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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篇’의 시인 서정춘 시화전 <봄, 파르티잔>-시와 그림, 결혼하다
임윤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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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7  15: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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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길다고 꼭 겨울인가? 단 몇일 만이라도 추위가 냉동고처럼 짜릿해야 제대로 된 겨울이지. 서정춘은 바로 혹한(酷寒) 같은 겨울시인이다. 그의 시는 대개 짧지만 한줄 한줄이 북극 추위처럼 뼈속까지 파고든다.

그 서정춘 시인이 2015.12.15-12.28까지 인사동 유카리화랑에서 <봄, 파르티잔>이란 제목으로 시화전을 열고 있다. 시는 서정춘 시인의 작품이지만 그림은 유명화가 및 사진가들의 그림과 사진이다. 갤러리 초대전으로 예술가들이 기꺼이 그의 주옥같은 시에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이제하, 마광수, 박불똥, 장경호, 이홍원, 최울가, 임창열, 김구, 이영미, 김영미, 이성우, 고은아, 안동해, 성륜, 박명선, 김기호, 김진하, 박윤호, 조명환, 정영신, 서길헌, 김서경, 이지녀, 이선현, 강미숙, 주성준, 주재환, 전강호, 유명선 등 화가, 조각가, 사진가, 소설가 등 29명의 작가들이 참가해서 다양한 그림과 시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마광수도 멋진 그림으로 참여해 줘 눈길을 끈다.

시들아

그림들아

여지껏 따로 놀았겠다.

오늘은 주례사도 없이

너희들의 합동결혼식날

서정춘 시인은 늘 옷을 벗고 다닌다. 그에게는 가식이나 숨김의 옷이 없다.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대표명시선100 <서정춘 편-캘린더 호수>의 시인 프로필을 보자. ‘1941년 순천여고 담벽 옆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그 여학교에서 들려온 명곡에 귀를 귀울이며 사춘기를 보냈다. 신문배달, 서점 점원, 군청 사환으로 순천매산중고등학교(야간부)를 졸업하고 대학을 실패한 뒤 공사판 잡부로, 철공소 수련공, 떠돌이 마늘 장사와 남대문시장 생선가게 배달꾼 노릇을 했다. 춥고 배고픈 시절, 지원입대를 하고 만기를 마쳤다.’. 아, 대한민국 예술가 중에 이처럼 솔직한 문인이 있던가?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되어 박용래문학상, 백자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최고의 시인중 한 사람이 된 이 마당에서도 여전히 부끄러움없이 빨가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시인. 그가 바로 서정춘이다.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시 <봄, 파르티잔> 전문

불과 세줄의 행간에는 수백권에 달하는 한반도 전사(戰史)가 쓰여져 있고, 피비린내 나는 지리산 능선이 안개 속에 출렁인다. 눈보라치는 계곡으로 숨 헐떡이며 숨어드는 남부군들. 동상에 걸린 손과 발은 그대로 지옥이다. 이제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 없는 그 수많은 주검들이 시 행간행간에 무덤도 없이 그대로 묻혀 있다.

‘빨치산’은 원래 ‘파르티잔’이란 러시아어를 우리 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서정춘 시인은 어두웠던 6․25동란의 기억을 ‘파르티잔’이란 생소한 이름을 붙여 새롭게 탄생시켰다. 빨치산들에게도 봄을 그려줬다. 지리산 골짜기로 떠난 건 봄일 수도 있고 파르티잔이어도 좋다. 서정춘 시인이 그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꽃 그려 새 만 울린 게 아니라 필자도 울렸다.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시 <죽편 1> 전문

푸른 기차를 타고 백년이나 걸려 가는 길. 대나무의 삶은 우리의 인생길이기도 하다. 불과 다섯줄의 싯귀에 100년의 마디가 옹이가 되어 굳어 있다.

2014년 <백자예술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장인 허영자 시인(전 한국시인협회장)은 심사평에서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는 천생의 예술가, 천품의 시인이 더러 있다. 서정춘 시인은 흔치않은 천성의 시인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 분의 시에서는 실로 예리한 감각, 민감한 감성, 깊은 통찰력, 전광석화 같은 직관력, 따뜻하고 순수한 심안, 그리고 착한 삶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한다.

허영자 시인은 또 “운율이 시의 한 특성이라고 함은 상식이다. 서시인의 시에는 그 만의 가락이 있다. 그 가락이 흥이 되고 내용에 걸맞는 옷이 되어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순수서정에의 지향이 서 시인 시의 주된 정신인 점도 요즈음 시류에서는 매우 드물고 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찬양도 비판도 저항도 은유와 상징이라는 정서의 순화를 거치고 무섭게 가려뽑은 시어로 응축시키는 시인의 전인적 투척이 놀랍다”고 강조한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시 <30년 전, 1959년 겨울> 전문

서정춘 시인은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짚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같았다고 1949년 하필이면 어린 나의 일기장에 침 발린 연필 글씨로 씌여 있었다/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고도 썼다. 슬픔을 기쁨으로 치환하는 함축의 묘가 정말 놀랍다.

나여

푸르러 맑은 날과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죽기에도 좋은 날

이런 날은 산불같은

꽃상여 좀 타봤으면,

시 <봄날> 전문

서정춘 시인은 어릴 적 구겨지고 퇴색한 흑백사진을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다닌다. 그 빛바랜 사진 속에는 그가 살던 초가집이 보이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잘 생긴 젊은이 하나도 만날 수 있다. 동네 언덕빼기에 올라 혼자 순천여교 교정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며 시인의 꿈을 키우고 있었을 고교시절 서정춘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도 그가 시인협회 행사자리 등에서 마지못해 ‘봄날은 간다’, ‘부용산’ 등을 부르면 듣는 이 모두가 자지러진다. 그는 한량이요 만능 재주꾼이기도 하다. 먼 훗날 그가 꽃상여를 타면 그는 상여 위에서 덩실덩실 춤추면서 노래 ‘봄날은 간다’를 목청껏 불러제칠 것 같다.

그렇다. 하늘은 늘 푸른 폐허였고

나는 하늘 아래 밑줄만 그읏고 살았다

마치, 누구의 가난만은

하늘과 평등했음을 기념하듯이

시 <수평선 보며> 전문

고은(高銀) 시인은 어떤 시가 잘 쓴 시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두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많이 읽히는 시이고 또 하나는 어딘가 숨어 박힌 시예요. 시적 불운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서정춘이 같은 놈,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서 진국인 놈, 아무 매력도 없는데 순금 같은 놈”.

그녀의

눈치 빠른 몸짓처럼

찍소리 하나 없는

댓돌 위의 정물처럼

굽 높은

힐처럼

시 <새> 전문

시집 <봄, 파르티잔>에서 서정춘 시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不是一番/寒徹骨/爭得梅花/撲鼻香(한번 추위가 뼛 속까지 스미지 않고는 어찌 진한 매화의 향기를 얻으리). 물론, 당나라 고승 왕벽의 시다. 이 시를 칸딘스키가 추상화론을 쓰면서 인용한 것이다. 뼈가 시린 고통으로 구상을 거치지않고 추상화를 그린 것에 대한 충고다. 이 또한 내 시 정신의 화두다”.

임윤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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