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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의 주무대 <월미도>를 가다전쟁포화로 초토화됐던 섬,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글,사진/임윤식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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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03  17: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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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기대 속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 함락,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된 대한민국.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모두의 반대 속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다. 성공확률 5,000:1,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 뿐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그 역사의 현장은 바로 인천앞바다 조그만 섬 <월미도>. 필자는 갑자기 그 섬의 오늘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육지와 이어져 굳이 섬이라 할 수 없지만 여전히 지명은 <월미도> 그대로다.

맥아더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에 놓인 가운데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전세를 바꿀 단 한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을 위해 인천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선다. 역사를 바꾼 비밀 연합작전, 그 시작은 바로 그들이었다. 1950년 9월 15일 자정, 작전명 ‘크로마이트’,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단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당하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후퇴하며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 전세를 단번에 뒤집을 작전이 1950년 9월 15일 자정 인천에서 시작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륙 작전으로 기록된 인천상륙작전. 하지만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모두가 알고 있는 드라마틱한 작전 이면에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숨겨진 실화를 조명, 새로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담아낸다. 인천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해군 첩보부대의 실화를 그린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과 규모감 있는 볼거리를 더해 극적 감동과 긴박감을 전한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7만 5천명의 연합군과 261척의 함정이 투입된 대규모 작전이지만 인천의 수로가 좁을 뿐 아니라 세계 최악의 조수간만차로 인해 상륙시간이 단 2시간만 가능한 악조건을 안고 있었다. 이에 성공확률 5,000:1의 불가능한 작전으로 모두의 반대에 부딪혔던 것. 그럼에도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며 전세를 역전시켰던 숨겨진 주역들의 이야기를 그린 <인천상륙작전>은 마음을 울리는 묵직한 드라마와 긴박감 넘치는 전개,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올 여름, 관객들을 가슴 뛰게 한다. 맥아더 장군의 대북 첩보작전 ‘X-RAY’를 수행하는 해군 첩보부대를 비롯해 그들과 함께 인천상륙을 돕게 되는 켈로 부대(KLO - Korea Liaison Office 한국인으로 구성된 연합군 소속의 스파이 부대)까지 그 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인천상륙작전 속 또 다른 영웅들의 활약상이 스크린을 통해 되살아난다.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이야기는 북한에서도 이미 <월미도>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다. 섬이름을 그대로 살린 북한 영화 <월미도>는 1983년 제작, 인민군 1개 포병 중대가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를 방어함으로써 3일간의 시간을 얻어 낙동강에 갔던 인민군 부대들이 무사히 후퇴했다고 선전해왔다. 또한 “월미도 영웅 전사들을 따라 배우자”는 식의 구호들을 만들어 인민의 희생정신을 독려하면서 체제 우호성 선전에 이용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월미도는 면적 0.7㎢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해발 105m의 월미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긴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지형이다. 월미도라는 명칭은 반달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月尾’라 이름붙였다고 전해지지만, 섬 소개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 고지도에 ‘얼도(孼島’, ‘어을미도(於乙味島)’라는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사람들이 불렀던 고유어지명을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월미도’라는 이름으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백제 이후 해상교역이 활발하던 고려에 이르기까지 월미도는 영종도와 함께 인천 앞바다를 오가는 주요한 교통로 구실을 하였고,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후에는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 가는 새로운 루트인 월미도에 월미행궁을 세우기도 하였다. 개항기에 들어 외국의 선박들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주요한 정박지로 외국인들에겐 ‘로즈섬(Rose Island)’으로 알려졌는데, 지정학적인 위치 탓에 여러차례 수난을 겪었다. 월미도가 육지와 최초로 연결된 것은 1906년 일본군이 임시로 가설한 철교를 통해서이다. 1918년 북성지구에서 월미도에 이르는 왕복2차선 제방둑길이 축조되고, 이후 각종 관광시설이 들어서면서 경인지역 최대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군의 ‘해안경비대’ 기지가 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 된 까닭에 포격에 의해 아름다운 섬 풍광이 초토화되었으며, 한국전쟁 이후 군부대가 주둔하여 약 50년 동안 군사기지로 사용하다가 2001년에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월미도를 가는 방법은 대중교통의 경우 인천역에서 내리면 제일 빠르다. 인천역에서 내려 걸어들어가면 약 30분 정도,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버스(2,10,23,45번)를 타고 들어가도 좋다. 인천역 주변은 볼거리, 먹을 거리도 많은 곳이다. 역 바로 앞에 차이나 타운과 자유공원이 있고, 북성포구가 위치해 있으며, 동화마을도 있다. 월미도 안에는 월미공원과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인천역은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개통된 곳이기도 하다. 즉,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인천역 간 33.8km 구간의 경인철도이다. 당시 도보로 12시간 걸리던 서울과 인천 간을 1시간 30분 거리로 줄이면서 서울과 인천이 1일생활권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차이나 타운 입구에는 ‘패루(牌樓)’라고 부르는 중국식 전통대문이 서 있어 한 눈에 차이나타운임을 알 수 있다. 차이나 타운에 설치된 3개의 패루는 그 명칭이 각각 중화가(中華街), 선린문(善隣門), 인화문(仁華門)이라 쓰여져 있다. 차이나 타운은 개항 후 1884년 청국조계지가 형성되면서 12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한국 속의 작은 중국’이다. 또, 차이나 타운을 지나 자유공원에 올라서면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자유공원은 1888년 경에 조성된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처음엔 만국공원, 일제 강점기 때는 서공원으로 불렸고, 한국전쟁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고 자유공원이라 칭하게 되었다.

