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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안수현 교수시조의 세계화를 꿈꾸다
김영주 방송작가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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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4  14: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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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몇 년 전 필자는 지인과의 모임에서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계시는 안수현 교수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이후 지인으로서 바라본 교수님은 정말이지 다양한 분야의 공부와 연구를 꾸준히 하고 계셨다.

우연히 최승자 시인의 시와 이성복 시인의 시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공감대를 갖게 되었고, 조금씩 안수현 교수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었다. 알고 보니, 처음 인문학자라고 본인을 소개한 안 교수님은 시인에 가까웠다.

안수현 교수님을 통해 ‘왜 문학을 하는가?’ 그렇다면 ‘인문학적 토양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문학자로서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일본의 단형시인 와카와 하이쿠, 우리 고유의 시가인 시조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하 글은 안수현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교수님은 현재 인문학자, 문학평론가, 시조시인, 인문학·다문화 관련 강사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 이시다. 어느 것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계시는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제 자신도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거창하게 인문학을 한답시고 주제넘는 짓을 자행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큰 카테고리로 본다면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전 자연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활동에 비중을 둔다는 것보다 지금까지 활동한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마치 땅 밑의 잔뿌리들이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거대한 한그루 나무로 자리매김하듯이 말입니다.

 

-직업과 일, 창작활동 및 작업에 관한 상호 연관 관계는?

시를 공부하는 것이 본질적인 제 직업이라면 직업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물리적인 고민이야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시인은 굶어 죽는다” 등등 끊임없이 저주의 소리를 감수하는 직업입니다.

시인은 늘 고민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기꺼이 찾아 나서는 무모한 여행자이며 그것이 곧 시를 선택한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삶에서 배제된 콤플렉스의 피난처는 결코 아닙니다.

시인을 두고 서구의 경우 극명하게 갈리는 두 사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들이죠. 플라톤은『국가(Republic)』에서 세 종류의 침대를 들어 시인 추방론을 주장하였죠. 예술의 모방적 특질과 시의 부정적 측면을 들어 돌직구를 날린 거죠.

플라톤은 시의 모방은 진리와 무관하며, 시인은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는 존재로 규정하여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죠. 그러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Poetics)』을 통해 예술 옹호론을 펼쳤죠. 즉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천재성과 광기는 창작을 이끈 주체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동안 걸어오신 길을 말씀해 달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펼쳐놓고 보니까 가지 수만 많이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부산 중앙고와 동아대학교 관광경영학과와 동아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SB Tourism College(SBTC) 조교수로 관광 미학을 강의하였습니다.

이후 사회과학에서 인문학으로 지평을 확대하여 부산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을 거쳐 일본 중세 歌論 연구를 했으며, 부산대학교 일본연구소 전임연구원, 부경대학교 국제지역연구소 책임연구원,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는 한국하이쿠연구원 연구위원 및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시조21󰡕을 통하여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고, 『한국동서문학』에서 시조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사)국제시조협회 평론·번역분과 위원, 윌더니스문학 편집위원, Japan Kajin Club(日本和歌) 會員, 俳句文集『蔦』편집위원, 부산유도회 신문 편집위원, 동래향교 유교인문학 아카데미 담당교수로서 창작과 비평을 통하여 대중과 더불어 호흡하는 인문학 강좌 및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창립된 한국하이쿠연맹의 사무총장도 맡고 계신데 현재 진행 사항을 말씀해주신다면?

여러 선생님들의 관심과 협조에 의해 2017년 4월 28일 한국하이쿠연맹 창립총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한국어 하이쿠를 통한 순수창작 활동으로 한국의 멋과 문화를 지역사회에 알리며 동시에 우리 한글 미학의 지평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자 남녀노소 각계각층 여러분들이 한국어 하이쿠를 창작함으로써 자연과 공존하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기여함이 본 연맹을 설립한 목적입니다.

초기 연맹 설립 준비단계에서 느낀 점은 하이쿠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영문학과 불문학 등 서구 문학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보이셨으나 유독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침묵을 유지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한일 간의 오랜 정치적 문제가 관련된 점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도 있으나 바로 그러한 선입견을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열광하는 국민문학 ‘하이쿠’를 넘어 세계문학의 한자리로 자리한 만큼 우리도 한국어 하이쿠를 매개로 하여 우리나라 각 지역 시조문학단체와 연계 및 국제화에 저희 연맹이 금후 기여할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환으로 한국하이쿠연맹은 올 하반기 일본의 前 문부 대신 및 동경대 총장을 역임한 아리마 아키오(有馬朗人) 회장님이 이끄는 国際俳句交流協会(Haiku International Association: HIA)와 2017년 교류협정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국내 광역시권 다문화 센터와 교류협정을 맺어 한국어 하이쿠를 통한 문화행사 및 교육활동도 펼쳐나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인문학 강의는 어떤 주제로 하고 계신지?

