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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꿈’ 설계자 왕후닝중국, 50개 이상 씽크탱크 설립…21세시 中華復興 노려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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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08  14: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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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변화하는 세계정세 속에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싱크탱크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내실을 더욱 다지는 방안으로 정책결정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고급 두뇌집단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오는 2020년까지 50개 이상의 싱크탱크를 설립하기로 했다.

중국 국무원은 최근 ‘중국 특색 신형 싱크탱크 건설 강화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고 중앙부처와 일선 지방정부가 실정에 맞춰 다양한 정책 연구와 자문에 필요한 싱크탱크를 설립하도록 지시했다. 당정기관과 각급 사회과학원, 당교, 대학, 군대, 기업, 연구소, 민간연구기관의 고급 인재들로 구성될 이들 싱크탱크는 정부와 사회에 필요한 조사 ‧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정책 자문, 여론 선도, 공공외교 등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중국에 정책자문기관으로서 싱크탱크가 처음 출현한 것은 1980년대 정책 추진 과정을 과학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 부응하는 차원에서였다. 이후 중국의 싱크탱크들은 3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2014년 기준으로 민간과 정부 지원 기관을 합쳐 429개로 증가했다.

2014년 전 세계에서 6681개의 싱크탱크가 지명되었는데 미국이 1830개로 1위, 중국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빠른 발전의 원동력은 물론 급속도로 진행된 세계화와 중국의 국제사회 의존성 심화다. 이제 중국 최고지도자는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고는 어떤 주요 정책결정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씽크탱크의 역할이 중요해진 셈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또한 싱크탱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한 연설에서 “높은 수준의 싱크탱크를 하루발리 육성해 국제적인 지위를 얻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은둔의 책사(策士) 왕후닝

각종 자료를 종합해보면 중국의 싱크탱크는 크게 세 종류로 나윈다. 먼저 중국 공산당과 정부 각 부처, 군부 등이 운영하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있고 과학 및 사회과학 계열의 연구소와 대학 부설 연구소가 그 뒤를 잇는다. 최근에는 민간 싱크탱크를 네 번째 범주로 분류하는 경우도 눈에 띄는데, 이는 민간 싱크탱크가 중국 경제나 사회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각종 협회나 포럼, 재단은 물론 신화통신 같은 언론매체를 포함하느냐 여부에 따라 전체 싱크탱크 수는 200개에서 2000개 사이로 크게 엇갈린다.

다만 중국의 정책결정 과정에는 싱크탱크 같은 연구기관보다 흔히 ‘즈낭’으로 통칭하는 정부 정책자문위원들의 영향력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 같은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정책과 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최고지도자를 개인적으로 보좌하는 주요 정책자문위원들이 절대적 우이를 점하고 있다는 측면과 함께, 더욱이 특정 싱크탱크의 영향력은 조직 자체가 관료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잇느냐에 따라 좌우되기보다 이 싱크탱크 소속 주요 인사들이 가진 명성과 관계가 깊다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정책자문역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왕후닝이다. 그는 시진핑의 ‘중국꿈’의 설계자라 불린다. 특히 시진핑이 해외 출장을 나가거나 국내에서 관리를 만날 때 시진핑 뒤엔 늘 왕후닝이 따라다닌다. 중국 권력 서열 25위 안에 드는 정치국 위원이지만 워낙 드러내지 않는 처신에다 그가 맡은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라는 자리가 직접적인 권력 행사와는 거리가 멀어 줄곧 은둔의 책사(策士)란 말도 들어왔다.

왕후닝이 중앙 무대에 등장한 건 1995년 가을이었다. 장쩌민의 당 대회 연설을 기초하며 ‘개혁과 발전, 안정’의 삼자 관계 처리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면서부터다. 그는 장쩌민 시기의 지도 사상인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을 만들어 중국 공산당이 노동자 ‧ 농민의 당에서 전체 인민을 위한 당으로 변신하는데 필요한 논리를 제공했다. 후진타오 시대엔 고속 성장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을 내놓았다. 시진핑 등장 이후엔 낙마할 것이란 예상을 일축하고 시진핑의 구호인 중국꿈(中國夢)을 디자인하고 있다.

1955년 10월 상하이에서 태어난 왕후닝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문화대혁명이 발생하자 집에 틀어박혀 책만 봤다고 전해진다. 이때 평생을 좌우할 두 가지 좋은 습관을 기른 것이다. 하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를 통해 사고하는 능력을 키운 점이다. 상하이사범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뒤 78년 푸단대 국제정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며 17년간의 푸단대 인생을 시작한다.

