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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승채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유명 정치인 및 연예인 분장 대부분 그녀의 손 거친다
임윤식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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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4  13: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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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이제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년 전 만해도 외국의 음악과 패션은 물론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등도 우리가 즐겨하고 따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한류스타들이 일본, 중국 동남아까지 점령을 하고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음악, 음식, 패션, 미용 등 이웃나라 일본과 13억 중국도 이제는 한국 따라하기에 바쁘다고 하니 가히 한류의 춘추전국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로 퍼져가는 한류문화의 뒤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보이지않는 손이 있다. 바로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들. 연예인들은 물론 대통령, 유명 정치인 등도 거의 반드시 이들의 손에 의해 분장이 이루어지고 스타일이 매만져진다.

   
 

마침 우연한 기회에 우리나라의 메이크업 스타일계를 이끌어오고 있는 ‘국승채’라는 분을 소개받게 됐다. 그녀는 현재 (주)온에어뷰티 대표로 있으며, 공식 타이틀은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방송계의 1세대 스타일리스트로서 유명 정치인은 물론, 방송3사의 아나운서, 가수들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책임져오고 있고, 또한 다양한 상품유형의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홈쇼핑의 분장실과도 그 역사의 시작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그녀는 2000년부터 한류 붐이 시작되면서 해외에도 진출, 한국풍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 교육을 받고자하는 많은 나라의 방송사에 정기적으로 교육을 다니기도 했다. 일본NHK, 태국 CH 5 TV, 중국 상해TV, 동방 CJ 등에 이어 베트남호치민TV까지 방송국의 아나운서들과 앵커들에게 한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 교육을 해마다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의 광복이후 화장문화변천사에 관한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여 이 분야에서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가을바람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어느 날, 국화꽃 향기가 나는 그녀를 만나 메이크업 스타일에 관한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미인이세요?

국승채: 어머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화장에 신경을 좀 써서 그런가 봅니다(웃음).

 

- 먼저 어릴 적 얘기 좀 해주시죠?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요?

국승채: 밝고 쾌활했어요. 호기심과 욕심도 많았고 지기 싫어해서 늘 친구들을 몰고 다녔죠. 욕심많은 저희 엄마덕분에 남들 다니는 학원은 모조리 다 다닌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 아예 연기자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죠. 진주개천예술제와 동랑청소년연극제 등 많은 대회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어요. 여고를 다녔는데 남자주인공역할을 많이 해서 학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웃음). 당연히 대학도 연극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 그런데 왜 연기를 계속하지 않았나요?

국승채: 연기자가 되려고 했던 꿈은 대학에 입학하자 마자 바로 접게 됐어요. 이미 인기란걸 어릴 때 나름 제 작은 세상에서 맛봤고, 그게 달콤하지만 계속 될 수 없다 란걸 일찍 깨달았던 것 같아요. 대학 입학하고 나서 더 크고 멋진 세상이 보였거든요.

 

- 방송메이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국승채: 제 대학동기가 KBS의 어린이 프로그램 MC를 했는데, 친구 따라 방송국을 갔다가 보통은 뭐 탤런트 시험 봐서 합격했다 어쨌다 스토리가 많은데 전 프로그램 코디를 하게 됐죠. 방송사에서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MC나 출연자들의 메이크업을 해주고 의상을 챙기고 하는 일을 대학 다니면서부터 한 거예요. TV 방송 끝무렵 올라가는 스탭 스크롤에 처음으로 ‘코디네이터 국승채’라는 이름을 올린거죠. 대학1학년이던 88년 그때만 해도 그런 직업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어린이 프로에서 일하다가 점점 소문이 나서 뉴스 등 보도프로그램, 교양프로에 예능까지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라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많은 방송일을 했어요 그러다 92년에 대학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왔어요. 유학 후 9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회사를 만들고 방송 일을 하게 됩니다. 신문을 펼치면 편성표에 나온 방송3사일을 거의 저희 회사가 맡아 했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어요. 1995년부터 제가 담당했던 mbc의 ‘출발비디오여행’은 2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제가 프로그램 코디를 하고 있답니다. 그 즈음 한국에서 최초로 저한테 메이크업 비디오를 만들자는 감독님이 계셨어요. 참 죽어라 앞뒤 안 가리고 일만 열심히 했지 뭘 몰랐었을 때라서요. 그때 저도 비디오를 만들고 미용실이라도 차려서 방송국들에서의 인맥을 동원해 홍보를 제대로 했다면 아마 큰돈을 벌었을까요? (웃음)

   
 

- 연예인들을 메이크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국승채: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1990년대에는 방송국의 공채 탤런트로 뽑히면 전속이란 이름으로 2년간의 연수기간이 있었어요. 지금은 대단한 스타들도 그 당시에는 아주 작은 단역으로 활동을 했었을 때거든요. 현재 제가 운영하고 있는 (주)온에어뷰티의 전신인 ‘크레용’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한참 방송3사에서 코디네이터란 이름으로 메이크업과 의상스타일링을 하고 있을 때 2박3일 정도 시간을 내야하는 좀 특별한 드라마를 해마다 했었어요.