한마디로 잡학이죠. 학부 때 관광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석사까지 경영학적 시선에서 관광을 보았습니다만 관광은 ‘놀이하는 인간’을 전제로 하죠.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관광의 조건은 가처분 소득의 확보, 여가의 확보, 정보 능력이 갖추어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결코 쉽지 않은 문화현상이죠.

대중관광이란 말을 합니다만 문제는 그 대중에 누락되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2% 사람들이 향유하던 관광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 지점이 바로 미학이 개입하고 인문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거죠. 단순히 경제단위로서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해야만 합니다.

일본 미학 역시 그 일환으로 보시면 돼요. 일본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접근하며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참으로 우리와 일본을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예컨대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과 포르투갈, 러시아와 폴란드 등 이웃한 그들의 실상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당연히 충돌과 화해가 반복하죠. 그러나 그것이 표상적인 것에 머물 것인지 영원히 풀리지 않은 뫼비우스의 띠가 될 것인지는 결국 양국의 인간들이죠.

서구의 잣대들 들이대어 르네상스와 한국, 전혀 엉뚱한 주제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요. 지금은 ‘길 위의 인문학’이라고 해서 조선 통신사를 중심으로 특히 중인 이하 역관들의 활약과 그들의 사상을 엿볼 기회를 가지고 있어요.

예컨대 중국 중심의 중화적 세계관은 저 유럽의 라틴어 지배적 담론을 벗어나기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 역시 漢字 문화권에서 자의든 타의든 한자를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발현시켜 온 것은 맞습니다.

그 점에서는 상당히 고마운 일이죠. 문제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남의 것이죠. 우리말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살다, 반갑다, 기쁘다’ 등등 왜 이렇게 약속하고 발화하는 것인지 하는 등이죠. 언어와 관련된 문화읽기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 ‘작가’가 된 것은 원래부터의 꿈이었나?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인가?

원래 꿈은 많았어요. 여고 음악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시골의사도 되고 싶었습니다.

문학으로 전향한 것은 일본중세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입니다. 일본의 정형시가 와카(和歌)를 공부하면서 그들의 정형성에 담겨있는 미의 개념들을 하나씩 추적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막연한 의미를 단어로 재현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러한 미적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사유가 가능하게 한 것이죠.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일본에서는 歌論이라고 하는 이론서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시대에 때라 연구자에 따라 다양한 시각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특정한 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기본적인 토양이 탄탄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또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여유이며 공유의식, 혹은 소통이라고 할까요?

그러다 어느 날 ‘시조’가 문득 떠올랐어요. 정형시가라면 당연히 우리 것, ‘時節歌調’를 그동안 마음에서 우리 자신들이 폐기해 온 것은 아닐까 반성도 되었고요. 은퇴한 분들의 전유물 인양 치부되어 왔으니까요.

광복 이후 시조는 2차례 부흥운동이 일어났어요. 무엇보다 제게 소중한 인연은 한국 시조 시단의 원로이신 금당 박달수 선생님과의 만남입니다. 등단과 관계없이 시조가 무엇이며 왜 시조를 써야 하는 지 당신을 설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3시간은 시조를 위해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죠. 단순한 단어의 배열과 조합이 아니라는 거죠. 시인의 탄생은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새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양장시를 주장하시는 선생님, 전연희 선생님 등의 가르침으로 시조의 기본 틀을 가까스로 깨치고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습작으로 와카를 지어왔습니다. 충분히 감정을 다스려 적셔내어 고전의 세계에 침잠하듯이 차분히 운율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발화해 왔죠. 시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지금의 표현대로라면 고시조 혹은 평시조라고 하죠. 아마 제가 고전문학을 전공하다 보니 늘 고전을 찾게 됩니다. 하이쿠와 와카의 경우 단형시라는 공통점과 유사한 우리 고유의 시가이니까요. 소중히 해야죠. 우리 그릇이지 않습니까?

