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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감춰진 진실이재갑 사진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한(恨)을 찍다
임윤식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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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2  15: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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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화예술계에서는 일본 나가사키 현의 군함도에 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서점에는 한수산 소설 <군함도>가 베스트셀러 대에서 독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지난 7월 26일에는 영화 <군함도>도 개봉됐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군함도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 일본 현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 섬의 감춰진 진실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가가 있다. 이재갑 씨(51)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이재갑 사진가는 그동안 담아온 사진들을 모아 지난 6.3-7.22 기간 중 부산 Art District에서 <군함도-감춰진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 바가 있으며, 8월 14일부터는 다시 국립 강제동원역사박물관에서 약 3개월간 전시를 재개할 예정이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원래 이름은 ‘하시마(端島)’이지만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軍艦島)’라 불린다. 군함도는 남북으로 480m, 동서로 160m, 축구장 2개 만한 크기의 인공 섬으로 섬 전체가 탄광이며 갱도는 해저 1,000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에 석탄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1890년부터 미쓰비시 기업의 소유가 되었다. 대부분 목조 단층집이나 2층집이었던 1916년 일본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었으며, 인구가 전성기를 맞았던 1960년에는 탄광 시설과 주택 외에 학교, 점포, 병원, 사원, 영화관, 이발소, 미용실, 사교장, 수영장 등 다양한 시설과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1960년 이후에는 주요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어 감에 따라 군함도 역시 쇠퇴해갔다. 1965년 미츠세 구역의 신광이 개발되어 일시 회복되었지만, 1970년대 이후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받아 1974년 1월 15일 폐산, 군함도는 무인도가 되었다.

이 섬이 우리 민족에게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이유는 태평양 전쟁 이후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 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석탄을 생산할 인구수가 부족하자 일본 정부는 1938년 공표한 국가총동원법을 근거로 조선의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했다. 조선인들에게 ‘지옥섬’ 또는 ‘감옥섬’이라 불린 군함도의 갱도는 해저 1,000m를 넘고 평균 45도 이상의 고온이었으며 가스 폭발 사고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한다.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비좁은 공간이었기에 체구가 작은 어린 소년들이 강제 징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노동 환경이 열악한 해저 탄광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은 하루 12시간 이상 채굴 작업에 동원되었다. 이 중 일부는 부적합한 채굴 조건으로 인해 병에 걸리거나 탄광 사고,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했으며 도망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져 익사하기도 했다. 국무총리 산하 기관인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 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실태 기초 조사>(2012)에 따르면 1943년에서 1945년 사이 약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징용되어 강제 노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섬에서 사망한 이들은 공식 집계 134명, 누락되거나 은폐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7월 5일,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로 노역한 하시마 탄광 등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23곳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철강, 조선 그리고 탄광산업’이라는 이름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등재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강제 노역이 동원됐다는 역사적 사실의 반영을 놓고 막판까지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일본 정부는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를 받아들여 극적으로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었다. 일본 측은 1940년대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해당 시설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안내 센터 설치 등을 약속했고, 2017년 12월 1일까지 이를 실행하여 그 결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하기로 했다. 하지만 등재 이후 약 2년 가까이 흐른 현재까지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하시마를 소유하고 있던 미쓰비시 사(社) 역시 과거 하시마에서 강제 노역한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사과하며 역사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발표했지만 조선인에 대해서는 사과도, 보상도 없었다. 현재 군함도는 강제 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지워진 채,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관광지로만 홍보되고 있다.

이재갑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했다. 니콘이 공식 후원하는 리더스클럽 멤버로 활동 중이고, 현재 영남대학교와 NGPA(내셔널 지오그라픽 사진 아카데미),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있다.

1991년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이라는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92년 2월부터 현재까지 <또 하나의 한국인>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혼혈인 1,2,3세대들에 대한 작업을 진행 중이고, 2005년 10월 <또 하나의 한국인>이라는 사진집(눈빛)을 출간했다. 2008년 6월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사진집 <잃어버린 기억>과 1996년 2월부터 <식민지의 잔영 : 1910-1945년 사이에 만들어진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에 대한 작업과 <상처 위로 핀 풀꽃 : 조선인 강제연행 지역을 중심으로>에 대한 작업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이 중 일본편을 모아 2011년 8월 <일본을 걷다>(살림)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개인적 <사유공간>에 대한 작업으로 <기형도시>와 <뇌(腦) 안의 풍경>을 시리즈로 진행 중이며, 사진과 글쓰기를 통해 원폭피해자들의 심리치료 및 자존감 회복을 위한 <사진, 희망을 말하다>라는 프로젝트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이재갑은 “무대 뒤의 진실” 및 “상처”를 주로 쫒아온 작가이다. 그의 첫 개인전인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 작업을 진행하면서 배우, 가수 공연 등에서 무대 위에 보이는 현상 보다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무대 뒤의 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모든 표현에도 말이나 글 자체 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속뜻’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속뜻’ 속에는 많은 상처와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알았다. 혼혈인들의 삶을 담은 <또 하나의 한국인>이나 조선인 강제연행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상처 위로 핀 풀꽃> 등이 그런 작업의 결과이다.

