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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예 흐름 이끄는 동연회(東硯會) 최견 회장“2%의 아는 사람이 두려워 죽으라고 연습한다”
박관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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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6  15: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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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술(書藝術)은 한없이 깊고 넓은 분야로 부단한 노력과 끊임없는 탐구만이 지고(至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시문(詩文)과 서화(書畵)는 젊어서는 공교(工巧)하고 늙어서는 담박(淡泊)해야 하는데 공교함에 이르지 못하면서 어찌 담박하게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서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의 여정을 단적으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그때의 성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제철 과일이 싱그럽게 익어 가듯 쉼 없이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서단(書壇)의 새로운 전통을 세워 가는 일념으로 40여 년 동안 총 19회의 서예 전시를 이어가는 뿌리 깊은 친목단체가 있다. 바로 그 화제의 모임이 동연회(東硯會)이다.

지난달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동연회전(東硯會展)」을 찾아 동연회(東硯會) 회장인 만당(晩堂) 최견(崔熞) 서예가를 만나 보았다.

동연회의 전신은 우리나라 근대 서단의 최고 서예가로 평가받고 있는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1903~81)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은 학남(鶴南) 정환섭(鄭桓燮, 1926~2010) 선생의 제자들이 모여서 만든 ‘학남 서숙 전’이다.

1971년 출범한 동연회는 1973년 한자명을 ‘同硯會’에서 ‘東硯會’로 모임의 뜻을 넓게 변견하고 제1회 전시회를 국립홍보관에서 개최했다. 그 후 제11회까지 20여 년간 백상기념관, 신세계백화점 미술관, 아랍미술관, 예술의 전당 서예관 등에서 끊임없이 전시를 이어 왔다.

마침내 2001년 1월 동연회의 모습을 더 새롭게 하기 위해 제2기 출범 창립총회를 가진 후 2년마다 전시회를 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번 19회 동연회전은 동연회 회원 70여명이 참여해 총 80여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찬조 작품을 낸 서예가는 효당 김훈곤(曉堂 金勳坤), 여천 김정화(廬天 金正和) 등 2명이다.

또한 주요 출품 작가로 일곡 권순환(一曲 權純煥), 우연재 권영순(寓然齋 權寧順), 소백 김경현(小白 金慶顯), 남헌 김두철(南軒 金斗鐵), 소정 김미순(素庭 金美淳), 아산 김수용(我山 金洙龍), 초야 김순악(草野 金順岳), 여천 김영이(汝泉 金永伊), 편재 김완권(片齋 金完權), 장천 김한묵(長泉 金漢默), 유석 김형인(庾石 金衡仁), 우석 남궁수(竽石 南宮垂), 서하 유영남(沀荷 柳英男), 은천 유제숙(銀泉 柳濟淑), 문영 박남정(文咏 朴南庭), 목헌 신두현(木軒 申頭鉉), 율재 유상언(率栽 劉相彦), 위천 이동원(委川 李東遠), 수일재 이명석(守一齋 李命錫), 우촌 이선형(友村 李璿衡), 청유 이숙정(淸宥 李淑貞), 혜강 이정금(惠江 李貞金), 혜산 임춘선(蕙山 林春先), 소헌 임현순(小軒 任賢淳), 운정 전은숙(芸亭 田銀淑), 임계 전한숙(林溪 全漢淑), 소은 정희애(素誾 鄭熙愛), 도윤 채성수(道胤 蔡成洙), 만당 최견(晩堂 崔熞), 해인 최정현(海仁 崔丁鉉), 시촌 정순애(柹村 鄭順愛), 화천 형계순(和泉 邢桂順), 운정 홍성희(雲井 洪性熙), 윤하 홍종숙(允廈 洪鐘淑) 등이 도록에 작품을 올렸다.

   
 

배병휴 월간 경제풍월 회장도 전시장 찾아

지난달 21일 오후 5시 한국미술관에서 가진 개회식에는 최견 동연회 회장을 비롯해 효당 김훈곤 선생, 시중 변영문 선생, 국당 조성주 선생, 배병휴 월간 경제풍월 회장, 한국서예신문 김종태 발행인 등과 회원·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효당 김훈곤 고문은 “내빈 가족과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하신 회장 임원진께 감사드리며, 작품 준비를 위해 회원 여러분 고생 많았다”며 “소전 선생의 제자인 학남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선생의 위업을 이어받아 더욱 정진하고 열심히 함으로써 우리나라 서단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병휴 『월간 경제풍월』 회장은 “전시 작품을 보면서 뭔가 향기가 나고 아름다운 작품임은 느껴지는데 문외한인 탓에 이를 해석할 능력이 없다”며 “여러분의 작품이 앞으로 더 발전하는 데 존경과 신뢰를 보낸다”고 전했다.

