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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전쟁영웅, 김홍일 장군가장 어려운 시기에 구국투혼 발휘한 명장
노진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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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5  10: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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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중국군에서 소장까지 승진한 김홍일 장군은 광복 후 귀국해 국군 중장까지 달고 전역한 후 자유중국대사로 임명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 9월 그를 자유중국 대사로 임명한 자리에서 “김 장군이 군인으로서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오성 장군으로 제대시켜야 하는데 우리 군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고 해서 그리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 장군은 우리나라 별 세 개에다 중국 별 두 개를 보태면 오성장군과 마찬가지”라며 그이 군공을 치하하며 위로했다.

김홍일 장군은 1898년 9월 단동 대안에 위치 평북 용천군 양하면 오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사서(四書)를 독파했고 부친이 세운 풍곡제라는 학교에서 신학문을 익혔다. 그후 만주 봉천의 소학교에 다니다가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에 편입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때 조만식 선생이 교장이었다. 졸업 후 그는 황해도 신천의 경신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귀주강무학교에 입학한 후 다양한 직책을 역임하다 1939년 중국군 소장에 진급했다.

그는 1945년 광복군사령부 참모장이 돼 중국군에 나와 1948년 8월 28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뒤늦게 귀국했다. 1949년 2월 4일 채병덕 이응준 손원일과 함께 군군 소장으로 진급해 육군사관학교장을 지낸 후 육군참모총장 때 6.25를 맞았다. 서울 방어의 최후보루인 미아리전선이 무너지자 채병덕 총장은 중국군에서 대부대 지휘 경험이 잇는 유일한 장군인 김홍일 소장에게 시흥지구전투사령관의 막중한 직책을 줘 한강 방어임무를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후퇴한 병력을 수습해 3개 혼성사단을 긴급편성 6월28일부터 7월3일까지 북한군의 한강도하를 저지해 미군증원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육군본부의 지휘 부담을 줄이고 사단을 효율적으로 지휘하기 위해 국군최초로 1군단이 창설되자 군단장에 임명돼 낙동강 방어선에 이르는 치열한 지연전을 전개, 이를 훌륭히 수행했다.

 

 

 

노진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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