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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싱크탱크, 폐쇄적 관료사회로 비판 기능 잃어워싱턴DC 우군 만들려 치열한 로비 펼쳐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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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08  13: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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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씽크탱크인 국제문제연구소는 1959년에 설립됐다. 당시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제창에 따라 영국의 채텀하우스(영국왕립 국제문제연구소)를 본 따 외교 ‧ 안보 문제에 특화된 일본 최초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외무성 산하 공익 재단법인으로 재계 ‧ 학계 ‧ 언론계 중진 인사들이 대거 지원하는 형태다. 주된 업무는 조사 ‧ 정책연구, 대학 및 각종 연구소와의 정보교류, 관련 출판물 발간 등을 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문제연구소는 ‘세계 싱크탱크 순위’ 조사에선 아시아 1위, 세계 13위에 올랐다. 하지만 일본의 싱크탱크의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에서 ‘정책집단’이라는 말은 고스란히 정부 관료사회를 의미할 뿐이고 이들은 정책을 연구하고 형성하는 과정에서 독점적인 권한을 누려왔기 때문에 배타적이고 경직됐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외부의 누군가가 이 과정에 끼어들 공간은 거의 없다. 정부 각 부처 청사가 모여 있는 도쿄 가스미가세키 지역이 사실상 일본의 싱크탱크였던 셈이다.

2014년 발표된 세계싱크탱크지표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내 싱크탱크 수는 108개로 세계 9위다. 미국과 중국, 유럽 선진국은 물론, 인도나 아르헨티나보다도 적다. 일본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특히 다른 G20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싱크탱크의 절대다수는 정부나 기업의 부속기관이다. 준 구니하라 캐논국제학연구소 연구주임은 이들을 가각 ‘가스미가세키 타입’과 ‘마루노우치 타입’이라고 부른다(마루노우치는 일본 대기업 본사가 밀집해 있는 비즈니스 지구). 후원하는 정부 부처나 기업에 정보와 데이터, 분석자료를 제공하는 게 이들의 기본 임무다.

하지만 이러한 의존성 짙은 지식 인프라로 정부 정책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검토를 내놓기 어렵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책 대안을 제시할 연구기관들 간 경쟁도 거의 없다. 이러한 경쟁구도 자체가 아예 환영받지 못하고 그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독립적인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냉전이 끝나고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이래 싱크탱크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는 작업이 일본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됐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싱크탱크들이 북미나 유럽과는 달리 로비단체나 기업에 의해 설립된 것들이 많아서 정치경제와 외교, 문화 등의 외면을 넓혀 확장된 전망과 영향력 증대에 노력하기 보다는 이들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에 더 치중하게 되는 생태계를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 관료주의가 정책이나 주요 의제 형성을 오랫동안 독점해온 점이나, 싱크탱크 설립의 여러 제약조건 등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사카와 평화재단, 국가정보국(DNI) 국장 역임한 ‘거물’ 데니스 블레어 영입

반면 일본은 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의 중요성에 대해 일찌감치 눈을 뜨고 정부와 공공재단 ‧ 기업이 모두 나서 워싱턴의 싱크탱크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펼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이 워싱턴 싱크탱크를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는 일본 정부 외무성의 공공외교 담당 차관 산하에 공공정책과를 신설해 미 싱크탱크 투자 계획을 전담시키기까지 한다.

공공법인으로는 일본 최대 공익법인인 사사카와 평화재단이 지난해 5월 데니스 블레어 전 미 국가정보국장을 이사장으로 영입해 일본 관련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직접 주관하거나 후원하는 데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데니스 블레어는 미국내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역임한 ‘거물’이다. 워싱턴 DC내 일본의 움직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그동안 이 재단이 연구 프로젝트의 주제를 선정해 다른 연구기관에 용역을 주거나 미‧일 관계 등에 관한 콘퍼런스를 후원해 왔지만 이젠 직접 조사 ‧ 연구기능도 갖추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면서 “사실상 워싱턴 DC의 일본 및 아시아 ‧ 태평양 전문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사카와재단 미국법인은 이미 2013년도에 의회 로비와 정책개발 능력 강화를 위해 미 의회 보좌관 경험이 있는 인력을 여러 명 충원한 바 있다. 다른 관계자는 “사사카와재단이 2013년 5월 미국을 대표하는 안보통인 블레어 전 DNI 국장을 영입할 때부터 자체 연구기능을 갖춘 싱크탱크로 발전하는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마”면서 “일본의 국익에 부합하는 주장과 논리를 미 주류사회에 적극적으로 전파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 재단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 출신인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했다. 기업차원에서도 도요타 ‧ 히타치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국익 차원에서 미 싱크탱크가 주최하는 세미나 등을 후원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미 싱크탱크 관리를 전담하는 국제교류재단이 쓰는 돈은 연 100만 달러(약 10억원)로 일본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현석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13년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국제여론이 악화되자 일본 정부와 민간은 지난해 초부터 워싱턴 싱크탱크에 인력과 자금을 쏟아부으며 대규모 선전전을 펼쳤다”고 말했다.