MBC공채탤런트들의 2년간의 연수가 끝나면 졸업기념(?)으로 기수 모두 출연하는 드라마를 찍었거든요. 22기 심은하, 차인표부터 23기 안재욱, 최지우, 24기 정준호, 이성재, 25기 안재환, 강성연까지 지금은 내놓으라 하는 스타들이 그 당시 배우로서 첫발을 내딛는 작품의 분장을 맡아 해주었어요.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얼굴보기도 힘든 데 배우로서 성장한 그들을 가끔 TV나 영화를 통해 볼 때면 그때의 풋풋했던 모습으로 저에게 메이크업 받던 모습들이 생각이 나곤 해요.

 

-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이미지 메이킹에 관한 강의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국승채: 1997년에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한국에서도 각 방송사에서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회를 시작했었죠. SBS와 MBC는 각 방송사의 분장실장님들이 담당하셨고 KBS에서는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제가 선정이 됐었어요. 메이크업 뿐만 아니라 의상코디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찾았는데 제가 적임자로 뽑힌 거죠. 이때 한국에서는 첫 TV토론회다 보니 모든 언론의 귀추가 주목되어 토론회의 스타일리스트인 저한테까지도 많은 관심을 보였었죠(웃음). 메이크업 하다보니 정말 성격이 다 나오시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되셨음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정말 분장받으실 때 예의도 있으셨고 따뜻하셨어요. 이 인연으로 그 뒤로 메이크업과 의상 등 컨설팅도 해드렸구요. 이 토론회를 계기로 정치쪽에 계신 분들과 많은 일을 했어요.

 

- 정치인들 이미지메이킹을 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는지?

국승채: 기억에 남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요. 특히 제가 만나 뵙고나서 팬이 된 정치인이 계세요. 바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님이세요. MBC 엄기영 전 사장님과의 인연으로 도와드리러 가게 됐는데요. 하필 그 당시 김도지사님이 언론에 안좋게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고 있을 때라 저 역시 지나가는 기사를 보고 왠지 까다롭고 무서운 분이 아닐까 선입견을 갖고 뵈었었거든요. 사모님도 함께 만나 뵙고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의상, 안경테의 모양 등 다양한 스타일링을 제안해드리면서 말씀을 나누다보니 사적인 모습에서 너무나 친근하고 따뜻한 모습을 이내 느낄 수 있었답니다. 처음엔 매우 사무적으로 대하셨는데 얼마 지나자 살짝 입에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답이 나오더라구요. 김도지사님께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메이크업 헤어를 어떻게 하고 옷을 어떻게 코디하는가 보다 더 크고 필요한 이미지 변신은 바로 입가의 미소구나를 깨닫게 된거죠. 스타일리스트로서가 아니라 한사람의 유권자로서 저도 미소 띤 김도지사님이라면 저의 소중한 한 표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느껴지는 바를 소신 있게 말씀드렸었죠. 김도지사님께서 그뒤로 미디어를 통해 미소짓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나름 보람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멋진 옷, 메이크업 헤어보다 따뜻한 미소가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 가수 남진 씨의 스타일링을 거의 도맡아 하시는 것 같은데요?

국승채: 남진 선생님과의 인연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평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 스타로 살면서도 혼자 메이크업하고 헤어하시다가 제가 선생님의 최초 코디거든요. 10년 전에 미국공연 같이 갈 때 만 해도 제가 바꿔드린 헤어가 너무 젊어 보인다고 다시 본인스타일로 손보셨을 정도로 고지식하셨지만... 지금은 큰 공연이나 방송 스케줄이 잡히시면 제 스케줄을 먼저 물어보실 정도로 저를 믿고 따라주시고 제 메이크업과 헤어를 좋아하시죠. 공연이나 방송 끝나고 항상 젊고 멋지게 해줘 너무 든든하고 고맙다고 긴 감사 문자를 잊지 않고 보내주시는 정말 정많은 분이세요. 남진쌤 팬분들도 우리오빠 한살이라도 더 젊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갓김치, 총각김치에 각종 밑반찬까지 시시철철 보내주실 정도로 남진쌤 부럽지않게 엄청 사랑받고 있답니다. 하하

 

- 베트남에서는 전문MC로 프로그램도 하셨다고?

