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칼럼
[데스크 칼럼] 신문고와 국민청원제 집단 분노 표출의 장이 되지 않기를…역사에서 살펴보는 어제와 오늘
정재형 편집장  |  news@kpci.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30  13:46:3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자 위정자들이 만든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 초 설치된 신문고(申聞鼓)와 문재인 정부 들어 운영 중인 국민청원제도다. 이 둘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출범 시점이다. 신문고는 태종 원년(1401)에 송나라의 등문고를 본떠 백성의 억울함을 직접 해결해주기 위해 대궐에 설치됐다. 백성과의 직접 소통을 앞세워 개국 초 혼란과 재상 등 신하가 중심이 된 정치를 극복하고 왕권정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국민청원제도 문재인 정권 출범 3개월 만인 지난해 8월 19일 등장했다. 현 정권 역시 대통령 탄핵을 통해 창출된 탓에 정권 초 정국 혼란을 극복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불통의 정치로 국민에게 외면받은 전 정권과의 차별화에도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단 청원이 있었고 신속하게 답을 내놓은 것도 닮았다. 태종 때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생원 50명, 조계사 승려 수백 명 등이 7건의 집단격고(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북을 침)를 했다. 이 가운데 3건만 요구가 받아들여졌지만, 가부에 대한 답은 의금부 관리가 왕에게 보고한 후 5일 안에 내놓아야 했다. 국민청원은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 추천한 청원에 대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을 하는 제도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청원자가 부당한 사회부조리 등을 게시판에 등록하면 그 문제에 대한 동의가 20만 명이 넘을 경우 해당 정부부처와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변하도록 돼 있다.

현재 게시판 청원 동의 인원 20만 명을 넘은 청원으로는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이 36만 명을 넘겼고, 다음으로 ‘미성년자 성폭행 형량 상향으로 종신형’이 23만 명, ‘대전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가해자의 만행과 도로교통법의 허점’이 21만 명으로 관계부처나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집행유예 판결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 청원도 마찬가지다. 해당 청원은 단 3일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자는 “국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정의와 국민을 무시하고 기업에 읊조리며 부정한 판결을 하는, 이러한 부정직한 판결을 하는 판사에 대해서는 감사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하지만 엄연한 삼권 분립 국가에서 행정부가 사실상 재판에 관여해야 한다는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도 답변을 통해 “국민감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삼권 분립이 엄연히 있으므로 청와대가 재판에 관여하거나 판사 개인을 징계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초·중·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청원도 20만 명을 넘어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며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하자는 극단주의적 발상, 나경원 의원의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 등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신문고와 국민청원은 역기능도 꽤 있다. 신문고는 이용 방법이 까다로웠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일단 관할 관청에 알리고, 그 관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신문고를 두드릴 수 있었다. 격고할 수 있는 내용도 제한된 데다 신문고는 한양 대궐에 설치돼 있고, 무고성 격고 때는 엄중한 처벌까지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신분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신문고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양에 사는 양반들이 주 이용자가 됐다. 당초 취지와는 달리 소수 지배층이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데 쓰인 셈이다.

반면 국민청원은 인터넷을 하는 국민 누구나 청원 내용에 제한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신문고와 달리 무고성 청원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고 익명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이 탓에 국민청원 게시판 상당수는 주관적이고 집단 분노를 표출하는 공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일부 청원 내용은 마녀사냥에 가깝다. 그래도 청와대는 국민과의 약속을 이유로 답변 조건을 갖춘 청원에 답을 하다 보니 일부 답변은 삼권분립을 위협하고, 여론 재판을 부추긴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최근 청와대는 김보름 선수 등 국가대표 자격박탈과 빙상연맹 적폐 청산 요구에 대한 답변에서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빙상연맹의 적폐청산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가대표 자격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앞으로 우리나라 국가대표는 뛰어난 실력은 물론이고 인성도 갖추어야 하고 때로는 아름답게 질 수도(?) 있어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민청원 제도인지 씁쓸하기만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초반에는 비교적 건강한 토론의 장과 이슈화를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동안 답변이 완료된 것을 보면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법(전안법) 개정 혹은 폐지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소년 보호법 폐지 △낙태죄 폐지 등이었다. 아주대 이국종 교수 지원 법으로 알려진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는 국민 반향이 커 실제 지원 확대로 연결되고 있으며 전안법 개정도 국회를 압박하는 효과를 거두며 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초 국민의 불편 사항,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청와대가 복잡한 절차 없이 바로 듣고 직접 답변해 사회경제를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청와대 국민청원이 점차 특정 계층의 분노 배출 창구, 특정인의 해코지 수단 등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좋은 취지로 도입한 국민청원이 사회 통합 저해, 소모적인 논쟁 등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실명제 도입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청원이 제대로 된 국민과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 잡으려면 보완책이 필요하다. 무고한 청원에 대한 처벌 규정, 무분별한 청원, 특히나 주관적 견해나 사적 분노 표출 등을 막기 위한 명확한 청원 범위 설정, 중복 추천 방지책, 억울한 피해자 발생에 따른 대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 국민의 소리를 듣는다는 이유 때문에 또 다른 국민의 억울한 호소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정재형 편집장.

정재형 편집장  news@kpci.co.kr

<저작권자 © 오늘의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재형 편집장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우리나라 마지막 단풍놀이 완도군 청산도, 20일 절정
2
20대 직장인 빚 평균 1243만 원, 1년새 47%↑
3
[등산트래킹] 수우도 은박산 비경(秘景) 산행
4
교육위원회, 21대 국회 첫 청원심사소위 개최
5
순천 기적의도서관, 개관 17주년 기념행사 마련
6
김영춘 국회사무총장, 국회부산도서관 건설 현장 방문
7
미국 화이자 “코로나 백신 효능 90% 이상 개발”
8
[국내여행] 경북 청송 송소고택 가보셨나요?
9
"앞으로 2년 동안 임대주택 11만 4000가구 공급"
10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 국가가 부담 한다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513) 서울특별시 금천구 벚꽃로234 | 대표전화 : 02)702-0111 | 팩스 : 070-4275-1429
잡지사업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5 | 등록일 : 1982년 12월 23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번호 : 서울 아03244
회장: 임윤식 | 사장: 정희돈 | 편집국장 : 정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재형
Copyright © 2013 오늘의한국.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