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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메고 만난 소수민족 각기 다른 개성, 그리고 하나됨(5)닝샤후이족, 네이멍구, 쿠부치사막 , 징기스칸 릉
김정일  |  kobukim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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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7  10: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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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22개의 성과 4개의 직할시 외에 네이멍구, 닝샤후이족, 광서장족, 신강위구르, 서장티베트 등 5개의 자치구가 있다. 이외 각 성에도 소수민족의 자치권이 인정되는 30개 자치주가 있다. 이번 여행에 돌아본 윈난성의 다리바이족자치주, 디칭비베트족자치주, 시솽반나다이족자치주가 이에 속한다. 그리고 우리 중국동포(조선족)가 많이 살고 있는 지린성 옌벤조선족자치주도 그 중 하나다.

중국은 왜 이토록 자치구, 자치주라고 하며 소수민족들을 배려하는 것일까. 아니면 각자 개성이 있는 작은 나라였을 텐데 왜 이렇게 하나의 중국으로 묶어 그들을 가뒀을까.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이유를 느껴보고자 한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를 서장티베트 자치구로 삼고 티베트의 관문 ‘꺼얼무’까지 찾아 왔었다. 그러나 티베트에 들어가려면 입경허가서를 받아야 하고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아쉽지만 닝샤후이족 자치구와 네이멍구 자치구로 방향을 바꿨다.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성도 인촨시를 가기 위해 끼얼무에서 시닝으로 가는 오후 7시 40분 기차를 탔다. 장기간을 여행한 탓인지 가는 동안 수차례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기차는 칭하이 성도 시닝역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도 거른 채 간쑤성의 성도 난저우행 버스에 올라탔다.
청두에서 기차로 난저우에 올라 올 때는 그냥 스쳐오다시피 했는데, 버스를 이용하니 차창 밖으로 농촌사람들의 일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와 좋았다. 밀 수확을 하는 모습과 여럿이 모여 타작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옛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난저우에 도착하여 터미널에서 라면을 먹고 곧바로 인촨시로 가는 버스로 옮겨 탔다. 차창 밖으로 벌거숭이산이 보였다. 산에 나무 한 그루가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야말로 삭막함 그 자체였다. 나무 한 그루조차 없다보니 산이라기보다 바람에 쓸려 쌓인 흙더미처럼 보였다. 그런데다 밭에는 밀 곡식을 수확해 더욱 쓸쓸하게 보였다. 닝하에 들어서자 황하물이 들판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주변에는 농작물이 노란 꽃밭을 이루고 있다.  한자로 ‘강남 신비의 땅 닝하 오심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대형 입간판이 서 있었다. 그 부근에는 농부들이 밭에서 방금 수확한 수박, 참외, 양파 등을 묶어 팔고 있었다. 
황하 물을 먹고 자란 수박을 한 통 사서 맛을 보니 갈증 때문인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어느새 인촨시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중국 북부 신비의 땅 닝샤후이족 자치구
닝샤후이족 자치구는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숨은 신비의 땅이다. 11세기 몽골 징기스칸에 맞섰던 시사왕국 이었으며, 그들의 후예가 사는 곳이다. 닝샤는 중국지도에서 보면 정 중앙에서 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네이멍구자치구 바로 아래 붙어있는 비교적 작은 자치구이지만 만리장성 끝자락에 위치 한 옛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교역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그 당시 아랍과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상인과 군인들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소수민족인 후이족들이 모여 사는 그들의 고향이다. 
이곳 성도인 인촨시는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막과 호수가 많이 있고 만리장성과 황하강이 함께 있어서 중국 10대 휴양도시 중 하나로 꼽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도시이다. 
먼저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건물에 비해 터미널이 많이 크게 보인다. 터미널광장 건너편에 있는 호텔을 숙소로 정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산책을 나와 터미널 부근을 둘러봤다. 아침식사 후에는 버스를 타고 서부역에 내렸다. 그곳은 넓은 인민광장이었고 건너편에는 녕허자치구 인민정부 청사가 있었다. 사진촬영을 하려 하니, 보안상 촬영금지구역이라고 했다. 아쉬운 대로 청사 공원의 아이와 함께 있는 어머니 조각상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후이족의 수도 인촨
이곳 인촨시는 중국의 걷기 좋은 도시 베스트 5 중 하나다. 이슬람 문화와 한족의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이를 느껴보고 싶어서 최신식 건물이 있는 정부청사 앞에서부터 중국 옛 건물 있는 고루까지 걷기 시작했다.
