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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이지 않는 사물을 보이는 것으로 표현”문형진 사단법인구상전 이사장
박관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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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6  15: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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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에 찾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 라메르 2층 전시실에서는 여느 미술관과 달리 음악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사실 보는 미술과 듣는 음악의 조합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장면이다. 왜 그럴까? 

이는 인사동의 미술 거리를 많이 찾은 갤러리들조차 쉽게 발견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숙제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전문가 수준의 갤러리들이라면 전시 작품을 보고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전시되는 작가의 작품 속에는 악기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실을 찾은 일부 갤러리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축들도 있었다. 

그렇다. 이 화제의 주인공인 문형진 화가 그림 속에는 여러 가지 악기가 숨어 있다. 처음 그의 작품 속에 바이올린‧첼로‧비올라‧콘트라베이스 등 악기가 감춰져 있는 것을 알면 적잖게 당황한다.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이 생소한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음악적인 마음의 박동소리를 화폭에 담겨 있다. 술 마시며 밤새워 이야기해도 또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던 젊은 시절처럼 그의 그림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8월 23~29일, 갤러리 라메르에서 개인전

지난 6월 초 (사)구상전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문형진 작가는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 라메르에서 「독백, 꽃과 선율」 작품전을 개최했다. 이번 개인전은 2016년 2월 16~28일 세종호텔 갤러리에서 가진 전시회 「율」에 이어 7번째이다. 

문 작가에게는 이번 전시회가 갖는 의미가 남달랐다. 본의 아니게 추천에 의해 유명한 미술단체의 이사장으로 추대된 데다 그의 마지막 교직생활을 접는 해에 열리는 전시회인 탓이다.

그는 올해를 끝으로 그간 몸담았던 대원여고 미술교사직을 정년퇴직한다. 대원여고는 일반 고등학교이지만 인문사회‧과학기술 과정 외에 미술‧체육‧직업 과정과 별도 선발로 음악중점‧관악예술 과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처음 대원외고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97년 대원여고로 자리를 옮겨 현재의 유명한 예술중점학교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그다. 비로소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문형진 작가의 작품 배경과 성향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어느덧 대원여고에서 20년간 후학들을 양성한 문 작가는 현재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제자들만 40여명에 달한다. 가끔 제자들이 건강 걱정 등 안부를 물어오지만 각자 바쁜 생활과 가정 때문에 사제지간의 정 나눔은 쉽지 않다.

이런 영향은 그가 서라벌고등학교 재학 시절 후배 양성에 열정적이었던 은사님들로부터 많이 배웠다는 것. 실제로 그는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 고3 담임만 16년간 맡았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주기 위해 작가 활동도 열심히 했다. 부모형제와 가정을 돌보고 학생들의 진학 지도를 하며 미술 작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이런 일석이조의 삶은 ‘주경야화(晝耕夜畵)’라는 신조어로 설명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다.

결국 그림 속에 듣기 좋은 아이들의 악기 소리를 함축하면서 비로소 그는 화단에 독특한 미술세계를 인정받은 셈이다.

문 작가는 “올해가 교직 마지막 해로 떠나려니까 아쉽다”며 “남은 생이 10년일지, 20년일지, 30년일지 모르지만 그림 그리는 것들을 바탕으로 물감, 캔버스, 가족, 친지, 주변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가벼워 보이지만 무거운 그림

“학교를 퇴직하고 나면 내가 갈 길이 험난할지 순탄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큰물로 나갈지, 조그만 강물로 흘러갈지, 계곡물로 갈지 여러분이 지켜보길 바랍니다. 지금 많은 것을 생각중입니다.”

문형진 작가는 23일 개인전 오픈식에 참가한 관객들 앞에서 좀은 가라앉은 톤으로 자신의 앞날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문 작가는 이 자리에서 “그림의 소재들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들이지만 사진을 보고 그리거나 실제 현장에 나가 스케치하든 새로운 구상화에 매진하겠다”며 “본 것 중 꽃·집·나무들을 내 머리 속에 생각해서 캔버스와 물감으로 면 분할과 배색, 어떤 질감과 양감·명암을 표현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내 그림은 파스텔톤으로 이어져 명암이 중요하지 않다. 주변인들이 내 그림을 쉽게 흉내 내기 어렵다. 벌과 나비가 꽃을 찾듯이 내 그림에는 꽃과 향기가 항상 등장한다”며 “꽃은 향기가 난다. 향기 속에는 흐름이 있다. 지금 나오는 음악의 흐름처럼 악기를 연상시킨다. 그림 속에, 꽃 속에 악기에서 나오는 운율들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 같이 표현한다. 말과 그림 대신 컬러와 선과 형태로 표현한다”고 전했다. 

문 작가의 그림은 다른 그 어떤 화가의 작품보다 무게가 있다. 물론 작품성의 중량도 그렇지만 밑그림을 그리는 데 오일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반면 여성스러운 채색이 가벼워 보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빚어낸다.

그는 현란한 색을 절제하고 편안한 느낌의 노랑, 주황, 다홍, 하늘색 등을 즐겨 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운율은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문 작가는 바탕색과 위에 덧칠한 색깔이 아우러져 나오는 마티에르 효과를 즐겨 쓴다. 캔버스의 물감과 기름, 보이지 않는 선율이 매력을 뿜어낸다.

날개 달린 천마 페가수스가 예술의 여신 무사(Musa)들이 헬리콘산에서 벌인 노래 경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회백색 달 항아리는 조선시대 여인네의 내밀한 소리를 들려준다. 

