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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봉과 바다풍광이 어우러진 절경, 남해도 금산
글.사진 임윤식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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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9  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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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과 해안의 절경이 어우러져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려해상국립공원 남해도의 하나 뿐인 금산은 이름 그대로 비단처럼 빛나는 산이다. 산의 본래 이름은 원효대사가 지은 보광사가 있는 산이라 해서 ‘보광산’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이성계가 이 산에 올라 기도를 하면서 임금이 되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정작 임금이 되고 난 후에는 비단을 둘러줄 것을 걱정하다가 ‘비단 금(錦)’자를 붙인 이름을 주어 ‘금산’이 되었다 한다. 남해도는 제주도, 거제도, 완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이다.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어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되었다. 금산에 오르는 등산로는 상주해수욕장에서 오르는 길(금산탐방지원센터)과 산 북쪽의 복곡에서 오르는 길(복곡탐방지원센터)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필자의 경우 두 코스를 모두 돌아봤는데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르는 코스는 등산객들의 등산코스로 보리암까지 1.98km, 약 1시간 15분, 왕복코스로 금산탐방지원센터-쌍홍문-보리암-금산각-금산정상-단군성전-상사암-좌선대-제석봉-쌍홍문-금산탐방지원센터를 돌면 약 8km, 4시간 정도 걸리는 데 비해, 복곡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르는 코스는 일반인들이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관광코스로 보리암까지 900m, 약 2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복곡코스의 경우에도 복곡탐방지원센터-금산각-금산정상(망대)-단군성전-상사바위-좌선대-제석봉-쌍홍문-보리암-금산각-복곡탐방지원센터로 돌면 약 3.5km, 2시간 반 정도의 멋진 트레킹 코스가 된다.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약 1시간쯤 오르면 제일 먼저 쌍홍문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쌍홍문 왼쪽에는 촛대바위처럼 생긴 기암괴봉이 보인다. 그 옛날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던 네 신선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놀았다 하여  '신선대’라 부른다고 한다.

   
 

쌍홍문 바로 입구에는 장군암이 우뚝 서 있다.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바위’라고도 부른다. 쌍홍문은 거대한 암봉에 두개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아득한 옛날 석가세존이 돌배(石舟)를 만들어 타고 지나가서 생긴 굴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쌍홍문은 초기에는 ‘천양문’이라 불려왔으나 신라초기 원효대사가 두 굴이 쌍무지 개 같다고 하여 ‘쌍홍문’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쌍홍문 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남해바다는 그야말로 선경이다.

어둠이 걷힌 후 잠에서 깨어난 바다, 가을단풍에 물든 산능선은 세속에 때묻지 않은 동자의 순진무구한 마음같기도 하다. 쌍홍문을 지나면 길이 두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으로는 일월봉, 좌선대, 흔들바위 등으로 가고, 오른 쪽으로는 보리암, 대장봉으로 가는 길이다. 두 코스 모두 금산 정상 망대로 이어진다. 쌍홍문에서 상사암으로 이어지는 산허리 코스를 돌면 제석봉-흔들바위-좌선대 등 기암봉들이 즐비하다. 중간쯤 금산산장 테라스 탁자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암봉과 바다조망에 취하다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오른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우뚝 솟은 대장봉 아래 보리암에 이른다. 정면에는 탑대가 있어 남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보리암 뒷쪽으로는 멀리 상사암에서 부터 좌선대, 제석봉, 일월봉, 화엄봉, 대장봉 등 기암괴봉들이 즐지어 서 있고, 앞으로는 상주해수욕장을 비롯, 멀리 크고 작은 섬들이 오손 도손 대화를 나누듯 앉아 있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보리암 바로 아래에는 가락국의 김수로 왕비인 허황후가 인도 아야타국에서 배로 실어 온 돌로 만들었다는 3층 석탑이 서 있다. 석탑 아래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묻혀 있다고 한다. 금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해수관음보살상이다,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대자대비의 불심을 펴는 관음상은 우리나라에서 강화 석모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 그리고 이곳 남해금산 보리암이 대표적이다. 보리암을 지나 계단길로 100m만 오르면 금산각에 이르고 금산각에서 다시 200여m 오르면 봉화대가 남아 있는 금산 정상이다.

금산 정상 망대 바로 앞에는 거대한 돌이 두개 나란히 붙어 있고, 돌 한편에는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대학자 주세붕이 쓴 글이라 하는데 오랜 세월 모진 풍상에서도 아직 그 필체와 담긴 뜻이 생생하다. 망대에 올라서면 남해바다가 그림같이 펼쳐지고, 좌우측으로 금산의 기암괴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보리암은 물론 화엄봉, 상사암 등이 우람하게 솟아 있고 상주해수욕장도 내려다 보인다.

   
 

멀리 바다 위에 세존도도 시야에 들어온다. 거대한 바위섬에 두 개의 큰 바위 구멍이 뚫려 있어 ‘문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존이 금산 쌍흥문에서 돌배를 타고 이 섬의 중간을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어 ‘세존도’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참으로 절경이다. 역시 산에 오르면 바다가 보여야 좋고 바다에는 섬들이 있어야 금상첨화다. 망대에서 몇미터 내려가면 좌측 전망바위에도 금산의 높이(681m)를 표시한 표지석이 있는데 봉수대가 있는 망대의 높이가 701m이니 남해 금산의 실질적인 정상은 봉수대가 있는 망대로 봐야 할 것 같다.

   
 

이곳 봉수대는 고려 의종(1147~1170)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된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이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 진주 등을 거쳐 서울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연초에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춘분과 추분에는 남극성을 보려는 인파가 밀려든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대장봉 아래 아슬아슬하게 솟아있는 기암이 보인다. 바로 ‘형리암’이다. 금산 38경 중 하나이다. 억겁의 풍상과 태풍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저 거대한 바위, 어느 누가 산꼭대기에 저토록 신기한 예술작품을 빚어 놨을까

정상능선에서 단군성전을 거쳐 오른쪽으로 약 30분 정도를 가면 남해금산의 백미인 상사암에 이른다. 상사병에 걸린 남자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여인이 그 남자의 죽음 직전에 이 바위에 올라와서 남자의 원을 풀어주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녹아 있는 곳이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상사암(상사바위) 정상은 남해 금산에서 최고의 조망처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산 암릉의 기암괴봉들, 보리암, 그리고 남해바다 풍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하다. 바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다 보면 굳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경관에 취해 절로 시가 나옴직하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셨고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오세영 시인은 그의 시 ‘남해 금산’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저 고해苦海를 건너면 미타찰彌陀刹에 다다를까.
빈 선창 가득히 달빛을 싣고
창망히 떠가는 돛배 하나,
서西로 가는 달빛을 좇아 무심히
노를 젓는 가랑 배 하나,
누가 남해바다에
암벽과 초목으로 지어 한 척 배를 띄웠나.
부처 하나 가슴에 안고
달빛 화안한 봄밤에 노를 저어 하늘을 간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창망히 떠가는 돛배 하나.

   
 

또, 계명대 명예교수인 이성복 시인도 그의 시 ‘남해 금산’에서 이렇게 그렸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이화여대 교수인 정끝별 시인은 조선일보에 연재한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시 100편’에서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팍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윤식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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