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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graffiti), 낙서인가 예술인가?홍대앞 등 거리 낙서그림들에 대한 단상
임윤식(시인, 사진작가)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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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1  14: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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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외설, 예술과 낙서의 경계는 무엇일까? 가령 누드사진을 볼 때 어느 단계가 예술적 영역이고 어느 수준이 외설적이라고 봐야 하나? 추상화나 낙서도 마찬가지. 현대 예술에서는 미술이든 사진이든 문학이든 점점 무너져가는 각 장르의 경계가 애매하기 그지없다.

   
 

미술 전문지식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입체주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나 추상표현주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마크 로스코 등의 전시작품을 볼 때 마다 늘 난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흔히 농담으로 “피카소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가 잠깐 낙서를 하면 불후의 예술작품이 되지만 우리들이 그리면 그냥 휴지가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이를 비유하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아름다운 한 여인이 파리의 카페에 앉아 있는 파블로 피카소에게 다가와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피카소는 몇 분 만에 여인의 모습을 스케치해 주었다. 그리고 50만 프랑(약 8천만 원)을 요구했다. 여자가 놀라서 항의했다.

"아니,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잖아요?" 피카소가 대답했다.

"천만에요. 나는 당신을 그리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뒷골목 벽이나 건물 등에 울긋불긋 현란하게 그려진 낙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낙서인지 그림인지 도저히 분간하기 어려운 벽화들. 이런 류의 그림을 서양에서는 ‘그래피티(graffiti)’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벽 낙서그림들은 이미 생소하지가 않다. 젊은이들의 거리로 유명한 홍대앞에 가면 마치 외국의 뒷골목에 온 듯 그래피티 벽화들을 여기저기 볼 수 있으며, 신촌역 옆 터널길 등에도 그래피티 그림을 만날 수 있다. 그래피티와 성격은 다르지만 통영의 동피랑마을, 서울의 이화마을 등 거리는 이미 벽화가 대중화된지 오래다.

두산백과 등에 의하면, 그래피티(graffiti)의 어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라고 한다. 분무기(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spraycan art', 'aerosol art'라고도 부른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필자는 직장관계로 영국에서 4년간 산 적이 있는 데 런던의 대표적 산책로 중 하나인 테임즈 강변 소위 ‘여왕의 길(Queen’s Walk)‘ 에서조차 마치 전시장같은 거대한 그래피티 벽화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의 기원은 고대 동굴의 벽화나 이집트의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낙서에 가까운 그림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피티가 예술로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터라고 한다.

   
 

현대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라는 서명(tag)을 남긴 인물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서 낙서화가 범람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처음에는 반항적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人)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다.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그렸다. 이것들은 즉흥적·충동적이며 장난스럽고 상상력이 넘치는 것들이었다.

랩 음악과 브레이크 댄스를 즐겼던 이들은 거리의 벽, 경기장, 테니스장, 지하철 전동차 등 가리지 않고 그릴 수 있는 곳에 그림을 그렸다.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낙서가 큰 도시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래피티가 도시의 골칫거리에서 현대미술로서 자리잡은 것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공이 컸다.

바스키아는 정식 미술 수업을 받지 않았음에도 단번에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그는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어설퍼 보이는 그림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표현하였다. 주로 자전적이야기·흑인영웅·만화·해부학·낙서 기호·상징·죽음과 관련된 주제였다.

키스 해링(Keith Harring)은 아이콘화된 사물을 그리는 그래피티로 유명했다. 검은 종이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렸는데 주로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었다.

그래피티 미술은 1980년 '타임 스퀘어 쇼'에서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다. 해링·바스키아·리 퀴노니스·알레스 발라우리·앤드루·위튼·제파이어 등이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회였다. 또 시드니 자니스의 블루칩 갤러리에서는 '포스트 그래피티(Post Graffiti)'라는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해링의 《전시회》(1984), 《stop AIDS》, 바스키아의 《무제-붉은 남자 untitled-Red Man》(1981), 《호보 기호 Hobo Signs》(1982), 《무제-올랭피아의 하녀 Maid from Olympia》 등이 있다.

