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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되는 게 꿈이에요”···한밭대장간 ‘한칼’ 전만배 대표4대째 전통, 장인의 혼이 담긴 칼이 숨 쉰다···“세계화시킬 칼기술전문학교 만들고 싶어”
조순동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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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05  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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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한테 용돈 5원 받기 위해 시작한 칼갈이, 지금은 세계화의 꿈 갖고 산다”
칼이 숨 쉰다. 장인의 혼인 담긴 칼이다. 칼을 갈 때마다 칼을 새롭게 제작할 때마다 장인의 혼을 불어 넣는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내 한밭대장간 전만배 대표(59)는 칼 가는 고수, 서민 갑부로 통한다. 하루 300자루의 칼을 갈고 또 직접 칼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전 대표는 새벽 3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3백 자루의 칼을 간다. 그가 지금까지 칼을 간 것은 2억 개가 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 대표가 운영하는 한밭대장간 ‘한칼’ 전문 공장인 대전 유성구 용계동에 있는 대장간을 찾았다. 옛날 대장간보다는 현대화된 건물과 그 옆으로 검은 포장이 쳐 있는 곳에 대장간이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의 건장한 남자가 밝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았다. 예순을 앞둔 나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 4대째 대를 잇는 아들 전종렬 씨와 전만배 대표가 작업을 하고 있다.

맞춤형 칼갈이로 4대째 이어지는 칼 역사의 산 증인
“열네 살 때, 12월 25일 아홉시 반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칼 가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한테 용돈 5원을 받기 위해 시작한 칼갈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화의 꿈 갖고 삽니다”
전만배 대표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장간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권유 아닌 권유로 용돈 5원을 받기 위해 칼 가는 일을 시작했다. 그의 칼 가는 솜씨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불과 2년 만에 아버지의 실력을 뛰어넘어 입소문을 타게 돼 모든 손님의 칼을 도맡아 갈게 되었다. 그렇게 칼을 갈아온 세월이 올해로 44년째다.
전 대표가 칼을 가는 데는 기준이 없다. 그만의 감각으로 개개인 요리사에게 맞는 맞춤형 칼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칼의 종류도 없다.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만든다. 그 때 그 때 달라진다.
전 대표의 칼에 대한 열정은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전국일주를 하기도 하고 일본, 독일, 태국 등 대표적인 칼 생산국 제품들에 대한 분석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태국은 왕궁에서 대장간을 직접 관리 운영합니다. 면소재지만한 큰 범위를 지정하여 대장간을 통합 운영하면서 전통도 계승하고 관광지로서도 소득을 올려 일거양득하고 있습니다.”
전 대표의 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전국 각지와 세계 곳곳에서 그의 명성을 듣고 칼을 찾는 이유가 되었다. 현재 각 대학 교수들이 전 대표를 찾아 칼에 대한 역사와 자료 발굴을 위해 그를 찾는다고 한다. 칼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전 대표는 4대째 이어지는 칼 역사의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칼을 가는 작업 중에서도 사시미칼을 다듬는 작업은 특히 고급 기술이다. 다른 칼에 비해 작업비용도 비싸다. 일식 요리사들은 사시미칼을 자신의 요리 스타일에 맞게 깎아서 쓰는데 매우 미세한 차이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웬만한 칼갈이 고수가 아니고서는 쉽게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시미칼은 ‘간다’는 표현보다는 ‘제작한다’는 표현을 쓴다. 일식집 요리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사시미칼을 싸들고 일부러 전 대표를 찾아오는 까닭이다. 그래서 요리를 배우는 학생부터 유명 셰프들까지 고객으로 두고 있다.

   
 