이어 배 회장은 서예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가 문화 융성을 내세우는 데 비문화 체질인 사람들도 느껴질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문화 융성 정책이 아닐까 한다”며 “박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이 정책만큼은 잘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견 회장은 “40여년이란 만만치 않은 세월 속에 올해 열아홉번째 동연회전을 개최하게 됐다. 서예계에서 진행해 온 단체가 몇 있지만 우리 동연회 역시 만만찮은 햇수를 먹었다”며 “올 여름 무더운 더위 속에서도 서탁 위 벼루를 벗하며 회원 각자가 천착의 긴 시간을 들여 만든 작품들을 출품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했다.

최 회장은 조선시대 문장가인 이용휴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오로지 당일이 있을 뿐”이라며 “동연회 회원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서예술의 숭고한 경지에 분명히 다다를 것이라 믿는다”며 회원들께 더욱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끝으로 그는 “작품을 내놓을 때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매년 반복하면서 또 배워 나가면서 깨우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서예 역시 마찬가지다”며 “우리 회원들은 서예가 아름다운 벗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가주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다”고 말했다.

 

움직이는 듯한 상형문자 서체 감동

동연회전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을 음미하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줬다. 대개 천편일률적인 초서·행서가 아닌 전서·예서의 조형적인 서체에 담긴 오묘한 뜻을 찾는 것이 그랬다. 서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상형문자 작품이 색다른 감동을 전해 준다.

‘영생’과 ‘주기도문’을 특이하게 쓴 효당 김훈곤, ‘성경구’를 담은 운정 홍성희, ‘주기도문’과 ‘근검’을 쓴 초야 김순악 등 작가는 기독교의 교리를 접목한 점이 색다르게 전해졌다.

‘습(習)’과 ‘서(書)’를 특이한 상형문자로 표현한 만당 최견, ‘십장생’을 목판에 쓴 화천 형계순, 심오한 철학을 전해주는 듯한 ‘노자도덕경구’의 임계 전한숙, 한폭의 서화를 담은 ‘솔바람 푸른 향기’의 문영 박남정, 서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난정서구(蘭亭序句)’의 소백 김경현의 작품은 눈길을 한동안 사로잡는 묘한 힘이 있었다.

또한 다른 모든 작품들 역시 서폭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만큼 매력이 넘쳐났다. 그와 함께 이 한 장의 서체를 완성하기 위해 작가들이 그 얼마나 많은 연습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최견 회장, 한국서예협회 서울시 지회장 역임

현재 동연회를 이끌고 있는 최견 회장은 공직에 있던 스무 살 때부터 서예를 배워 이 모임의 역사와 거의 엇비슷한 서력(書曆)의 소유자이다. 처음에는 혼자 서예를 배우다가 점차 매력에 빠지면서 인사동 서예가로 나와 학남 정환섭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서도에 입문했다.

“자취방에서 혼자 붓글씨를 배우다가 인사동에 나와 전문적으로 배웠습니다. 1970년대는 서화가의 최고 절정기로 유명한 서예가 밑에는 수백명의 문하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90년대 들어 서예 인구가 급감한 것이죠.”

최견 회장은 이에 대한 원인으로 경제성장을 꼽았다. 일본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2만 달러까지는 정적인 문화가 유지되다가 그 이상이 되면서 동적인 문화로 빠지는 사회현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최 회장은 “이는 사회현상으로 어쩔 수 없는 변화이지만, 물론 구성원들이 제대로 못 지킨 탓도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예가도 3분의 1로 줄었다”며 “대개 진입은 쉽게 생각했다가 흩어지는데 동반자로서 취미를 제대로 갖기 힘들다. 3년 정도 하고 때려치우면 안 된다. 뭐든지 5년은 버텨야 한다. 서예는 혼자서 여가 문화 활동이 가능해서 좋다”고 밝혔다.

한때 한국철도청의 요직에서 근무했던 최 회장은 서예에 정진한 결과 현재는 중진작가로 자리 잡아 후학 양성은 물론 각종 문화센터에 특강을 나가고 있다.