   
 

이재갑 작가는 그동안의 사진작업에서 ‘소재’를 쫓아다니지 않고 ‘사람’을 쫓아다녔다고도 말한다. 그것도 무대 위의 사람들이 아닌 무대 뒤의 사람들, 역사에 기록되지않은 잡초같은 존재들, 견디기 힘든 ‘상처’를 받았지만 강인하게 살아남아 꽃을 피운 ‘풀꽃’같은 사람들을 주 작업대상으로 해왔다. 그 ‘사람’은 어쩌면 내 스스로의 ‘내면’이기도 했다. 이재갑 작가는 그 상처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치유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사람이 사람에게 준 상처에 관한 이야기’에 주로 귀를 기울여왔다. ‘조선인 강제연행’과 이로 인한 ‘상처’를 담고자 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일본인들도 사심없이 그에게 공감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재갑 작가가 일본에 처음 건너간 건 20년 전인 1997년이다. 자전거를 타고 조선인 강제연행지역을 삿삿이 누비고 다녔다. 1996년 2월부터 시작한 <식민지의 잔영> 작업은 한국에 남아 있는 1910-1945년 일제 식민지 당시의 근대건축물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일본에 건너가서는 조선인 강제연행의 실상을 집중적으로 알고자 했다. 이재갑은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사진가로서 사진과 글로 그 진실을 파헤치고자 했다.

그는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적 진실을 쫓는 과정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중 오카 마사하루 목사와 다카자네 야스노리 선생을 알게 된다. 오카 목사는 수십 년 동안 강제징용자 및 원폭으로 사망한 조선인들의 억울함과 차별대우의 부당함을 자료를 통해 파헤쳐온 분이다. 오카 목사는 1995년에 돌아가셨지만 나가사키에는 ‘오카 마사하루 평화자료관’이 있어 그가 모은 관련자료 및 증거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또, 다카자네 선생은 오카 목사의 뒤를 이어 평화자료관을 대표하면서 군함도에 읽힌 숨겨진 진실들을 세상에 알려온 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카자네 선생 역시 지난 4월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재갑 작가는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군함도 등에서의 조선인 강제징용 등 일본의 만행이나 야비함은 얄밉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일본에는 오카 목사나 다카자네 선생 같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혹자는 그 수가 2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분들 때문에 일본이 가라앉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이번 <군함도-감춰진 진실> 전시도 본인의 개인전이기도 하지만 오카 목사 및 다카자네 선생의 추모전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전시물은 ‘함바’ 집이다. ‘함바’란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임시기숙사를 말한다. 즉, ‘함바’는 조선인강제징용자들의 삶의 터전이요 죽음이 이루어진 곳이다. 나가사키에 있는 ‘오카 마사하루 평화자료관’ 입구에도 ‘함바’ 집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이재갑 작가는 “군함도를 얘기할 때 ‘함바’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만큼 ‘함바’ 집의 상징성 때문에 전시장에는 군함도 사진자료 뿐 아니라 ‘함바’의 건물 모형이 실제로 세워져 있다.

   
 

이재갑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대체로 칼러 톤이 어둡고 탁하다. 흰색 또한 회색에 가깝다. ‘흑백같은 컬러’톤이라고나 할까? 바다물의 경우에도 검푸른 색이다. 굳이 작가가 이런 컬러톤을 택한 건 당시의 참혹하고 침울했던 역사를 현재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다분히 의도적인 작업인 듯하다. 흑백사진은 그 자체로 과거에 묻히고 만다. 현재성이 사라진다. 작가는 처음 <식민지의 잔영> 전시 때는 흑백으로도 표현해보기도 했으나 어느 비평가의 조언에 따라 그 후 칼러 톤으로 현재성을 살려냈다고 말한다.

군함도의 사진은 거의 대부분 황량한 폐건물이거나 무너진 구조물들뿐이다. 사람이 없다. 역사적 사실이니 그곳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분위기도 어둠침침하다. 허지만 그런 곳에도 풀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폐건물은 상처이지만 풀은 현재요 미래다. 폐허에 살아남은 잡초들, 바로 작가가 원제목으로 썼던 ‘상처 위에 핀 풀꽃’들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섬에서 강인하게 살아남은 조선인들이다. 이재갑은 “나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이 있다고 느껴진다. 군함도에 남아 있는 흔적들, 건물, 나무, 풀 한포기가 하는 말이 들린다. 나는 그 소리들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한다.

이재갑 사진가는 “전쟁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내가 촬영하러 다니는 곳에서는 여전히 전쟁 준비로 분주하던 당시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특히 나가사키 현의 군함도는 평생 잊지 못할 참혹하고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석탄 채굴을 위해 강제징용 당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억압을 받았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한이 지금도 군함도 곳곳에 서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역사란 과거가 현재와 같이 공존하는 것이며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진가는 과거의 흔적을 기록(기억)으로 남기지만 사회적 현상 속에서 현재 진행 중인 사람이다. 이때 사진가는 사회적 존재로 참여하여 공공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사진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섣부른 결론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과정을 통한 역사 읽기이다. 일본 안에 남아 있는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한국 땅 어디도 상처받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길 위에서 발견한 조선의 아픈 역사는 내게 말을 건다. 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멈춰버린 빈 공간은 작게 속삭이기도 하고 때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짊어진 조선인들이 외치는 소리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다. 그들의 전쟁은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 중이다”라고 강조한다.

임윤식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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