   
 

-‘문학평론’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시조를 읽고 창작하는 가운데 이론에 대한 갈증 또한 증폭되어 갔습니다. 혹시 형식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죠.

언어는 생명이 있으므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항상 변하는 법입니다. 이것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지속의 가능성은 점점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워한다면 그리고 관심에서 멀어진다면 그것은 살아 있으나 죽은 박제와 같은 것으로 전락해 버릴 테니까요.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읽기와 노래하기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평론을 쓴다고 하여 시조의 생명을 구원하는 거룩한 작업이 아니라 적어도 시조를 창작하는 시인의 입장에서 솔직한 담론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종래 자유시 평론처럼 평론가의 시선에서 또한 서구의 잣대로 시조를 보기보다 시조시인으로서 애정을 가지고 시조를 평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조시인으로 등단함과 동시에 평론을 준비한 것이 다행스럽게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평론가로 등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론은 주로 어떤 것을 다루고 있으며, 평론에서 추구하는 것은?

‘시조 평론과 제3의 시선-예술과 기술 사이를 사유하다’, ‘일본의 미의식-식물적 세계관에서 잉태된 미학적 개념들’ 등에서 볼 수 있듯 시조 평론, 미학과 문화 등 인문학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룹니다.

평론의 목적은 ‘살리기’입니다. 작가를 살리고 독자를 살리고 평론가를 살리는 작업입니다. 삼자가 같이 죽으려 하는 무모하고 어리석음을 반성해야 한다는 거죠.

살리기 위해서는 때로는 독한 약도 처방해야 하는 것이며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절단하고 상처를 내기도 하죠. 그런 과정에서 이론을 들이대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그 이론에도 작품을 평가한 경우 현학적 혹은 냉혹한 표현을 안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질은 ‘살리기’에 있다는 말씀을 한 번 더 드리고 싶어요.

모두의 공생을 목적으로 평론가는 고민합니다. 적어도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첨이 아닌 것이죠.

진실을 말하고 거짓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논할 수 있는 것이 평론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평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 위에 군림하려거나 작가에 예속되는 평론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시조 몇 수를 읽었다. 정형시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순수하게 느껴졌다. 유교적, 불교적 느낌도 나고…

‘자유와 순수’까지라고 감히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적어도 ‘불교적, 유가적’ 색채는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적 영향은 아무래도 제 스승님의 가르침이 큰 것으로 생각합니다. 金堂 박달수 선생님은 작품은 대부분 불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조용한 산사의 불타가 아닌 생활과 함께하고 녹아있는 불가의 이야기인 셈이죠. 그러한 불교적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인연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유가적 느낌이란 동래 향교의 영향인 듯 그렇게 생각합니다. 21세기 儒林으로서 경전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획득하는 시정이 산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구하는 가치관, 문학관은?

제 문학의 출발은 금당 박달수 선생님(한국동서문학 고문)과 나눈 불교적 사유에서 출발하였고 평론의 경우 다원주의를 수용함으로써 경계의 밖을 볼 수 있는 민병도 선생님(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국제시조협회 이사장)과의 담론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조우하는 시조의 가치판단과 선택의 지점은 오랫동안 누적된 오류를 묵도하는 좌절감과 분노의 표류를 끝내고 이제는 새로운 언어로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양식화된 작가와 독자를 생산하는 시조 비평의 박제화 된 질서 공간 속에서 시언어를 통한 진정한 소통은 ‘잃음’을 통해 감각의 확장을 체득하기 위해서 참으로 진부한 표현입니다만 전 용두사미(龍頭蛇尾)를 떠 올려봅니다. 누구나 처음은 거창하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 아시다시피 이 말은「戰國策(전국책)」秦策(진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는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이죠. 그것이 저의 가치관이라면 가치관이고요. 문학관 역시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유명 작가가 아니라 제 갈 길을 가는 문학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말입니다.

 

 

-시조시인으로서 현재 우리 문단, ‘시조계’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 점, 평론가와 작가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시조문학의 경우 서구적 사유의 틀이 이입되어 ‘창조’라는 개념이 새롭게 호출됩니다.

개성이 바탕이 되어 창조의 길임에도 이를 수량화 혹은 기술적으로 가르쳐 통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순수한 예술이 아니라 기술입니다. 매 순간 서로 다른 감정을 마음대로 배출할 수 있는 것이 창조의 바탕이며 이것이 곧 정체성으로 이어집니다.