‘한칼’로 해외시장 진출해 나란히 경쟁하고 싶어
요즘 젊은이들이 어려운 일을 하기 싫어하는데 전 대표의 아들이 대를 잇는 바람에 4대째 가업으로 이어 가고 있다. 후계자가 없어 고심하던 전 대표에게 대학 졸업을 한 작은 아들이 그의 일을 이어 받고 있다. 사실 전 대표가 그동안 다른 후계자들을 키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를 자처한 사람들의 가족들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칼을 간 다고 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반대가 가장 심합니다. 일본에서는 칼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장인 대접을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천한 직업이라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그래도 전 대표는 해외시장 진출계획을 갖고 호주 이민자를 칼 제작 2년 코스로 전수교육을 시키고 있다. 17년 전에 이민 간 호주 이민자인데 호주점 개점을 목표로 두고 전 대표에게 기술을 전수 받고 있다. 파키스탄,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아인들도 전 대표의 칼 만들고 가는 기술을 배워갔다.
“그들 모두 우리 공장에서 연수시켰습니다. 저는 칼을 제작 ‧ 생산하면서 가는 것을 글로벌시장을 겨냥하여 세계화시킬 꿈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 칼과 칼 가는 기술을 파는 것이 내 소망입니다. 바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서 당당히 한국 대장장이 기술의 우수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다가 안 되면 내 아들이 세계 시장을 개척할 것이기 때문에 세계화의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칼이야 말로 고부가가치 사업이고 또 대물림 하는 아들을 위해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일에 10년만 몰두해도 전문가 소리를 듣는 요즘 40여 년 동안 칼날을 세워왔으니 장인이라는 호칭이 붙을 만하다. 전 대표는 “칼은 감각으로 간다”라고 했다. 그는 감각적으로 칼 가는 일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어떤 즐거움이냐는 우문에 “사념(思念)이 없어진다”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전 대표가 칼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한 데는 내력이 있다.
요리사들이 전 대표의 칼을 찾는 이유는 맛깔 나는 칼을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 요리사들이 맛을 내는 기술은 칼에서 부터이다. 식재료를 원하는 대로 쉽게 썰고 절단력이 좋아 식재료의 맛과 영양 및 모양을 유지시켜주고, 칼의 마모도 적기 때문에 유명한 요리사들은 전 대표의 칼을 찾는다.
전 대표의 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는 ‘한칼’이라는 쇼핑몰(www.hankal.kr)을 통해 칼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점포에는 수 백 종의 칼이 빽빽이 진열돼 있다. 가격대도 17,000원짜리부터 65만 원짜리 고가의 사시미칼까지 다양하다. 본인이 직접 생산한 제품과 일본의 미즈노, 독일의 드라이작 등 외국에서 들여온 브랜드 제품들로 이뤄져있다.

 
   
 

세계화를 위해 무형문화재 되는 게 ‘꿈’
전 대표는 칼 만드는 제자들을 찾고 있다. 현대화된 건물에 칼 기술전문학교를 만들어 숙식하면서 칼 만드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전국에 내 칼을 찾는 요리사들도 모집하여 칼 제조과정이나 가는 법을 가르치는 게 또 하나의 꿈이다.
“내 꿈은 혼자서는 못합니다. 독일처럼 도제식 교육을 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통도 계승하고 세계 경쟁에서 이기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대장간기술전문학교를 만들어 대장공 기능인 양성에 힘쓰며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우겠습니다. 이에 정부도 전통을 살리고 세계화를 시킬 역군 양성에 지원을 해줬으면 합니다.”
칼 만드는 일을 물려주고, 독일과 일본도 부러워할 만한 명품 칼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한때 대전에서 후계자를 양성했던 적도 있다. 그는 “1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공을 들였지만 헛수고였다. 4~5년 동안 교육받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내가 인간문화재였다면 사정은 달라 졌겠지만…”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서 전 대표에게는 한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생겼다. 무형문화재, 명장, 장인, 기능장 등 국가가 인정하는 분야에는 대장장이가 들어가 있지 않다. 전 대표는 곧 사라질지 모르는 대장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도 ‘전통전승자’라는 명칭이 붙여지길 희망한다.
“우리 전통의 세계화를 위해 무형문화재가 되고 싶습니다. 무형문화재가 되면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 됩니다. 제대로된 제품을 갖고 제대로된 세계 시장에서 제 값 받고 파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것을 바탕으로 해서 세계화시켜 경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3,40대 중반만 넘어도 도전 못 합니다. 가장 젊었을 때 10년 만 투자해 중국과 해외시장을 겨냥하면 전망은 밝습니다.”
기능장려법 제9조의 규정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기능을 계승 발전시켜 기능향상과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2004년도 기능전승자 선정을 했는데 대장간기능이 선정대상종목에 들어갔었다. 선정되면 기능전승자 증서 수여와 기능전승지원금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 가슴 아프다고 전 대표는 말했다.

   
 

종교단체 등을 통해 수익금 일부 남모르게 기부
그는 한 때 어려운 시기 부모와의 갈등으로 좌절과 죽음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칼에 대한 애정과 장인정신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 대표는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다.
“요리사 자격시험에 계속 낙방하는 학생에게 칼을 사용하는 비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후 시험에 합격했다면서 떡을 한 말 해서 가져왔더라구요. 또 칼을 잘 쓰고 있다는 손님의 작은 말 한마디에 힘을 얻고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40여 년 제 칼을 써 줬습니다. 모두 저를 오늘에 있게끔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그 고마움에 전 대표는 남모르게 종교단체 등을 통해 기부금을 자주 냄으로써 사회공헌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조순동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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