국승채: 2000년부터 한류 붐이 시작되면서 한국풍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 교육을 받고자하는 많은 나라의 방송사에 정기적으로 교육을 다녔어요. 일본NHK, 태국 CH5TV, 중국 상해TV, 동방CJ 등에 이어 2012년부터는 호치민 국영TV의 아나운서들과 앵커들에게 방송메이크업과 스타일링 교육을 해마다 갔어요. 아오자이에 긴 생머리로 뉴스도 하는 베트남스러운 촌스러움을 한국식 세련됨으로 바꾸어주는데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그래도 한 두가지씩 변해가는 모습에 너무나 보람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호치민 국영TV에서 베트남판 '겟잇뷰티' 같은 '뷰티워너비' 방송의 전문가 MC로 제의받고 몇 달 동안 원고도 직접 쓰고 시연준비며 베트남 유명배우들과 함께 녹화도 몇 번 하던 중에 한국에서의 박사공부를 하는 걸 병행했었는데 도저히 공부하면서는 절대 일주일에 한 번씩 베트남에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고심 끝에 방송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하던 박사공부는 한살이라도 더 어릴 때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오랜 고민 끝에 포기했죠. 그때 그 방송을 하고 제 이름의 화장품 브랜드도 만들고 마침 모 대학에서 베트남에 체류하면서 교수로 와달라는 달콤한 제의가 많았었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공부를 접고 베트남에서 K뷰티의 선두주자가 되는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에요. 하지만 결심은 공부 쪽이었죠. 이왕이면 교수가 되던, 방송을 하던 제 분야에서 최고과정의 학위를 받고나서 제대로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요.

   
 

- 코디네이터로서 현장에서 일하며 공부하기도 힘든데 더군다나 박사과정이라면 엄청난 공부량을 요구하는 레벨인데 그 힘든 걸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국승채: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큰 특강을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되니 현장에서 만의 경험만 가지고 누군가 앞에 전문가로 서서 강의를 한다는 게 참 부족하다 느껴지더라고요. 저를 좀 채워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죠. 분장이나 헤어는 이미 방송국에서 일한 경험 만으로 충분히 제가 가르쳐야할 입장인거구요. 그 외의 좀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싶어 석사는 한성대대학원에서 뷰티색채학을 했구요. 박사는 뷰티관련 전공 있는 대학원 중 그래도 가장 수준 있는 학교를 선택했죠.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의류학과에서 토탈 코디네이션을 전공했습니다. 수료하고 2년 넘게 인체에 대한 미학스터디를 했어요. 메를로퐁티, 크리스쉴링, 미셀푸코 그리고 하이데거까지. 그 덕분에 꽤 많은 미학책을 읽었는데요. 어렵게 공부한 것만큼 박사논문을 쓰면서 정말 큰 디딤돌이 돼주더라구요. 제 논문을 쓰는데도 그렇지만 특히 저도 광운대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하는 석사들을 가르치다보니 단순한 현장에서의 경험을 넘어 미학을 통해 강의내용도 풍부해지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깊이있는 강의를 할 수 있게 된 것같아요. 어려워서 힘은 들었었지만 공부할 수 있게 이끌어주신 저희 지도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지난 6월에 국제학술지인 (대한미용학회)지에 “광복 이후 한국과 일본의 메이크업 특징 비교” 라는 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있는데, 그러한 논문을 쓰게된 계기와 연구는 지금도 진행중이신가요?

국승채: 광복이후로 한국과 일본의 화장문화변천사에 관해 비교한 논문은 제가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양국을 다 분석해야하니 참고문헌 번역 만도 큰일이고 자료 역시 찾는 일이 쉽지는 않으니까요. 문화라는 것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화장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인접국가인 일본의 화장문화도 함께 비교해서 알아보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연구이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이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합니다.

 

- 박사학위 받고난 후 계획은?

국승채: 최종 심사를 남겨놓은 박사논문을 힘들게 마무리하고 있는데요. 논문마치고 학위를 받고나면 정말 많은 계획들이 있죠. 먼저 잠을 실컷 잘 거예요(웃음). 수많은 방송프로그램과 콘서트 광고 등 많은 현장일을 하며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로서 강의도 하고 20년 넘게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요. 이제 좀더 큰 세상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박사공부 때문에 포기했던 해외에서의 일들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미 출연제안을 받은 뷰티관련 방송도 진행할거구요. 제 이름의 화장품도 만들고 싶습니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국제 뷰티아카데미도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엔 중국에서 하는 뷰티박람회와 미용기능대회를 유치하려고 요즘 미팅중이거든요. 앞으로 얼마나 더 크고 멋진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저도 무척 기대가 되고 설렌답니다. 아직도 뜨겁게 끓고 있는 제 열정에 힘들게 공부한 만큼 박사라는 타이틀도 큰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남들 앞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게 마냥 좋았던 어린아이.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사람들을 멋지게 만들어 주는 일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 이제는 대한민국의 화장문화를 평정하는 자리에까지 올라섰다. 한류를 이끌어 가고 있는 한국의 드라마, 멋진 아이돌, 그리고 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이미 세계화가 된지도 오래전이다. 그 중심에서 메이크업, 헤어, 의상은 절대적으로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분야이다. 이 분야의 발전이 곧 한류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한류의 중심에는 국승채 스타일리스트 같은 전문가들이 버티고 있다. 그녀의 꿈은 한류의 더 넓은 세계화라고 했다. 국승채 그녀의 꿈이 빠른 시일 내에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윤식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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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주
대단하시네요
국승채!
이름에서도 남다른 포스가 느껴집니다
이런분들이 계시기에 우리의 한류산업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것같습니다

(2016-11-08 11: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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