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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원로화백“노년은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할 때이다”
박관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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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1  14: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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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차가움 속에서 새 움들이 기지개 펴는 즈음에 삶의 굴레와 흔적 속에서 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표현하였습니다. 그림은 제 삶의 보석과 같은 소중한 것입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붓을 만지며 행복을 느꼈습니다.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그림이 있었기에 순간순간 기쁨의 힘으로 나의 삶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원로 화백 김정자(76) 작가의 화두(話頭)이다.

김정자 작가는 지난 2월 22~2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M에서 ‘흔적과 모습’ 작품전을 가졌다. 특히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시작한 그의 미술 작업에는 많은 축하객이 모였다.

그런 노년의 예술적인 정열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화실은 3~4명의 화가들이 공동으로 쓰는 초라한 곳이지만 작업하기에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노년의 작품 활동은 행운

우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김정자 작가를 보면서 언뜻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린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 1860~1961)가 떠올랐다.

모지스는 76세 때부터 그림을 그려 101세에 세상과 작별하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평범한 시골 주부였던 그녀는 작은 농장을 꾸려가며 10명의 자녀를 출산하고 그 중 5명을 잃고 난 후 자수(刺繡)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나 72세 때 관절염으로 바늘을 들지 못해 대신 붓을 잡았다. 우연히 수집가 루이스 칼더가 시골 구멍가게 창가에 있는 그의 그림을 사 갔고, 이듬해 미술 기획가 오토 칼리어가 그의 그림을 뉴욕의 전시관에 내놓으면서 할머니는 일약 스타가 됐다. 그 후 유럽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모지스의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1949년 트루먼 대통령은 그녀에게 ‘여성 프레스클럽 상’을 선사했고, 1960년 록펠러 뉴욕주지사는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선포했다.

모지스는 시골의 풍경을 그렸으며 그의 화풍은 단순하면서도 밝았다. 아마 그의 밝은 심성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기자의 이런 황당하면서도 행복한 연상은 김정자 작가의 나이가 76살로 모지스가 비로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나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록에 실린 뛰어난 작품에 비해 지나치게 겸손한 탓도 있다. 요즘 제법 그림깨나 한다는 젊은 미술가들의 정략적(?)인 도도함과 잘난 척에 식상해 있던 기자로서 당연히 느끼는 애정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

김정자 작가는 지금은 세종대학교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명성이 자자했던 수도여자사범대학 미술과를 졸업했다. 그 대학 출신들이라면 으레 교직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그 또한 젊은 시절 한때 고향인 충남 예산의 여고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실 상식적인 얘기이지만 훌륭한 선생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나오는 법이다. 비록 오랜 시간 제자들을 키우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를 기억하는 걸출한 제자가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창 시절에 그런 모습을 많이 지켜본 기자로서는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김정자 작가는 “사실 예산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10년도 안 된다. 하지만 기억에 뚜렷이 남는 제자들이 있기는 했다. 그 후 연락이 안 돼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기는 하다”며 “결혼할 남편이 서울 사람이라 학교를 그만둔 후 서울로 곧장 올라와 살아 제자들의 근황을 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미술작가의 꿈을 접고 생활 전선에 안위하며 살다가 결혼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정에 만족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3남매의 자녀를 키우는 데 그 어찌 감히 미술에 대한 미련을 가질 수 있었을까?

김 작가는 차라리 치열한 미술작품을 탐구하는 화가라기보다 전형적인 전업주부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 정갈한 가정주부로 살아온 이력이 의아하며 가녀린 손목으로 만들어낸 그림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이 굵고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불식간에 그에게서 미국의 국민 화가인 모지스를 떠올린 것일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데 따른 반사 신경이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예술가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화가들에게는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곧 관록이 깊어진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작품 공모가 많이 있다. 대개 건전하고 활기찬 노인문화 형성을 위해 마련되지만 그 이면에는 그만큼 높은 숙련도의 작품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은 60부터

김정자 작가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대한 꿈을 다시 펼치기 시작한 것은 60세 때부터였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제대로 실천한 셈이다.

홍익대 미술대 교수들이 직접 가르치는 홍대 미술교육원에 다니면서 끊고 살았던 붓을 다시 든 것이다. 그와 함께 젊은 시절 숨겨진 끼와 느낌이 살아나면서 2002년부터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경기장 오픈 환경미술 설치공모전 은상, 2005년 한국‧체코 현대미술작가 국제교류전, 2008 아시아 국제아트 페스티벌(NAAF), 2009 홍익아트디자인 페스티벌, 2010 단원미술대제전, 2011 세계평화미술대전, 2011 한국현대 스펙트럼전, 2011 군자전, 2012 한국미술협회전 등을 거쳐 올해 첫 개인전을 가졌다.

김정자 작가의 작품 중 「흔적 1」을 보면 묘한 전율을 느낀다. 바로 이 그림이 작가의 선입관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도대체 그 어디에서 가녀린 여인의 손목에서 저런 강한 필치가 나오는지 의아해진다. 어찌 보면 우락부락한 거인이 약한 자를 묶기 위해 만든 새끼줄 같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 속 새끼줄은 어찌 보면 서로 포옹을 하는 젊은 연인이나 늙은 부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서로 부둥켜안았다가 상대를 강렬하게 밀치며 화를 내는 모습도 연상된다.

바로 그런 이질감을 많이 던져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것이 좋은 미술작품이 아닐까. 기자 역시 김 작가에게 그런 느낌에 대한 감동을 전하자 짐짓 놀라는 표정이다. 지게에 실린 농기구 등을 그린 「흔적 2」도 쉽게 알기 힘든 수수께끼를 던져준다. 나이 어린 관객들로서는 도무지 풀기 힘든 수학 문제이리라.

뿐만 아니라 풍경을 그린 유화에 담긴 묵직한 명도와 채도는 묘한 뉘앙스를 전해 주는 것이 쉽게 범접할 수 없게 한다. 그제야 기자는 나이가 묵직한 화가들의 장점이 이런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 뒤통수를 한 대 때린다.

 

외로움은 죽음의 일부

김정자 작가의 그림을 본 한 시인은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늙는 기술은 저절로 터득하는 것이 아니다. 노년의 상징인 가을은 사실 수확과 결실의 계절이다”며 “노년은 인생의 활동 단계는 끝났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할 때다. 원래의 꿈은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 꿈의 본질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연관시켜 살아야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만 생각하고 현재를 잃어버리는 것은 바보짓이다. 노년은 주름살이 생기고 속도도 느려지고 신체적 한계에 맞닥뜨리지만 오랜 경험에서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머릿속에 문제의 개념도를 그려내는 능력이 있다”며 “그래서 노년은 판단력이 좋으며 옳은 일이 무엇인지 통찰할 수 있다. 바보들에게 노년은 겨울이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나를 찾는 수확의 시간이다”고 시적으로 작가를 옹호했다.

김정자 작가는 요즘 인물화에 푹 빠져 있다고 얘기했다. 여전히 뒤늦게 시작해 자신이 없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지독한 겸허한 마음이 오히려 독인(?) 듯싶다.

김 작가는 “예전의 필름 카메라는 최근의 디지털카메라처럼 사진을 변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진을 마치 그림처럼 변형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주는 것이 유행이다”며 “이는 결국 붓으로 그린 인물화가 더 낫다는 반증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와 방정환 선생을 닮은 남편의 인물화를 보니 문득 김정자 작가의 앞날은 아직도 창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은 자신감의 키만큼 젊어지지 않을까? 외로움은 죽음의 일부이며, 죽음의 문턱은 누구나 혼자 넘어야 할 숙제이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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