졸업 후 학교에 남아 강사가 된 그에겐 세 가지 평가가 따랐다. ‘능력 있고 재치 있으며 한눈에 열 줄씩 읽는다.’ 88년부터 69년까지 미국 유학을 마친 뒤엔 미국정치체제를 비판한 <미국은 미국을 반대한다>는 책을 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회보나 세계경제도보 등 신문에도 정치개혁을 주제로 종종 기고했다. 중국이 개혁에 올인하기 위해선 중앙으로 권력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선 개명전제(開明專制)도 필요하다는 논지를 폈다. 신권위주의 지지자라는 말을 듣게 된 배경이다.

   
 
덩샤오핑, 개혁개방 선언 후 싱가포르와 한국 경제성장발전을 모델 삼아

신권위주의란 계몽전제(啓蒙專制)는 한 사회가 빈곤하고 낙후된 사회에서 부유하고 민주화된 상황으로 향해 가는 과정 중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역사적 단계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싱가포르 리콴유처럼 독재 정치가와 시장경제를 결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나서 한국,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발전모델에 관심이 높았다. 그 가운데 싱가포르와 한국의 경제 성장을 발전 모델로 삼으려 했다. 이때 왕후밍이 1만여 자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권위(권력), 문화, 물질적 능력을 모두 갖춘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중국 실정에 맞는 정치제도에 대한 이론적 작업의 일환이었는데,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성장을 추진하던 덩샤오핑의 생각과 매우 부합된 것이었다. 나중에 서구 학계에서는 이러한 덩샤오핑의 생각을 ‘신권위주의 이론’이라고 부르게 된다.

장쩌민 상하이 당서기 아래에서 선전부문을 맡고 있던 쩡칭훙은 왕후닝을 주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중국이 당면한 정치개혁 문제를 놓고 난상ㅌ론을 벌였는데 누가 학자이고 누가 관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분위기가 뜨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된 장쩌민을 따라 올라온 쩡의 강력한 추천으로 왕후닝은 95년 중앙정책연구실에 발을 들여놓은 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중앙정책연구실은 당 중앙을 위해 정치이론과 정책을 연구하며 문건을 기초하는 곳이다.

시진핑이 주재하는 짐단학습엔 중국을 이끄는 최고위 관료 40~50명이 모인다. 이 집단학습의 주제와 강사 선정에 중앙정책연구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어떤 문제를 어떤 강사를 불러 어떤 결론으로 유도할 지가 왕후닝의 손에 달린 것이다. 이런 그를 미국 언론은 외교의 귀재 헨리 키신저와 국내 정치의 달인 칼 로브를 합쳐 놓은 인물과 같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최근 왕후닝의 신상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이 21세기판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영도소조의 수석 부조장을 겸임하게 된 것이다. 막후에서 정치 무대 전면으로 등장한 셈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3월 28일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퍼럼 기조연설에서 “아시아 운동 공동체론‘을 주창하면서 ’일대일로‘는 중국 독주곡이 아닌 유라시아 합창곡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왕후닝은 2년 후의 19차 당 대회에서 현재 선전과 이데올로기를 맡고 있는 류윈산을 대신해 최고 집단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는 95년에 펴낸 <정치적 인생>에서 ‘누가 정치인인가? 죽음 앞에서도 변치 않는 신념, 동서양을 넘나드는 학문,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는 인격, 멀리 내다보는 시야, 불요불굴의 의지, 모든 냇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은 도량, 대세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닮고자 하고 또 그가 빚어내고자 하는 중국 리더의 모습이기도 하다.

공공 싱크탱크 연구 활동 공정성 의문제기

중국사회과학원이나 각 대학 부설 싱크탱크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들의 연구가 정책결정 심장부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술적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재정적 제약이나 정책자문을 제공할 접근 통로도 부족한 민간 싱크탱크는 아직까지 영향력 수준이 가장 낮다고 봐야 한다.

특히 정부 산하 싱크탱크들은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먼저 정부에 재정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싱크탱크가 편견 없는 정책연구를 진행하려면 독립성이 필수적이지만,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중국의 공공 싱크탱크들은 연구 활동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더욱이 국내 정치 제도나 외교정책 전략 같은 민감한 사안의 경우 정치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예컨대 2014년 6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중국사회과학원에 ‘외부세력이 침투했다’고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중국 학계는 엄청난 논란과 혼선에 휩싸였고, 국제적 입지를 쌓으려 애써온 싱크탱크들의 그간 노력에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중국의 싱크탱크의 경우 경쟁의식 부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에서 최근까지 정책연구는 공공 싱크탱크의 전유물이었고, 이들 사이에 제 나름의 경쟁구도가 있다 해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성과나 연구 결과물 차원에서는 국제 기준에 한참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 정부가 좀 더 활발하고 왕성한 정책연구 활동을 원한다면 민간 싱크탱크에 더 많은 기회와 신뢰를 줘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은 2014년 세계 싱크탱크의 영향력 순위를 분석한 서구 민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50대 싱크탱크 목록에 총 3개의 중국 연구기관이 이름을 올렸다. 16위를 차지한 현대국제관계연구소, 28위에 오른 중국사회과학원, 33위에 오른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이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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