그라피티의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흔한 것은 창작한 사람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그라피티를 하면 작품에 자신의 이름 머릿글자를 남겨 꼬리표(tag)를 남기기도 한다. 그것은 꼭 자기 이름이 아니라 개인만이 아닌 암호와 같다. 페인트나 스프레이로 표현한다. 다른 형태로는 다양한 색상의 스프레이를 이용해서 재빨리 그림을 그려넣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속도에 그 의미를 두는 편이다.

   
 

더 복합적인 형태는 속칭 거친 표현법(wild style)으로 표현되는데 단어나 문자를 서로 연결하여 형이상학적 형태로 만든다거나 화살 형태의 문자를 그림 속에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표현된 경우는 그라피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보기가 힘들다. 의도적으로 벽 전체를 그라피티로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리지 않으려고 벽 전체에 롤러를 이용해서 그리기도 한다.

초기의 Graffiti는 지금과는 양상과는 매우 달랐다. "예술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낙서가 미술의 한 표현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2차대전 후부터 Modern Graffiti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Graffiti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Graffiti는 대중문화 속의 스타일로 얘기될 수 있을 뿐 '예술인가? 단순한 낙서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논점일 수 있으며 근자에서 도시미관과 맞물려 있어 대중 미술의 차원을 넘나들고 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그라피티는 전위 예술인데 이렇게 인식된 것은 적어도 1961년 스칸디나비아 비교 문화 연구소(the Scandinavian Institute of Comparative Vandalism ) 때부터로 보고 있다.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벽면에 표현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대화의 장을 만드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사실 그라피티의 활동이 대화를 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분열을 아우르는 데 있다고 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베를린 장벽의 경우인데 소련의 압력에 대하여 독일인들의 그라피티가 전체 벽을 뒤덮기도 했다. 독일의 통일 발표가 있기 1년 전인 1988년, 필자는 IMF총회 참석차 서베를린에 간 적이 있는 데 지금은 무너져 사라진 베를린장벽에 무수히 그려진 그래피티를 직접 목격하고 그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 적이 있다.

영국에서는 로빈 뱅크시(Robin Banksy 1974-)가 그라피티에 관련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재야 예술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경찰로의 연행을 피하기 위해 작품에는 그의 신상을 밝히지 않았다. 그의 그라피티에는 현실 속에 도사린 정치 권력, 엄숙주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기와 저항이 묻어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런던 시내 주변에서 볼 수 있으며 중동과 이스라엘에 있는 장벽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예를 들면 한쪽 벽에는 환상적인 해변이 있고 반대 편에는 산의 모습을 그려놓기도 하였다. 2000년에 전시회를 열었으며 최근에는 예술품으로 팔려나가기도 한다고 한다.

또, 미국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와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9~1990) 등이 그래피티 작가로 유명하다.

장-미셸 바스키아는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최초로 성공한 천재 그래피티 작가로 80년대의 제임스 딘 또는 검은 피카소라고 불린다. 27세인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그림은 마음의 정화, 실패한 종교, 엉터리 정치, 종교, 민족주의 등 사회에게 보내는 거침없는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키스해링 역시 미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간결한 선과 강렬한 원색,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낙서를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낙서를 통하여 뉴욕의 문화를 바꾸어놓은 예술가이다.

홍대 앞 거리 등에 어지럽게 그려진 그래피티 그림들.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래피티가 전위예술로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글,사진/임윤식)

*위에 게재된 사진들은 모두 필자가 직접 찍은 것이며, 그래피티 소개 주요내용은 두산백과 및 위키백과 등에서 주로 참고하여 재정리하였음을 밝혀둠.

임윤식(시인, 사진작가)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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