꽉 찬 보름달은 정화수 떠놓고 빌던 어머님의 한숨과 소망을 이야기하고, 꽃이 피며 씨앗도 함께 생기는 연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전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다소 복잡하게 보일 수도 있다.

문 작가의 그림은 화폭에 늘 악기가 숨어 있거나 그윽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악기가 담긴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만든 작품의 제목을 보면 그런 추론이 어김없이 딱 들어맞는다. 실제로 시인의 시심(詩心)을 찾는 눈이나 화가가 미심(美心)을 탐하는 눈이 매한가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판타지의 세계, G선상의 아리아, 순백의 기억, 인도의 빛, 계절의 하모니, 수상궁의 나아가르, 저녁노을의 하모니, 무언의 교감, 향(香)의 유영(遊泳), 밝은 미소로 손짓하네, 십장생도-불멸(不滅)의 념(念), 영원(永遠), 동행(同行), 기억의 중첩, 추억 속으로, 로망스, 사랑의 이벤트, 판타지아의 찬사, 폭풍전야, 속삭임, 향의 파동, 이국의 이미지, 천상의 소리, 보람, 가을의 정, 천지인(天地人), 끄림, 수줍은 추억, 순수의 계절, 수줍은 미소, 침묵의 명상, 일편단심, 매혹, 당신, 시선의 이끌림, 비오는 날의 풍경, 삶-새벽, 문화의 숨결을 찾아, 감사’ 등 이번에 선보인 50여개 작품의 제목이 그를 증명한다.

이에 대해 문 작가는 “이번 작품 브로슈어 제목도 처음에는 ‘꽃과 선율이 전하는 이야기’로 정했다가 너무 길어 ‘독백, 꽃과 선율’로 줄였다”며 “제목만 봐도 뭔가 느껴지게끔 타이틀이 중요하다. 어느 집에 갈 때 현관이 제일 중요하듯이 작품명을 쓰는 것도 문학작품 못잖게 고민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오랜 전통, (사)구상전 이사장 취임

“올해가 교직 마지막이다 보니 그나마 부담이 덜하지만 제가 (사)구상전 이사장으로 추대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가 과연 역량이 될까, 나름대로 여러 가지 책임감이 듭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물은 항상 흘러가야 합니다.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며 루비콘강을 건너간 심정입니다.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문형진 작가가 이사장으로 취임한 (사)구상전의 회원전은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문 이사장은 “모든 것은 나 혼자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임원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쳐 그것이 맞으면 가는 것이고, 동의하지 않으면 노하겠다”며 “그림도 정치도 마찬가지다. 독단적으로 가면 안 된다. 앞으로 구상전은 어떻게 흘러갈지, 변화시킬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3~29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5층에서 열린 구상전 전시회에는 73명의 현역 작가와 8명의 고인 회원 작품을 선보였다. 문형진 작가는 지난해 구상전 회원전에서 「천상의 판타지」란 작품을 선보였다. 

문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현악3중주로 이어지는 것을 표현했다. 제자들이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많다”며 “이런 음악적인 요소를 깔고 선율의 미를 공간 속에 적절히 표현했다. 숨어 있는 것은 선율이다. 미켈란젤로의 스토아 기법, 즉 공기원근법으로 색깔과 색깔의 중첩으로 공간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12월 구상전 공모대전을 앞두고 기획한 지난해 구상전 회원전은 ‘2016년 45회 공모대전’을 통해 미술계 불황의 그늘에서 구상전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했다. 올해 공모대전은 12월 인사동의 갤러리 라메르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구상전은 1967년 제1회 창립전을 필두로 49년간 92회의 회원전을 연 공인 전시회이다. 구상전의 역사가 곧 한국현대미술의 역사로 불릴 정도이다. 

현대적인 형상 회화를 모색함으로써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추구해 왔다. 구상전은 회원전과 공모전을 통해 뛰어난 작가와 작품을 배출했다. 

회원 입회 자격은 구상전 공모전에서 특선 3회, 입선 10회 이상이어야 한다. 회원 중 공모전을 통해 입회한 작가는 150여명에 달한다.

문형진 작가는 “구상화는 형태가 없는 비구상화와 달리 형태가 있다. 비구상화는 색과 면으로 심상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런 반면 구상화는 선과 색, 형태로 모든 것을 단면화시킨 것이다”며 “비구상화는 칸딘스키와 클레 등의 그림처럼 상당히 어렵다. 컬러와 선, 음률로 그려 질감은 나타나지만 양감은 잘 안 나타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완전 사실화도 구상화라고 하지만 그런 그림은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하다. 다만 현대적인 감각에 맞는 사실화는 괜찮아 보인다”며 “나는 오늘 본 그림과 내일 본 그림이 달리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저 양귀비꽃은 보고 그린 게 아니라 저럴 것이라고 상상한 그림이다. 지리산 야생화와 백합의 접목, 무궁화꽃과 물풀 등이 그렇다”고 작품 설명을 해주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미술교육협의회위원장인 문 작가는 KAF 회장, 광진미술협회 부회장, 밀알회·서울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경희대 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문 작가는 7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다수의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경희대 미술대학 강사와 함께 경희대 미술대학 총동문회장도 역임했다. 

인터뷰 도중 문 작가의 구수한 목소리가 많이 들어본 듯해 궁금해 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배한성과 비슷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참으로 예술적인 끼와 재주가 많은 작가이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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