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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사극 불패는 옛말… 안방극장에서 사극이 사라졌다
이정현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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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3  14: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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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반감, 간접광고 유치도 어려워
시청자들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물 선호

   
▲ 역대 사극 시청률 1,2,3위를 차지한 ‘허준’ ‘태조 왕건’ ‘대장금’.

과거 사극은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드라마 장르 중 하나였다. 한때 ‘사극=흥행불패’라는 공식까지 존재했다. 한국의 고유한 역사와 그 시대에서만 느낄 수 있던 정서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복식 역시 시청자들이 사극이라고 하면 일단 눈길을 줬던 이유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에서는 장녹수(1995), 용의 눈물(1996), 임꺽정(1997), 왕과 비(1998), 허준(1999), 태조 왕건(2000), 명성황후(2001), 여인천하(2002), 대장금(2003), 해신(2004), 불멸의 이순신(2005), 주몽(2006), 태왕사신기(2007), 이산(2008), 선덕여왕(2009), 추노(2010), 뿌리깊은 나무(2011), 광개토대왕(2012), 기황후(2013) 등 매년 그해를 대표하는 사극 드라마가 제작됐고, 이들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은 약 40%로 큰 인기를 구가했다.

시청률로 증명된 드라마의 인기는 매해 연말 열리는 방송 3사의 시상식에서 사극 주연들에게 이변 없이 대상을 안겼다. 용의 눈물의 유동근, 허준의 전광렬, 태조 왕건의 최수종, 여인천하의 강수연과 전인화(공동 대상 수상), 대장금의 이영애,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 주몽의 송일국, 태왕사신기의 배용준, 이산의 이서진, 선덕여왕의 고현정, 추노의 장혁,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 기황후의 하지원 등 해당 드라마의 주연은 거의 빠짐없이 대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시청률 보증수표였던 사극의 인기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시들해졌다. 사극 드라마의 부진은 4년 전인 2014년부터 심화됐다.

영조와 사도제자의 이야기를 다룬 SBS ‘비밀의 문’은 두 주연배우 한석규와 이제훈의 조합과 ‘불멸의 이순신’을 집필한 윤선주 작가의 신작으로 큰 화제몰이 속에 첫 선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비밀의 문’ 마지막 회는 5.2%(전국기준)라는 혹독한 성적표로 아쉽게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없는 캐릭터 설정과 다소 어렵다는 지적 속에서 사극은 시청률 불패라는 공식을 뒤로하고 용두사미 기록만 남기게 된 것.

사극의 하락세는 그 이듬해인 2015년 KBS1TV 대하사극 ‘징비록’으로 이어졌다. 김상중 주연의 ‘징비록’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보이면서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지만 방송 2회 만에 주춤하며 그 기세가 꺾였다. 이를 만회하고자 KBS1TV는 다음 해 송일국과 김상경을 전면에 내세운 ‘장영실’을 방영했으나 이마저도 시청률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드라마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등으로 명성을 떨친 송지나 작가를 기용해 선보인 사극 ‘왕은 사랑한다’의 실패도, 한류스타 송승헌과 세계 90여 국에서 사랑받은 ‘대장금’의 주역 이영애를 캐스팅해 선보인 사극 ‘사임당’의 실패도 사극의 힘이 빠졌다는 걸 보여준다.

불패 신화를 써내려가던 사극이 외면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복제’다. MBC ‘화정(2015)’을 비롯해 KBS2TV ‘왕의 얼굴(2015)’과 KBS1TV ‘징비록(2015)’에는 약속이나 한 듯 광해가 등장한다. 개혁 군주라 불려 재해석의 소지가 많지만 드라마를 넘어 영화에서도 여러 차례 주인공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정조와 세종, 장희빈 등도 사극에 등장하는 단골 인물이다. 그러나 식상한 군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역사적 스토리를 담아도 시청률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사극 또한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예가 작년에 방영된 KBS2TV ‘7일의 왕비’다. 조선 역사상 7일이라는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왕비의 자리에 앉았다 폐비된 비운의 여인 단경왕후를 조명한 ‘7일의 왕비’는 오히려 생소한 역사 속 인물이 시청자들의 무관심을 샀다. 최근 사극의 몰락이 결코 식상함에만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역사왜곡’ 역시 사극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사극은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다. 적어도 이것이 시청자들이 사극 드라마에 기대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짧게는 50부작에서 길게는 200부작까지의 긴 호흡을 이어가야 하는 사극의 특성상 감독이나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상력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가 문제인 것이다.

MBC에서 방영된 ‘선덕여왕’은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이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진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드라마는 내내 선덕의 맑은 천성과 지혜로움만 다뤘을 뿐, 왕위에 오르기 위해 친언니 천명과 이미 결혼한 용수를 빼앗는 등 야욕에 눈이 멀어 저지른 행위들은 전혀 담지 않았다. 오히려 드라마 속에서는 선덕과 천명의 우애가 도탑게 그려지면서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사이의 줄타기가 연이어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리자 드라마 제작진 측은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극’이라는 장르 앞에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팩션’이나 ‘퓨전’을 붙여 ‘팩션 사극’ ‘퓨전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것. ‘퓨전 사극’이라는 틀 안에서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MBC ‘밤을 걷는 선비’, SBS ‘엽기적인 그녀’ 등 다수의 작품이 제작됐지만 시대를 오가는 전개와 시간을 초월하는 판타지 전개가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 요즘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범죄 수사물 ‘리턴’과 ‘작은 신의 아이들’.

사극의 몰락은 시청자들의 성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사극 대신 장르물이 전반적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수사물이나 의학 드라마가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때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되던 본격 장르물이 이제는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드라마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SBS ‘리턴’이나 OCN ‘작은 신의 아이들’처럼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는 스릴러 장르물은 사회적 정의를 희구하는 대중들의 정서와 맞물려 그 어떤 사극이나 멜로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른바 장르물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극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사극 제작을 기피하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실효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극은 자동차, 휴대전화, 카페 등 현대극에서는 필수적으로 챙길 수 있는 PPL(Product Placement·간접광고)을 유치할 수도 없다. 이는 광고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중시하는 배우들이 사극 출연을 꺼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현재 방영 중인 사극은 TV조선의 ‘대군-사랑을 그리다’가 유일하다. 지상파 방송 3사에서 현재 방영 중인 사극은 단 한 편도 없다. 이를 두고 한 방송 관계자는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최근 들어 식은 것이 아닌, 과거에 일시적으로 높았던 것”이라며 “앞으로 과거와 같은 사극 전성시대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대신 시청자들의 선호도에 맞는 다양한 장르물이 쏟아질 것”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

이정현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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