낯선 거리를 걷노라면 여기저기에서 예상치 않은 구경거리도 만나기 마련이다. 세발 자동차에 물건을 싣고 즐겁게 달리는 소년도 보았고, 쓰러질 듯한 옛날 모습의 가게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후이족 자치구임에도 불구하고 한족이 72%를 차지해 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때마침 나들이를 나온 후이족 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거부감 없이 환한 표정으로 응해 주었다.
휴식 차 주변을 구경하면서 한참을 걷다보니 고루가 있는 해방동가거리까지 왔다. 그곳에는 옛 고루가 높이 솟아있고 밑에는 분수대와 종까지 가꾸어져있었다. 주변에 상점들이 모여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구경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빈관으로 돌아왔다.
빈관에서 식사 후 중심가에 자리 잡은 중산공원을 찾아가봤다. 중국은 의미 있는 건물이나 주요 장소에 가면 ‘중산’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전 중국인들로 추앙받고 있는 ‘손문’의 호다. 손문은 중국대륙의 공산당이나 대만정부 국민당을 포함하여 모든 중국인들에게 국부로 받들어지는 인물이라 이렇게 널리 쓰이는 것이다.
중산공원은 휴식과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제공했다. 공원 한쪽에는 유료 어린이 놀이공원도 있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오후 4시 바오터우 행 버스를 탔다. 인촨시를 벗어나자 벌거벗은 산과 쓸쓸한 들이 또다시 이어졌다. 쿠비치 사막을 스쳐 지날 땐 마음까지 메말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문화의 젖줄 황하 
계속 달리자 황하대교가 보였다. 대교 앞에 대리석으로 만든 초대형 젊은 남녀가 다리의 수호신인 듯 둥근 원형을 높이 들고 서있었다. 다리 밑으로는 황토 같은 황하의 누런 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황하주변의 들판은 노란 꽃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우리 나라 제주의 만개한 유채꽃을 보는 듯 했다. 머리 위에서는 수십 마리의 이름 모를 새들이 필자를 반기듯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
시닝시내를 관통하는 길에 란저우 ‘황하제일교(일명 중산교)’ , 인촨시 바오터우 ‘황하대교’ 에서 또다시 황하물을 만났다. 그래서인지 내내 황하의 포위망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황하는 청해성 공련산을 발원지로 해 성도 시닝을 지나 란저우, 다시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을 지난다. 그리고 내몽고, 산서, 섬서, 하남, 산동 등의 9개 성과 자치구를 거쳐 마지막에 발해만(황해)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국의 오랜 역사와 함께 했으며 중국문명의 젖줄이기도한 황하는 중국에서 장강(양자강) 다음 두 번째 큰 강으로 전체 길이가 5,464km나 된다.
황하대교가 있는 황하진을 지나니 바로 네이멍구 제 2의 도시 바오터우에 도착했다. 바오터우는 몽고어로 ‘사슴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인구 240만 명의 최대의 철강공업 도시이다. 이곳의 관광명소는 낙타를 타고 사막에 올라 모래 썰매를 즐길 수 있는 쿠부치사막이 있다. 그리고 몽골의 영웅으로 13세기 중국을 정복하고 전 세계를 뒤 흔들었던 징기스칸의 릉이 있다.
 
   
 
황사 발원지 쿠부치 사막 
늦은 밤 10시에 바오터우에 도착해 다음 날 투어하기 좋은 역 앞의 빈관으로 숙소를 정했다. 이튿날 아침 7시, 숙소에서 소형 관광차에 올랐다. 2시간 정도 이동하니 쿠비치사막 끝자락에 위치한 향사막에 도착했다. 이 사막은 1950년대만 해도 양들이 풀을 뜯던 초원이었으나 빠르게 사막화가 되면서, 중국이 몇 년 전 사막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곳이다. 이곳 쿠부치사막의 모래는 우리나라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봄에 편서풍이 불면 황사가 하루 만에 한국에 날아와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황사가 바람을 타고 날아 올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흡과 눈에 질병을 준다. 한국 황사의 40%가 쿠부치 사막과 네이멍구 지역의 사막에서 발원한다고 한다.
