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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포럼 유희태 대표] “어머니는 사랑의 빚을 기도로 갚았다”
박관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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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5  11: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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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과 낚시 채널 등에서 곧잘 등장하는 대마도를 보노라면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조선 세종 때 이종무 장군과 함께 대마도를 정벌하러 갔던 유습 장군이 저의 선조이신 관계로 더 관심을 갖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일본 치하에서 벗어났을 때 제대로 대처했다면 대마도도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지난 2월 9일 전북 완주에서 만난 민들레포럼 유희태 대표는 먼저 대마도 얘기부터 꺼냈다.

이처럼 대중에 알려지면서 일본의 대마도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점차 관심을 가지면서 현지로 여행을 가거나 역사 공부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

실로 대마도는 부산에서 49㎞밖에 안 되지만 일본 본토에서는 149㎞나 된다. 게다가 1945년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은 포츠담선언대로 대마도를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을 알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 일문구의사 선양사업회 장학금 시상

독립유공자,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

앞에서 유희태 대표가 밝힌 좌군도 절제사 유습(柳濕·1367~1439) 장군은 세종 원년(1419년) 이종무 장군(총사령관), 이지실 장군 등과 함께 대마도 정벌에 참여한 인물.

유희태 대표는 “조선 수군 1만 728명은 전함 227척으로 거제도 견내량을 출발해 대마도를 정벌하고 왜구의 항복을 받았다. 이에 따라 유습 장군은 고려·조선 시대의 무신으로 조선 개국 후 상장군에 특진했으며, 전라도 도절제사와 중군 도총제 등을 지냈다”며 “세종대왕은 유습 장군이 별세하자 가장 좋은 묏 자리를 찾게 했다. 그래서 당대 풍수가들은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달이실) 동리마을 중고개 부근의 옥토 망월형의 명당에 유 장군의 묏 자리를 잡았다. 해마다 이곳에서 유습 장군의 개선 행렬이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습 장군의 민족 기상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유습장군개선축제추진위원회가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는 매년 가을 비봉면 달이실 공원에서 내월리 5개 마을 달이실합굿축제추진위원회와 달이실풍장패가 공동 주관하는 ‘달이실 합굿축제’와 함께 열린다.

더욱이 유희태 대표는 유습 장군의 후손 중 9명이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 집안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붙여진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는 완주 비봉면 방곡마을의 집성촌에서 배출된 독립유공자로 유치복·유태석·유영석·유명석·유준석·유현석·유연청·유연풍·유연봉 등 9명의 의병장을 의미한다.

유 대표는 독립유공자의 자손으로 2001년부터 선양사업회를 결성해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추모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선양사업회는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완주지역 학생들을 초청했고, 민들레포럼에서 주관한 민들레 홀씨 장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시간도 가진다.

유영석 의사의 증손인 유희태 선양사업회 회장은 “최근 들어 국민의 역사인식이 높아지고 혁신정부의 자세와 관심이 달라짐을 느낀다”며 “이에 발맞춰 우리 선양사업회도 순국선열에 대한 인식을 높여가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 봉사활동에 나선 유희태 대표

봉사정신 담은 장학사업

유 대표는 민들레의 꽃말처럼 사람들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도 나눔과 섬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신앙인이기도 한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며 40여 년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살아왔다.

“내가 살아온 길,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저 ‘나눔의 삶’이라고 얘기합니다.”

고흥유씨 일문구의사의 계승자인 유 대표는 민들레가 홀씨를 날려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피우며 강한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지역발전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가 나눔과 봉사를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둔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유 대표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교회에 나가셨던 어머니는 교회의 목사가 어렵게 사는 것을 안쓰럽게 여겨 종종 감자나 고구마, 여비 등을 챙겨드렸다고 한다”며 “목사님은 그것이 너무도 고마워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하셨다고 했다. 사랑의 빚을 기도로 갚으신 것이다”고 말했다.

힘든 시절에도 나누는 삶을 당연시한 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이 결국 아들에게 물려준 큰 유산이었던 셈이다.

유희태 대표는 평소 생각대로 전문적인 인재육성(장학사업), 사회봉사(사회복지사업), 정책개발(서민경제 대안 발굴 등)을 위해 뜻이 같은 사람들과 2009년 ‘민들레포럼’을 설립했다.

민들레포럼은 곳곳에 ‘희망의 홀씨’를 퍼뜨리는, 우리 사회에 희망을 전파하기 위한 순수 비영리 단체다.

유 대표는 전문성·나눔·신뢰를 바탕으로 교육·봉사·토론·체육 활동 등을 함께하며 건강하고 유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포럼에는 정치·사회·경제·복지·체육 분야의 각계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3000여 회원의 정성을 모아 2017년까지 대학생과 고등학생 위주로 301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행사 때는 화환 대신 쌀을 기증받아 3470포대(10㎏ 기준)를 불우이웃에 전달해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밖에 다양한 봉사활동과 더불어 정책 세미나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 국회에서 ‘대한민국 행복나눔봉사대상’을 연속 수상했다.

유희태 대표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경쟁사회의 분위기를 보며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을 항상 떠올려본다”며 “행운보다는 행복의 가치를 중요히 여기겠다. 여러분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민들레의 봉사 씨앗을 널리 퍼뜨려나가겠다”고 말했다.

   
▲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유희태 대표

사회활동… 가풍의 영향

무엇보다 유희태 대표의 활발한 사회활동은 가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는 고흥유씨인 그의 증조부 가족 9명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들 가족은 그 공훈을 인정받아 1983년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참여자 9인을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라고 부르는데, 이분들은 1905년 맺은 을사늑약에 분개한 유치복과 함께 행동했다.