동일한 시조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희로애락에 따라 변화무쌍한 법이죠. 일본의 와카(和歌)와 하이쿠(俳句)와 같이 계승되는 것이 ‘풍토’가 수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를 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작과 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욕심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시조시인으로 등단 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분기별로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하루아침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조 역시 출발점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어요. 기교와 철학을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듯 배출했습니다만 어느새 어려운 시가 되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거든요. ‘자각’입니다.

훌륭한 어른들과 시인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지금도 작업에 열중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시어를 고민하고 계시겠죠. 다만 소통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대별로 장르로 사회로 국가로 세계로 말입니다.

스스로 가둔 것 같은 느낌을 떨구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조의 국제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내부로는 다문화가정에 대하여 시조를 교육하기보다는 알려야 한다는 거죠. 한국의 자연스러운 호흡법이 바로 시조라는 것을요.

아마 수험생을 둔 학부모에게 시조가 정식 과목으로 채택된다면 바로 물리적으로나마 부흥이 될 수 있겠죠. 창작과 비평은 시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는 ‘시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계획과 목표를 따로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늘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먹고살기 위한 물리적 공부에만 갇히지 말고 나를 찾고 타자를 인정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얼마 전 여러 선생님들과 의기투합하여 설립한 한국하이쿠연맹 또한 하이쿠 공부가 목적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지향합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잘 살펴 꽃을 피우고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모든 과정을 행복이란 단어로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난 행복하다, 하였다 등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하이쿠연맹은 한·일간의 교류만을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가 아닙니다. 누구나가 함께 할 수 있는 문학공간입니다.

가장 짧은 시형의 하이쿠를 한국어로 재현하여 우리말의 아름다운 보석들을 찾아가는 소중한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도 하나씩 공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해주세요.

누구나 말은 쉽게 합니다. 그에 알맞은 행동을 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동료가 필요하고 스승이 필요하게 됩니다. 철저한 자기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늘 들어왔던 말입니다. 진실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를 논박하기 위해 이데아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감각 세계의 너머에 있는 실재이자 모든 사물의 원형을 이데아(idea)라고 본다면 너무 삭막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상대주의로 욕을 먹은 소피스트는 영원히 죄인이 되어야 할까요?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겁니까? 넓게는 문학, 더 넓게는 예술 일반에 대한 불신은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구가 규정한 이른바 에토스와 로고스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대부분의 삶은 파토스에 의해 영위되어 희로애락을 재현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인간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적어도 자신의 삶과 동등한 타자의 삶에 대하여 솔직해보자는 겁니다.

 

에필로그

안수현 교수님은 요즘 콩트를 쓰고 있다고 했다. 콩트(Conte) 역시 한국과 일본의 교차 지점을 모색하려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 특별한 장르에 구애되지 않는 다양한 글쓰기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시절, 학교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는 안 교수님.

1960년 대 말 영국 브리티시 락에 대항한 미국의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의 대표곡 ‘Nothing is the same’을 가장 좋아하며 지금도 즐겨 듣는다고 했다.

끝으로 교수님이 생각하는 인문학은 무엇인지 물었다. 안 교수님은 “인문학은 인간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거창한 철학을 가지고 음악에 대해 몰입하는 것보다 아이처럼 그냥 듣고 흉내 내는 매 순간들을 즐기는 것, 그게 인문학에 가깝다고 하셨다. 즉 모방을 통해 진실을 가리는 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외로운 길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

끝으로 앞으로 집중하고, 추구해갈 분야에 대해 여쭈었다. 안 교수님은 ‘문학(文學)의 계보’에 대해 말했다. 한자문화권에서 문학은 학술 일반을 의미했다는 것. 예컨대 문학은 논어 선진편에서 덕행, 언어, 정사와 더불어 ‘공문사과(孔門四科)’의 하나로 학술을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또한 학술의 개념에서 지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수에서 말하는 문학(Literature)의 번역은 근대 일본의 작품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우선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글을 전개할 수 있겠어요? 생활 속에서 가끔씩 떠오르는 발상들을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것들을 포착하여 글로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안 교수님과의 인터뷰는 방송 글을 쓰면서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내게도 좋은 길잡이가 돼줄 것 같다.

 

안수현

인문학자(일본중세시학) / 문학평론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연구원

E-mail: waka1162@pusan.ac.kr

Mobile: 010-4154-9096

 

김영주 방송작가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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