입구에서 한 시간 남짓 기다리다 대기소에 들어가 신발 커버를 신었다. 머플러로는 입을 막고 완전무장을 한 다음 모래사막으로 나왔다.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렸다. 이어 모래위로 가는 특수 차량을 타고 10여분 정도 언덕으로 올라가니 간이 막사 옆으로 30여 마리의 낙타가 줄지어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 봉을 잡고 허리를 쭉 편 자세로 산봉우리처럼 솟아 오른 두 개의 낙타 봉 사이에 걸터앉았다. 낙타의 고삐는 앞에 서 있는 낙타의 뒷 봉에 걸고 다섯 마리가 줄지어 섰는데 맨 앞에 탄 한 사람이 지휘하고 있었다. 
낙타를 처음 타 본 필자는 아라비안 대상들처럼 낙타를 타고 모래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2km 되는 거리의 사막을 달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모래 위를 달려보기도 했다. 높은 곳 망루에 올라가 밧줄에 매달려 낮은 곳으로 건너가는 리프트도 탔다. 마지막으로 높이 150m인 모래 언덕에서 대나무 바구니에 걸터앉아 경사가 45도 되는 아래로 썰매타기도 했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한껏 즐거움에 들뜬 마음으로 즐겼다. 그야말로 다양하고 색다른 경험의 모래사막 투어였다. 점심에는 식사와 몽골식 공연이 있었다. 
 
전 세계를 뒤 흔들었던 징기스칸의 릉
공연이 끝나고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징기스칸 릉을 찾았다. 대리석으로 만든 대형 아치문에 한자로 ‘成吉思汗陵(성길사한릉)’이라고 쓰여 있어 이곳이 성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6.6m 높이의 거대한 징기스칸 기마상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징기스칸릉의 건물은 게르 형식이었다. 옆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또 하나는 '내몽고자치구'라고 쓰여 있는 오석으로 만든 표지석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징기스칸의 말안장과 활과 화살, 쟁반자기와 초상화, 징시스칸의 생전의 비밀 기록이 그림과 함께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징기스칸이 죽은 후에 죽음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에 부치라는 유언에 따라 고향으로 운구하여 밀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징기스칸릉은 소문만 무성할 뿐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곳 성길사릉은 시신이 없으므로 릉이라 하기보다는 1954년부터 네이멍구 각지에 있던 징기스칸의 유물을 모아 건립하였기에 의관총(衣冠塚)이 맞지 않나 생각하면서 일일 관광투어를 마무리 했다.
 
네이멍구자치구 성도 후허하오터
아침 식사 후 바로 바오터우에서 버스로 3시간이 걸리는 내몽고 자치구의 수도 후허하오터를 찾아갔다.
네이멍구의 정치, 경제, 교통의 중심지로 인구 260만명의 큰 도시로 몽골어로‘푸른도시’라는 뜻이란다. 이곳은 징기스칸이 흙먼지 날리며 말을 달렸던 곳이다. 필자는 중국 4대 미인이며 평화의 상징인 왕소군이 잠들고 있는 이곳에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후허하오터에서 왕소군릉으로 가는 도로에는 오토바이, 자전거가 많이 보이고 당나귀가 끄는 마차도 눈에 띈다. 도심을 벗어나자 화물차들이 많이 보였다. 한산한 도로를 30분여 쯤 달려가니 ‘소군박물관’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산 위의 누각이 보인다. 그 누각이 대청산 기슭 대흑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왕소군의 릉이다.
그녀의 릉이 큰 이유는 미모와 현명함으로 당시 한과 흉노의 평화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란다. 입구에 게르 모양의 큰 군막과 흉노문화박물관 그 옆에는 소군박물원, 영빈관이 들어서 있었다.
