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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예술이 만나면 또 다른 세계가?유머와 위트가 있는 곳,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동화의 나라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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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07  09: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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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회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는 예술의 활동영역이 더 이상 순수창작 활동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렇듯 권율 화백은 예술이 사회현실과 면밀하게 연결되어 다양한 산업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범위는 디자인에서 건축, 조경, 생활도구, 공구, 식료품, 광고기획, 여가생활, 가정생활, 도시환경 등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권 화백은 그렇다고 예술가의 삶을 현실에 가둬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예술가는 현실에 바닥을 딛고 있지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줄도 알아야 한다고. 기발한 아이디어, 독특한 발상으로 정신적‧예술적 영토를 확장,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사람들에게 감동도 전하고 자칫 권태로울 수 있는 일상적인 삶에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화가하면 그림만 그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 물론 화가는 그림도 그리지만 예술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생활인테리어에서 건축, 가구 등 우리생활에 밀접한 소재들을 재해석해서 독특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하는 등 실생활에 기여하는 작업도 한다.

   
 
현재 권 화백은 제주도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독특하고 기발한 집짓기를 하고 있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일상의 집도 유머와 생명력이 넘치는 집으로 재해석되고 변모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뭐랄까. 어릴 적 동화책에서 꿈꾸던 예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로 인도한다고 할까. 그의 작품은 건축이던 가구이던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딱딱한 현실에 염증을 느낄 때, 권 화백이 만든 작고 예쁜 집을 둘러본다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동화의 세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동화책 속에 주인공도 되었다가 공주도 되고 왕자도 되는… 현실에서 좌절된 꿈과 사랑을 치유 받고 위로받는 느낌도 든다. 실제로 그가 만든 집은 5~10평정도. 우리가 흔히 보는 다양한 사물들을 재해석해 지은 집들이다. 그래서 그의 집중에서는 물고기모양, 운동화모양, 꽃돼지모양, 자동차모양 등 모양도 다양하고 이채롭다 못해 인상적이다. 그래도 아담하고 작지만 싱크대와 화장실 등 갖출 것은 다 갖춘 생활공간이다.

메마르고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훌쩍 제주도로 떠나 동화 같은 세계에 며칠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 딱 안성마춤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든 집중에는 스파와 찜질방까지 즐길 수 있는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건물도 있다. 숲과 바람 그리고 한 번쯤 신선하면서도 달콤한 시간을 갖고 싶다면 가볼만 하다.

   
 
그는 제주도에 살면서 ‘무탄트 사람들’을 만들었다. 세계의 유명한 건물들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축소화시켜 세계적인 명소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창안했다. 물론 건물은 5~10평 규모로 생활이 충분히 가능한 원룸으로 말이다. 거기다 재미있는 건물, 유머와 위트가 있는 건물 50동을 더해 총 300여동의 만들 계획이었다. 세계인들이 제주도에 모여서 함께 어울러 사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다부진 포부다.

 

유럽에서 전시회를 열어 명성을 다지다

 

권율 화백은 대학교 2년 재학 중 프랑스 유학길에 나섰다. 그가 서양화를 공부한 곳은 비종에꼴데보자르다. 그 당시 한국 유학생들이 그렇듯 권 화백도 힘겨운 유학시절을 보냈다. 낯설기만 했던 프랑스. 문화도 음식도 다르고 생활양식도 달랐다. 외롭고 힘겨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떨 때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 지 몰라서 애를 먹었던 때도 있었다. 심지어 동물 그림을 보고 사온 개 사료, 고양이 사료를 잘못 먹고 탈이 난 적도 있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요리천국이다. 그러나 아무리 산해진미가 많다 한들 잘 모를 때는 선뜩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계란 프라이만 주구 창창 먹을 때도 있었다. 음식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배우겠다는 열정만은 남달랐다. 저녁에는 식당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학구열에 불탔다. 잠자는 시간이 겨우 하루에 2~3시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교육시스템은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던 하지 않던 주입식이기 때문에 수업을 진행하고 졸업 때가 되면 거의 졸업을 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교사가 가르치지 않는 시스템이다. 또 숙제를 내주었을 때 2번 이상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퇴학 처분될 정도로 엄격했다. 게다가 공부량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많았다.

그는 “프랑스는 합리적인 나라인 것 같다. 공부하기 싫으면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국이 배울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업을 마치자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서는 건축재료예술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파리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생활고를 겪어야 했던 것.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려서 몽마르뜨에 가서 팔았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그림을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싸게 팔고 싶지는 않았다.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행운은 혜성같이 온다고 했던가? 어느 날 누군가가 그의 그림을 보더니 초상화를 그리라고 권유했다. 그야말로 삶의 희망과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초상화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한 달에 2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푸른 잔디밭이 너머로 세느강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집도 마련했다.

 

순수예술에 가두지 않고 실용에까지 예술혼 불태워

 

건축재료예술학교는 벽화에서부터 조명까지 우리가 생활하는 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르쳤다. 건물을 지을 때는 빛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조명 설치와 벽장, 문, 스텐인드그라스까지 배웠다. 스테인드그라스의 경우 한 작품 만드는 데 꼬박 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리는 것도 있었다.

   
 
유럽에서 전시회를 열기 시작해서 국제전시 등을 거쳐 명성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돌연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차일만 화백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차일만 화백은 그의 정신적 스승이다. 차일만 화백은 미술상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피플 투 피플’상을 수여받은 화가다. 이 상은 150국가가 참여해서 2년에 한 번씩 그 해의 예술가에게 주는 상이다. 차일만 화백은 미국 레이건 대통령에게 이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현재 권율 화백은 화폭 속에 그의 예술을 가두지 않고, 건축에서 실용에까지 종횡무진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문의 : 010-2306-6658>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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