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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사(黃國史)』, 황씨 뿌리를 찾는 여행 재미 쏠쏠중국의 황국고성으로 증명되는 황국의 뛰어난 문화 배워
박관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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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06  15: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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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천에서 1400여년 역사를 이어온 황나라의 존재를 밝히는 『황국사(黃國史)』가 최근 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황국사』를 통해 황씨의 뿌리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이 방면에 무관한 이들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중국의 황국고성으로 증명되는 황국의 뛰어난 문화를 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황씨 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만든 책을 한글로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의 편집자인 황양규 세계황씨종친총회 이사는 “황씨 가족이라면 누구나 소장하여 자손들에게 우리 황씨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양규 한국황씨중앙종친회 종사보존위원장은 “황국사를 찬집하면서 고귀한 생업을 뒤로 하고 1995년경부터 한국 황씨의 도시조인 낙(洛)공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과 종사(宗史) 발굴을 위해 중국 황천 등 각지를 자비로 수십 번 방문해 한국 황씨의 종족사를 밝혀 주신 종사보존위원회 황철현 고문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고 전했다.

또한 황 위원장은 “공사적으로 매우 바쁜 와중에도 본서의 교정과 윤문을 위해 석 달 넘게 불철주야 헌신한 황규석 사무총장에게도 감사드린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본서 찬집에 격려를 보내준 한국황씨중앙종친회 백현 황무섭 회장, 한동문화사 황문식 대표에게도 깊은 경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한국황씨중앙종친회 부회장인 황양규 이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실업계에 투신했다. 일본종합상사에서 5년 근무 후 1983년 무역회사를 창업 후 1993년 규수방 가구를 인수하고 규수방 건설과 솔로몬개발을 창업해 무역·가구·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4000여년 세월 흘러도 세계 황성 후손 모여

황하(黃河)에 나의 영혼이 있고,

황토(黃土)에 나의 뿌리가 있네,

천하황성(天下黃姓)은 일맥(一脈)이라네.

보고 싶은 것은 고향 흙이요,

그리운 것은 고향 사람들이네.

뿌리 찾아 조상숭배 어디로 가느뇨?

역사 찬란 황국고성(黃國故城) 황천(潢川)이라네!

 

위 가사는 전 세계 황씨의 노래인 황성지가(黃姓之歌)의 일부이다. 이곳 황천(潢川)은 현재 중국 하남성(河南省) 신양시(信陽市) 황천현(潢川縣)이다.

일찍이 융성해 뿌리가 깊고 4000여년의 세월이 흘러도 전 세계 황성의 후손들이 이곳 황성의 근원인 성지에 와서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인다.

황천(潢川) 지역은 하남성 동남부에 있다. 북쪽은 회하(淮河)가 흐르며 남쪽은 대별산(大別山)과 등지고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7~8천 년 전 여기에서 농업 생산을 시작했으며, 춘추시대에는 황국(黃國)이라고 명명했다.

진한(秦漢)시대에는 익양군(弋陽郡)으로, 당대(唐代)에는 광주(光州)라 불렀으나 1913년 주(州)를 현(縣)으로 바꾸었다. 최근 들어 전 세계 많은 황씨 후손들이 정과 꿈에 이끌려 역사 찬란한 이 땅에 제각기 뿌리를 찾아와 숭조(崇祖)하는 곳이다.

이는 바로 이 황토(黃土) 위에서 이미 중국 하상주(夏商周) 3대 왕조의 긴 흐름이 역사서에 잘 기록돼 있다. 1400여년 이어진 유구한 황국역사(黃國歷史)가 어린 황국 유적지가 있고, 황씨 조상의 위대한 발자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황국은 지금의 하남성 황천 지역에 자리 잡았다고 고문헌에 기록돼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은허(殷墟) 갑골복사(甲骨卜辭)와 「사기-은본기(史記-殷本紀)」로 그 내용은 상(商) 제왕(帝王)이 황국을 순시할 때 “왕인복(王寅卜)…왕정(王貞)…; 왕기지우황(王其至于潢), 곽(霍), 망재(亡災)”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황(潢)・곽(霍)은 모두 지명과 지방 국명(國名)으로 황(潢)은 곧 황국이다. 바로 지금의 하남성 황천으로 지역에 황하(潢河)가 흘러 생긴 이름이다. 이때의 상왕(商王)은 황국인을 중시했으며, 그 갑골복사 중에는 ‘고우황이(古于黃尹)・황시(黃示)’ 등 문자가 많이 씌어 있다.