인천역 사거리에서 월미도 쪽으로 도로표지판을 따라 조금 가면 8부두주차장 사거리에 이르고 월미도 입구라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대한제분 앞 북성포구 입구인 이곳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첫 번째 표지석인 “맥아더길‘이라는 안내석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950.9.15 새벽 맥아더 장군이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3곳의 상륙지점(적색해안, 청색해안, 녹색해안) 중 한 지점이다. 인천상륙작전표지석 및 기념비는 이곳 이외에도 월미도유람선매표소 옆(녹색해안,Green Beach) 및 월미테마파크 앞에도 세워져 있다.

사거리에서 모노레일을 계속 따라 가면 ‘월미은하레일’ 건물을 만나고 월미공원 입구에 이른다. 월미은하레일은 월미도 섬 전체를 도는 모노레일로 월미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이미 6년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시험운행 중 중대사고가 발생, 현재까지 가동을 못하고 소송에 휘말려있는 실정이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월미도를 돌아보자.

월미공원은 울창한 숲으로 보존되고 있는 월미산과 그 정상에서 시가지와 인천앞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외국인이 많이 찾는 한국전통정원, 월미문화관, 우리민족의 이민사를 전시하고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월미공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좌측으로 한국전통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옛 정원 양식을 상징적으로 재현해 놓은 공간으로 ‘정(庭)’과 ‘원(園)’으로 구분하여 재현하였다. 정(庭)은 궁권정원, 별서정원, 민가정원으로 구분 조성하였고, 원(園)은 구곡(九曲)으로 표현하였다. 궁궐정원으로는 부용지, 애련지 등을 재현하였고, 별서정원으로는 소쇄원과 국담원, 서석지 등을, 민가정원으로는 양진당과 전통민가, 채원 등을 조성하였다. 구곡으로는 무이구곡의 의미를 조형화한 월미원, 월휴담, 월미폭포 등을 곳곳에 도입하여 휴게 및 경관 감상을 용이하도록 하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초토화됐던 월미도는 66년이 지난 지금은 숲과 자연생태가 되살아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으며, 둘레길, 오름길 등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시민들의 산책 및 휴식공간으로 훌륭하게 재탄생하였다.

공원안내소에서부터 섬둘레를 한바퀴 도는 월미둘레길도 좋고 월미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숲오름길도 아늑하기 그지없다. 경사가 완만하여 별부담없이 오를 수 있는 코스이다. 시간여유가 있거나 건강에 이상이 없을 경우 걸어서 천천히 둘레길 전체를 돌아보기를 권하지만, 정상 오르기가 부담스러울 경우 ‘물범카’라고 부르는 관광카를 타도 좋다. 2014년에 인천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가 물범이어서 물범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월미둘레길은 총 2.3km, 공원안내소-돈대삼거리-정상광장까지 오르는 산마루길은 1.23km(전망대까지는 1.5km) 등으로 코스가 짧은 편이다. 공원안내소에서 월미산 정상까지 물법카를 타면 10분 남짓, 걸어서 올라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정상 오르기 전에 먼저 서문 우측에 위치한 월미문화관 및 해군2함대주둔기념비를 돌아본다. 월미문화관은 전통문화체험과 전통한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며, 바로 옆에 해군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53년 7월 정전과 더불어 해군 인천경비부는 조직을 재정비하여 수도권 서측 해상방위를 맡게됐다. 1973년 7월 제5해역사령부로, 1986년 2월 제2함대사령부로 각각 증강개편되었으며, 1999년 11월 제2함대사령부가 지금의 평택으로 옮겨가기까지 53년 동안 월미도에 주둔하였다.

서문 옆에는 해양경찰순시선과 함께 이청호 경사 흉상도 세워져 있다. 이청호 경사는 2011년 겨울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 과정에서 안타깝게 순직한 분이다.

이제부터 월미산 정상으로 가는 월미둘레길 및 산마루길로 들어선다. 둘레길 출발은 서문 옆 만남의 광장 사거리에서 출발한다. 우측둘레길은 돈대삼거리 경유 완만한 산마루길, 좌측둘레길은 전망대 급경사길인 숲오름길(0.17km) 및 전망대길(0.15km) 가는 방향이다.