최견 회장은 “요즘 인문학이 뜨고 있지만, 대중이 같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의 측면을 넓히는 것은 좋은데 서예 쪽이 아쉽다”며 “문화예술계와 일반 대중이 서로 교접하면서 소양을 올려주고 싶다. 선조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올려주는 데 이것만한 것이 없다. 제가 할 수 있는 카테고리 안에서 남은 인생에 하고 싶은 것이 그 분야이다”고 희망을 전했다.

최견 회장은 그동안 개인전은 물론 한중서예교류전, 국제서법교류대전(중국), 한독서예교류전 등 단체전에도 많이 참가했다.

한국서예협회 서울시 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협회 고문인 최 회장은 서울서예대전 운영위원장 및 심사위원장, 한국서예협회 이사, 대한민국서예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최견 회장은 “지금 서예의 근원적인 예술은 금문(金文), 즉 종정문(鐘鼎文)이다. 종정문은 중국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때의 옛 금석(金石) 붙이와 옛 그릇 붙이 따위에 새겨져 있는 고문(古文)이다”며 “지금 의사 전달 체계가 한자를 빌리지 않고 있지만 단순한 형상으로 빌린 전서와 예서에 집중한 전통이 오히려 현대미학과 잘 통한다”고 동연회의 큰 흐름과 취향을 설명했다.

이어 최 회장은 “우리 동연회는 전통적인 글씨보다 조형적이며 전희적인 성격의 서예를 추구한다”며 “비록 작품은 종이 한 장에서 한 번에 끝나지만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없이 연습한다. 수회에 걸쳐 글자도 바꿔 보고, 마음에 드는 서체를 구하기 위해 열흘은 물론 한 달 이상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 회장은 지금의 서예계가 분열된 아쉬운 얘기도 곁들였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선전, 국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서예대전 등의 역사를 말하면서 등단제도와 초대작가제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초대작가가 되려면 25점이 필요한데 입선은 1점, 특선은 3점, 대통령상과 장관상 등은 5점이 주어지다 보니 요원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어렵다 보니 대한민국미술협회 분과위원으로 있던 서예협회가 분열됐다고 귀띔했다.

 

잘 아는 2%를 위해 쓴다

최견 회장의 작품을 보면 그 내면에 담긴 문화의 다양성에 깜짝깜짝 놀라고 당혹스러운 상상에 빠지게 마련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보고 이런 느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에 그 실마리는 쉬이 풀렸다.

9형제 중 막내인 최 회장의 바로 앞의 형이 최학 소설가라는 데서 그 해답을 찾았다. 지난해까지 우송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학 교수는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했고, 1979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역사소설 『서북풍』이 당선돼 큰 주목을 받은 중견 소설가이다.

최견 작가의 작품을 보면 문득 살아 움직이는 서체와 오랫동안 대화를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이유를 드디어 안 것이다. 그 역시 형처럼 소설을 쓸 줄 아는 마력이 숨겨져 있었던 셈이다.

“그 당시 형과 함께 자취를 하던 때였죠. 형이 경향신문 마감일에 저에게 단편소설을 원고지에 옮겨 적으라고 해서 쓰다가 마감시간이 임박했지만 완성하지 못해 교정지의 뒤를 잘라 붙여 응모했습니다. 마침내 그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논란이 됐다가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한 나머지 당선작으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죠.”

결국 최견 회장이 최학 형 대신 대필해 준 소설이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니 어찌 보면 그 역시 준소설가(?) 자격증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2 때 어머니마저 잃은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공업고등학교 진학을 택했다. 그 후 부딪친 현실적인 일련의 삶 과정이 그의 작품 세계에 오롯이 함축돼 보기 드문 서체 작품으로 환생하는 것인 듯싶다.

최견 회장은 “이외수 소설가도 붓장난을 잘한다. 문화의 다양성을 겸하면 고수와 하수가 나온다. 그래서 서예는 종이의 함축성 의미 부여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며 “고흐 그림을 보면 눈물이 날 만큼 감동을 준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2%밖에 안 된다. 결국 그 2%를 위해 쓴다. 아는 사람이 두려워 죽으라고 연습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넘어서는 길이다”고 좀처럼 듣기 힘든 명언을 전했다.

“서예의 약점이 붓을 한 번에 찍찍 긋다 보니 정성이 안 들어가 보입니다. 그 뒤에 숨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수백 번 연습하고 연륜도 수십 년 쌓아온 것인데, 그 정성을 아무도 모릅니다.”

서체의 한 획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 연마해 왔다는 그의 말에 자못 옷깃이 여민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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