   
 

BC 648년, 초나라가 황나라 멸망

기원전 648년, 초나라가 황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때 황국의 선조들은 망국의 통한을 참으며 초나라의 인질이 됐다.

그러나 황국이 탄생한 그날부터 나라를 성씨로 한 황성(黃姓)은 역사가 어떻게 변하든 계속 발전해 왔다. 소원을 찾으면 황국이 생긴 후부터 국명에 따라 성씨가 형성된 것이 황성이다.

동한(東漢) 채옹(蔡邕)의 󰡔한교지도위호부군부인황씨신고(漢交趾都尉胡府君夫人黃氏神誥)󰡕에 따르면 “강릉황씨지계녀(江陵黃氏之季女), 자왈열영(字曰列嬴), 기선출자백예(其先出自伯翳), 별봉우황(別封于黃), 이국씨언(以國氏焉)”이라고 했다. 당나라 임보의 󰡔원화성찬(元和姓纂)󰡕에는 “황은 육종(陸終)의 후손이며 황으로 봉해졌고 초국이 황국을 멸했다. 나라 이름으로 성씨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

송대 정초(鄭樵)의 󰡔통지-씨족략(通志-氏族略)󰡕에서는 “황씨는 영성(嬴姓)이고 육종(陸終)의 후손이며 황으로 봉하였다. 지금의 광주 정성 서쪽 12리에 황국 고성이 있으며, 초나라 지역이다. 희공(僖公) 12년 초에 멸망했고, 자손들은 나라이름으로 성씨를 삼았다”고 했다.

나라에는 역사가 있고 씨족은 족보가 있다. 족보가 쌓이면 한 나라의 역사가 되고 나라의 역사가 모이면 세계사가 된다.

황씨는 당송 때부터 끊임없이 많은 가보족첩(家譜族諜)을 만들어 왔다. 당진사(唐進士) 상서(尙書) 황우석(黃禹錫)이 함형원년(咸亨元年) 당중종(唐中宗)에게 족보를 수개(修改)하여 주청(奏請)하기를 “전욱지손(顓頊之孫), 육종지후(陸終之后)이며 황으로 봉해졌고, 이에 따라 나라이름으로 성씨가 됐다”고 했으며, 이로부터 대대로 수보상습(修譜相襲)해 모두 비슷하게 기록됐다.

 

황국고성의 궁전과 전각 복원

황성과 황국의 연원은 󰡔성씨문화(姓氏文化)󰡕, 󰡔전적(典籍)󰡕, 󰡔보첩(譜牒)󰡕 등 역사 문헌을 보면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황성의 발원 시기는 하조 초기부터이고 영성(嬴姓)의 자손으로 수봉(授封)된 황이며, 황국으로 성립됐다.

둘째 황성이 형성된 것은 황인이 ‘이국위성(以國爲姓)’, 즉 나라이름으로 성씨가 돼 황국이 시작된 때부터 황성이 성립됐다.

셋째 황성의 발원지는 바로 황국이며, 지금의 하남성 황천이다. 황국고성은 하남성 황천현 성 서쪽 6Km에 있으며, 이 고성은 현재 전국문물보호단위(全國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됐다.

황국은 당시 일정한 세력이 있는 제후국이었다. 그 영역은 동쪽으로 지금의 고시(固始)이고, 남쪽으로 광산(光山)이고, 북쪽은 회하(淮河)이며, 서쪽으로 나산(羅山) 신양(信陽) 일대까지 펼쳐졌다.

황국의 도읍지는 지금의 황천(潢川) 융고향(隆古鄕) 일대이다. 이 지역은 강회요새(江淮要塞)이고 하남 남쪽 각 제후국과 교통의 중심이었다.

고성의 유적지는 장방형이다. 성은 황토(黃土)로 쌓았으며, 현재 보존된 성문이 3군데 있다. 담은 두텁고, 대문은 크며, 바닥은 굳고 단단하다. 이를 보면 당시 엄청나게 크고 웅장한 자태를 갖춘 위엄 있는 도성(都城)이었을 짐작하게 한다. 성의 면적은 2.8㎢로 건축 규모 등을 보면 춘추시대에 ‘자작(子爵), 성삼리(城三里)’의 등급제도에 완전히 부합된다.