먼저 흉노문화박물관에 들어갔다. 입구에 왕소군 모습을 재현하여 놓았고, 흉노들의 모습과 그 옆으로 흉노의 호안야 선우의 기마상이 버티고 서 있었다. 릉으로 들어섰다. 화강석의 넓은 보도 양 옆에는 여러 동물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보도 중앙에는 약 100m 간격으로 대리석 비각이 여러 개 세워져 있고, 기마상 위에 두 개의 공덕비가 있었다. 그 앞 33m 높이의 커다란 봉분이 왕소군의 묘다. 그 봉분 맨 위에는 6각정의 비각이 있다. 비석 전면에는 왕소군지묘(王昭君之墓)라고 쓰여져 있고, 뒷면에는 치맛자락이 나풀거리는 모습의 왕소군 전신상이 음각으로 조각돼 눈길을 끌었다. 이 릉은 사계절이 푸르다고 하여 청총이라고도 한다.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 왕소군의 릉 
왕소군(王昭君)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후한 때 왕소군은 전한(前漢)의 원제(元帝) 때 궁녀로 뽑혀 입궁했다. 그 당시의 황제는 화공들에게 여러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올리게 해 마음에 드는 미인을 골라 곁에 두었다. 이런 관계로 궁녀들이 막대한 재물을 화공들에게 바쳐 자신의 얼굴을 더 아름답게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왕소군은 자신의 용모와 비파 실력을 믿고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이에 화공은 아름다운 용모를 오히려 추하게 그려 황제에게 바쳤다. 흉노의 호한야는 세력이 강성해지자 전한의 황제에게 사위가 되고 싶다고 청했다. 공주를 차마 보낼 수 없어 황제는 궁녀 중에서 제일 못 생긴 왕소군에게 흉노의 왕에게 시집가라고 명했다. 그러나 초상화의 주인공은 절세가인이었고 이를 알게 된 황제는 격노해 초상화를 그린 화공 모연수를 참수하고 가산을 몰수했다고 한다.
왕소군의 미모에 관한 고사로 ‘낙안미인(落雁美人)’이 있다. 그녀가 한나라를 떠나가면서 원망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말 위에서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할 때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날아가는 기러기가 날개 짓을 잊어버려 떨어졌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왕소군은 아들 하나를 낳고서 결혼한 지 2년 만에 왕이 사망했다. 그의 큰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흉노의 관습법인 수계혼으로 새왕이 된 장남과 다시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딸 둘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흉노족에게 길쌈과 농사법 등 중국문화를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의 지혜로움은 당시 흉노족이나 한족 모두에게 추앙을 받아 60년간 전쟁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흉노 땅에서 72세로 병사하여 지금의 네이멍구 후하오후터에 묻혀 있다. 이후 이백, 두보 등이 그녀를 소재로 시를 읆는 등 무수한 문인이 시문을 지어 왕소군을 노래하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중국은 개방화 이후 중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모델로 세워 관광사업을 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 구경할 수 있도록 꾸며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인다. ‘징기스칸 릉’과 ‘왕소군 릉’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그곳을 들러보며 우리나라도 이순신, 장보고, 동학혁명 전봉준장군 등 역사적인 인물들을 재조명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전한 원제 때 흉노족을 배려해 평화를 누리고 양국의 번영을 누렸듯이 중국도 조선족을 비롯한 56개의 다양한 민족들에게 진정으로 배려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26일 동안의 중국 배낭여행을 마쳤다. 지금이야 한족이 중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중심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들의 현재’는 ‘다양한 민족 역사의 산물’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으로 이끌기 위한 자치주, 자치구라고 하며 각자의 개성을 살려 주면서 함께 사는 것이다.
단일민족을 자랑삼았던 우리나라도 이제는  ‘하나의 한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발언은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들릴 정도다. 외국인근로자, 결혼이주자, 다문화가정출신 학생, 탈북자 등 다양한 모습의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다른 민족들을 하나의 나라로 묶은 형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내 다문화 생성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다. 이제 우리도 단일민족에서 다민족사회로 변화해 가는 엄연한 현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해 각기 다른 문화의 개성을 이해하면서 새롭게 생성되는 문화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김정일
김정일 여행 작가는 중앙대학교 졸업, 정보통신부 홍보담당관으로 정년퇴직했으며 저서로는 <나 같은 공무원과 이야기 하고 싶다> <우체국도 은행일 한다>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총동창회 고문과 재경정읍시민회 부회장 직으로 활동 중이다. 
 

김정일  kobukim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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