만남의 공장 부근에는 ‘월미 평화의 나무’ 두그루가 서 있다. 첫 번째 나무는 82년된 ‘치유의 나무(은행나무)’, 두 번째는 104년된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은행나무)’이다. 이들 나무는 월미도에 함포사격으로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던 날 기적처럼 살아남은 나무들이다. 월미공원에는 모두 70년 이상된 7그루의 나무가 살아 있으며 이중 둘레길 중간에 서 있는 ‘평화의 어머니 나무’라고 이름붙인 나무는 245년의 연륜을 가진 느티나무이다. 2015년 11월 수령전문기관에서 정밀조사감정결과에 따라 지정했다고 한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월미산을 오른다. 공원안내소에서 돈대삼거리까지는 700m, 돈대삼거리에서 월미산 정상전망대까지는 800m 거리이다. 완만한 숲길이라 산책하듯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월미공원 산책로는 지난 50여 년간 일반인들의 출입차단으로 훼손되지않은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월미공원에는 총 295종의 식물이 생육하고 있으며, 너구리, 다람쥐, 맹꽁이, 황조롱이, 곤줄박이 등 다양한 포유류, 조류, 양서,파충류 등이 살고 있다. 길이 아늑해서 젊은 남녀 데이트 코스로도 좋은 것 같다. 코스 중간에 물범카도 만난다. 30분 쯤 오르면 월미산 정상 광장에 이른다. 정상광장에는 물범마스코트 3마리가 방문객을 반겨준다. 광장에는 ‘월미공원귀환기념비’와 ‘월미도 연표’가 세워져 있다.

정상광장에서 다시 우측으로 230m정도 가면 월미산전망대에 이른다. 지상3층, 지하1층의 23m 전망대에서는 인천시가지는 물론 서해바다와 인천항, 서해안 낙조, 인천국제공항, 송도, 인천대교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카페테리아와 휴식과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북카페가 있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을 위한 ‘메시지블럭’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 내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 ‘월미달빛마루’에 앉아 커피나 시원한 호프를 마시며 인천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하는 맛도 참 좋다. 이용시간은 05:00-23:00까지이므로 인천앞바다 야경을 즐기는데도 최적지일 것 같다.

전망대에서 다시 정상광장으로 돌아와 무궁화동산을 올라가 본다. 무궁화동산은 산책로 좌우에 무궁화나무가 가득 자라고 있어 무궁화꽃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무궁화동산 위에는 예포대도 있어 어느 성곽 위에 올라선 느낌을 준다.

정상광장에서 월미산 정상까지는 200m 거리를 더 올라야 한다. 이길 역시 무궁화숲길이라 무궁화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는 넓은 전망데크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의 상세도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인천해역은 썰물일 때 군함기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상륙돌격은 밀물시간에 맞춰 2단계로 이루어졌다. 1단계는 아침 밀물시간을 이용, 월미도에 상륙돌격을 실시하고 2단계는 저녁밀물을 이용, 인천시가지에 상륙돌격을 실시하였다.

1단계로 월미도 녹색해안 상륙은 9월 15일 새벽 05시 45분 항공모함 함재기의 공중폭격과 함포사격을 실시하면서, 미 해병 제5연대 제3대대 병력이 승선한 17척의 상륙주정과 9대의 탱크를 탑재한 3척의 대형 상륙주정으로 06시 15분에 돌격을 개시, 06시 33분 제1파가 상륙하고 08시 정각에 월미도를 탈취확보하였다.

제2단계로 9월 15일 17시 30분 인천 만석동 적색해안에 미 해병 제5연대와 한국해병대가 200여 척의 상륙주정((LCVP)을 이용하여 상륙돌격하고, 용현동 청색해안에는 미 해병 제1연대가 180여 척의 상륙장갑차를 이용하여 16일 01시 정각에 상륙 목표지역을 탈취 확보하였다. 그 후 후속부대로 동년 9우러 17일 미 육군 제7사단이 상륙하고, 동년 9월 24일 한국 육군 제17연대가 상륙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탈취한 인천상륙작전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한국전쟁의 전세를 대역전시킨 세계전사에 빛나는 상륙작전이다.

인천해역은 좁은 수로, 극심한 조수 간만의 차, 암벽 등 상륙돌격에 부적합한 작전지역이었다. 그러나 한미해병이 주축이 된 연합군은 인천의 제반 전투난관을 극복하고 상륙돌격에 성공하여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낙동강 전선의 밀집된 북한군을 포위 격멸함으로써 총반격을 위한 발판을 구축하였다.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 손실은 주력부대인 미 해병대 1사단은 전사 415명, 부상 2,029명, 실종 6명, 한국 해병대 전사 97명, 부상 300명, 실종 16명, 미 육군 7사단 전사 66명, 부상 272명, 실종 47명이었다. 이에 비해 전과는 북한군 격멸 1만4천명과 7천명의 포로를 획득하였다.

월미산 정상에 서서 인천앞바다를 내려다보노라니 1950년 당시 UN군의 월미도를 향한 함포사격 장면이 눈에 선하게 보이고, 소나기 퍼붓듯 날라오는 포탄이 바로 내 발 아래에 콩볶듯 쏟아지는 착각에 빠진다. 아 그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던 월미도, 그 월미도여!

글,사진/임윤식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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