵무력 강화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바쳐진 헌정과 상납의 역사였다.

비핵화선언 이후에도 북핵 폐기를 전제로 갈루치와 강성주가 서명했던 미북 기본합의서(1994)도 물론이지만, 그 후 중국이 의장국이 된 6자회담에서 몇 년에 걸친 협상 끝에 만들어진 9·19합의(2005), 2·13합의(2007)와 2·29합의(2012)도 늘 휴지조각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휴지조각이 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군 철수를 제외하고는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다시피 했다. 주한미군이 보유하던 전술핵도 철수시켰고(1991), 팀스피릿도 두 번(1991, 1994)을 중단시켰다가 결국 폐지했다.

북한 신포지역에 대규모 경수원자로를 짓기도 했고 개성공단과 전기 공급을 포함한 대대적 경제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전개시키기도 했었다.

전방 배치 2사단 등 주한미군 규모의 지속적 축소와 수도권 주한미군의 후방 배치도 실현해냈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늘 대한민국의 무장해제였을 뿐이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를 비웃으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도발과 함께 시간을 벌어가며 단 한시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춰본 적이 없다.

북한의 목표는 오로지 미군 철수 모든 남북 대화와 각종 합의를 만드는 과정은 곧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이었다. 북한은 플로토늄에 의한 핵무기와 우라늄에 의한 핵무기로 방법을 다양화시켰고 노동미사일에서 대포동, 은하, 화성-15호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지속적으로 실험해가며 핵전력을 완성시키고 실전 배치 단계에 왔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은 가혹한 시험이면서도, 동북아 문명체계를 바꿔내며 또 다른 비약을 만들 민족적 능력을 갖췄느냐를 시험받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정재형 기자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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