일본은 외무성 산하 일본국제교류기금(JF)을 통해 연간 562만 달러(약 60억원)를 미국 싱크탱크의 일본 연구사업에 지원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사가와 평화대단은 미 싱크탱크의 일본 관련 프로그램 등에 연간 35억 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으며 노무라재단, 도요타, 미쓰비시, 도쿄은행 등도 싱크탱크 후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싱크탱크는 브루킹스연구소,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외교협회,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우드로윌슨센터, 카토연구소, 신 미국안보센터, 미국진보센터, 대서양협회, 헤리티지재단 등이 꼽히고 있다. 2013년 1월부터 2014년 6월 말까지 미국의 10대 외교 ‧ 국제문제 분야 주요 싱크탱크의 포럼 지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정부와 민간 차원을 포함해 일본과 한국은 각각 64회, 29회 단독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기간 일본은 브루킹스연구소에 14차례 단독으로 포럼 개최를 지원했지만 한국은 3차례에 그쳤다.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에는 일본은 15차례 단독 지원했고 한국은 한 번도 없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경우 일본은 20회, 한국은 14회 돈을 댔다. 헤리티지재단에도 일본은 4회 지원한 반면 한국은 1회에 그쳤다.

   
 
미국 워싱턴DC 영향력 강화하려는 일본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해

2014년 3월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국어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던질 무렵 미국 수도 워싱텅DC의 크고 작은 싱크탱크들에서 동북아 상황을 다루는 포럼들이 만개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이 포럼들의 주체는 대부분 일본이었다. 일본이 주최한 크고 작은 포럼을 통해 동북아 상황 전체가 밀도 높게 논의됐다. 물론 한반도 이슈는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으로 다뤄졌다.

또한 같은 해 3월 21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퍼시픽포럼은 워싱턴을 무대로 한 일본의 국가적 전략을 엿볼 수 있다. 퍼시픽포럼은 워싱턴 싱크탱크 주관 행사로는 극히 드물게 토요일이 낀 이틀간의 행사로 진행됐다. 미‧일 동맹과 관련된 군사안보와 외교가 주된 이슈였다. 참가인원은 대략 300명 선이었다. 적은 규모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워싱턴 싱크탱크 포럼에서 300명의 참석자들은 대성황에 해단한다.

일본대사관과 워싱턴 싱크탱크의 ‘돈줄’로 정평이 나 있는 사사가와재단이 후원한 행사로 지난해 4월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과 헤이그에서의 한‧미‧일 3국 회동을 앞두고 열렸다. 미‧일 동맹 관련 일본인 전문가와 사사가와재단이 선정한 2014 미‧일 청년 리더 30여명이 일본에서 날아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영향력을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일본의 움직임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향방을 두고 각국이 벌이는 새로운 경쟁구도 속에서 일본이 능동적인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국이나 한국과 비교하면 특히 공식 로비의 영역 밖에서 이뤄지는 활동에서 일본은 소극적이다. 싱크탱크를 비롯해 NGO나 다자기구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공식 영역이야말로 관련 정보를 바르게 획득하고 다양한 접촉 채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지만, 주변국들에 비해 일본의 소프트파워는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전세계적으로 비정부기구(NGO)가 사회적, 국제적 환경 조성에서 상당한 구실을 하고 있는 트렌드에 바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도시히로 나카야마 게이로대 교수는 “일본이 최소한의 국익을 지켜내려면 글로벌 아이디어 시장과 국제 환경을 결정짓는 규범 형성과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 걸쳐 격렬히 펼쳐지고 있는 경쟁의 장에서 일본은 소외됐고, 미래 번영이나 국제사회와의 관계 역시 위태롭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위기 장기 해법 모색하려 일본재건이니셔티브(RJIF) 발족

한편 2011년 3월 지진,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붕괴로 이어진 재난은 20년에 걸친 일본 쇠락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장기간에 걸친 위기는 일본 사회 내부의 침체 분위기와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독립적 싱크탱크인 일본재건이니셔티브(RJIF)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지만, 이 사건의 피해를 복구하는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에 걸친 우기의 근본 원인과 구조를 해부함으로써 일본 사회 전체를 재건할 방안을 제시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침체된 정책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놓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일본 싱크탱크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련돼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몽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독립성’이야말로 시민사회에 곡 필요한 기반이라고 믿었다. 철학자 쓰루미 슌스케가 1946년 ‘사상의 과학연구회’를 설립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였다. ‘사상의 과학연구회’는 시민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식인 모임이었고, 쓰루미는 ‘일본인의 생각에 근거한 민간 기반의 공공 정책을 복원’하는 것만이 일본을 세계로 이끌 길이라고 믿었다. 이들의 비전은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지식 공동체의 복원이자 꿈이었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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