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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이어리] 봄을 기다리는 달동네철거 직전, 상도동 밤골마을을 가다
글,사진/임윤식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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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7  16: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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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집을 떠나면 집도 스스로 기운을 뺀다. 주인이 이사를 가고 비워지게 되자마자 집은 급속히 황폐화되어 흉물스러운 폐가로 변한다. 사람의 온기와 보살핌이 그만큼 중요하다.

   
 

상도동 밤골마을은 서울에서 몇 남지않은 달동네다. 달동네는 산등성이나 산비탈 따위의 높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말한다. 하늘이 가까워 달이 더 잘 보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이제 서울의 경우 그런 동네들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산비탈 마을은 아니지만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인 구룡마을도 머지않아 철거될 예정이다. 상도동 밤골마을도 곧 철거되고 그곳에 아파트단지나 현대주택이 들어설 것 같다.

상도역 1번 출구에서 나와 U턴한 후 지하차도를 지나면 바로 좌측으로 보이는 동네가 밤골마을이다. 구룡사 슈퍼 인근 골목들에 붉은 글씨로 어지럽게 쓰여진 ‘철거’라는 글자들이 밤골마을의 현실을 실감나게 한다. 밤골마을을 먼저 둘러본 지인의 말에 의하면 밤골상회 옆에 경비초소가 있는데 경비들이 사진 찍거나 폐가에 맘대로 드나드는 걸 제한하고 있다고 하여 조심스럽기도 하다. 좁은 골목길이 황폐하기 그지없으나 벽 곳곳에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그나마 긴장감을 완화시킨다. 초입담벽에 손에 감자를 든 소녀가 소년에게 “너 봄감자가 제일 맛있단다”라고 하며 손을 내미는 벽화가 보인다. 벽화는 마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많아진다.

문이 열려있어 폐가 중 한 집 마당에 들어서 본다. 깨진 유리창과 가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아직 쓸만한 자전거도 눈에 띈다. 오래 쓴 중고이거나 고장나 있기에 놔두고 떠났겠지. 2층 옥상으로 올라가면 동네가 더 잘 보인다. 비탈에 층층이 늘어선 집들, 달동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더 잘 살기 위해 그동안 살던 집을 떠났겠지만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진다. 철거대상마을의 일반적인 성향을 보면 주민 대부분은 어렵게 살거나 막무가내로 눌러앉은 이주민들이고 땅이나 실제 집 주인은 부유층들인 경우가 많다. 필자가 몇 년전 구룡마을을 취재한 적이 있는 데 그곳 역시 거주주민들 상당수는 돈이 없어 그냥 눌러앉은 사람들이고 땅의 반 가까이는 특정 개인의 소유로 되어 있다. 결국 재개발되면 살던 주민들은 조그만 임대아파트라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떼돈을 버는 사람은 땅 소유주인 특정 개인이다. 이곳 상도동 밤골마을은 어떤 소유구조인지 몰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곳 역시 일부 주민들은 어려운 처지에서 집을 비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처음에는 길을 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려 본다. 길이 있을 것 같아 끝까지 가보면 막혀 있다. 산비탈 정상 능선에 올라가 봐야 동네가 잘 보일 것 같은데 찾기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비탈 오르는 길을 찾아낸다. 발품을 팔다보니 나만의 길이 열린다. 궁즉 통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폐가의 모습이 비참하다. 낡은 천막이나 판자로 겨우 비바람을 막아온 지붕도 비참하게 망가져 있다. 텅 빈 동네 여기저기에 고양이들만 어슬렁거린다. 고양이들이 철거촌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집 대문 곳곳에는 경고판이 붙어 있다. “본 가옥은 철거예정가옥으로 무단출입시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아래번호로 연락바랍니다. 010-7210-9575”라고 쓰여져 있다. 집안에는 들어가지못하고 담 너머로 집안을 기웃거리는 것으로 다할 수 밖에 없다.

골목길을 오르다 보니 문이 열려진 집 마당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졸고 있다. 한참 바라보니 고양이가 낌새를 채고 빤히 필자를 바라본다. 살살 다가가 본다. 집 현관으로 들어간다. 집안은 못쓰는 소파, 벽장 등으로 어지럽기 그지없다. 고양이는 창문틀로 올라가 고개를 돌린다. 겨울햇살이 쓰레기하치장같은 응접실 바닥에 깔린다. 고양이 털이 역광으로 반짝인다.

골목을 따라 오르다 보니 정상능선이 가까워진다. 일부 무너진 집 벽에 남아있는 주소, 양녕로 32길 **이다. 밤골마을은 도로명이 양녕로로 되어 있다. 동네 가까이에 양녕대군 묘소와 사당인 지덕사가 있어서 붙여진 도로명일 것 같다. 누군가는 이곳 일대가 양녕대군 후손들 소유 땅이었다고 하는 데 확인된 정보는 아니다. 어쨌든 이 동네는 양녕대군과 연고가 깊은 곳이다.

시야가 훤히 트이고 동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삼면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아늑한 동네다. 마을 정면에는 아파트 단지가 가로막고 있고 그 뒤로 63빌딩도 희미하게 보인다. 조망이 꽤 좋다. 예쁜 벽화들이 계속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감을 따는 어린이들의 모습 뒤로 강아지가 함께 있는 평화롭고 동화같은 그림, 꽃나무 아래에서 소녀가 그네타고 있는 그림, 아이들이 마을골목을 오르면서 장난하며 즐거워하는 그림, 소년소녀들의 밤골 사다리 타기 그림, 푸른 풀밭 위를 노란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두 소녀의 그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예쁜 벽화들이 많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용화사라는 조그만 절을 만나고, 다시 좌측 능선길로 내려가면 ‘밤골상회’에 이른다. 이 가게는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둘리슈퍼연쇄점’으로 나왔던 곳으로 유명하다.

   
 

밤골마을 벽화에는 특히 봄을 기다리고 사랑과 행복을 그리워하는 듯한 그림과 이야기가 자주 눈에 띈다. ‘봄날-소정 혜정 임경, 사랑 가득한 집, 의자에 앉아 봄날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 꽃피는 밤골, 우리의 봄날을 같이 누리다, 벚꽃 그늘 아래’ 등. ‘이렇듯 흐린 날에 누가 문앞에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따롱 사랑해’ 등 서정적이고 시적인 표현도 보인다. 벽화를 그린 화가들이 동네를 떠나는 주민들의 꿈과 희망을 대신 표현해준 것 같다.

밤골마을 벽화는 ‘드림인공존’이라는 단체가 기획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여 2년 여에 걸쳐 그려진 작품들이라 한다. 재개발로 곧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될 밤골동네를 아름답게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벽화그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2016년 11월말에는 2016년 상도2동 주민참여예산지원사업으로 ‘밤골 별별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이 전시회에는 벽화와 함께 기와에 그려진 250점의 그림작품도 전시됐다. 이 작품들은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기 때문에 마을이 완전히 철거될 때까지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다닥다닥 붙어 사람냄새 나게 옹기종기 살던 밤골, 옆집 아기우는 소리, 밥먹는 소리까지 부담없이 들어주는 작은 동네, 좁은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소꿉장난하고 강아지가 뛰어놀던 그곳, 밤나무가 많아 밤골이라 이름붙여졌다는 동네가 이제 곧 사라질 예정이다. 대신 도시화∙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아파트나 현대주택이 들어설 것이다. 그들에겐 고단하고 아픈 삶이었을지 모르지만 사진 속에서 우린 그 마을, 그때 주민들을 기억하고 함께 그리워할 것이다.

글,사진/임윤식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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