고성(故城)은 긴 세월 동안 비바람에 부식돼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 하지만 4000여 년 전의 고성에 이르러 허리만 굽히면 옛날 도자기와 기와가 손에 잡힌다. 옛날의 풍부한 고문화 유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문화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깊이 느끼며, 황국 선조가 창조한 고대문명의 찬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근래에 황국고성의 궁전과 전각들을 복원하기 위해 하남성 황천황씨종친회의 노력으로 중국 정부의 보조금 40억원과 해외 종친 기업인이 출연한 80억원, 한국 나주시 황씨종친회 등 전 세계 종친들의 성금으로 지금은 많은 전각과 성내를 복원시켜 잘 정비했다. 또한 연이어 2차, 3차의 복원 계획이 세워져 있다.

황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나? 황성의 뿌리는 황국이다. 황국은 어디에 있었는가? 황국은 황천에 있었다.

황국을 세우면서 뿌리내린 황성의 근원. 초국은 황국을 멸망시켜 망국의 한을 남겼지만, 야화(野火)는 황성의 하늘에 높이 솟은 뿌리 깊은 나무를 전부 태울 수는 없었다. 만파동원(萬派同源)의 황성 후손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4000여만 명이 넘는다.

   
 

황성 종족사, 뿌리 찾기 일환으로 성사

종사보존위원회 황철현 고문은 “우리 황성 종족사는 뿌리 찾기의 일환으로 옛 선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친들의 노력으로 발전됐다”며 “우리 황성은 수려한 역사를 자랑한다. 수천 년 전의 황나라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황성의 시원은 중국 삼황오제 때부터 유웅국군(有熊國君)의 아들로 태어난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손자 전욱고양(顓頊高陽) 씨의 현손인 육종공의 후손이 황 땅에 봉(封)함을 받아 황나라가 되었다.

중국의 심장부인 중원의 비옥한 땅에 자리 잡은 황나라는 약 1400여년 이어 내려온 후 춘추전국 시대인 기원전 648년 황나라가 초나라에게 멸망했다. 황나라 사람들은 각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나라 이름으로 성을 삼았다.

이 황국고성의 옛터에는 황나라 때부터 있었다는 천지라는 연못이 남아 있다. 이 천지는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니, 황성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보는 듯하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인 육종공과 황나라에서 시작된 황성의 씨족 한 갈래가 이 땅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대대손손 계통을 이어왔다. 그 후 수많은 선조들의 위업을 되새기면서 후손들에게도 황성의 역사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황철현 고문은 “나는 그동안 중국 청도에서 사업하면서 중국에서 오신 낙자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1993년부터 중국어 통역을 대동하고 하남성 신양시 황천의 황국고성을 수차례 방문했다”며 “호북성 무한시의 강하를 찾아 낙자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달라고 강하황씨종친회에 부탁했다. 그러나 중국의 족보, 사서 등에는 한나라 때의 낙자 할아버지의 기록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강하에 부탁한 것이 중국 중경의 『황성통사黃姓通史』의 황동경 저자에게까지 전달돼 2004년 황동경 선생의 조사 결과를 우리 한국으로 보낸 편지가 2015년 발견됐다. 그 내용을 정밀 분석한 결과 낙자 할아버지의 희미한 흔적이 발견됐으나 이미 황운 선생은 타계했다는 것.

그 후 황 고문은 2015년 8월 한국황씨중앙종친회 종사보존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중국 황씨발원지(黃氏發源地) 탐방단’과 함께 무한시(武漢市) 강하와 황천의 황국고성을 다시 한 번 방문했다. 이미 몸은 늙고, 머리는 녹슬었지만 20여년 전의 기억과 추억이 돌아왔다.

또한 2016년 2월 종사보존위원회 황양규 위원장의 발상과 주선으로 다시 재도전하는 각오로 황규석 사무총장과 3명이 중국 호남성 장사시(長沙市)와 하남성 강하를 방문했다. 결국 낙자 할아버지의 도래 시기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황씨의 상시조인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공이 이 땅에서 태어나 장성한 후 중국으로 돌아가 초나라의 승상까지 한 것을 알았다. 또한 이 분의 증조부인 경공이 진나라에서 신라로 도피하고, 증손자인 춘신군이 신라에서 태어난 것이 확실하다는 중국의 각종 자료와 강하황씨종친회 황서진 선생의 말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황철현 고문은 “나는 경공과 헐공의 흔적을 찾은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낙자 할아버지의 중국에서의 흔적을 찾는 일은 젊은 종친들에게 넘기고자 한다. 열과 성으로 노력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며 “황국사는 우리 황성의 뿌리인 황나라의 역사를 다각도로 정리한 것으로, 황성이라면 누구나 필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황씨가 아닌 독자들도 역사를 배우는 의미에서 읽을 만하다고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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