유치복은 즉결 처형당했고, 나머지 8인은 옥사하거나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들은 광복 후에도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유 대표가 향교 유림 등 지역 원로와 마을 노인들의 증언 등 자료를 수집해 공적서 제출 등 현창사업을 벌여 국가에서 인정받았다.

유 대표는 “10여 년 현충일마다 민들레동산에서 행사를 가졌다가 2012년부터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추모행사를 개최했다”며 “이는 주변에서 순국선열의 독립·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순국선열의 날에 여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유희태 대표는 ‘민들레 전도사’에 어울리듯 민들레처럼 끈질기고 강인하게 살아왔다. 400원의 장학금을 받아 다닐 만큼 대학 진학이 어려워 상업학교(전주상고)를 졸업하고 1972년 은행에 취직했다. 29살 때 기업은행 노동조합 위원장에 선출돼 금융노련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1995년 첫 공개모집 지점장에 뽑혀 9년간 서울·경기도의 지점을 맡아 늘 영업실적평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그는 본부장을 거쳐 2007년 부행장에 올랐다. 고졸인 데다, 그것도 노조위원장 출신이 국책 기업은행의 부행장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유 대표는 2009년 기업은행 부행장을 퇴직한 후 고향 완주로 내려와 민들레동산을 설립해 민들레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청정지역 완주 비봉에서 채취한 민들레로 민들레 차·국수·엑기스·커피·발효음료, 물 없이 사용하는 민들레 샴푸와 보디클렌저 등을 개발·판매 중이다.

민들레동산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민들레는 한국유기농협회에서도 인정받았다.

“민들레동산은 제품만 생산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힘들거나 어려울 때 이곳에 찾아와 쉬면서 다시 한번 도전의식을 가질 수 있는 장소, 특히 기도하며 영성을 회복하는 믿음의 동산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 유희태 대표는 장학사업에 적극적이다.

완주군수 출마 이유 뚜렷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퇴직 후 여러 대학에 특강 다니면서 민들레 씨앗처럼 살다 보니 ‘현장에 답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은행에서 일하며 서민과 중소기업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했고, 노조위원장과 사용자 입장에서 두루 일했던 만큼 저는 생활정치를 표방합니다. 혹독한 연습을 두 번 해봤으니 이젠 그릇된 정치문화와 풍토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완주군수 출마 이유와 각오에 대해 유 대표는 “완주군은 유리한 입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침체 분위기다. 산단의 주력인 현대차와 하이트공장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근교농업의 대표적 브랜드인 로컬푸드 또한 새로운 혁신이 필요한 때다”며 “이런 상황에서 완주에는 경제를 살릴 경제군수, 새로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경제통’으로 불리는 경험을 내 고향 완주 경제를 살리는 데 쓰고자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완주군의 시급한 현안과 해결방안에 대해 “우선 완주 산단을 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지자체 차원의 지원책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며 “경쟁력이 약해진 로컬푸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농촌소득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군민의 소득을 고루 올릴 비책으로 완주경제를 살릴 ‘만경강의 기적’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첫째, 완주 문화관광 1000만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 농업직불금 30% 상향 지원 등 농촌 살리기 프로젝트다. 셋째, 완주산단 활성화와 테크노밸리 친환경 첨단산업 육성이다. 넷째, 교통·유통망을 개선해 완주군 생산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완주문화관광 1000만 시대를 여는 연계사업이 계획되어 있다.

유희태 대표는 완주군을 위한 특수 시책으로 먼저 완주문화관광 1000만 시대를 여는 연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고산휴양림·수목원·경천저수지·장군봉·삼례문화예술촌·상관힐링숲 모악산 등의 지역 관광자원 개발을 확대하고, 완주학(完州學) 프로젝트 사업을 발표했다.

또 브랜드를 가진 완주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는 시책도 추진할 계획이다. 완주곶감, 봉동생강, 삼례딸기, 고산한우, 경천대추 등 이미 브랜드 가치가 있는 완주 생산물의 특화 시책으로 생산농가의 소득을 향상시킬 방안이다.

유 대표는 자신만의 장점에 대해 “초보 은행원에서 기업은행 부행장까지 37년간, 경제의 흐름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은행에서 근무했다는 ‘경제 경험’이다. 자본의 흐름과 경제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해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기업의 경제성장 방안을 통찰했던 ‘금융경제통’ 직책이 은연중 ‘경제전문가’로 성장시켰다”며 “한때 노동조합 위원장 시절 노사상생협력 모범으로 화제가 됐다. 이런 경영과 노동조합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의 기업환경을 만들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경제전문가로서 침체된 완주경제의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제시하겠다. 기업은행 부행장으로 익히 국내 대부분의 금융인사, 기업주와 인연을 맺었다”며 “이러한 인연으로 호남 기업들의 민원을 수십 건 해결해줬고, 전북 기업들의 지원 역할을 알게 모르게 해왔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시스템과 금융 경제의 흐름도 잘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결국 경제 경험은 ‘경제군수’로서 완주경제의 활력소가 되었으며, 완주를 전국 최고의 부자도시로 만들 비전과 계획이 있다고 자신했다.

유희태 대표는 1953년 완주군 비봉면 출생으로 전주 제일고등학교(전주상고) 졸업,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전 기업은행 부행장, 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맡고 있다.

유 대표는 2008년 2월 후배 직장인과 청년들에게 그의 도전하는 삶의 체험과 좋은 얘기들을 전해주고 싶어 『마음에 꿈을 크게 그려라』 『포용력』 등 책을 펴냈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기업은행 부행장이 된 유희태의 꿈과 도전 이야기를 담은 『마음에 꿈을 크게 그려라』는 23쇄 발간된 베스트셀러다.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운동가, 지역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CEO, 자녀들이 다 성장하여 52살에 여자 쌍둥이 아이를 입양해 아빠가 된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가 유희태 대표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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